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는 5절에서 성경 전체를 요약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죄와 죽음에 매인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주님이며 그리스도이신 그 분을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자유와 안식을 주시며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이 외에 다른 내용은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모형과 예시입니다. 베드로는 복음의 핵심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했고 그 결과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복음 선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1.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vv.37-41
그렇다면 복음 선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37절입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바로 얼마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이들이 설교 한 편에 잘못을 뉘우치며 ‘어찌할꼬’라고 외쳤다는 것만 보아도 베드로의 설교가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강력히 임하신 것입니다.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던 자들이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것이 성령의 가장 강력한 역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 특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받아내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에 대해 베드로가 무엇이고 답하나요? 38절 상반절입니다.
[38a]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
사람들은 회개가 잘못에 대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내가 생각하고 추구했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임을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근원적인 태도입니다.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민족적으로, 마치 일제 치하에서 해방을 기다린 한국인들처럼,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와 고통 속에 수백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주고, 배고픈 자들에게 밥을 줄 메시아를 기대했기에, 그 메시아 상과 반대로 초라하고 힘없는 예수를 배척하고 죽인 것입니다.
그런 예수를 다시 받아들이다니,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찾은 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나요?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구약에 없던 회개가 신약에 등장한 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 회개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지은 자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창기만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왜 세리와 창기가 되었나요? 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동족을 배반하고 치욕스러운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기에 구원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구원이 아닌 오히려 죄였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입니다.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라는 의식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례를 받음으로 나는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다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마음의 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은 편의를 위해 머리에 물만 묻히는 방식으로 간소화되었지만 세례의 진짜 의미는 물속에 들어가 죽는 것입니다.
물이 심판의 물이며 죽음의 물이기 때문에, 죄의 결국은 참혹한 죽음임을 깨닫고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 살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모두 심판 당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비둘기가 생명의 감람잎을 물고 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음을 보여주신 그림에서도 나왔고, 이를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에 들어가지 않은 세례는 인정하지 않는 목사님들도 계셔서 교단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세례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고 죄를 인정한 자에게 성령이 임해 우리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내게 소망도 구원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회개한 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38절 하반절입니다.
[38b] …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왜 하나님 노릇을 포기한 후에야 성령이 임하시나요? 성령이 임하셔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근원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을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좋고 나쁜 기준을 정해놓았습니다. 부자 되고, 예쁘고, 키 크고, 건강하고, 가정이 행복한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어 사람들에게 칭찬과 우러름을 받고 하나님의 자리를 찬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다 가져도 불안은 커지고 고민은 많아지며 작은 것에 감사가 없어집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마음이 제일 무서운 죄악입니다. 도덕적으로는 흠이 없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마귀와 같은 존재입니다.
선악을 판단하여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이 죄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 일을 멈추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끌어내리고 다스리셔서 하나님만이 왕 되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끔 우리를 끌어가십니다.
이것이 쉽지 않아서 우리는 자주 회개해야 합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날 때 엎드려야 합니다. ‘제가 주인이 되려는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깨우쳐 주셔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인생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빌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는 통로가 아닙니다. 이것은 주문입니다. 기도는 나의 무능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라는 부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인생을 맡기는 과정이 하나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우리 인생을 통치하실 이 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져 있나요? 39절입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40절에 또 그들을 어떻게 격려하나요?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비뚤어져서 정상적으로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골프를 칠 때 1도만 틀어져도 공이 도착지에서 멀어져 버리듯 우리 본질이 비뚤어져 있어서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어떤 엉뚱한 길인가요? 하나님이 죄와 악이라고 여기시는 길입니다.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비뚤어진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욕망에서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이 회개입니다. 사람들이 정말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41절입니다.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도 갑자기 부흥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기적과 치유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로도 복음을 듣지 못하여 여전히 헷갈리게 살아가던 우리 세대 가운데 하나님이 참 복음이 무엇인가 다시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시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것이 틀렸습니다.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셔서 통치하시며 참 행복과 만족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복음 선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2.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vv.42-47
두 번째로 복음 선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면 반드시 관계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를 중요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거룩은 죄가 없는 것이고, 죄가 없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하고,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그 생명을 다른 존재를 향해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랑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거룩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죄가 있으면 영혼이 공허하고, 생명이 없으니 이기성이 증폭됩니다. 주변 사람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악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관계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결혼하고 처음 몇 년은 당연히 갈등합니다. 그런데 갈등의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이해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신다면 내 원함을 하나씩 내려놔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장할수록 관계는 파괴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분으로 보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주인이라고 인정한다면 내게 주신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이고 은혜여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가 달라지고 찬양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했을 때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가요? 42절 하반절에
[42c]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들이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연봉 인상이나 인기나 권력이 아닙니다.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통치가 유대 전역,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질 수 있도록 역사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어둠 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이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힘쓰며 기도하는 것은, 반대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러 가는 모습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끄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47절을 보시면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경험한 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고 경배합니다. 기도와 찬양에 더해 42절 상반절을 보시면
[42a]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기도, 찬양, 말씀 이것이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매일합니다. 46절입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너무 중요해서 매일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 예배가 마치 좋은 대안이 된 것처럼 집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는데 잠옷 바람으로 누워서 구경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청’입니다.
물리적 공간에 나아와 ‘마음을 모아’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기를 힘쓰는 것이 우리가 드릴 예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화될 뿐 아니라 또 이웃과의 관계도 변화합니다. 42절 하반절과 44절을 보면 어떻게 변화되나요?
[42b] …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매일 밥을 같이 먹는 사이, 묻지 않고 물건을 통용하는 사이를 ‘식구’라고 합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기 혈연만 식구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이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부터 30절입니다.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
당시에는 예수를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가족과 이별할 위험, 공동체에서 내쫓겨서 저주받은 자처럼 살 위험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영적 가족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물론 일주일 내내 할 수는 없어서 주일에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밥을 먹으며 사소한 이야기도 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일찍 나와 헌신하시면서 식구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영적 가족은 한 단계를 더 나아갑니다. 45절을 보시면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이것 역시 식구의 일입니다. 한 자녀가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는 가진 전부를 쏟아붓고도 생색내거나 청구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인간의 근원적 이기성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혈연이 아닌데도 흘려보낼 수 있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십니다.
육적 가족을 넘어 사랑하며, 밥을 같이 먹고, 물건을 같이 쓰고, 심지어 집을 팔아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성령이 강력하게 일시적으로 임하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파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수록 자기중심성이 깨어지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20대의 모습 그대로 70대가 되어서 내 가족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강력해질수록 우리는 가족과 함께 울고 웃고 사랑하듯 사랑의 범위가 점점 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강력하게 임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본질이 변하지 않은 채로 능력이 임하면, 한시적으로 기적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믿음과 성품은 하나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강권적으로 임해서 재산을 팔았다 해서 성령이 떠나가시면 혼란하고 붕괴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으시고 우리가 말씀으로 하나씩 깨달아 인생을 통해 사랑을 배워서 가족이 아니던 자를 가족으로 품고 사랑하게 되는 성숙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47절 하반절입니다.
[47b] …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때 구원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목사는 자기 설교 한 번에 3천 명이 회개하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기적으로 단번에 사람의 본질이 바뀐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끊임없이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단번에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10년 전에는 나밖에 알지 못하던 분이 성숙하고 성장하여 서로를 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훨씬 더 큰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10년 전에는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 가고 내려놓지 못하던 분이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10년 전에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던 분이 이제 ‘나의 능력, 시간, 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길 원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이런 변화를 보며 하나님이 단번의 복음 선포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걸쳐 열매 맺고 계심을 제가 더 확신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앞으로도 하늘 사랑교회에 계속되고 풍성하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