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과거에 있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 이들은 여전히 답답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3년이나 받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고, 예수님이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셔서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이들은 여전히 오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바로 배우지 못하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1.하나님 나라를 세상적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적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의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로마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되고 ‘다윗 왕국’처럼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번성한 나라를 갖는 것이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이 예수님을 쫓아다닌 이유 자체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나라를 로마로부터 구원하여 강대국을 만들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바로 그 순간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무엇을 요청하나요? 마가복음 10장 35절부터 37절을 보시면
막 10:35-37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로마가 물러가고 왕국이 세워지며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서 나라를 통치하고 싶다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뿐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같은 것을 원해서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이들이 먼저 얘기하니까 화가 나서 서로 성내며 싸웠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을 드린 순간이 어떤 순간이었나요? 바로 앞 절인 마가복음 10장 32절에서 34절을 보시면
막 10:32-34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
앞으로 일어날 명확한 말씀을 들어도 제자들의 머리에는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시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으니까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세상의 번성과 평화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은 지난 100년간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처럼 번성했습니다.전 세계에 어떤 나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경제적 번성을 이룬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정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나요? 아닙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사람들의 만족은 줄어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예전보다 풍요해졌는데 사람들의 불만족과 불안은 더욱 커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마음과 교회에 임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8절에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나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로마로부터 자유를 얻고 한 자리 하려고 기대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증인의 삶을 살게 되는지를 이제 사도행전을 통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떻게 증인이 되었나요?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제자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신 것처럼 우리 안에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이 임하지 않으면 우리 눈은 늘 보이는 것에 요동합니다. 제자들은 자기가 속한 나라에 대한 고민이라도 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저 나 하나의 평안과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이 될 우려가 높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다스림 받기 위해 기도하고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마치 우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이야기하나요? 요한복음 4장 24절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
인간의 모든 필요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쁘다, 좋다, 행복하다 등의 경험은 육신의 경험입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 채워지면 내가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영이신 하나님께는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병이 낫는 것이 좋은 것이고, 부자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사업이 성공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영이신 하나님께는 그 반대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선교하고 전도하는 동안 몸의 병을 놓고 열심히 간구했으나 하나님이 무슨 답을 주셨나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바울에게 있는 병이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주어진 것이니 그냥 가지고 살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답이었습니다. 때로 없었으면 좋겠고 불편하고 힘든 그 상황이 하나님의 영적 시각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주어졌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하고 쉽고 즉각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영원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베드로후서 3장 7절을 보시면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람들은 세상에 궁전을 짓고 여기서 행복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무엇을 위하여 보존되나요? ‘불사르기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앞으로 임할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데 우리는 세상만 보이니까 여기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몇 십 년 뒤 이스라엘이 철저히 멸망당하고, 예루살렘 성 안에서만 백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피가 말의 무릎에 닿을 정도로 성내에 가득하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팔려가고, 자신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질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낙심이 컸을까요?
이 모든 일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몇 십 년 뒤 일어납니다. 이 땅의 나라, 세상 기반이 그렇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영원과 안정을 열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안정한 나라와 불안정한 개인의 삶마저 사용하셔서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 영적 시각을 갖지 못한 자들은 역사 내내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많은 시도를 했고 그것이 가장 집중되었던 때가 바로 중세입니다. 중세 유럽에 카톨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교황의 권위가 모든 나라의 왕들을 합한 것보다 강했고 심지어 각 나라의 황제도 교황이 임명하고, 황제가 파문을 당하자 교황에게 무릎 꿇은 ‘카노사의 굴욕’도 이 때의 일입니다.
교황이 세상보다 높은 곳에 서고 로마의 교황청이 전 유럽을 다스렸더니 하나님 나라가 임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중세의 암흑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 바로 십자군 운동입니다. 서쪽의 카톨릭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서로마로 만족하지 못하고 동로마까지 합친 전체의 교황이 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들던 차에 지금의 튀르키예인 동로마에 이슬람 세력이 너무 강해지면서 도움 요청이 오자 이 때 교황은 도움을 준 뒤 그 곳을 먹으려고 합세한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 나라 확장’인 십자군 전쟁을 치르는 자들에게는 모든 죄가 사해지는 면죄부를 주는 특권까지 내리자 엄청 많은 사람이 동참하여 2백 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엄청난 폐해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슬람은 관용적이라 유대인 기독교인이 섞여 살았는데 십자군 운동으로 학살을 당하자 그 때 생긴 증오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내 욕심으로 채우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은 이같은 폐해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길에서도 여전히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 서게 해 달라고 싸우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이 한 가지를 준비하십니다. 바디매오의 등장은 단순히 예수님의 기적이 아니라 가르침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6, 47절입니다.
막 10:46-47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평생 장님, 평생 거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예수님 얘기를 듣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막고 조용히 시켜도 계속 소리 지르자 예수님이 찾아가시고 물으십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 상반절을 보시면
막 10:51a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마가복음 10장 36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똑같은 질문입니다.
막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제자들은 3년을 예수님을 쫓아다닌 다음에 무엇을 원했나요? ‘예수님 권력을 얻으시면 저희도 권력 주세요.’ 그런데 바디매오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 하반절에
막 10:51b …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는 감은 눈을 뜨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왜 이 자리에 이 사건을 기록했을까요? 우리가 바디매오같은 영적 장님임을 알려주시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어보신다면 우리 또한 바디매오처럼 답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으면 ‘제 어두운 눈을 열어 주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을 보면 가치 없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를 돌아보면 쇠구슬, 프라모빌, 나뭇가지 등 쓸 데 없는 것들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어른이 되며 그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들을 알게 되면 미련을 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보면 다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열망하며 생명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본질적 은혜가 우리 안에 없다면, 평생 보지 못했던 자가 보기 원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셔야 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때 여러분이 고민하시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며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예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예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종말이 오고, 종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종말’을 떠올리며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 내내 세상이 타락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끝내고 빨리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종말이 ‘언제’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때를 알고자 하는 열망 뒤에는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과 힘든 현실을 떠나 평안과 만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하나님의 권한이니 알려고 하지 말라고 명확히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늘 알기를 원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을 증거로 삼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한 시점’ ‘마지막 때’를 알고 싶어 하는데 이것 자체가 오해입니다. 성경은 종말을 무엇이라고 얘기하나요? 베드로전서 1장 20절을 보시면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지금이 말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긴 시간 자체가 말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어느 한 시점에 오시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천 년간 기다리는 날이 아직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종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누가 먼저 가는지 순서도 모르고, 주의 날은 알지 못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입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을 예측하는 일은 지난 2천 년간 수없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이 예측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AD 천년으로, 999년 12월 31일에 종말을 위한 마지막 미사를 교황이 집전했습니다. 공포 속에 종말을 기다리다 심장마비로 죽기도 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농사를 안 짓고 남은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A.D. 1,000년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예수님의 탄생이 아닌 부활부터 천년을 계산해야 된다고 삼십 몇 년을 더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한 수도자가 ‘성직자들이 세상의 종말을 예고했다. 그들은 다 미치광이들이다. 성경만 보아도 그들의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미래를 예언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기다리는 그 무시무시한 사건이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앙심에 역행한다.’고 글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도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8일 12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며 한국의 200개 교회가 동참한 일이 있었습니다. 임신된 태아는 휴거되지 않는다고 가르쳐서 낙태를 하고,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팔고 재산을 헌납하는 등 많은 사람이 파괴되었습니다.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이장림 씨가 10월 28일 한 달 전에 구속이 되었는데 수색 결과 횡령한 돈이 34억 원에다, 1993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일본 채권이 몇 억 원어치 있었습니다. 즉 본인은 휴거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 주로 유혹을 받을까요?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 이 삶에 적응을 못하고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갑니다. 이들은 세상이 너무 타락해서 하나님이 곧 심판하신다고 하지만 세상은 아담 이후 늘 타락했습니다. 모습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똑같습니다.
환경 오염이 심판의 전조라고 하지만 이것은 그저 인간의 욕심의 결과입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날 때 종말이 다가온다고 하지만 전쟁의 수로 치면 예전이 더 심했습니다. 힘이 강해지면 자기 욕심을 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으니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종교가 혼탁하기 때문에 종말이 올 거라고도 하지만 항상 많은 이들은 예수를 엉터리로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의 재림을 특정한 잘짜에 준비하라는 속임은 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오신다는 사실이 우리 안에서 너무 희미해져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오시기를 소망하고 계신가요? 세상이 불안하고 무서워서 도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신부가 신랑을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예수님을 열망하고 계신가요? 성령으로 눈이 열려서 이 땅의 세상은 잠시이며 영원하고 찬란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재림신앙을 가지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눈물이 나고 그 분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은혜를 누리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지만 지금 나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내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눈을 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를 열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