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한 설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이었고 본문 하반부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을 것인데, 성령을 받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이때 성령과 예수의 오심이 어떠한 증거인가 하는 것이 베드로 설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증거하나요?
1.죄악과 죽음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vv.22-31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증거하나요? 첫 번째로 죄악과 죽음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20절과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마지막 날에는 엄청 무서운 심판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망하는 심판이 아니라 그 전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 부를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베드로가 설명합니다. 22절입니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기적을 행하게 하신 이유는 ‘구약에서부터 약속된 이 예수가 행하는 일들을 보고, 내가 그를 구원자로 보냈음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으라’라는 약속의 확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23절 하반절입니다.
[23b] …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마지막 심판 때에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모두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들을 직접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는데, 인간들은 그 구원자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것이 역사 내내 드러난 인간의 반역이며 죄악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수단을 거부하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무슨 일을 행하셨나요? 24절입니다.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라 하나님이 살려내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증거하나요? 예수님이 생명의 강력한 능력을 가지셨음을 증거합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완전히 파괴한 것처럼 보였지만, 생명은 얼마나 강력한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려고 보니 인간이 예상치 못하게 악해서 죽임을 당하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에 인간이 예수님을 배척할 것을 아셨지만 인간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이 죄악보다 강하심을 드러내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베드로가 구약의 시편을 인용하여 ‘다윗을 통해 모든 것이 이미 예언되었다, 너희가 예수를 죽인 것도,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도 모두 계획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25절부터 28절까지 구약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이 27절입니다.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다윗은 죽을 듯한 고난 가운데 처해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다가 ‘내가 이렇게 고통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죽게 놔두시지는 않겠구나. 내가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자이니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겠구나’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고백을 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성령으로 감동시키셔서 예수에 관한 예언을 그 안에 담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다윗의 이야기가 아님을 29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7절의 약속대로라면 다윗은 죽지 않을 텐데 다윗은 죽었고 묻혔습니다. 즉 이것은 다윗이 아닌, 영원히 죽지 않으실 분에 대한 예언임을 베드로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될 수 있는지 또 30절과 31절 상반절입니다.
[30] 그는 선지자라 …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
다윗 왕은 또한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과 하나님의 확신을 노래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메시아의 구원과 부활을 설명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가 죽었다 살아나신 것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해결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입니다. 32절입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시점은 예수님이 죽었다 부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많은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한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죄악과 죽음보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증거하셨습니다.
인생에서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두 가지 영향력이 바로 죄악과 죽음입니다. 본인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어서 걱정하기도 하고, 내가 의존하고 아끼는 가까운 사람이 죽음에 처할 때 오는 공허감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슨 약속을 하시나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지만, 하나님 백성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아 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도 영생의 약속이 있기에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개인의 욕망과 두려움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는 자녀의 본질과 관계없는 엉뚱한 욕심을 내거나 과한 두려움으로 통제하고, 자녀는 자기 나름의 욕심과 두려움으로 반항하며 거부하다 갈등이 생깁니다.
관계의 갈등의 본질에는 결국 죄가 만들어낸 욕망과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서로 힘든 것입니다.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포기인가요? 죄의 문제는 예수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를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이,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인생에도, 죄보다 강하신 능력을 보여주실 것임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을 가진 자는 낙심하지 않고 견뎌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숨이 멈추셨다가 다시 숨을 쉬셨다는 물리적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인생을 위협하는 죽음, 우리를 낙심케 하는 죄까지도 하나님이 해결하심을 받아들임으로,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증거하나요?
2.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합니다. vv.33-36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증거하나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중심을 증거합니다. 33절 말씀입니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예수님이 그냥 살아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놀라운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른손으로 높여 주시고 예수님을 통해 성령이 부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냥 성령을 주실 수 있는데 왜 꼭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았다고 이야기하나요?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야 부풀듯 인간 영혼에 성령이 들어오시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그 성령을 예수님을 통해서 주셨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생명의 주권자요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도구가 아니라 그 분 자체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구약을 인용합니다. 34절 상반절입니다.
[34a]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
다윗이 메시아에 대해 예언을 했는데, 하늘에 가보지 않았지만 하늘의 일을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다윗이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것이 앞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4절과 35절입니다.
[34b] …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이것도 다윗 왕에게 원수들을 발밑에 눌러서 강한 통치자가 되게 하겠다는 다윗에 대한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34절에 ‘주께서 내 주에게’라고 주님이 두 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인 메시아에게 ‘모든 원수들을 발밑에 통치’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다윗이 아닌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하나요?
[36] 그런즉 …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줍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주인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의미 없이 주님이라는 단어를 내뱉지만 그 의미는 굉장히 무거운 것입니다. 노예는 자기 뜻, 생각이 없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고,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부어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하신 직책은 왕, 제사장, 선지자였습니다. 이 세 가지 직책은 앞으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통치하실지를 보여줍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제사장인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생명과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중간역할을 해 주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듯이, 선지자 예수는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론은 쉽지만 사실 인생의 모든 가르침 중 가장 어려운 길이 바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주인이 되기 원하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뜻을 내려놓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내가 세운 계획이 좌절되면 우리는 불안해하고 나중에는 분노하게 됩니다. 화가 난다는 것이 바로 내가 내 주인이 되고자 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온전히 믿지 않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온전히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부르는 자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저도 예수님이 주님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어려서부터 알았습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길이 주어질 때마다 낙심했고 좌절했고, 심해지면 너무 분노했습니다. 그 여정이 가장 극명했던 것이 하늘사랑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스물일곱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마흔 셋에 개척할 때까지 한 번도 선교나 개척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꿈꾸는 사역, 특히 북한사역을 하려면 기존 교회의 인력과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기도하면서 더욱 상상하고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학 후 한국에서 청빙은커녕 남의 교회 지하실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는지에 대해 제 분노와 낙심과 혼란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 돌아보면 우울증의 증상을 겪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마음은 지옥으로 끌려가고, 성경을 읽어도 한 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막다른 곳에서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제 죄악은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거부하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고통했었는데, 내면의 죄악과 마주하고 그것을 포기했더니 하나님은 평화와 온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개척한 이후에 걱정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옳으셨고 하나님의 선물은 은혜로웠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심을 믿으시나요?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아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시나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혼란하고 고통하고 있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주인이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활의 능력을 충만히 맛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