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세트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이전에 썼던 누가복음에 대해서 1절과 2절에 설명합니다.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설명하고자 쓴 누가복음에 이어 이제 사도행전을 쓴 이유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 …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 나라이기에 그것을 설명하고자 책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요? 세상 나라와 대조되는 곳,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고,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 나라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요?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요?
1.성령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vv.4-5
첫 번째로 성령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기에 유언처럼 하시는 마지막 말씀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을 때까지 모여서 기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은 이미 요한복음에서 여러 차례 걸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가 오시기를 예수님이 간구하셨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보혜사의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직역하면 ‘옆에서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고대에 이 단어는 조언자, 상담자, 인도자 등으로 사용되었고 보호해 주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 같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또 다른’ 보혜사인가요? 예수님이 첫 번째 보혜사로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들을 인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시며 제자들만 남게 되었기에 새로운 보혜사가 오실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을 5절에서는 ‘성령 세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요한의 물 세례는 앞으로 임할 성령 세례의 모형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노아의 홍수로 죄 지은 자들이 다 물에 빠져 죽었듯이 물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물 속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다시 올라오면서 마치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그림이 연출됩니다. 즉 인간이 죄로 죽어야 하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시면 죄로 인해 죽어야 될 부분들은 죽은 것처럼 여기시고 하나님은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성령이 없이는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여겨집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죽은 자에서 살려내시는 일이 거듭남이고 다른 말로는 ‘성령 세례’입니다.
땅에서 나무를 뽑아버리면 살아있는 것 같지만 생명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겨 영적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야 인간에게 성령이 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까지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십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지금도 성령이 임하시면 바람이 불고 불꽃이 보인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감각할 수 없으면 영적인 일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딱 한 번, 성령이 인간에게 직접 오실 수 있음을 사람들이 깨달아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가끔씩 사람을 투시해서 죄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 사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어 자기의 노예가 되도록 만드는 거짓말입니다.
방언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방언하지 않으면 세례를 주지 않는 교회나 방언이 외국어라고 생각해서 영어로 방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성경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방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글로사’라는 단어 자체가 ‘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성령이 오신 증거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인간의 혀를 사로잡으심으로 그 통제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왜 손이나 발이 아니라 혀인가요? 혀는 인간이 통제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고, 상처 주고, 남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임하실 때 인간의 주인이 누구신가를 혀를 다스리심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시적인 모습의 성령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시고자 했나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보이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어느 시점에 시작되었음을 우리가 알아야 했고, 그것이 바로 오순절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과 ‘하나님 나라’가 왜 동일한 의미인지는 마태복음 12장 28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성령의 오심’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동시에 ‘귀신의 통치’와 대조됩니다.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를 합니다만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우리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상관없이 ‘더러운 영’이라는 뜻으로, ‘거룩한 영’이신 ‘성령’과 반대됩니다.
하나님은 직접 오셔서 인간을 다스리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인간에게 보내셔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심으로 통치하십니다. 인간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마음을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마음 안에 계시지 않으면 빈 공간에 더러운 영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마음에 더러운 영이 가득하면 그 결과가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처럼 만들려고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이 근원에 무엇이 있다고요? 더러운 영의 영향력입니다. 성령이 오셔야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복음을 통해 어떤 현상이 많이 나타났나요? 사도행전 5장 16절에 보면
5: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수 믿으면 모든 병이 낫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치유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기 위해 특정한 병만 치료하셨습니다. 장님과 귀머거리는 영적으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영적 장님과 귀머거리임을 보여줍니다.
중풍병자 손 마른 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풍병은 생각한대로 움직일 수가 없듯 인간의 상태도 그러합니다. 사랑하면 좋다는 것, 화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고 화를 참을 수 없는 인간은 마치 중풍병에 걸린 상태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또 문둥병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문둥병은 몸의 감각을 차차 마비시키고 또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 이끕니다. 죄의 영향력과 같은 문둥병을 제자들이 고치고 자유케 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했음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말씀에 보시면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누구 자식이라는 것은 모습이 똑같다는 표현으로 심한 욕입니다. 마귀의 본질은 자기밖에 모르는 욕망으로 똘똘 뭉친 존재로 인간의 본질 역시 이와 같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더러운 영에 의해 무서운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귀적인 존재가 섞여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입니다.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마귀적인 모습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가 없는데 의의 본질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욕망이 가득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가족,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짜 사랑,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는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만 가능한 모습입니다. 인간은 노력해도 본질적으로 더러운 영으로 말미암은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성령이 임하신 사람에게는 이 사랑이 가능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누가복음 8장 2절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눅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이는 귀신 들렸던 한 불쌍한 여자가 예수님께 치료받은 얘기가 아닌 모든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의 ‘미리암’에서 왔는데 이는 ‘고통’을 뜻하는 ‘마라’에서 왔습니다. 즉 마리아는 고통으로, 이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마리아가 아니면 이름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십자가에서 지켜보던 여인들, 무덤 곁에 있던 여인들. 마리아가 아니면 그저 ‘다른 여인들’로 기록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귀신은 일곱 마리가 아닙니다. 이는 완전수로, 한 존재를 완전하게 사로잡아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없는 고통의 극한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종류나 정도는 달라도 모든 인간은 더러운 영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곱 귀신 들린 것처럼 사로잡힌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다 자기 욕심을 위해 살아가고, 결국엔 다 고통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구원하셨나요?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를 자유케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입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전체가 이 이야기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마귀 자식처럼 살던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더 잘나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서 고통하고, 다른 사람이 마음이 안 들어서 미워하고 비난하면서 고통하고, 죄를 전염시키며 일곱 귀신 안에서 고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아직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 때문에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여러분이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 뜻에 더 복종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간구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맛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요?
2.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2:40-47
두 번째로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요?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시작된 뒤에 감추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고통이 끝나고 자유를 얻는 데서 끝이 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시작은 성령으로 시작되었고 그 영향력이 교회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장 40절과 41절입니다.
2:40-41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전무후무한 일이 또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설교하자, 앞장서 예수님을 죽였던 3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초대교회를 시작하시기 위해 베푸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들로 형성된 초대교회에 일어난 특별한 일을 42절 상반절 보시면
[42a]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영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에 힘쓰는 일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분을 의존할 때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성령이 만들어내시는 이런 영적 변화를 개인뿐 아니라 같이 모인 자들이 함께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뿐 아니라 두 번째로 42절 하반절과 46절을 보시면
[42b] …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
[46]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전에도 밥은 먹었을 텐데 왜 성령이 임하고 함께 밥 먹는다는 얘기를 기록했나요? 유대인들은 아무하고나 밥을 같이 먹지 않고 형제임이 확실한 사람과만 밥을 먹습니다. 한국에서 밥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변화를 겪자 가족의 범위, 사랑의 범위가 확장된 것입니다. 전에는 피붙이나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사랑했는데 이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품고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일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 30절입니다.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를 믿어서 진짜 가족을 잃어버리고 재산을 뺏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30절에 보시면 “현세에 있어” 예수님이 약속하십니다. 육신의 가족이 돌아가시더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영적 가족이 100배나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뒤에 ‘박해를 겸하여 받고’까지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옛사람이 잘려 나가는 여정을 위해 고난도 같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짜 약속이 무엇인가요?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이 땅에서 받았던 축복이 천국에서 더욱 확장됩니다. 그뿐 아니라 44절과 45절을 보시면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많은 이단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집 팔고 땅 파게 해서 같이 살게 한 뒤 교주가 챙겨갑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은 욕심으로 뭉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돈을 내어놓게 됩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금하고 구제하는 일이 사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임을 보여주고자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또 어떤 변화가 나타나나요? 47절입니다.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강력하게 일하시자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확장되어 점점 복음이 견고해집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집에서 인터넷 설교 들으면서 혼자 예수 믿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들이 함께 모여 자기 이기성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교회를 부르셨기 때문에 교회 없이 혼자 믿겠다는 것은 마치 신생아가 혼자 힘으로 살겠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하늘사랑교회가 10주년을 맞이했고 여러분들은 지난 10년간 복음을 들으셨습니다. 이제 교회가 할 일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드러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강해할까 기도하고 고민했는데 하나님이 사도행전을 선택하게 하신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통해 복음을 깨달은 것에 그치지 않고 교회를 통해 복음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으로 확장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에 묘사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교회로서 함께 경험하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맛보기를 기대합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깊이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