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송년예배]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저는 30대 중반까지 연말이 가까워지면 하루를 비워놓고 1년 동안 제가 했던 일들을 결산하곤 했었습니다. 잘한 일, 하지 말았어야 될 일, 변화되어야 할 영역,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한 일 등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록한 뒤 그 결과를 가지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 년을 자세히 돌아보면, 계획대로 잘 한 일은 거의 없고 잘못한 일만 생각나서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왜 매해 반복했을까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모르고 계획을 세우며 몸부림을 쳐야 점점 나은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처럼 상세하게는 아니더라도 연말이 되면 다들 한 해를 어렴풋이나마 돌아보게 됩니다. 대부분 한 해를 돌아보면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잘못내린 결정들, 나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실망하곤 합니다. 특별히 사건 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 자체로는 충만하게 살 능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성경은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도 선포합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올해 새로운 존재처럼 사셨나요? 술 먹고 담배 피고 나이트클럽 다니던 사람은 예수 믿고 인생이 확 변했다고 하는데 모태 신앙인 분들은 ‘새로운 피조물’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원래 술 담배를 안 하고, 유흥을 접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서 단순히 술과 담배와 나이트를 끊었다면 이것은 새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음주가무를 원래부터 싫어해서 멀리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면 특별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20대 때 이 문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때는 큰 은혜를 받아서 저는 당연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새롭게 되어서 기도도 훨씬 많이 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해졌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환경과 사람이 많았습니다.
끼니를 걸러야 하거나 생필품을 살 수 없는 깊은 가난으로 자주 우울해지고 제 평정이 깨지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다가도 돈 걱정으로 두려워지면 예수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인지 하나님이 왜 구체적인 은혜를 주시지 않는지 회의감이 밀려 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때 제 주변에 여러분들처럼 좋은 분들만 계셨으면 저는 제가 천사가 되었다고 착각했을 텐데 당시에는 저를 미워하고 모욕하고 시비 걸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자꾸 만나다 보니 제 안에 미움이 너무나 커져 갔습니다.
환경과 사람으로 요동할 때마다 제 안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내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했는데 왜 요동하고 미워하고 불안한 마음은 더 심해지는가? 이것이 저의 매일의 고민이었습니다.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해진 것 같은데 도대체 성경이 선포한 ‘새 사람’은 무엇인가? 내 안에 악함과 미움과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나는 정말 예수님처럼 될 수 있는가? 이런 고민들이 제가 지금 설교하는 복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안정되고 평범한 환경에서만 살았다면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누군가를 심하게 미워하지 않고 나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과 사람으로 오히려 본질을 매일 마주하며 깊은 고민을 지나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보시면 ‘새 사람’의 전제가 있습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바울 사도가 주로 사용한 표현으로 성경에 100번 넘게 나옵니다. 다른 말로는 ‘예수로 인해 구원받다,’ ‘성령으로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 ‘은혜 안에 있다’ 등으로 다 같은 의미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죄의 결과 안에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두고 보실 수가 없어서 그 안에 예수로 인한 새 생명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물론 20대 때 방황하다 나이가 들며 방황이나 고민은 줄어드는 부분이 있으니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가 인간 본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조금 여유로워진 그런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이고 영원한 공허에서 기인하는 영적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은 성격 급하던 사람이 느긋해지고, 짜증 많이 내던 사람이 짜증 덜 내는 정도로 우리를 조금 만져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죄의 영향을 받은 ‘옛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이 옛 사람 안에 성령으로 새 사람을 시작하셔서 이것을 ‘새로 태어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새로 태어났지만 이전 존재가 여전히 존재하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새 존재로만 살아가면 좋겠지만 옛 존재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중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즘 자동차 중 제일 인기 있는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여러 불편함으로 전기차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휘발유 차를 사기에는 그것도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섞은 것이 하이브리드 차입니다.
전기로 일정 에너지를 공급해서 사용하지만 휘발유를 주연료로 달리면 연비가 높아지고 충전을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휘발유차가 사라지면 하이브리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인간이 바로 이 하이브리드 같은 상태입니다.
휘발유차처럼 세상에서 공급받는 에너지로 사는 육적 존재에다 영적 존재가 합쳐진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차에도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차는 배터리를 크게 넣어서 100, 200km로 갈 수 있고 대부분은 조그마한 배터리를 넣기 때문에 오랫동안 운행은 안 되고 잠깐 시내 다니는 정도로는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은 휘발유로 갑니다. 거의 휘발유 차와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와 새 사람이 시작은 되었지만 아직 영향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일상의 대부분은 옛 사람이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늘 더 좋은 존재가 되길 원하고,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원하는데 성령이 시작하신 새 사람이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고 영향을 미치기에는 오랜 시간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래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본질을 에베소서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4장 22절입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쉽게 번역하면 ‘욕심 때문에 유혹에 자주 넘어져서 결국은 세상의 옛날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옛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옛 사람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하나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결국 세상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유혹은 보이는 것으로 힘을 삼아 높이 올라가라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썩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없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기에 지금 쓸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서 그것으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근원적 욕망이 옛 사람을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의 모든 일이 감사하신 분은 옛 사람이 주도하는 힘이 약한 것이고, 인생에 감사가 없는 분은 옛 사람이 욕망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23절과 24절을 읽겠습니다.
엡 4:23-24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의와 진리는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의를 가질 수 없는데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의의 기준을 가진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있습니다.
또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진 복음의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사랑하고 그 말씀만 온전히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본질이 우리 안에 거룩함을 갖고 옵니다. 죄가 전혀 관계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새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 원하는 것입니다.
1년을 돌아보며 내가 남을 충분히 미워한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충분히 사랑하고 용납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데 의로운 존재가 되면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우리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다른 소리가 너무 많아서입니다. 쾌락을 위해서 살라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진리에 귀 기울이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만족하며 그 은혜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죄와 관계없는 새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충만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요?
은혜입니다. 설교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1년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기를 10년 정도 열심히 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옛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일하십니다. 인생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의의 거룩함의 기준에 맞추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오물로 가득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시는 순간이 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는 대부분 힘들다 고통스럽다 노력해도 안 되는 좌절과 고민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강퍅한 존재라 성령이 말씀하셔도 잘 듣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귀가 열리는 어려움의 시기에 찾아오셔서 그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며 이전에 안 들리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은혜입니다. 목사의 설교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면 여러분 안에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열망하게 됩니다. 자신이 입은 옷이 초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좋은 옷을 바라게 되듯, 추하디 추한 존재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들면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를 의로 덧입히시고, 진리로 새롭게 하시고, 죄와 관계없는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해주세요’라는 열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 과정을 로마서 6장 6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바울 사도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을 발견하여 ‘예수님, 제가 매달려 죽을 자리에 대신 달리시고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하고 계신 일입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고린도후서 4장 16절과 1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후 4:16-17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는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겉사람을 입고 있습니다. 은혜는 환란을 통해 임하여 겉사람을 낡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환란이라 여기는 것들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나의 능력과 돈과 기술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겉사람이 점점 낡아서 떨어져 나가고, 우리 안에서 속사람이 새롭게 성장함으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024년 한 해는 옛 사람이 더 낡아지고 새 사람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