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놀랐고 어떤 사람들은 조롱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시면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새 술이 알코올 분해가 안 되어서 더 독하다고 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독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주사를 부린다고 조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향해 베드로가 이야기합니다. 14절입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는 이 일을 계기로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지금 벌어진 상황이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오해를 바로잡고자 15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삼 시는 오전 9시로, 자신들이 아침부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특별한 상황임을 설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오는 이 상황이 왜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1.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변화입니다. vv.16-18
첫 번째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변화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베드로는 지금 상황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경에서 계획하신 일임을 보여주고자 요엘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엘서의 핵심은 마지막에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엘서의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요엘서 2장 1절과 2절은
욜 2:1-2 [1] …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
온 세상에 임한 심판에서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의미에서 이 날을 ‘어둡고 캄캄하고 짙은 구름이 있는’ 무시무시한 날이라고 합니다. 요엘서는 이 협박과 공포에서 끝내지 않고,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2장 28절과 32절에 설명하고 있고 베드로는 그 부분을 본문 17절과 18절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마지막 여호와의 날에 심판이 임하기 전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구체적 내용을 자주 오해해서, 자녀들은 예언만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 즉 비전을 품어야 하며, 늙은이들은 꿈만 꾼다고 나누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 젊은이, 늙은이, 남녀 종은 나이, 남녀, 신분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영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나타날 변화가 많은 것 같지만 딱 두 가지입니다. 앞 뒤로 예언이 있고 환상과 꿈이 한 번씩 있는데 환상과 꿈은 같은 내용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거쳤던 과정이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시각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고는 인간은 육적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한 사명을 받은 선지자들만 영적 시각이 열려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선포했었는데 하나님이 통치하실 날이 오면, 특별한 한두 명이 아닌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성령을 받아 영적 눈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선포입니다. 이것이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 가운데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의 결과인가요? 요한일서 2장 16절입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세상 사람들은 인생 내내 육신의 정욕을 채우고자 살아갑니다. 육신의 정욕은 좋아 보이는 것, 맛있어 보이는 것, 귀에 듣기 좋은 것을 통해 내 몸을 안락하게 만드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구적인 행복과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엔 허무하고 부질없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이 애쓰고 노력하는 다른 영역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인간 감각의 70~80%는 눈을 통해 자극되기 때문에 우리는 다 눈의 영향을 쉽게 받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 좋아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더 큰 갈등과 고통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또 몸부림치는 영역은 내가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하는 자랑입니다. 자신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잘난 사람을 아는지라도 자랑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랑이라면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입니다.
고전 15:19 만일 …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세상이 끝이라면 바울은 바울처럼 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셨고, 세상을 이길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게 해 주셨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이제는 이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각이 변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말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7절과 18절에
[17a] …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 [18b] …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한국 교회는 예언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바람에 많은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의 예언에서는 미래에 관한 일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그 일이 일어난 뒤에 기록한 것이라고까지 얘기를 합니다.
특별히 이사야서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굉장히 많이 써 있다 보니 몇몇 신학자들은 이사야서의 저자가 4명이었다고까지 주장을 합니다. 각각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저자들의 말을 통합해서 한 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우리도 예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와 결혼을 한다, 어느 대학에 지원한다, 어디로 이사를 간다 등 미래 일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언의 본래 의미는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예언은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 나라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죄 문제가 해결되고 성령이 오셔야만 시작됩니다.
구약에서 보면 그것이 미래였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면 죄가 해결되고 원수를 무찌르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미래 시제로 예언해 준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여전히 기대합니다. 그래서 영적 시각이 달라진 자는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충성을 다하면 상을 주시고 우리가 별 볼일 없으면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던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 미래를 완성해 주시며 복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와 관계없이 놀라운 미래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리 인생에서 실패하고 대단한 것을 누리지 못해도 이미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고 믿는 자는 이 복음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 예언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모여서 ‘너가 예수만 믿는다면 하나님이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거야, 지금의 실패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너의 인생을 붙들고 가실 거야’라고 서로 말해 줄 수 있다면 목장 모임에서 나누는 복음의 말 역시 예언이고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이 일은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은 하던 일이 안 되면 개인적으로 좌절하고 포기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넌 안 된다고 저주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자기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얼마나 많은 파괴적인 말들을 퍼붓나요?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가 자녀에게 눈에 보이는 능력으로 얼마나 미래를 재단하고 평가하나요?
그러나 영적 시각을 받아들인 자는 세상의 기준을 넘어 하나님이 각 인생을 얼마나 귀하고 놀랍게 보시는지를 보고 선포해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두 번의 실패와 좌절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증거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좌절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나 같은 게, 너 같은 게, 하며 비교하고 판단하던 사람이 변해 ‘하나님이 너를 책임지셔, 예수가 인생의 전부이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먼저 영적인 눈이 띄어지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한 발씩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가진 믿음과 확신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20대의 저를 돌이켜보면 안타깝고 불쌍할 정도입니다.
제 시각이 보는 것에 의존되어 있으니 삶의 좌절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것이 저에게 사형 선고 같았던 시절, 사실 아버지와 두 여동생까지 모두 뿌리부터 흔들릴 때, 저희를 잡아서 계속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가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하나님은 뜻이 있으실 거야, 우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돼’ 하며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같이 기도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동생은 밤늦게 들어오고, 아버지는 새벽 일찍 나가시고, 다섯 명이 유일하게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새벽 4시였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저에게는 깨어 있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복음과 예언으로 시간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집이 망해서 기쁨도 없이 지하방에서 드렸던 그 예배가 돌아보면 믿음의 행위였고,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본 자가 가지는 확신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망하게 한 하나님께 왜 예배를 드려야 하나? 그러나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셨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믿었던 어머니를 통해 연약한 남은 식구를 붙잡아 그 과정을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게 먼저 눈을 뜬 한 사람의 예언을 통해 다른 사람이, 한 가정이, 한 교회가, 한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며 낙담하시나요? 그것은 마귀의 시선이며 세상의 시선입니다.
이런 분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제게 성령을 주셔서 제 눈이 달라지게 하시고 말이 달라지게 하셔서 저 자신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실패가 끝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선포하는 사람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 예언해야 됩니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은 끝까지 붙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 당신 인생은 궁극적 축복이며 성공입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하늘 사랑교회 모든 성도가 서로에게 예언함으로 놀라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함께 보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vv.19-21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징조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어떤 징조가 있었나요? 출애굽기 19장 18절부터 20절을 보시면
출 19:18-20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
불과 나팔이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2절과 3절에서 성령이 강림하실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불과 바람소리를 통해 가장 강력하시고 위엄 있으신 하나님이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구약에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다가 예수님이 죄를 해결하신 신약에 하나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나나요? 본문 20절 보시면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마지막 심판, 예수님의 재림, 역사의 끝, 다 같은 말입니다. 이 날이 오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가 되는 것은 정확히 언제인가요? 계시록에 보시면 이것은 세상의 질서가 뒤흔들리는 종말, 즉 지금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세상의 자연 질서가 계속 변한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사람들이 의존하고 살아가는 세상 질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때가 바로 종말의 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나옵니다. 계시록 6장 12절입니다.
계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질서에 자기 인생을 의탁하고 살아갑니다. 매일 해가 뜨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 동안 돌고, 중력이 있는 질서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물리적 질서뿐 아니라 경제, 정치, 질병, 기후가 요동할 때마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재앙인 이 일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 주의 날이 임하기 전까지가 어떤 날로 주어졌나요?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예수 이름을 불러서 구원받는 시간입니다. 세상 질서가 무너질 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요한계시록 6장 15절부터 17절입니다.
계 6:15-17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세상 질서가 요동할 때 세상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떱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럴수록 어떻게 되나요? 요한계시록 9장 20절에 보시면
계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돈에 대한 의존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고 커진 요즘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상 숭배하는 시대. 그러나 바로 지금이 성도에게는 예수 이름을 불러 구원받을 날입니다. 그래서 성도 인생에도 세상 질서가 무너지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내가 의존하던 누군가가 사라지거나 내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 성도에게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입니다.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저주같던 일들이 돌아보면 구원의 수단이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축복입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제가 그렇게 아프고 아내가 아프고 돈이 없어 매일 고통하지 않았으면 저는 복음은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본질에서는 기복과 율법을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기반이 다 무너지고 그 어떤 것도 나의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예수 이름을 불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날입니다.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 임할 무서운 심판 전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생의 질서가 무너지는 바로 그때 예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