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전능감이라는 감정을 처음 들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전능감은 분노나 슬픔처럼 외부로 잘 드러내는 감정이 아니기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본성 안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성으로 말미암은 감정이기에 설교를 통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감정입니다.
전능감은 일상에서 잘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심리학 수업에서는 처음부터 배우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0세부터 2세까지 영유아기의 시기에 전능감을 강력하게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아기는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누군가 베풀어주는 그 모든 혜택과 도움을 마치 자신이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전능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울면 밥이 오고, 대변을 보면 씻어주고, 밤이 되면 재워주는 모든 행위를 외부에서 온다고 인지하지 못하고 나의 확장된 자아, 즉 자신이 모든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의 모든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가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나요? 울어도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아기는 심한 불안과 고통을 느끼고 이들이 성인이 되면 전능감을 충족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력해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자신이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회화가 무엇인가요?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은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전능감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내재화됩니다. 내 맘대로 살다가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욕구를 감추면서, 대신 안전한 대리 충족의 대상들을 통해 표출합니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주인공처럼 강력한 힘을 갖고 싶어하는 것도 한 양상입니다. 혹은 이상화라는 과정을 통해 이상적인 존재, 즉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 뿐 아니라 로또나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얻고 싶은 마음,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능감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심각한 죄입니다. 이것은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참 성도라면 전능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하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를 파괴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숙종 때 복성군이라는 왕의 친척이 있었습니다. 숙종이 열 여섯 살에 왕이 되었는데 몸이 아주 허약하자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때 복성군에게 허견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왕이 몸도 약하고 형제도 아들도 없으니 만일 불행한 일이 닥치면 대감이 왕위에 오를 텐데, 내가 군사들을 동원해 당신을 돕겠다’도 말을 한 것입니다. 그때 복성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호통치며 물리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마음 안에 정말로 왕이 죽으면 내가 그 다음 왕이 되면 좋겠다는,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침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허견과 복성군의 밀회가 발각되어 복성군 뿐 아니라 일가족이 다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되고 싶은 열망이 침묵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성군의 침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전능감에 대한 무서운 결과와 같습니다.
만약 전능감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결 받지 못한다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무서운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능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이 40일 금식하고 받으신 시험 중 두 가지가 전능감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전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전능감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1. 자기 욕망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vv.1-4
첫 번째로 자기 욕망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인간이 받아야 할 시험이지만 인간은 시험에 넘어가 마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아담과 하와가 실패했던 시험을 통과하심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대표하여 받으신 시험입니다. 마귀가 무엇을 시험했나요? 3절입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0일을 굶어서 지금 아사 직전입니다. 게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바꿀 능력이 있으십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험을 한 것일까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욕망이 주도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욕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해야 되는데 자신의 필요를 극대화하여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욕망의 지배를 받는 자는 그 욕망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4절입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밥을 먹지 말고 말씀만 먹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아십니다. 이 필요는 인간의 욕망에서 근원한 것인데 이 욕망이 주도하는 인생으로 살면 절대 하나님 밑에서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 말씀이 우리 영혼을 다스리는 만큼 우리는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데 가장 방해를 끼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욕구입니다. 전능감은 인간의 공허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대상과 관계를 통해 나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조차 내 욕구를 채워주는 대상, 즉 우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 전능감을 강력하게 느끼는 사람의 신앙적 태도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고통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들은 전능감으로 ‘내 인생은 완전해야 하며, 문제가 없어야 하며, 병도 걸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다 내 뜻에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생각은 사실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야 하고 나에게는 문제가 없어야 된다는 전능감에서 시작된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거짓된 전능감을 추구해서 나타나는 많은 영향력을 분별하지 못하고 살다가 문제를 경험합니다. 전능감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자기애적 인격장애입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모든 관계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도 통제 받고 싶어하지 않으니 갈등이 생겨납니다.
또 다른 결과는 게임중독입니다. 전능감은 세상에선 잘 펼칠 수가 없고 성취를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게임 속에서는 손가락만 놀리면 높아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마치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사람들의 전능감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힘을 부여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합니다. 내 생각에 내가 저 사람보다 잘나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고, 중독에 쉽게 빠지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로 살아가고 있다면, 본인 뿐 아니라 그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 또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근원적 영적 힘을 잘 분별해야 우리에게서 수시로 나타나는 통제욕, 중독적 경향, 또 질투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전능감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2. 자기 영광이 아닌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vv.8-11
두 번째로 어떻게 전능감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자기 영광이 아닌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마귀가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지금 세상을 소유한 것은 마귀가 맞습니다. 왜인가요? 누가복음 4장 6절에는 마태복음에 빠진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눅 4: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마귀가 과거 일을 언급합니다.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누군가가 누구인가요? 아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세상을 통치하는 통치자로 임명하셨습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마귀의 시험을 받아 통치권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마귀는 세상을 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10절입니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담은 왜 마귀의 시험에서 넘어졌나요? ‘네가 하나님처럼 돼서 스스로 영광을 취하라’는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내 영광을 섬기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고 대적하십니다.
인간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데 욕망 중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처럼 되어 그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시험에 우리는 너무 취약합니다. 만약 100억을 줄 테니 예수를 부인하라고 유혹한다면 한국교회의 절반이 떠나갈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영광을 추구하니까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본질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본질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 하나님은 성경에서 몇 가지 예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에서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신약에서는 헤롯왕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1절에서 23절입니다.
행 12:21-23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구약이 바빌론 왕이 ‘이 모든 것을 다 내가 이룬 것이다’라고 했다가 미쳐서 7년을 소처럼 풀을 먹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신약에는 헤롯이 그렇게 됩니다. 이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로 예수님을 박해했던 헤롯 대왕과 다른 사람입니다. 그 아들입니다. 몇 십 년이 지나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부하고 호의를 놓고 왕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고 칭하며 헤롯이 하나님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은 이렇게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 심판하신다면 우리도 심판 받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도 전능감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고, 내 영광을 추구하고 싶고, 나만 고통받지 않고, 나만 부유하고 나만 행복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사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전능감에 대한 강력한 열망과 그것을 행사하는 기쁨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테슬라 사장인 일론 머스크입니다. 사실 자동차 회사는 그가 지금 목적하는 전능감을 완성하고자 하는 수단입니다. 그의 꿈은 화성에 식민지를 새로 만들어서 자기 뜻에 복종하는 백만 명의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페이스 엑스라는 우주선 회사를 만들고, 화성에서 쓸 태양광 에너지를 위해 솔라 시티라는 태양광 발전회사를 만들고, 화성에서의 부족한 노동력 충당을 위해 오픈 에이아이라는 인공지능회사도 만들고,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결합하는 연구를 하는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트위터를 인수해서 화성 식믹지로 떠날 여론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십조를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여론조작을 위해 영향력 있는 매체를 인수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2029년부터 화성에 이주해서 자기 뜻에 복종하는 인간들을 데리고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려는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도저히 마귀가 힘을 주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일까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은 느부갓네살이나 헤롯 때처럼 개입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당장 처단하고 싶지만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라 세상에 전능감을 뿜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결론은 우리에게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인생이 실패하고 무너지도록 개입해 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복종하고 통제를 내려놓는 것이 정말 바른 길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지난 20년의 훈련을 통해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싫고 고통스러운 것이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법을 배워 하나님이 여러분의 통치자요 전능하신 분으로 일해 나가실 것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