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의 설교 네 번째 시간으로, 예수님의 모형이었던 모세마저 거역한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심한 노역을 했고, 자유를 빼앗겼고, 아이들조차 죽임을 당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러한 삶에서 구원해 준 모세를 거역하다니요? 고통에서 구원해 준 사람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요?
모세를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우리의 옛 사람의 죄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인간 안에 있는 옛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끊임없이 거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인간의 죄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드러납니다. vv.37-39a
인간의 죄성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드러납니다. 37절 말씀입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앞으로 나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옵니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앞으로 나와 같이 너희를 구원하여 이끌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유언을 듣는 것이 마땅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나요? 51절을 보시면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이들은 성령을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인도를 계속 거절했고 이것은 바로 옛사람의 본질입니다. 옛사람이 조금 개선되거나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잘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따랐던 첫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새로운 세대만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새 사람만 구원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거역한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38절입니다.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현현하신 천사와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광야 교회를 이끌며 살아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대언했습니다. 이런 특별한 모세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39절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이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았고 모세가 성막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죄성의 결과입니다. ‘죄’라고 하면 사람들은 살인, 도적질, 강간, 사기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적인 죄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죄의 본질은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이 선악과를 따먹는데서 시작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본질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창세기 3장 5절입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들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도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본질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이라고 여기라고 유혹합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마음에 안 드는 면을 찾아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죄로 인한 인간의 처참한 결국을 저주로 내리십니다. 창세기 3장 16절과 17절입니다.
창 3:16-17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임신과 출산의 고통의 저주, 서로 다스리기를 원하는 통제의 저주, 노동의 수고의 저주 이 세 가지는 옛 사람이 죄로 인해 인생에서 경험하게 된 상황들입니다. 옛사람을 가진 인생은 이 과정들을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선악과를 먼저 따먹었으니까 더 고통 받아야 마땅한가요? 아닙니다. 애를 낳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극심한 고통이 반드시 인생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나를 희생하여 남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는데 죄가 들어오니까 남을 나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풍요 속에 살게 하셨지만 이제는 죄로 인해 수고롭게 노동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것들을 ‘악’이라고 여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깊은 마음의 상처로 좌절할 때 해산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며 삶의 의지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남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남이 나를 통제할까 봐 두려워하는 욕구 사이에 고통합니다. 또한 노동하느라 얼마나 애써야 하나요?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받지 않고, 남을 지배하고, 노동하지 않고 놀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일확천금의 꿈을 꿉니다. 그것들을 ‘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악이라고 여기는 경험을 허락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창세기 3장 15절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저주의 말씀 전에 하나님은 구원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은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임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 관계, 수고를 통해 옛 자아가 힘이 약해지고 무너질 때 하나님 백성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며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높은 신앙과 견고한 믿음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전부 다 이런 과정들을 지나간 분들이십니다. 살면서 큰 고통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할 수 있을까요? 죽을 만큼 관계의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관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인격으로도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관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노동으로 인한 고통과 결핍으로 인한 두려움도 지나갑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이 결핍을 악이라고 판단하고 거부하는 옛사람의 힘이 빠지며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악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인생에 닥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악한 일마저도 우리 인생에 허락하심으로 옛 사람의 힘을 무력화시키시며 그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저도 만약 20대 초반에 이후 일어날 어려움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지나며 왜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가를 가장 많이 질문했습니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고 차압당할 때, 지하 방으로 쫓겨날 때, 쓰러졌을 때, 돈이 없을 때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너무 선명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문제 해결해 주는 분으로 오해했던 제 거짓 신앙을 무너뜨리셨고 하나님이 진짜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또한 제가 남을 다스릴 수 없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이 저를 다스리려고 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도 처절하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선’을 우리가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쁜 것을 요구하신 적은 없습니다. 사랑하라 용납하라 희생하라 이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실행이 힘든가요? 옛사람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과정으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통도 경험하고 남의 말을 들어야 하는 짓밟히는 경험도 하고 돈이 없어 결핍하는 과정도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축복입니다. 저는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이 짓밟혔는지 여기 계신 어떤 분도 저와 같은 인생을 사시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며 제 욕구가 다 너덜너덜 무너지고 나서 ‘저는 하나님이 공급하셔야만 살 수 있는 거지같은 존재입니다’라고 인정하게 되자 그제야 돈의 위협, 돈에 대한 열망, 두려움에 매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축복과 자유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과정을 겪고 계신가요?
신앙이 성장하고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구원의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이런 큰 고통이 한 번에 올 수도 있고, 어떤 분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를 통해 구원받기도 하고, 어떤 분은 돈으로 인한 결핍으로 낮아지고 힘든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궁극적 선을 만들어 가시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이 과정을 잘 지나간 사람은 하나님이 유일한 통치자가 되셔서 허락하시는 참 만족을 누릴 수 있으며, 옛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와 복을 맛보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2. 우상 숭배로 드러납니다. vv.39b-43
두 번째로 인간의 죄성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우상숭배로 드러납니다. 39절 하반절부터 40절입니다.
[39b]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을 보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안 내려오자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합니다. 우상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대상입니다. 아까 말했듯 우리의 욕망은 고통을 겪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고, 노동하지 않고 풍요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과 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신이 무엇인가요? 41절입니다.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더 자세한 것은 출애굽기 32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송아지는 어리고 작은 소가 아니라 젊은 수소입니다. 농경사회였던 이집트에서 소 한 마리만 있으면 성인 남자 30명의 노동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고통하지 않고, 주변 사람도 다스리고, 노동하며 결핍을 겪지 않을 염원을 담은 것이 바로 부의 상징인 소였던 것입니다. 고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돈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복권 중에도 연금 복권이 있어서 1등에 당첨되면 매달 500만원에서 700만원씩 나온다고 하는데 아주 솔깃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왜 안 하실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우리에게 진짜 자유를 줄까요? 돈이 많으면 고통이 없고, 남을 통제하고, 결핍 없이 지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돈이 많다면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해 허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엉뚱한 안정감을 돈에게 두려고 하는 우리를 구원하고자 고통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로또를 사고, 주변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매일 싸우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칩니다. 이것은 세상의 길입니다.
내 말대로 하라고 우기는 영역도 따지고 보면 기질과 취향과 관련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주 화가 난다면 예수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못 벗어나고 우상숭배를 계속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이 42절에 있습니다.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
하늘 군대는 대표적인 우상들입니다. 이들은 땅에 있는 황소만 섬긴 것이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외면하시고 버려두셨습니다. 우상숭배가 가져오는 처참한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43절에
[43] …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벨론이라는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돈을 사랑하는 결과가 어떻죠?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보시면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도 다 돈을 사랑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미혹을 받고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계속 갈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기억한다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또한 돈으로 말미암은 근심은 우리를 찌르기 시작합니다. 돈 걱정으로 찔려보셨나요? 저는 20년간 수도 없이 찔렸습니다. 이를 악물며 불안과 싸웠는데 이것이 물리적 상처였다면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채워주셨지만 믿음이 없으니까 찔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말세에 어떤 찔림을 당하게 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3절과 5절입니다.
계 9:3, 5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돈을 사랑하니까 안 쏘일 수 없습니다. 죽진 않았지만 너덜너덜해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로 옛사람입니다. 아직 옛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금 복권에 솔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대 때 돈 걱정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0.01% 정도 걱정합니다.
제가 멋진 사람이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황충에게 많이 찔려서 옛사람이 힘을 못 쓰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새 사람이 자라서 돈보다 하나님이 강하는 분임을 믿고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단번에 변하지 않는지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게 무엇인가요? 평생 나의 옛 자아가 쏟아내는 불신, 거짓말, 악을 마주하며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것을 말씀으로 확인하고 방향을 수정하며 예수를 받아들여가는 과정입니다.
옛 자아는 질기고 깊고 넓어서 큰 은혜 한 번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우상숭배를 낱낱이 드러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은혜로우시며 놀라우신 분이신가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질 때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를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