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대위 명령 혹은 지상 명령이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는 근거로 18절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제자를 삼고 또한 그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시기 전에 왜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제자 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입니다. 1년째 공부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 보셨듯이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채찍에 찔리고 법정에 끌려가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는 등 공격과 위협에 처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복음은 단순히 정보를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영적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귀의 영적 반대와 공격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이런 집요한 방해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계속해서 확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천 명이 구원받고,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갖고 모였던 사람 중 5천 명이 구원받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과 마게도냐를 다니며 전도해서 많은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권세를 힘입은 결과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님의 대의 명령을 순종하는 곳에서는 방해와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처음 예수가 전파될 때 그러했고 또한 오늘 파송하는 선교사님 가정 또한 라오스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질주의적 무신론에 기반한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확산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이런 방해가 있을 것 알고도 왜 우리는 파송하나요? 바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공산주의라는 체제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이유는 이 분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힘입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1.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v.19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8절부터 20절 중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제자를 삼아’입니다. 원문으로 보면 이 단어만 본동사이고 나머지는 분사입니다. 가야 ‘제자를 삼을’ 수 있고, ‘제자를 삼은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과정이 세례입니다.
우리는 제자와 학생을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제자의 형태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이 바둑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바둑 영화인 승부에 보면 조훈현 구단이 이창호 구단을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함께 지내며 키워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 행동, 말투, 습관 등을 배워 스승과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누구의 제자를 만들어야 하나요?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는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저는 바울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어서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목사 중에 예수님 제자가 아니라 자기 제자를 만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성경 연구 동아리에서 탁월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며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아 나중에 대학부를 맡았을 때 강사로 초청하고 미국에서도 연락하며 쓰신 책도 받으며 교제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하고 찾아가 개척하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기도나 설교나 대화의 모든 곳에서 ‘우리 교회만, 우리 목사님만, 우리만’ 이라는 표현이 너무 많아서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던 목사님이 달라진 걸까 생각하며 예전처럼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에 기독교 신문을 읽다 깜짝 놀랐습니다. 노회에서 그 목사님 교회가 이단인지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보니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 내 가르침을 받아야만 온전한 예수를 믿는 거다’라고 하며 1년 특수 과정을 지난 사람만 교인으로 등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내 뜻을 따르고 내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길 원합니다. 이것은 가족에게도 적용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제자 삼아야 하는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에 한 어머니가 나옵니다. 아들이 서울대 다니고 집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까 아들 여자 친구가 가난하다는 것을 영 못마땅해 합니다. 그 갈등이 고조되다가 이런 대사를 내뱉습니다. ‘너희 인생의 팔 할은 내 꺼야. 너는 내 프라이드고 내 인생이야’ 그러다 결국 파혼하게 되고 자기도 불행하고 아들도 불행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 부부는 굉장히 헌신적인 부모입니다. 집을 팔아서 유학을 보내고 아낌없이 지원하고 정서적으로도 딸이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 줍니다. 얼핏 아까의 인물과 정반대의 설정 같지만 사실 이 둘은 꼭 같은 태도입니다.
공부 잘 하고, 자신들의 자랑이 되어 준 딸에게는 모든 것을 헌신했으면서 공부를 잘 못하고 사고치는 둘째에게는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멸시하고 욕을 합니다. 결국 자녀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자기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주는 확장된 자아로 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녀가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자 삼기가 어렵나요? 밖에서 잠깐 만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삶으로 영향 미쳐야 되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가 돈 돈 돈 하는데 어떻게 자녀가 예수님만 의존할 수 있나요? 부모가 성적 성적 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나요?
선교사님들뿐 아니라 우리도 다 예수님의 대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상들, 배우자든 자녀든 교인이든 직장 동료이든, 이들을 향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어떻게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 거하게 할 수 있을까’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 ‘제자를 삼아’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우리 개개인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라오스 외 아직 많은 나라들에 예수 그리스도 모르는 사람 너무 많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만 나가서 가서 일하는 것 아닙니다. 전쟁에도 보급이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듯이 우리도 기도로 물질로 협력하며 하나님의 귀한 명령에 동참하여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이 사명을 이루는 하늘사랑 교회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v.20
두 번째로 예수님의 권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20절 상반절입니다.
[20a]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지식만 쌓이고 실제 자기 삶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판단하고 지적하면서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배운 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제가 가르친 것을 받아들여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미국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 미혼 청년들이 많았는데 함께 공부하고 나눔하며 몇 커플이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그 중 한 커플이 초대를 해 주어서 식사를 했는데 밥을 먹고 나니까 사모님이 남편에게 ‘여보 이제 왕 노릇하세요’ 했더니 남편이 일어나더니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왕은 높아져서 남을 지배하는 것이지만 성경의 왕 노릇은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기고 심지어는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커플이 함께 성경을 배우고는 하기 싫은 왕노릇을 서로 양보한다고 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농담마저도 복음에 기초한 농담을 하며 배운 대로 잘 지키다가 박사 마치고 돌아와서 지금까지도 저와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성용 신지원 선교사님 부부도 실력이 탁월해서 파송하는 것 아닙니다. 저분들에게 8년 동안 성경을 가르치면서 본 것은 이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의존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잘 감당하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들 사이에서 신지원 사모님은 지난 8년간, 심지어 목사님이 사역으로 바빠서 미처 출석하지 못할 때에도, 꾸준하게 참석했습니다. 목사님들은 몇 줄로 끝내는 숙제도 사모님은 백 줄씩 쓰는 성실함도 8년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열린, 또 열심 있는 마음으로 배우는 분들이라 제가 이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하지 않고 예수의 권세로 복음을 전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파송해 놓고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파송 선교사의 첫 번째 조건은 죽을 때까지 저와 성경 공부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 끝나는 순간 파송 끝입니다. 가서 자기 제자 만드는지 예수 제자 만드는지 제가 매주 확인할 것이고 배운 대로 잘하는지 격려하고 지도할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 예수님은 또 무슨 약속을 하셨나요? 20절 하반절을 보시면
[20b]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은 선교사님들만의 약속이 아닙니다. 제자 삼는 자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애쓰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예수님이 함께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늘 사랑 교회와 조성용 신지원 선교사님이 하늘의 열매를 맺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