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4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에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 나라가 강력하게 확장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 상반절과 14절을 보시면
[12a]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허락하신 이유가 바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처음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강력하게 임했는지 15절과 16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데 왜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게 되나요? 병과 귀신 들림은 하나님 나라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통치가 완전하게 임한 곳이기에 그곳에는 연약함과 어두움이 없어야 합니다.
사실 초대교회도 앞으로 임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에 불과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강력하게 임하면 반드시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마귀의 공격과 핍박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마귀의 공격이 세지는 이 사이클은 사도행전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마귀의 공격에 하나님은 때로 개입하시는데 이 개입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려는 ‘구원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향해 세상을 운행해 나가시다가 마귀의 공격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문제가 생길 때 ‘목적을 위해’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섭리는 우리의 일상에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이 일일이 개입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이 감동하신다거나 헌금을 많이 해야 복을 더 받는다는 식의 기복주의는 인간의 관점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자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방향을 선택하여 ‘구원 계획’에 문제가 생긴다면 하나님은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시나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1.초월적 개입입니다. vv.12-26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은 초월적 개입입니다. 17절과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본문에는 마귀라는 단어는 없지만,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누군가를 두렵게 하거나 해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부정적 감정을 통해 그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합니다.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등의 부정적 감정들을 영적으로 요동하게 하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서 노예로 삼습니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미움과 질투로 사도들을 다 옥에 가둬버립니다.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개입하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물론 사도행전 외에 천사가 옥문을 열어주는 장면은 없고 아마 2천 년의 기독교 역사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천사가 열었다고 알려주나요? 이것은 문제가 생길 때 천사가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 즉 섭리를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물리적으로 볼 수 없으면 대부분 없다고 치부합니다. 인류 내내 그러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알고 있는 병균, 세균,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도 100여년 전입니다. 이제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해도 교육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이 여전히 보지 못하는 것은 물리 세계를 벗어난 영적 세계입니다. 천사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세상에서 일하시는 초월적 방법 중 한 가지를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무엇을 알려주나요? ‘하나님은 세상의 방식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여 목적대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천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천사가 개입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은혜를 받고 천사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당시 저는 기복적이고 신비적이었는데, 신비주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고자 하기 때문에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고 들은 것을 믿는다는 것은,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너무나 불안전하고 인간은 늘 자기 욕망대로 원하는 대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감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2.0이지만 타조는 25.0입니다. 인간보다 20배나 눈이 좋아서 약 40km 떨어진 물체도 판별할 수 있습니다. 또 밤에 고양이들은 인간보다 약 8배나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청력도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물리적 세계가 확장되어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듣는다면 어떨까요? 지금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많은 병균과 먼지를 다 볼 수 있다면 훨씬 만족할까요?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영적 세계입니다. 물리적 세계를 넘어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천사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더럽고 어두운 것을 더 많이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전 교회의 학생이 증산도에서 제사를 잘못 드려서 영적인 눈이 열리고 귀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보여서 지하철에도 사람이 꽉 찬 것 같고 심지어 교회에도 있어서 점점 미쳐가고 있던 중에 하나님이 놀랍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영적인 눈이 열려서 천사 같은 영적 존재들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제가 그 친구를 보며 그 기도를 멈췄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들이 더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눈을 적당히 닫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걱정하지 말라고 조금은 알려주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마태복음 18장 10절 말씀입니다.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세상에서는 ‘소자’입니다. 작은 자,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 대단한 업적이 없는 자.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희 천사들이 하나님 얼굴을 뵙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별 것 아닌 사람이었는데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께 고자질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천사가 하나님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로 받으시지 않고 하나님 백성들의 인생에 천사들을 보내놓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 누구 이런 일 당했어요, 업신여김을 당했어요, 저렇게 고통하고 있어요, 하며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세상을 이런 초월적 방식으로 섭리하고 인도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 함몰되어 살다가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을 잊어버리고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포기하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옥에 갇힌 모든 자를 구원하나요? 두어 장 뒤에 야고보는 옥에 갇혔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완성을 위한 목적이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천사가 이들을 구원하며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20절을 보시면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지금 초대교회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모이고 교회가 견고하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라도 개입하고 계십니다. 천사가 기록된 것은 몇 번 되지 않지만 많은 교회가 세워질 때와 하나님 백성들의 인생 가운데 이렇게 개입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쌓은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신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면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성경을 통해 배우면서, 하나님이 목적대로 우리를 인도해 가심을 믿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자전거를 타는데 옆에 큰 트럭이 와서 한동안 같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 앞바퀴가 큰 홀에 빠지면서 아주 찰나였지만 제 몸이 트럭 타이어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마치 누가 민 것처럼 트럭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가 쓰러지면서 저는 횡단보도로 굴렀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마치 천사가 저를 옆에서 밀어서 살아난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제 삶의 시작 자체가 하나님의 개입이었음을 믿게 하신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으로 24살의 저를 부르셨습니다.
렘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이 구절로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제 기도 자리에 붙여 놓았습니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같은 구절을 읽었는데 1년째 되던 그날은 유독,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체, 눈코입도 없는 존재를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이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아침 식사를 시작하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일승아, 네가 어떻게 태어난 줄 아니?’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시집살이가 너무 심하셔서 결혼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던 터에 저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어 고민 끝에 낙태 예약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낙태를 하기로 한 날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방문을 두드리셨다고 합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하얀 옷을 입은 분이 네 배를 쓰다듬고 올라가셨다. 분명 태몽인데, 너 임신했니?’ 그래서 낙태 예약을 취소하고 저를 낳으셨다는 이야기를 소명 받은 지 딱 1년 되는 날 듣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꿈으로 보신 천사가 아니었다면 저는 없어질 존재였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신비한 천사의 경험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써 있듯 하나님은 놀라운 초월적 방법으로 인생마다 개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적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눈동자처럼 아끼고, 엄마가 젖먹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끌어안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이며 우리를 끌어가는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나요?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에 함몰되어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믿음이 약해지셨나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2. 사람을 통한 개입입니다. vv.27-42
두 번째로 하나님의 섭리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람을 통한 개입입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또 잡아와서 협박합니다. 29절에 사도들의 반응입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했습니다. 죽인다는 협박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들이 동요하지 않자 종교 지도자들이 더욱 날뜁니다. 33절입니다.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강력한 마귀적 영향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본질입니다. 모든 부정적 감정의 끝은 자신이 싫어하는 상대가 없었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말껄 그랬어. 애 낳지 말껄 그랬어.’ 이런 생각은 내 존재만 귀하다는 마귀적 사고입니다. 내 영광과 내 쾌락에 방해되는 존재를 다 없애고 싶은 무서운 인간의 죄성을 사두개인이라는 집단을 통해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바리새인은 잘 안 나오고 사두개인이 계속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지금 누리는 삶, 인기, 재산, 권세가 너무 좋은데 하나님 나라가 그것을 방해하니까 질투하고 화내다 심지어 없애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하나님 나라에 복종하셔야 됩니다. 사두개인과 같은 나쁜 놈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가족 안에 있어서 죄성을 함께 지고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 위기 상황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만일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사두개인들의 분노와 살해 의지는 겉잡을 수 없어서 예수님을 죽였듯이 사도들도 죽였을 것입니다. 34절과 35절입니다.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가말리엘은 성경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여러 책에도 등장하는 당시 가장 유명한 율법자이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스승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이 무엇을 얘기합니까? 36절과 37절입니다.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메시아가 왔다고 했던 사건들을 얘기합니다. 옛날 얘기가 아니라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라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몇백 명씩 모였고 사람들이 동원되었는데 흐지부지 없어진 일들을 기억합니다. 38절과 39절에 이어서 말합니다.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은 아주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마귀는 주로 사람의 감정을 통해 일하니 또한 하나님은 어떻게도 일하실 수 있나요?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올바른 지식과 그것에 근거한 행동도 이끌어 내실 수 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악하게 만들고 핍박해도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이 아닌 자들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셔서 목적을 이루십니다. 40절에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채찍 맞았다고 멈출 사도들일까요? 41절과 42절입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 나라가 계속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개입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초월적 방법과 사람들을 통해 계속 섭리적으로 개입하십니다. 내 인생에는 아무 초월적 개입이나 사람의 개입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걷고 있는가 돌아보셔야 합니다. 매일 기도하지 않아도 인생의 방향이 맞다면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사람의 개입은 초월적 개입보다 기억하기 좋고 또한 자주 있는 일입니다. 돌아보시면 사람의 개입으로 믿음이 회복되고 방향을 되찾고 은혜에 머문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제 인생에도 방향을 잘못 찾을 때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인도하셨습니다. 사실 안정에 대한 욕구가 너무 크고 개척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제가 하늘사랑교회를 개척한 것 역시 사람들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적 개입의 결과였습니다.
제가 개척을 하기 전에 어느 교회 수련회 인도하러 갔는데 이전 교회 제자들 무리가 열 명쯤 찾아왔습니다. 그 중 아는 사람은 세 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르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반갑다는 인사를 한 두 마디 나눈 뒤 그들이 대뜸 ‘왜 개척 안 하세요? 저희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은데 목회를 안 하시면 방임이 아닌가요?’라고 이야기를했습니다. 그 교회에 어려움이 와서 많은 젊은이들이 떠돌고 있는데 제가 집회한다는 얘기를 듣고 와서는 저에게 개척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만남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 같아서 일주일 내내 고민하다 바로 개척한 것입니다. 그 10명과 개척하나 보다 생각하며 전화를 했더니 여러 이유를 대며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배신감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이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보내어 개입하신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사랑교회는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개입하셔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이 계속 개입해 오십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선택에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영역일 때 그렇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그것은 원하시는 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또 한 경우는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셔서 우리를 돌아오게 하실 때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실패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며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고민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요? ‘제가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존재가 되어 제 인생에 하나님의 섭리가 더 풍성히 자주 일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는 방법으로 개입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존재로 여러분을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는 하늘사랑교회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