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5일 주일성탄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면 자신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한 것 같은 생각에 ‘크리스마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Holiday Blues라고 해서 미국 사람의 경우에 다섯 명 중 한 명이 겪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난히 외롭고, 의기소침하고, 허무하고, 괜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증상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엄마의 크리스마스’라는 소설에는 이혼한 엄마가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루하고 힘든 일상을 버텨냅니다. 크리스마스에 아들이 우울해 보이자 종일 장난감 가게, 물놀이, 백화점, 성당, 공원을 함께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는 애완 동물가게서 새 한 쌍도 사 줍니다. 그러나 아들은 이번 크리스마스처럼 끔찍한 날은 평생 없을 거라고 폭발합니다.
아이가 우울했던 진짜 이유는 다른 친구들은 행복한데 나만 가정이 깨어진 것에 대한 슬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이런 구절로 끝이 납니다. ‘사진 속에는 지겨운 파티, 숨막히는 식사, 가족들의 다툼, 이혼의 징후, 일상의 권태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사진이야말로 전쟁을 치루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는 거짓말이다.’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더 기쁘고 싶은 것일까요?
일상에는 이런 기쁨 대신 불편, 불안, 피곤함을 자주 경험하게 되기에,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짜릿한 기쁨을 누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목자들은 1년에 하루조차 기쁨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목자의 이미지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당시에 이들은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하층민이었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밖에서 생활해야 했고, 자기 양이 아니라 부자들의 양떼를 대신 맡는 소작농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연말의 흥겨움과 잔치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전혀 소망 없던 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9절입니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도 천사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힘든 일을 하고 살아가던 목자들에게 기적 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가 온 목적은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쁨의 소식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성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크게 기뻐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1. 죄에서 구원 받을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vv.11-12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크게 기뻐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죄에서 구원받을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이 동네’는 구약성경에서 예언하던 메시아의 예언이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그 분이 ‘구주’이십니다. 구주는 구원자입니다. 그런데 왜 구원이 곧 기쁨인가요?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구원자를 기대합니다. 지금 나의 삶을 불행하고 어둡고 지루하게 만드는 일상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나를 구원하여 전혀 다른 인생을 선물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자 돈을 기대하며 로또를 삽니다. 당첨되지 않는대도, 당첨될 수 있다는 기대로 일주일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구원자로 기대합니다. 멋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나를 한 단계 올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멋진 사람을 만나도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불행의 근원적 문제가 돈이나 사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구원자 예수님의 하실 일을 이렇게 말합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기쁨인 이유는, 인간이 기쁨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가 돈이나 사람 때문이 아니라 죄로 인해서 영적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은 영적 생명이 충만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니라 영혼 안에 하나님이 생명을 채워 넣으셔서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상태’가 되면 행복하고 만족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안식이라고 합니다. 영혼 안에 하나님이 채우신 생명이 충만하니까 공허하지 않고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영혼이 공허해졌습니다. 즉 죄는 곧 하나님의 생명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원래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되셨는데 영원한 생명이 떠나고 비어버린 상태가 바로 죄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혼에서부터 공허한 것입니다. 공허하니까 불만족하고, 갈망이 생기니까 갈망을 채우고자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영혼이 공허해서 애를 쓸수록 이것은 욕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돈을 가져도, 아무리 사람을 만나도 인간은 불만족하고 불평합니다. 욕망으로 인해 자기 중심적 태도를 버릴 수 없으면 특별히 사람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만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드셨는데 그 예수를 통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만족을 취하려는 인생은 더 깊은 공허와 어둠에 빠지게 됩니다. 죄는 사기나 도적질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지금 영원한 만족을 누리고 있지 못하시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크게 기뻐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평화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vv.13-14
두 번째로 예수님이 오셔서 크게 기뻐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평화가임했기 때문입니다.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좋은 소식을 전한 천사들이 찬양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무슨 의미인가요? 영광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본체와 본질이신 예수님이 나타남으로 하나님이 드러나셨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입니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에 그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또한 평화는 무엇인가요? 세상의 무질서가 다스림을 받아 질서 있는 상태가 평화입니다. 죄가 만들어낸 세상의 모습은 창세기 1장 2절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혼돈’은 질서가 깨어진 상태, 즉 무질서입니다. ‘공허’는 내용이 텅 비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흑암은 왜 깊음 위에 있나요? 흑암은 죄의 영향력입니다. 죄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면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 공허하고, 질서가 깨어져 무질서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무질서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관계의 질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이 질서입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순간 질서가 깨어집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를 내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이 무질서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깨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혼이 공허해서 욕망을, 분노를, 말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 질서가 깨어진 상태가 불행입니다. 욕망이 자기를 사로잡아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하며, 끊임없이 분노하며, 통제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비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을 욕망을 채워주는 우상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고통의 원인입니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매년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500만 명 정도가 약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우울함과 불안함과 공황장애에 시달립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이 가장 열망하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실 때에만 평화가 주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열망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사야 9장 6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버지이신 분, 이것이 예수님의 비밀입니다. 연약한 자로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의 주인이신 분. 그분이 정사와 권세로, 평강의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기억해야 될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이 평화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평화를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더 괜찮은 대접을 받기 원하는 죄성이 만들어 낸 계획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이므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통치하실 때 평화없는 인생으로부터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기로 오셨지만 영혼의 공허를 생명으로 채워주시고 우리 영혼에 온전한 통치를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유일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 원하는 분들은 예수님의 통치를 사모하심으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