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연철 목사
할렐루야. 오늘 제가 이 귀한 하늘 사랑 교회 강단에 서게 됐는데요. 먼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김일승 목사님과 또 장로님들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숭인교회에서 목회자로 10년간 섬겼구요, 승인 교회가 제 모교입니다. 모교에서 30년 제가 자라났고 10년간 교역자로 생활을 하다가 이제 파송을 모교에서 받게 됐습니다. 지난달 제가 4월 16일에 파송 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무슬림 국가다 보니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비자가 그래서 비자를 준비하면서 이제 나가려고 준비하던 차에 목사님께서 불러주셔서 귀한 강단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서 김일승 목사님께서 묵상의 숲을 얘기를 해주셨는데 묵상의 숲을 통해서 제가 참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주권적인 신앙이 세워졌고 또 구속사적 설교 관점이 제가 띄어지게 됐고요. 또 구체적으로는 저희 가정도 회복되고 굉장히 많은 은혜를 경험하게 됐는데 제가 은혜를 주신 김일승 목사님과 또 그 뒤에서 서포팅 하면서 묵상의 숲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늘사랑 교회에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숭인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죽으려고 결심을 했었습니다. 굉장한 우울감이 그때 제게 찾아왔었는데 그즘에 이제 저는 이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인생이 끝이구나 제 인생은 여기서 마감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그쯤에 저를 교회에서 담당했던 선생님의 한마디가 저를 살렸습니다. 김경덕 선생님이라는 분이신데, 지금은 백혈병으로 소천하셔서 이 땅에는 안 계시지만 저희 교회에서 사무도 보시고 굉장히 믿음이 좋으셨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한마디가 저를 살렸는데 제가 청소년기 때 힘들 때 선생님께 자주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그분이 항상 계시니까 제가 교회로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갈 때마다 저를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시고 또 위로도 해주셨습니다.
어느날은 청소년기 때 성에 대한 고민이 많잖아요. 그래서 성에 대한 고민도 상담도 하면 답도 주시고 갈 때마다 제 마음을 아주 시원하게 해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만나면 이제 편하고 굉장히 또 물어보고 싶고 영적인 답을 시원하게 주시는 그런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제게 그런 분이셨는데요. 또 어느 날은 제가 이제 기도가 안 된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연철아 기도가 안 될 때는 주기도문을 외워봐라고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이 저를 살렸는데요. 제가 어느 날 이제 죽으려고 결심을 하고 학교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도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삶이 너무 힘들면요 기도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까지도 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제 갑자기 경덕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연철아 기도가 안 될 때는 주기도문을 외워봐라는 그 말씀이 생각나서 제가 주기도문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됐는데 제가 성령을 체험하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됐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재가 제 마음 가운데 임하는데 하늘 문이 열리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제 장로교 목사다 보니까 이런 성령의 체험, 임재 이런 것들을 잘 소개하지 않지만 제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건데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다 아신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는 거예요. 제 마음의 깊숙한 그 우울한 내면을 찾아오셔서 제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데 이게 정말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을 알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제가 성령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면서 제 인생이 완전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주님을 만나본 분들은 알 것 같아요. 어떤 느낌인지 눈물 콧물 다 쏟고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또 거듭나게 되는 그런 시간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고 저처럼 어린 나이에도 올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내면의 결핍 또 공허한 마음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허한 심령에 하나님이 오시니까 이제 죽음의 우울의 영이 떠나가고 제 마음에 이제 인생에 힘이 나기 시작한 겁니다.
제가 하나님이 제 마음에 오시고 성령을 체험하니까 두 가지를 제가 깨닫게 됐는데 첫 번째는 뭐였냐면 제가 누구인지 알겠더라고요. 저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제가 그토록 주일학교 때 들어왔던 저는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10몇 년간 교회를 다녔잖아요. 주일학교 때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들었겠습니까? 근데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그 순간 믿어지더라고요. 제가 또 두 번째로 깨달은 건 뭐냐면 이렇게 은혜를 받으니까 내가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라는 그런 결단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제가 살 소망과 목적이 생긴 겁니다. 이제 죄의 종으로 순종하던 죄로 하던 죄에 순종하던 김연철은 죽고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순종하는 자로 거듭나게 된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인생이 뭔가 헛헛하고 공허하고 결핍감과 상실감이 깊이 사무치도록 느껴져서 우울해져서 살 소망까지 아예 없어져 버리는 그런 경험을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요즘 청소년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요. 뿐만 아니라 4,050대가 공황장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라는 통계를 보게 됐는데 얼마나 마음이 어렵습니까? 남녀노소 빈부에 관계없이 결핍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런 만남의 경험 주님을 만나 위로를 받고 소망을 얻는 이런 경험들 신앙생활을 하신 지 얼마 안 되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앉아 계신 대다수 분들은 이런 경험들을 하셨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창세기 12장의 말씀 이런 우리의 결핍의 공허한 마음을 굉장히 잘 대변해 주는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과 너무나도 닮은 상황이 이제 펼쳐지게 되는데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말씀이 참 은혜가 되더라구요. 오늘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에게도 인생의 공허와 결핍 또 상실감이 있었더라구요. 이번 한 주간 말씀을 준비하는데 이 말씀이 제게 큰 힘과 위로를 주는 겁니다. 오늘 제가 은혜받은 창세기 12장의 말씀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히 먼저 주셨던 말씀입니다. 이제 창세기 말씀이 어떻게 시작되냐면 1장부터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쭉 시작이 되구요. 인간들의 완악함이 11장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무슨 사건이죠? 바벨탑 사건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한 군데에 모여 살던 이 범죄한 인간들을 세상에 흩으시는데요. 흩어진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의 이야기가 11장 후반부터 등장을 하게 됩니다. 바로 샘의 자손들 이 세의 자손들의 계보가 11장 후반에서 계속 이어지다가 이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다시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인간들에게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저는 3절 말씀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의 핵심 말씀인 3절 말씀을 받기 전에 배경 설명을 좀 말씀을 드리면요, 아브라함은 당시에 아버지 대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갈 데야 우르라는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에서 굉장히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11장 6절에 보니까 이곳에서 대략 한 70세에 아브라함과 나울과 하란을 낳습니다. 28절에 보니까 아들 중에 한 명인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이 죽었습니다. 친 형제의 죽음을 아브라함이 젊어서부터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굉장히 슬펐을 겁니다. 제가 그걸 잘 아는 게 저희 아내가 여기 따라왔는데 저희 아내가 처제를 20대 초에 잃었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제가 그 옆에서 있으면서 10년 동안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지켜봤는데 제가 그래서 너무나 잘 압니다. 이 친 형제의 죽음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여러분 그 슬픔을 증명하는 것이 나중에 이 아브라함이 친 형제 하란의 아들인 조카 누구죠? 롯을 아브라함이 끝까지 챙깁니다. 자기 형제의 아들을 챙기는 것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챙길 수 있을까요? 못 챙기죠. 이 형제를 사랑했기 때문에 조카까지 챙길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보면서 친 형제의 죽음이 그에게 얼마나 마음에 사무쳤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여하튼 이제 29절에서 형제들의 장가 소식이 나오고요. 30절에 아브라함의 또 다른 결핍이 등장합니다. 뭡니까?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례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아브라함의 또 다른 슬픔 결핍이 있었는데 그건 무엇이냐면 자신의 아내 사례가 임신하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은 첫째 다함가 다음이 이전에 낳기 이전에 자녀를 임신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3개월 만에 아이를 유산했습니다. 그때도 슬픔이 굉장하더라고요. 첫째다 보니까 3개월을 컸는데 유산해 버리니까 굉장히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런데 계속해서 여러분 나이가 들도록 불임이라는 것은 저는 상실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 봐도 얼마나 살해와 아브라함이 힘들었을까 상상이 잘 저는 안 되더라고요. 여러분 당신이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결핍이 1차적으로 우선 크고요. 또 장래에 대한 노후에 대한 보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사회보장 제도가 잘 돼 있어서 뭔가를 잘 노후가 보장이 되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당신은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그 자녀가 부모를 노후를 보장해줘야 되기 때문에 장래와 노후가 보장이 안 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또 하나는 뭐냐면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받은 자의 상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임으로 인해서 인생이 아브라함이 불안하고 충분히 우울해질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아브라함이 지금 놓여 있다는 거예요. 결핍이죠 굉장히 허망한 상황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32절에 아버지의 대라가 하란에서 죽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브라함이 친형제도 죽고 안에 살아도 임신도 안 되고 아버지까지도 돌아가셔버린 상황이 된 거죠. 여러분 갑자기 졸지에 아브라함이 가정의 리더가 돼버린 겁니다. 지금 리더였고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은요 아브라함이 이제 가정의 리더가 되어서 가정 전체의 불안함과 걱정과 염려를 떠나야 되는 그런 어려운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결핍에 상실감 이런 것들이 가득할 때 또 불안하고 초조하고 도움의 손길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겁니다.
이제 12장부터 보면 1절에 보시면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시더니요 슬픔에 잠겨 있는 아브라함에게 떠나서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성경을 보면서 제 생각에는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먼저 좀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먼저 가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근데 이게 사실은요 지금 갑자기 가라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아버지 대라도 가족을 이끌고 이미 가나안 땅으로 향해서 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기존에 아버지로부터 해왔던 그 사명을 그 사명을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이어가라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하나님이 치유와 회복의 말씀을 주시는데요. 하나님이 역시나 우리에게 사명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치유와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두 가지 치유와 회복의 말씀을 주시는데요. 첫 번째 치유의 말씀은 2절 끝에 보면 너는 복덩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시면서 치유하시고 두 번째는 3절 끝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는 것을 통해서 사명을 회복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의 진정한 치유는요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이 회복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 사명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지금 그 치유의 작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거죠.
첫 번째 뭐라고요? 너는 복덩이다라는 존재를 말씀해 주시면서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시는데요. 2절 말씀에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그다음에 핵심이 되는 말씀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하시는 겁니다. 2절 말씀에 복이 될지라 할 때 이 될지라가 이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야라는 동사입니다. 이 뜻이 뭐냐면 존재하다 무엇 무엇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냐면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거고 복을 주고 내 이름을 크게 할 건데 중요한 것은 너는 복덩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존재 자체가 복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지금 아브라함의 존재 자체가 복이라고 인정을 해 주시니 여러분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회복의 말씀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나 저주 받은 거 아닐까 그래서 형제도 잃고 자녀도 없고 아버지마저 잃어버린 거 아닌가라고 아브라함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아니야 아브라함아 세상에서 말하는 너 그런 존재 아니다. 너 복덩이야 너의 죄 때문이 아니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그 간절한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 회복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내면이 회복되었음을 이 각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 주시는 말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힘을 주시는 말씀들이 굉장히 많아요. 구약 중에서 특별히 이사야서 43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정체성을 부여하세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뭐라고 말씀하세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지금 연철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너를 구원했고 너는 누구 것이야 내 것이야라고 지금 말씀을 해 주시는 거예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이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누구의 것이에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거죠.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려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이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사탄은요 여러분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김현철 목사 너 선교 나갈 자격이 있어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 그렇게 자꾸 말하는 거예요. 그럴 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선교사로 나가는 선교사인 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말씀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여러분들의 말씀 묵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예배에 설교 말씀을 가까이 하라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설교 말씀 잘 들으라는 겁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있는 게요 중학교 때부터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설교하실 때 한 번도 졸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저희 숭인교회 성도님들한테 말했어요. 저를 존 것을 본 적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찾아와서 말씀해 달라고. 저는 존 적이 없거든요. 자신이 있거든요. 예전에 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에게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선포하실 때는 하나님이 하나님은 아니시지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말씀을 들어라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이 제 평생에 생각이 나는 거예요. 설교 시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겸손하게 그 설교 말씀을 듣다 보니까 집중하게 되고 졸지 않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하늘 사랑 교회에 누구를 세우셨습니까? 김일승 담임 목사님이 세우셨죠 이 말씀을 잘 들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셔야 돼요.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가까이 말씀을 듣고 또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내 정체성 이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생긴다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라요.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될지 이 땅에서 그런 것도 전혀 모르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이 기준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제 또 이제 말씀해 보면 또 하나님께서 상실감과 결핍감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 위로할 수 있는 헛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면 3절 후반에 보면 뭐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아브라함에게 사명을 회복해 나가시는 겁니다.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말씀에서 잠시 벗어나서 살다가도 정신을 바싹 차리게 하는 말씀이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인데요. 왜 그러냐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연철아 너로 말미암아 복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를 듣게 됐고 얻게 될 거야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는 이 사명이 자꾸 고치가 되는 거예요. 제 마음 가운데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는 말씀 온 세상이 천국 복음이 전파되어야 그제야 주님이 오실 날이 온다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그 날을 위해서 살아가는 제가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제가 선교사로서 이 사명을 놓치고 살아갈 때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이 경종이 딱 되는 거죠. 연철로 너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들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제 마음 가운데 들려지면 제가 말씀에서 벗어나서 살다가도 정상 궤도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말씀이 이 말씀이라는 거예요.
요즘 참 우리는 기독교의 가치를 폄하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기도자께서도 기도해 주셨는데 무엇을 하든지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jms 같은 이단의 실체가 이제 넷플릭스에서 드러났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 그냥 이단이나 정통 기독교나 똑같은 기독교로 봐요. 제가 믿지 않는 친구한테 가서 얘기하니까 그냥 같이 붙여서 얘기하더라고요. 똑같은 거 아니냐 왜 서로 기독교 아니라고 얘기하냐 같이 붙여서 욕하니까 참 가슴이 아픕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봐야 되겠죠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교훈과 가치를 잘 따르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정말 말씀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 그래서 말씀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을 개혁해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미디어의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여러분 요즘 크리스토인들은 참 기독교의 복음이 정말 진리인가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청년들이랑 상담하다가 심각한 얘기를 들었는데 목사님, 저 가스라이팅 된 거 아니에요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이것에 대해서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들이 체험하고 믿고 있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확신하셔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온 인류를 살리는 진리가 되고 답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가 잘 사는 것에 더 집중하고 정체성이 흔들리고 그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로 말미암은 복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에 집중해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이 복음 전파의 사명, 아브라함에게 주셨지만 우리에게 두신 그 사명을 계속해서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먼저는 기독교만이, 복음이, 복음만이 우리에게 죄인들에게, 우리 죄인들에게 죄사함을 주고 인류에게 희망이 된다라는 사실을 확신하셔야 되고요. 그리고 그런 확신 가운데 가만히 우리가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러 가야 된다라는 거예요.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지만 은혜 받은 사람은 반드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쳐야 되는데 은혜로 시작해서 반드시 행위 행위라는 은혜 삶으로 증거가 나타나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가라라고 말씀했는데 말씀에 순종하여 가야 하는 겁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생각에 바운더리죠.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는 거 우리가 편리하게 생각하는 그 바운더리를 넘어서 전도하러 가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목마른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전도가 어려운 시기에도 있지만 그런 시기에 있지만 우리 주변에 목마른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제가 이제 선교 나가기 전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특히 몇 사람들이 좀 기억에 남습니다. 한 친구를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첫 번째 친구는 누구나 알 만한 교수입니다. 제가 이름을 실명 거론하기 참 어려운데 이 친구가 어느 날 저를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 선교 나간다고 하니까 그래서 만났는데요 믿지 않는 친구입니다. 저는 유학 갔다 온 줄만 알고 오랜만에 만나서 유명한 대학의교수가 되는 줄 몰랐어요. 근데 이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제 자기도 교수가 되고 3년을 재직했는데 작년에 1년을 쉬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랬냐고 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재작년 말에 학생들이 학기 말마다 이제 교수 평가를 했는데 평이 좋지 않게 나왔다는 겁니다. 이게 자신을 무너뜨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어떤 이야기인가 해서 좀 물어봤더니 자기는 평소에 학생들을 만나서 고민 상담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모든 학생들에게 자기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강의 평가가 그렇게 나오니까 자존감이 확 무너져버린 겁니다. 심지어 강단에 설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려서 1년간 휴직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 순간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사실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은 아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가명인데요. 성우야 사람들은 다 죄인이야. 너는 사람들에게서 너의 소망을 찾으면 안 된다. 그걸로 너의 정체성을 삼으면 안 돼. 그리고 하나님이 너를 창조하셨어. 너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온전해질 때만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그게 너에게 행복을 줄 거야. 그러면서 제가 예수님에 대해서 쭉 소개를 하는데요. 이 친구가 가만히 잘 듣더라고요. 힘드니까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 교수라고 지식인이라고 복음이 안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친구가 그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랬어요. 성호야 인생이 공허하면 나한테 찾아와. 내가 그 답을 줄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공허합니다. 복음이 필요해요. 저는 목사로서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게 좀 마음이 좀 어려워서 저는 일부러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을 하는데요. 그런 생각 속에 얼마 전에 또 한 그룹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제 군대를 해병대를 갔다 왔는데 해병대 훈련소 동기들을 한 15명 정도를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어요. 근데 10명이 제가 인도네시아를 나간다니까 모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등포에서 모인다고 대구에서도 ktx 타고 올라오고 복일도라고 아시죠 완도에 있는 그 섬인데 거기서도 ktx를 타고 그러니까 의리가 굉장하죠. 그렇게 온다고 하는데 먼 거리를 온다고 하는데 제가 안 나갈 수가 없잖아요. 솔직히 나가기 싫었어요. 바빠서 선교 준비하는데 굉장히 바빴거든요. 여러분 그런데 이제 만나가지고 남자들이 만나면 뭐 합니까? 술 마시죠 당연히 이 친구들이 낮 3시부터 만나자는 거예요. 왜 일찍 만날까요? 술을 많이 먹으려고요 일단 나갔습니다. 이제 만나서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포옹도 하고 인사도 하고 자리에 경례도 하고 앉았는데 이제 목사님 저한테 뭐를 권합니까? 술을 권하는 거죠. 뭐라고 유혹하냐면 신부님들도 다 마시는데 내가 천주교를 가봤는데 신부님들은 예배 끝나고 담배도 같이 피고 술도 바로 호프집을 가는데 너는 왜 안 마시냐 네가 모자랐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일단 안 먹는다고 얘기하고 주인공이지만 술을 안 마신다. 그러게 하고 대신 술잔에 사이다를 따라달라고 했어요. 술잔을 달라고 해서 근데 제가 딱 앉아서 술잔을 딱 짠을 하는데 느낌이 뭔가 이상해서 이렇게 주변을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혹시나 우리 승인교회 청년들을 만나 제가 청년부대 했었거든요. 목사님이 술 마셨다라는 이게 소식이 또 총회까지 들어가면 저는 제명되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아무튼 이렇게 좀 봤는데 없더라고요. 다행히 근데 먹다 보니까 제가 사이다를 몇 병이나 마셨을까요? 소주잔으로 3병을 먹었더라고요. 여러분 3병 드셔보셨습니까? 사이다 먹기 힘들더라고요. 그 친구들 제가 중간중간에 잔을 쉬었는데 이 친구들 한 6병은 마신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그러니까 술을 엄청나게 먹더라고요. 이게 술 고래들이에요. 이 친구들이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쭉 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해요. 40대가 되어서 직장에서는 일에 치이고 집에서는 가정에서 아이들 챙기느라 너무 힘이 든다는 거예요. 쳇바퀴 같은 쉴 틈 없이 계속 돌아가는 일상이 너무 힘에 겪고 지겹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술잔을 얘기하면서 술자리에 내가 기대서 산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이 친구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겁니다. 마음이 허했어요. 저도 되게 어렵더라고요. 극율의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도 이제 복음을 전하러 간 건 아닌데 또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서 이 친구들이 술을 많이 안 마셨을 때 한 병 먹기 전에 제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깨달음을 주셔서 복음을 전했는데요. 갑자기 한 예화가 생각이 났어요. 예화가 뭐였냐면 효봉 스님입니다. 여러분 성철 스님보다 더 유명한 스님이 예전에 계셨어요. 그 스님이 바로 효봉 스님인데요. 이게 나이 드신 분들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 아실 텐데요. 불교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스님 아닙니까? 이 스님이 예전에 대법관이었는데 이분이 어느 날 판사로서 죄수들을 판결을 하는데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해서 사형이 집행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중에 이제 와서 이 사람이 이제 자료를 검토해 보니까 그 사람이 죄수가 아니라 이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죄수였던 거예요.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을까요? 이 사람이 잘못 언도했으니까 사형을 그래서 이분이 고민하다가 세속을 벗어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평생을 죄를 씻으면서 살았다라는 겁니다. 죄를 씻었을까요? 죄를 씻지 못했겠죠. 그래서 제가 얘들아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얘들아 그런데 너희 마음 가운데는 죄가 없니? 찔리는 죄가 있을 거야. 죄가 있으면 천국에 못 간다. 천국에 가려면 진리가 필요해. 그 진리는 예수님밖에 없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이 땅에 오셨고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어. 그분이 피를 흘리시고 우리가 그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게 됐는데 그분을 믿게 되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돼. 그러면서 이제 복음을 전하는데 신기하게 한 명도 예외 없이 졸지를 않더라고요. 여러분 목사의 말이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불신자들은 그러면서 귀를 기울이는데요. 여러분 이 친구들이 평생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저를 만나 이 타이밍밖에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는데 한 친구분은 제 옆에 앉아서 고민을 쭉 털어놓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막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줬어요. 술자리에서도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대한민국에는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식인이든 아니든 빈부 노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이 각자의 선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희 가정은 이제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열방을 섬기는 선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보내는 선교사 저희는 가는 선교사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지만 저희는 특별히 인도네시아 땅을 주셨어요. 사진을 한번 띄워주시면 이제 인도네시아 사진인데요. 저 빨간 게 테두리가 된 지역이 인도네시아입니다. 인도네시아는 굉장히 넓고요. 미국 영토와 너비가 똑같습니다.
굉장히 넓은 나라고요. 이 수천 개고 사는 섬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종족이 400개 종족이 됩니다. 제가 품은 종족은 이제 자카르타 수도 부분 점 찍혀 있는데 그 부분을 이제 확대해 주시면 그다음 페이지에 한번 넘겨주시면요, 저기가 이제 수도 자카르타 노란 부분이 자카르타고요. 그 밑에 우측 하단에 보시면 중간쯤에 초록색 중간쯤에 보면 반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반둥의 초록색 부분 지역이 제가 섬길 이제 순다족 순다족이 살게 될 살고 있는 그런 종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이제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 8,100만인데 그중에서 15% 4천만이 순다족이고요. 순다 어를 씁니다. 이중 언어의 장벽이 있고 좀 어려운 지역인데 특별히 그 지역은 99.95%가 강성 무슬림입니다. 무슬림이 좀 강한 지역이고요. 교회를 지으면 교회 앞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시위를 하고 또 불을 지르는 그런 지역입니다. 0.05%도 기독교인은 아니에요.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100%가 무슬림이다 이렇게 보면 되겠다 이렇게 얘기하시는데 저는 이 지역에 순다어를 배워서 또 복음을 전하러 나가게 됩니다. 저는 이제 반둥 지역에 살게 됩니다. 그다음 사진 보여주시면요 인도네시아 이스티크랄 사원인데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중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요. 인도네시아가 무슬림이 가장 많습니다. 저 지역에서 지금 예배 드리고 있는데 저는 이 무슬림들이 불쌍한 겁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굉장히 목말라 있거든요. 종교심이 얼마나 큽니까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고요. 혹시 다섯 번씩 하루에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분 없으시죠? 굉장하고요. 지난달 4월이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1년에 한 번씩 해가 떠 있을 때 한 달씩 금식을 합니다. 굉장히 많은 금식 시간을 갖게 되고 또 자신의 소득의 3%를 의무적으로 구제금으로 들여야 하고 또 성지 순례를 해야 구원받는다 하고 또 천국에 가서 좋은 곳에서 살기 위해서 자살 테러를 일으키고 그런 것들이 저는 굉장히 불쌍하게 느껴지는 거죠.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도 결국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저런 행위를 하고 있는데 방향이 참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금율의 마음이 드는 거예요. 참 안타까운 거죠. 저희는 이제 이 지역을 섬기러 제가 시간상 다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을 섬기러 나아가는데 여러분들께서 계속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정체성과 마찬가지입니다. 뭐를 가까이 해야 된다고요?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된다는 거죠. 제가 마지막 이 말씀을 하고 마쳤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한국을 떠나려고 하니까 이것저것이 되게 소중해지더라고요. 얼마 전에 벚꽃이 굉장히 만개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어느 해보다 더 만개했던 것 같아요. 제 느낌에는 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제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실 근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굉장히 행복하더라고요. 꽃이 얼마나 예쁜지 길가에 펴 있는 이 꽃을 보니까 만개의 꽃을 보니까 마음이 설레고 굉장히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이제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어떻게 보면 마지막 벚꽃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제가 들어올 때 또 계절이 다르면 벚꽃을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예쁘고 또 귀하게 느껴졌는데요. 저희 집 옆에 아파트 숲이 있습니다. 그 숲에는 이제 개나리 숲이라고 할 만큼 굉장히 개나리가 많은데 그 숲 사이에 신기하게 가운데 벚나무가 하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개나리가 이렇게 쫙 펴 있는데 가운데 벚나무가 딱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런데 여러분 작년에 여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니까 비바람을 못 이겨서 그게 언덕인데 벚나무가 그냥 쓰러져버린 거예요. 개나리는 이렇게 흔들리면 그냥 뿌리가 잘 박혀 있고 높지 않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는데 벚나무는 그냥 쓰러져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내와 굉장히 아쉬워했습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개나리 숲 사이에 있는 벚나무를 못 보겠구나. 그런데 여러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무가 부러져서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 벚나무가 올해 봄에 피는 거예요. 이상한 일 아닙니까? 보통 나무가 쓰러지면요 고목이 되거나 떼감으로 쓰거나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근데 이상하게 꽃이 피는 거예요. 제가 그 나무를 유심히 보니까요 나무가 완전히 부러진 게 아니라 반쯤 부러져 있었는데 그 반쯤 부러진 몸통이와 땅에 박힌 뿌리와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이 꽃이 피더라는 거예요. 제가 그 나무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뭐냐면 우리의 인생이 비록 넘어진 인생 같으나 고꾸라져 있는 인생 같이 보일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너 같은 인생에서 뭐 꽃이 피겠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인생일지라도 넘어졌으나 이 나무, 땅에 깊이 박힌 뿌리에 연결된 벚나무처럼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막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꽃을 피우게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제가 그 순간 깨닫게 됐습니다. 여러분 사실 이 나무는 영원히 있고 생명체는 아니지만 영원히 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신의 자신에게 영양분이 공급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이제 그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겁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꽃 피우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요한복음 15장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요 15: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아닙니까? 우리의 인생, 우리의 주인 대신 예수님께 우리가 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는 이 진리의 말씀을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주님께 꽉 붙어 있어야 돼요. 그냥 붙어 있으면 안 됩니다. 영양분을 공급받을 만큼 붙어 있으셔야 돼요. 예배 때 왔을 때도 어떤 분들은 은혜 받고 가는데 어떤 분들은 그냥 대충 영양분 공급받고 이렇게 가시는데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꽃을 피울 만큼 말씀에 붙어 있어 계셔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반복해서 드리는데요. 우리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꽃 피우는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 아무리 결핍이 있고 힘들고 우울감과 상실감이 찾아와도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 복덩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뭡니까? 우리는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명자예요.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 가운데 전파하는 사명이 사명을 꼭 붙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하늘교회 성도 여러분 이 힘든 시기를 살아가실 때 말씀을 가까이 하셔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시고 두 번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 복음 전파의 사명 이 사명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감당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는 하늘 사랑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