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부활의 의미(고전 15:12-19)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
부활절을 우리가 매년 기념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절이 성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1. 믿음의 근거입니다. vv.12-15
첫 번째로 믿음의 근거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성경을 쓰던 시절부터 그런 일은 있어왔습니다. 이것에 대해 고린도전서 15장 4절부터 6절까지 바울이 어떤 증거를 이야기하나요?
고전 15:4-6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지금은 이미 수천 년이 지나서 증거를 댈 수 없지만, 바울이 성경을 쓰던 당시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작당해서 거짓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가 수백을 넘어가면 거짓으로 말을 맞추기는 불가능해집니다. 즉 몇몇은 부활이 없다고 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거짓이 아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또 13절과 14절에 바울은 부활이 바로 복음과 믿음의 핵심이라고 덧붙입니다.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다른 것은 다 맞다 치고 부활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왜 믿음 자체가 헛것이 되어 버리나요? 부활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증명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야 예수님이 창세기부터 약속된 분, 즉 인간을 파괴와 멸망의 원인인 죄로부터 구원하실 분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성경전체가 사기이며 거짓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만 거짓이고 나머지는 다 맞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인간을 불행과 불만족과 고통에서 구원하실 것인데, 그 원인인 죄를 해결하시고 죄의 결과인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성경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엘리야와 엘리사도 죽은 사람을 살렸고, 예수님도 여럿을 살리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다시 살아났나요?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을 보여주는 모형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그들은 언젠가 다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시며 메시아임을 믿게 하기 위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이 없다면 성경전체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부활은 한 사건으로 끝이 아니라 이 사건에 성경의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며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창시자가 사라지자 종교자체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예수의 제자들이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하버드 대학교의 그린피스박사입니다. 이 분은 법의학 교수로, 법적으로 인간의 사망과 생명에 대한 증거들을 찾아 사인 및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학자이자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증거들을 모아 법의학적으로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결심하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이름이 ‘법정에서 사용되는 증거규범에 의해 살펴본 사복음서 저자들의 증언에 관한 검토’입니다. 즉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주장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증거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짓일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집필을 시작했는데 이분이 성경에 나온 증거들을 모아 분별 해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은 자신들이 진술한 사실을 그렇게 확고하게 붙들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믿음이 생겼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예수님이 잡혀가시기만 해도 두려워 떨며 도망을 친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내걸며 담대한 증인으로 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활을 믿지 못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놀라운 영적 은혜, 부활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 가운데로 아직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하셔야 됩니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신앙자체가 견고하게 설 수 없어서, 신앙의 근원이 흔들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죄에서 자유케 된 증거입니다. vv.16-18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죄에서 자유케 된 증거입니다. 16절과 17절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바울이 계속 반복하는 것 같지만, 당시 사람들의 ‘죽은 자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라는 전제가 너무나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계속 주장하며 부활을 설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죄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음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죄는 로마서 6장 23절을 보시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성경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단순한 육적 죽음이 아닙니다. 물론 육적 죽음도 죄의 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입니다. 육적으로 죽었다고 소멸되나요? 아닙니다. 육신 안의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상태로 영원히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는 금이 깔려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사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적 차원에서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본질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가의 여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상태는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나요? 죄의 지배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존재적으로 거룩하시고 관계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거룩이 없다면 인간은 더럽고 부정한 상태가 지배하는 육적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공허하여 생명 없이 자기 이익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이기적인 모습으로만 살지 못하도록 자꾸 법을 만들어 냅니다. 만약 사회에 법이 없다면 세상은 지옥처럼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갇혀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규범을 깨뜨리고 온전히 자기 이익만 위해 살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이 지옥의 맛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를 죽여도 나만 살고자 하는 무서운 이기성이 가득한 존재들과 영원히 함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 없는 상태로부터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 또한 이기성과 죄의 결과들을 이 땅에서 경험하는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어떤 약속이 주어졌나요? 예수님이 죄를 해결하심으로 우리에게도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게 될 날을 부활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55절부터 57절은 이야기합니다.
고전 15:55-57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죄는 결국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인간이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죄를 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승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노력하고 애써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결국 부활이 어떤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될까요?
죄의 영향력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몸부림치며 그것을 벗어나 잘 살아보고자 애써봤는데, 나의 몸부림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으며, 나라는 존재는 나와 남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것을 경험함으로 감사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18절에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미 죽어버린 자 뿐 아니라 우리 또한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절이 중요한 것입니다. 매주 주일을 지키는 이유도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찬양하고자 모이는 것인데, 일 년에 한 번 특별히 날을 정하여 부활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3. 천국 소망의 이유입니다. v.19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천국소망의 이유입니다. 19절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구절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라면, 왜 우리가 남을 위해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절제하고 또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하나요?
세상 사람들은 여기밖에 없으니까 이 땅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고 자기 유익을 극대화하며 자기 쾌락과 안정을 위해 살아갑니다. 정말 만약 내일이 없고 오늘 세상이 망한다면 어떻게 사실 것입니까? 가끔 그런 영화가 있습니다. 운석이 하늘에서 날아오고, 운석을 제거하고자 전 세계에서 노력하지만 소용이 없고, 열흘 후면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고 할 때,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은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시간만 길게 늘렸을 뿐이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땅에 살다가 죽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다면 주어진 모든 기회를 이용해 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나요? 세상이 너무 즐겁고 재미를 누릴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추구했던 사람이 중국의 진시황제였습니다. 중국을 통일하며 모든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그것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그 후의 하나님 나라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이 땅의 풍요와 이 땅의 축복이 아닙니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과정이며 여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보다 풍요한 이 땅의 삶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객관적으로도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가 가진 능력과 기질과 배경의 요소들 가운데 그에게 가장 맞는 것들을 조합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인생은 편해 보이고, 어떤 사람 인생은 심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통의 총량은 개개인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내가 결정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국을 만들어내고자 이 땅을 사용하십니다. 이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무엇에 소망을 두어야 하나요?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도 부활 이후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시고 우리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각을 갖느냐의 여부로 인생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 땅이 전부이며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이 곳은 금방 지나갈 과정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날에, 죽음을 지나 가게 될 하나님 나라가 가장 기쁜 축복’임을 아는 사람은 전혀 다른 태도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절, 4절, 8절에 말합니다.
고전 15:3-4, 8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의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며 이 분만이 하나님이시고, 죄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예수님을 본 받았듯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하셨지만 그런 기도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버리고 갑니다. 파선당했다 겨우 살아나고, 죽이겠다고 결사대가 조직해왔고 바울을 쫓아오고 핍박하고, 이 삶이 축복처럼 보이시나요? 그런데 바울은 아무 상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죽었어야 할 자인데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이 주어졌고 예수를 위한 삶이 가장 값어치있는 삶이니까 너희도 나처럼 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편안하게 재미있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자의 인생에 허락하신 분량대로 참된 믿음을 배우고 그 믿음에 합한 태도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활을 믿고 참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 있습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당장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도록, 하나님, 제게 성령 충만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제가 깨달아 알며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부활절에 눈이 열려 놀라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