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초대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기독교와 교회를 박해하던 제사장 무리들과 사두개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6장 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은혜가 넘치는 부흥의 현장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예수 믿는 자들의 모임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며 예배하던 정점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순교는 초대교회에 시작된 박해의 시발점이었습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시면
[1b]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전에 사도들만 잡혀갔던 적이 있고 위협도 당했지만 많은 백성들이 사도들을 지지했기에 제사장 무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죽자마자 본격적으로 박해를 시작했고 그 결과 일반 사람들은 다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스데반의 죽음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스데반만큼 성령 충만하다고 여러 번 묘사된 사람이 없습니다. 내적 성령 충만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에서 지혜와 믿음과 능력 있는 말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오래 살아남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7장 55절입니다.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하나님이 스데반의 눈을 열어주셨고 위에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이 일어나도록 계획하셨고 허용하셨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인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매일 술 먹고 담배 피고 나쁜 음식 먹고 운동 안 하다가 큰 병에 걸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가요? 또한 자기 죄 때문에 싸우고 미워하고 분노하다 관계의 갈등을 겪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가요? 이것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 아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환란이 있습니다. 가장 성령 충만하던 스데반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환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적 목적을 이루고자 이 모든 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환난의 섭리적 목적은 무엇인가요?
1. 은혜에 빚진 자를 만들어 내고자 함입니다. v.3
그렇다면 환란의 섭리적 목적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은혜에 빚진 자를 만들어내고자 함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열심히 특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잔멸’의 원어는 ‘파괴하다’인데 한글로는 ‘남김없이 없애다’라는 사울의 마음을 담아 의미를 살려 번역했습니다. 사울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만 잡아간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간 것입니다. 게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도 책임이 있었습니다. 7장 58절입니다.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은 증인들의 옷을 대신 맡아줌으로 사울이 그들의 책임을 지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년에 불과한 사울이 얼마나 열정이 불타고 앞장섰으면 증인들이 확실함을 증거하는 책임자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1절 상반절에 있습니다.
[1a]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
사울은 스데반이 맞아 죽는 것이 마땅하며 자기는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울이 악행을 다 행한 후에야 그를 불러 바울로 만드신 것일까요? 환란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드러내며 그것을 기회로 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울에게 교회의 환란은 기회였습니다. 자기 열정을 뽐내고, 자기 의를 성취할 기회였기에 그렇게 열심히 박해하고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바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절을 보시면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죽기 얼마 전에 쓴 책입니다.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고, 신약 27권 가운데 13권을 쓰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삶 전체를 드린 자가 죽기 직전에 자신을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라고 소개한 것이 바울의 자기 인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커지는 중요한 비결은 우리가 어떤 자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는 은혜를 거부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자기 의가 드러나고 부서지는 일입니다. 평소에 착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죄를 인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평범하게 도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도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환란을 허락하시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환란 가운데 우리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원에 무엇이 있을까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들이 나와 상담도 하고 변호사와 재산 분할도 모의로 해 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실제 이혼을 눈앞에 두니 한 푼이라도 뺏기지 않으려고 더럽고 추한 욕망들이 튀어나옵니다. 몇 십 억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은 자기 욕망과 인생을 지배하는 두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괜찮은데, 이 정도 욕심과 두려움은 다 있지 않나 라며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큰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과정을 지난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 제자로 부름 받았다면 은혜에 빚진 자로서의 깊은 부채의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과 16절을 보시면
딤전 1:15-16 [15]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을 박해한 직후가 아닙니다. 처음 부름 받은 때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 인식과 함께 무엇을 고백했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긍휼이 죄보다 더 크고 놀랍다고 인정하며 그것을 근거로 평생 주께 헌신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절부터 27절에 있습니다.
고후 11:23-27 [23]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수고하고, 옥에 갇히고, 매 맞고, 파선하고, 강도 만나고, 못 자고, 못 먹고, 이 정도 경험했으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보상으로 주시는 게 뭐야라고 따져 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런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면서도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 고백하는 은혜에 빚진 자를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깊이는 우리가 어떤 자인지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은혜가 지식에 머무는 이유는 자기 죄의 깊이와 흉악함을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죄의 행위는 죄의 결과일 뿐입니다. 성도 중에 심지어 목회자들 중에도 자기는 요즘 죄를 짓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죄가 무엇인가 하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우리 안의 옛사람으로 인해 죄악된 본질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을 통해 우리 본질을 보기 원하십니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나에게서 말미암는 거짓 의가 아닌, 죄인 중에 괴수인 내가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간다는 고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환란이 우리의 본질을 드러낼 때 은혜에 의존하는 자로 성장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환난의 섭리적 목적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함입니다. vv.4-8
두 번째로 환란의 섭리적 목적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초대교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게 되어서, 마치 동생이 힘들면 내 재산을 나눠 주고, 아들이 돈이 필요하면 아버지가 주시듯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와 통용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고, 모여서 떡을 나누는 기쁨의 자리가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몇몇 사람만 행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이 만방에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이들이 어디로 흩어졌나요? 1절 하반절에 보시면
[1b] … 그 날에 …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모여 있던 엄청 많은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시면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 직전에 이 말씀을 하셨는데 이들은 여전히 어디에 있었나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하는 이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습니다. 인간은 행복하면 그 현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외부적 압박을 거치지 않고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위 명령인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을 보시면
마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환란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절대 흩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나님이 박해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 중 대표인 빌립이 5절에 등장합니다.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여러 사람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파했을 텐데 성경이 전부 얘기할 수 없어서 그 중 대표적인 빌립을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빌립을 대표적인 예로 보여줄까요? 빌립이 스데반처럼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6장 5절 말씀입니다.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
우리가 볼 땐 성령 충만한 스데반도 빌립처럼 오래 사역을 감당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 뜻은 우리 뜻과 다릅니다. 스데반을 성령 충만하게 하심으로 그를 통해 오히려 환란이 시작되게 하시고 빌립은 사역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역할이 다릅니다. 빌립 또한 성령 충만했는데 그 역사가 아주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6절부터 8절 말씀입니다.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특별히 귀신이 나가고 못 걷던 사람이 걷는 등 눈에 보이는 능력의 행함은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사람들이 예수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빌립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초대교회의 박해는 이해할 수 없는 환란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죽기까지 고통하면서도 ‘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하며 은혜 안에 살아갔던 바울을 만들어냈고, 자기들끼리 행복하던 교인들을 흩어 예수를 알지 못하던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동일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개인의 인생, 교회의 역사 가운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환란을 통해 하나님이 섭리적 목적을 이루셨다는 것을 어떤 때는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내일인 10월 21일은 성수대교가 붕괴된 지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2명의 사망자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겪었겠지만 그 중 한 명인 스무 살 이승영 씨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당시 44세였던 어머니는 군인 남편을 잃은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연달아 일어나는 환란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웠을까요? 어머니는 유품을 정리하다 딸의 일기장에서 ‘일생 동안 하고 싶은 14가지 소원’을 발견합니다.
① 100명 이상에게 전도한다
②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③ 목사관을 만든다
④ 교회를 짓는다
⑤ 강원도에 이동식 도서관을 만든다
⑥ 한 명 이상 입양한다
⑦ 단기 선교사를 떠난다
⑧ 시각 장애인을 위해 뭔가를 한다
⑨신앙 소설을 쓴다
⑩ 종교 방송을 만들겠다
⑪ 간사님들 재정 지원을 한다
⑫ 선교사님들 재정 지원을 한다
⑬ 목사, 간사, 전도사님들 휴양지를 만든다
⑭ 복지 마을을 만든다
20살 학생이 소원이라고 하면 세계일주, 비싼 음식 먹기, 오로라 보기 등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대부분일 텐데 이렇게 남을 위해 살고 싶었던 딸의 글을 보자 그 어머니는 딸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망 보상금으로 받은 2억 5천만 원을 당시 다니고 있던 남서울 교회에 기부하셔서 승영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장학금을 통해 약 200명 넘는 목회자들이 도움을 받아 학교를 다녔습니다.
승영장학회에서 강원도에 이동식 도서관 버스를 기증을 해서 이동도서관이 만들어졌고, 장학회 출신 목회자 가운데 한 분이 복지관을 만들어서 복지센터의 꿈 역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승영 씨가 죽었을 때 고3 입시를 이틀 앞두고 있었던 동생도 충격과 방황을 끝내고 누나의 뜻을 받아들여서 결혼 후 아이를 두 명 입양했고 신앙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던 누나가 어렸을 때 썼던 시들을 모아 ‘연기는 하늘로’라는 누나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어머니는 월세를 받아 생활하던 오피스텔을 2008년에 다 정리해서 연해주에 목사관 건축에 다 헌금하고는 선교사로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가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준 꿈들도 있지만 또 30년이라는 세월이 자연스럽게 해결한 꿈들도 있었습니다. 유튜브 등으로 신앙 방송이 많아졌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들도 김예지 시각장애인 국회의원과 시각장애인 유튜버들의 활약으로 30년 전에 비하면 이들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이승영씨가 소망했던 14가지 소원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실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생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합니다. 누나는 ‘사랑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실천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삶의 목적이 아닐까요? 20살에 그 누구보다 사랑으로 성령 충만했던 이승영 씨를 하나님은 데려가시고 그를 통해 오히려 더 놀라운 일들을 남기셨습니다. 동생의 인터뷰에는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저의 성공과 행복이 인생의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내 것을 챙기며 아등바등 살기보다 필요한 곳에 사랑을 바로 실천하는 것으로 제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2장 24절과 상통합니다.
요 12:24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물론 이승영 씨는 살아있었어도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더 놀랍고 아름다운 열매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목적하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신앙 좋고 사랑 많은 자매가 일찍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이 안타깝지만 하나님은 이 땅이 아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녀의 죽음조차 사용하신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많은 일들은 잘 이해되지 않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나 교회나 나라의 운명까지도 하나님은 완벽히 알고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섭리적 목적을 위해 일하시며 내가 밀알처럼 땅에 썩어져서라도 사랑의 결과를 남기기를 소망하실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목적을 이루는 사랑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하늘사랑교회 교인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