2021년 12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기독교 절기 가운데 성탄절처럼 상업화와 세속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절기가 없습니다. 성탄절하면, 사람들은 파티, 화이트크리스마스, 트리, 산타를 떠올리는데, 이 모든 것은 성탄절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사가 종교적 편향성이 크다고 하여 공적으로는 Happy holiday라는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기념하여 드리는 예배가 크리스마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성탄은 인간이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해 자신들이 왕노릇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성탄절에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예배하고 있나요? 성탄에 우리도 예수님을 귀여운 아기 예수님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왕으로 태어나셨음을 말합니다. 새로운 왕이 오신 것입니다. 새로운 왕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왕이 받으셔야 할 마땅한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아는 자들만 예수님께 올바르게 반응합니다.
진짜 왕이 오시면 어떤 반응을 나타내나요?
1. 가짜 왕들은 분노합니다. vv.1-8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예수님이 태어나실 것이며, 모든 자의 구원자가 될 것은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신 일입니다. 이 계시를 가진 유대인이 아닌 이방에 살던 성경과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동방박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여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모순적입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자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는데, 멀리서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입니다.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언제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소동하나요?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 벌어져서 소동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성경에 대해 박식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태어나실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구약 미가서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헤롯 왕, 서기관, 대제사장이 살던 곳에서 베들레헴은 아주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대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아무도 함께 경배하러 가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예수님을 경배하고 왕으로 섬길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우리는 헤롯의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거짓말을 한 것인가요?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미래에 자신의 방해꾼이 될 만한 존재가 있다면 다 없애버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아기를 다 죽여 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아기가 왕이 된다고 해도 수십 년이 남은 일이지만 자신의 경쟁자가 될만한 자를 살려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역사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악한 왕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컸냐면, 큰 아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로마 황제에게 편지하여 큰 아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했고, 결국 로마 황제는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돼지가 되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모든 경쟁자를 죽이려 했던 헤롯을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호칭을 붙이는데 ‘헤롯 대왕’이라고 합니다. 조선에도 세종과 같은 왕만 세종대왕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이 기억할 때, 헤롯이 큰 업적을 남긴 왕이었는데 헤롯 성전을 크게 짓고 건축물을 크게 지어 뽐냈던 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큰 건축물을 세우는 것을 보며 대왕이라고 기억했지만, 그의 본질은 경쟁자를 다 죽여 자신의 왕권을 견고케 하고자 했습니다. 헤롯이 나쁜 놈이라 성경이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롯은 모든 인간의 본질 안에 내제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죄성의 본질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헤롯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지만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여 애쓰는 왕 되고자 하는 인간을 대표합니다.
한 사람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탄 발표회를 하는 아기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귀여워하지만 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이기성과 욕심 때문에 자주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의 이런 이기적 모습이 가장 극대화될 때가 첫째 아이가 있는데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입니다. 경쟁자가 생기는 순간 돌변합니다. 가서 꼬집고 울고 심지어 자기가 어린아이처럼 변하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인기를 독차지하고자 하는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고 성인이 되어도 이 모습이 교묘히 나타납니다.
성도의 인생 가운데도 끊임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 경향성입니다. 예수를 믿으며 예수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것은 우리 인생에 끊임없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한 왕으로 인정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든지 간에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해 나가지 못하면, 헤롯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며 내가 뜻한 것을 이루고자 갈등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역사학자들은 헤롯은 내면이 가장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인간이라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경쟁자를 죽였지만 근원적 본질이 자기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찌질한 겁쟁이이였던 것입니다. 가장 용감한 척, 무서운 척했지만 내면 안에 있는 극도의 불안감이 결국 악을 행하며 끊임없이 경쟁자를 제거하여 그 자리에 자기 혼자 서고자 한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분노라는 감정은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보편적 감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끊임없이 분노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가까운 사람들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만 하며 하나님이 아닌 존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분노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노릇하려고 하는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며,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해달라는 반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왕이 오시면 어떤 반응을 나타내나요?
2. 계시를 믿는 자들은 경배합니다. vv.9-11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물론 지금, 이런 일이 세상 가운데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어떤 사람을 쫓아다닌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고대, 동방이라는 바벨론이라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을 평생 기록하며 관찰하며, 세상의 일들을 예측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들은 정교하게 연결되어 규칙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 앞에 일정 주기에 반대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과거의 전설과 이야기들을 결합시킨 것입니다. 고대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금성과 목성이 평상시보다 엄청 밝게 빛을 내었다고 합니다. 천체에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 별이 자신들을 아기 예수님께 인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씀해주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사실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하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멀리서 찾아오기까지 예수의 탄생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시를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기대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 2:25-26)
시므온에 대해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어떤 사람이 위로를 기다릴까요? 상처를 입고 소망이 없고 고통하는 사람이 위로가 필요합니다. 시므온이 개인적 차원이 아닌, 로마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28-32)
시므온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길 간구한 것이 아닙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으니,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고백하며 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소망 없음을 절감하였기에 메시야의 오심을 기뻐하며, 이스라엘의 영광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요? 이 민족과 세대의 어둠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소망임을 경험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십여 년 전 제가 유학을 하며, 빠지지 않고 기도했던 것이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어둠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기도만 하는데 마음이 짓눌리고 어둠이 슬프게 만들고 고통하게 만들어 자주자주 기도하면서 한국교회 때문에 울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떠나기 전 경험한 한국 교회는 부흥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했는데, 미국에서 기도할 때마다 어둡고 소망이 없음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저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요즘 제가 기도하면, 그때 느꼈던 그 마음이 진짜 시작되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물론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음에 감사하지만,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세상의 유혹과 어둠을 이길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20대의 80%는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서양의 교회가 노인만 가득한 채로 문을 닫고 나이트클럽이 되었다는 것이 한국교회에도 일어날 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그 어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다시 미치지 않으면, 어둠이 깊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시므온의 마음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니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쌓여야, 어둠 가운데 빛이 비치며 미래에도 예수를 온전히 믿는 부흥의 때가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들이 예수를 이렇게 경배할 때, 어떻게 경배했나요?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경배는 우리가 흔히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아기가 정말 어떤 왕의 모습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분에 대한 계시를 믿고 반응한 것입니다. 예배는 어떤 존재가 가진 모든 가치를 모든 것 중에 최고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예배자입니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예배합니다. 왜 이들은 아기께 예배했을까요? 그들이 세상에 닥칠 어두움을 목격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라는 강력한 권세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질서가 유지되었지만 동방박사들은 로마가 지배하는 강력한 권세가 세상을 더 위협하는 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수천 키로를 여행해 세상에 빛을 가져올 메시야를 경배한 것입니다. 지금도 대통령이 새로 당선되면 빛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상황입니다. 어떤 대통령을 열망하며 구원을 갈망한다면 그것이 예배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기처럼 약한 모습이지만 그가 구원자임을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들은 왜 선물을 가지고 와 경배한 것일까요? 왕권과 죽음을 기념하는 유의미한 선물입니다. 이런 선물을 아기께 바치는 중요한 이유는 최고로 가치 있는 분임을 인정하는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내가 사용하는 것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들은 선물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아이돌 스타는 아파트까지 받아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비싸고 좋은 것을 선물할까요? 내가 사랑하고 가치 있다는 존재가 내가 바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자의 삶의 태도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바쳐야 하나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매년, 성탄 헌금을 선교사님과 외부에 보내 그동안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 우리가 헌금해서 보내기로 한 이복음 선교사님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교제를 하였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셨는데, 파송한 선교 단체의 대표에게 전화를 했더니,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려운 선교지로 가겠다는 전화에 감사를 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 가족이 한국에서 선교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기도하다가 어떤 장로님과 연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이 노후에 가서 살려고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는데, 어느 날 새들이 주택의 빨래 줄에 앉아 쉬다 가는 모습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가정과 교제를 한 후, 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원주택을 선교사님이 머물 곳으로 주라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구나를 깨달으며 선교사님께 머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전원주택을 선교단체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장로님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떠올리며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살고 계시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가 헌금 전액을 외부로 드리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후원을 하기로 하면서 그 선교사님 부부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헌금이 우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경배의 대상이며, 그 뜻에 따라 섬기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를 함께 경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자리에 함께 동참하게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