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한국 교회에 기적이 많이 일어났던 특별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기적의 붐을 타고 커진 교회들이 있는데 이들 중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이단으로 변질된 교회들이 있습니다. 재적 교인 십만 명 이상, 출석 교인 수만 명이었던 대표적인 교회가 만민중앙교회나 서울 성락교회입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난다는 기적을 선전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주들이 자신은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두 명 다 병에 걸려 죽었고 교회는 해체 상태에 놓였습니다.
교회 내에 일어나는 기적들이 다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기적을 오해하거나,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자신의 힘인 양 이용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예수님의 통치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vv.1-9
첫 번째로 예수님의 통치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이 사람은 남에게 인생을 위탁해야만 살 수 있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전까지 오는 것도, 구걸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힘을 가지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평소처럼 3절에 반응합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누구라도 도움을 준다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기에 아무에게나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일반 사람과 전혀 다른 반응을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도움을 주기 싫은 사람은 대부분 무시하고 가버립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무언가 큰 것을 주겠거니’ 기대했을 텐데 베드로가 예상치 못한 답을 줍니다. 6절과 7절 상반절입니다.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a]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
은과 금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앉은뱅이는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며 붙잡고 일으켰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7절 하반절과 8절입니다.
[7b] …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평생이 앉은뱅이라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이 쪼그라든 상태입니다. 그때 놀라운 능력이 임하여 다리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앉은뱅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성경을 해석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의 임재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는데 이 하나님 나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 것인데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혀 다른 두 태도가 공존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었고, 부활 승천했다지만 거짓말 같고, 성령이 임했다고는 하는데 증거는 없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지금 하나님이 통치가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에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내가 내 주인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최악의 결정을 막아주시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지금 임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때때로 눈에 보이는 기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이것이 약속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5장 6절을 보시면
사 35:5-6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장은 메시아가 오실 때 나타날 세상의 변화를 말하는 대표적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가장 현저하게 맹인이 보고 귀머거리가 듣게 됩니다. 왜 맹인과 귀머거리인가요? 죄의 결과로 사람들이 영적인 눈과 귀가 닫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시지만 보이는 세상보다 훨씬 크고 넓고 강하십니다. 사람들은 티끌에 불과한 이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보이지 않는 나라를 보게 됩니다. 아무리 들어도 믿지 못하던 자가, 예수가 주인이시고 죄를 사하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고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가장 큰 저주가 마가복음 4장 12절입니다.
막 4: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모하여 성경을 읽고, 쓰고, 외우고, 가르치지만, 당시에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인간의 비참하고 무서운 죄악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을까요? 기적 없이도 예수로만 소망이 있다고 믿게 된 것이 성령이 우리의 어두운 눈을 여신 더 큰 기적이며 은혜입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외에 이사야가 약속한 것은 저는 자가 뛰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앉은뱅이의 특징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죄에 영향 받은 인간의 상태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분별은 합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임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삶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도 결국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며 성령의 통치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눈은 열렸는데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하려다 보니 용서하지 못하고 화가 납니다. 성령으로 저를 통치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나타나는 영광을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은혜를 부으실 것입니다.
보고 듣고 뛰는 것과 함께 또 다른 메시아의 통치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통치가 있어야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도 전할 수 있습니다. 제 인생에도 성령 충만했던 때가 몇 번 있었는데 제일 처음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대학 못 갈까 봐 두려움이 커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어느 날 놀라운 충만함이 임하면서 눈물도 많이 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마음이 가득 차면서 새로운 은혜가 임했다고 느끼던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반 아이들한테 예수 믿으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방학에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에어컨 없는 교실에 갇혀서 공부하는데 제가 의자를 끌어다가 1번부터 차례대로 교회 다니는지 물으며 끝 번까지 전도를 했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 그때 저희 반 애들이 한 주에 다섯 명씩 교회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 감정이 약화되어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내 것이 아닌 담대함으로, 말 못하던 사람이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종교에 예민한 시대라 전도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여러분이 하나님의 통치에 충만히 다스림을 받아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점입니다. 여러분은 그 통치의 은혜와 영향력을 받고 계신가요?
아니면 여전히 눈과 귀가 반만 열려 헷갈리고 다리를 절어서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입은 벙어리처럼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면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이 시대에 저에게도 하나님의 통치가 충만하게 임하여 밝히 보고 밝히 듣고 입을 열어 담대하게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 인생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의 은혜를 맛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vv.10-26
두 번째로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미문의 ‘미’는 아름다울 ‘미’입니다. 성전 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녔습니다. 이 걸인은 도움받을 확률을 높이고자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문을 골랐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멀리 살아도 성전에 1년에 세 번씩은 왔어야 되고,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기도할 때마다 성전을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다리가 쪼그라들고 뼈밖에 남지 않은 사람을 오랫동안 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뛰고 있다니 모두들 놀랐습니다. 10절입니다.
[10] (모든 백성이)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모두가 놀라고 또 놀라라고 하나님이 일부러 그 사람을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11절입니다.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이 사람 자신도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매달리자 사람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교회 내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모든 아픈 사람이 다 낫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인생은 병이 나았다 해도 결국 또 아프고 죽게 됩니다. 또 때가 되면 죽음을 통해 육신을 벗어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목적을 따라 때로 병을 낫게도 하시고 안 낫게도 하시는데, 낫는다면 중요한 목적이 항상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무엇인가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입니다. 병이 나은 사연을 듣고 ‘나도 기도 받고 낫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적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복음을 위해 일하시는구나’라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단과 정상적인 교회가 갈라지는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민중앙교회의 교주 이재록 목사도 병을 낫게 한 경우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 뒤부터 자기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 목사가 나올 때 여자 성도들이 옥황상제 옆의 궁녀들같이 분장하고 큰 부채를 흔들었습니다.
자기를 목자라고 칭했는데 그냥 목자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며 ‘하나님 예수님 목자님’으로 자신을 성령으로 칭한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시골 무안의 물이 병을 치료한다고 하여 ‘무안단물’을 팔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대장균에 오염되어 정부에서 폐쇄시키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이 이단과 기독교의 근원적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무엇이라 했나요? 사람들이 주목한 순간을 복음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시면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오순절 사건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선포한 내용과 똑같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 그 분은 살아나셨다.’ 아주 간결한 복음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무엇을 증거하나요?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며 메시아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구약의 약속대로 연약한 자가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19절 상반절입니다.
[19a]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
죄를 회개하면 죄 사함을 주시는 것이 메시아가 오시는 목적입니다. 그 결과는 19절입니다.
[19b] …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새 창조가 일어납니다. 옛 창조의 죄악이 점철된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뿐 아니라 20절과 21절에서는 어떤 날이 온다고 하나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오실 예수를 만날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예수를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예수는 무서운 심판자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두려운 날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이야기하듯이 모든 자들이 바위 틈에 들어가 차라리 바위에 깔려 죽는 게 낫겠다고 공포에 떠는 무서운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그날이 축복의 날이며 소망의 날이며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의 설교는 단순한 복음입니다. ‘너희가 예수 죽였다. 너희는 죄인이다. 회개하고 예수 믿어라. 그러면 죄 사함을 받아 새롭게 되며 무서운 심판주가 아닌 사모할 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교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4장 4절 말씀입니다.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예수가 죽었고 부활했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기적을 통해 마음이 열렸고, 복음으로 예수가 진짜이심을 받아들이며 하루에 5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몇 명이 구원을 받았었나요? 2장 41절을 보시면
2:41 …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첫 번 설교에 삼천 명, 두 번째 설교 때 2천 명이 더 많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급격한 확장을 위해 기적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기적의 목적을 기억하지 못하면 엉뚱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사실 저희 친가도 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실 뻔 하다가 어머니의 전도로 병이 나아 예수를 받아들이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온 마을을 다니며 전도하셨는데 무속 신앙이 깊었던 동네 분들이 싫어하고 소금을 뿌리고 박해하셔서 할 수 없이 그만두셨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지 않자 입이 부풀어 올라서 전도를 안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10년째 앓아누워 계신 아주머니 댁에 가서 매일 미음을 쒀주며 복음을 전하다 보니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시는 그 분께서 소망이 생겨서 예수를 믿기로 하고 목사님이 기도도 해 주셨는데 이 분 병이 나아서 밥도 먹고, 살도 붙어서 돌아다니게 되셨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도 예수가 궁금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이 수백 명이 몰려서 당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그 시골 교회의 본당보다 두 배나 더 큰 교육관을 지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모였다가 거기서 예수도 믿고 인생의 구원을 경험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기적을 기도해야 할까요? 이것은 한국 교회의 시대적 흐름을 따라 하나님이 일하셨던 방식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적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복음 만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숙함을 훈련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만주의 주이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도 경험하며 충만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