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본문은 2천 년 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요즘으로 치면 5월 말에서 6월 초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약에서부터 준비하신 일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이 때 성령을 내리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는지를 여러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으로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으로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1.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vv.1-4
첫 번째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한자 ‘다섯 오(五), 열흘 순(旬)’을 써서 50일째, 즉 유월절에서부터 50일째라는 뜻입니다. 이는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라고 해서 ‘맥추절’이라고도 부르며 또 완전수 7이 일곱 번 지난 후 첫 날이라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무엇이 완성되었나요? 이 날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이 날을 율법 수여일로 믿고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가요? 인간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갈라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모든 복을 누리겠습니다’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율법을 지켜 축복을 받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은 율법을 절대로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한 민족의 역사를 통해 증명하시고자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전부’ 다 ‘항상’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0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갈 3:10 …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잘못 아닌가요? 축복을 줄 테니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고는 결국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조건으로 모두 저주를 받게 하시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 주시려는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시고자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축복을 주겠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인간 안에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왕 노릇, 내 힘으로 내 구원을 얻어내려는 인간의 본질을 폭로하시고 인간은 절대 자기 힘으로는 구원, 생명, 축복을 얻을 수 없는 자들임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본질을 폭로당하지 않으면 인간은 계속해서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얻어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한 순간이 아니라 역사 내내 아무도 율법을 ‘전부’ 다 ‘항상’ 지킬 수 없음을 증명하셨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 받는 대표적 저주인 나라가 망하고 적국의 포로가 되는 비참한 상황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을 얻어낼 수 없기에 하나님이 새로운 방법으로 구원과 생명을 허락하실 것임을 구약에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입니다.
렘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것이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옛 언약 율법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저주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책이 구약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생명의 길을 주셨음을 보여주는 책이 신약이기 때문에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이 증거한 대로 절대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 동참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에서부터 나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은 무엇이라 말씀하나요?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 나라에는 반역자가 없어야 합니다. 반역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대치되는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들만 존재해야 하는데,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 뜻에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의 본질에서부터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들을 만들어내실 새 언약을 세우시고 새 일을 행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왜 성령이 오실 수가 없었나요? 성령 또한 거룩하신 영이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악된 인간과 함께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었어야 되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간의 모든 죄가 씻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죄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의 의를 덧입혀 주셔서 의롭다 인정해 주시니 성령이 임하실 수 있게 되어 오순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함께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이상한 방식으로 임하십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보시면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바람 소리는 났지만 지금 이들은 방 안에 있는 상태로 실제 바람은 아닙니다. 또 머리 위에서 불덩이가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불은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오해해서 지금도 성령이 임할 때 소리가 들리거나 눈에 보여야 한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이 영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임하실 수 있음을 확정적으로 들려주고 보여주시고자 역사상 딱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왜 다른 형체가 아닌 바람과 불꽃인가요? 구약에서 바람과 불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소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8절과 19절입니다.
히 12:18-19, 개정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시내산에서 있던 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산에 불이 붙는 것 같고 흑암과 폭풍, 나팔 소리, 무서운 소리 안에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도 하나님은 바람 같은 소리와 불꽃 같은 모습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즉 오순절에 하나님이 임하신 것이며 이 순간은 하나님이 구약에서부터 열망하시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신 적이 있지만 이것은 upon, 즉 ‘~ 위에 임하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잠깐 사람을 사로잡고 임했다가 떠나시는 관계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전치사가 in으로 바뀌며, ‘~ 안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제 신약에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인간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는 놀라운 축복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람’은 다른 말로 ‘호흡’ 혹은 ‘숨’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함께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시면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흙은 좋은 흙이 아니라 어디나 있는 티끌, 먼지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굉장히 멋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죽고 나면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이 껍질만으로 살아가는 것을 성경은 ‘죽은 영’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살아있지 않고, 이 육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생기,’ ‘하나님의 영’입니다.
‘생기’는 다른 말로 ‘숨, 바람’이며 이 ‘숨과 바람’이 성령입니다. 인간을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시는 그 성령께서 인간에게 오셨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이 함께 계실 수 없자 생명이 떠나셨고 인간이 그때부터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이고 들리고 힘도 쓸 수 있기 때문에 늘 살아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모습으로 살 존재로 만드셨는데, 생명이 떠나자 인간은 잠시 몇 십 년을 살다 먼지로 돌아갑니다.
단순히 육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안에 생명이 있어야 그 결과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데 영혼에서 생명이 떠나자 인간은 끝없는 욕망으로 싸우고 우울하고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서 솟구쳐 나오는 분노와 미움이 결국 우리가 죽은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또 불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은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죄가 만들어낸 더러운 것을 불태우고 깨끗케 하는 분이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불은 항상 더러운 것을 태워 깨끗케 하는 도구였습니다. 역대하 34장 5절을 보시면
대하 34: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부정한 것을 불로 태우면 깨끗하게 되듯, 성령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성령 없이는 생명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양만 갖춰 있습니다. 그러나 모양만으로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이 인생을 지배하여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죄의 영향력이 존재를 고통하게 하고 의미 없는 인생으로 끌고 가려할 때 성령이 비루한 인생에게 임하셔서 생명을 주시고 정결케 해 나가실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바람과 불로 임하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이 임하자 이들이 방언을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에 사람들이 한 방언은 주변국들의 언어였습니다. 이것도 역사상 한 번 있던 일입니다. 두 번째 대지에서 보겠지만 하나님이 이들에게 실제 언어를 말하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방언은 헬라어 ‘글로사’로 ‘혀’입니다. 혀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장 3절과 8절입니다.
약 3:3, 8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
말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은 하고 꼭 해야 하는 말은 하지 못하고, 특히 분노라는 감정에 지배되면 말의 통제는 불가능해집니다. 누군가 악감정을 담아 쏟아낸 말들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어 독을 뿜어내게 만듭니다.
이런 구제불능의 인간에게 하나님이 임하셔서 말을 다스려 주시며 ‘내가 너를 지배하고 통치한다’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여전히 장님처럼 하나님 나라를 보지도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정결케 하시지 않았으면 영혼의 어두움을 해결하지 못하여 어두움이 만들어내는 추악함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에 시작된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 나라로 인해 하나님 백성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복이 주어졌가를 보여주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인생에 좋은 일이 생겼다면 여러분이 애써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성령이 만들어내신 결과입니다.
모태 신앙이고 가끔 은혜를 받는다고 해도 그 은혜가 본질을 뒤집지 못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분노하고 억울하고 우울하고 죽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맛보게 하시면 내 열심이 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이 아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길이 막히면 더 좋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나보다 받아들이게 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크고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중 가장 크고 놀라운 일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완전한 행복과 만족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내재하시는 성령이 여러분을 통치하시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오순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충만케 하셨던 그 충만함으로 저를 다스려 주셔서 제 감정, 제 혀, 제 인생, 제 생각, 제 모든 것을 다스려 주옵소서’ 간구하실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통치자가 되셔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맛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으로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2. 사람들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된 것입니다. vv.5-13
두 번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으로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사람들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된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유대인들은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도록 되어 있었기에 이 시기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에서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전 세계는 아니지만 중동과 유럽 등 그 당시에 갈 수 있는 모든 지역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흩어진지 벌써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재미교포들도 2세대만 되어도 한국말을 잘 못 하고 3세대만 되면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유대 언어를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처럼 세계화가 된 시대도 아니기에 조금만 지역이 떨어져도 자기네 언어만을 쓰는 집단 안에서 언어가 굉장히 세분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무리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7절과 8절입니다.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한 두 명이 아니라 120명이 모든 언어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또 11절 하반절과 12절입니다.
[11b]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20명이 갑자기 온 세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일이 왜 벌어졌나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인간이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해 저주를 받았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의 핵심이 무엇이었나요? 창세기 11장 4절을 보시면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집단적 행위의 시작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을 시작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이름 뜻을 가진 니므롯이었습니다. 니므롯은 자기가 신이 되고 싶어서 사람들을 동원해 바벨탑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집단적으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무너뜨리셨나요? 창세기 11장 7절부터 9절입니다.
창 11:7-9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온 세상이 하나의 언어를 쓴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시도는 얼마나 더 강력했을까요? 세상의 지혜를 합치는 일에 언어가 장벽이 되었었지만 요즘은 또 AI로 이 장벽마저 깨뜨리고 전능자가 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죄가 만드는 가장 처참한 결과가 바로 분열입니다. 죄는 욕망을 통해 자기 욕구를 취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죄가 강력하게 지배하면 반드시 나눠지고 분열됩니다. 가정 안에서도 싸우고 갈등하는 이유는 욕심입니다. 갈등이 많다는 것은 죄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을 통해 하나님 되려는 인간의 죄성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오순절에 성령으로 각 나라의 방언을 말하게 하셨나요? 하나님 나라는 모든 죄를 벗어나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었고 개인은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는데 성령이 장벽을 뛰어넘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모든 민족, 방언, 백성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장벽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장벽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 계급, 지위, 부의 장벽도 문제이지만 우리 개인적으로는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나요?
저는 하늘사랑교회를 보며 감사합니다. 목장에서 나이가 드신 분들도 젊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고, 젊은 사람도 어른들과 대화하며 배울 점을 배우고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물론 5,60대 분들이 충분히 많아서 그 나이 대끼리 목장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입니다. 60대와 20대의 고민은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 해보고 받아들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교회가 아니면 어디에서 연습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가면 모든 나라 족속 백성 방언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목장에서 사회에서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 나가는 것이 바로 성령께 드리는 순종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기를 연습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