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세상 사람들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긴 업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소한가요! 사람이 죽으면 자녀들이 기억하겠지만 3, 4세대만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잊혀집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이제까지 지구에 살았던 약 천억 명 중에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이 극히 소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을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되는가를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나를 통해 복음이 드러나고 불신자가 예수님을 알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며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핍박을 당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나요?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남게 될 영원한 영광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입니다.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면류관은 겉으로 드러나는 영광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늘에서 실제 면류관을 쓴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를 통해 확장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으로 은혜 받고 구원 받고 성장해서 함께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된 자들이 우리의 자랑이고 기쁨이고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심지어 악인까지도 사용하셔서 목적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악인으로 사용받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열매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사람이 사용되나요?
1. 처음에는 미성숙하지만 갈수록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vv.36-41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사람이 사용되나요? 첫 번째로 처음에는 미성숙하지만 갈수록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36절 말씀입니다.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2년 동안 구브로 섬에서 시작해 소아시아를 돌며 교회를 세우고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본문은 1차 전도여행으로부터 약 1년 정도가 지났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섬길 수 있을지 가 보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2차 전도 여행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37절입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열정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까지 전도여행에 데리고 갔는데 마가는 첫 섬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38절에서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울은 맡은 역할을 다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사람을 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도행전 13장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선교 여행을 1년쯤 하고 기진한 것이 아니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마가 이야기로 미루어 아마도 젊은 마가에게 열정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도 있고 위대한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대가를 치를 준비는 안 되어 있던 미성숙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마가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구절이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데 마가복음 14장 51절부터 52절입니다.
막 14:51-52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위대한 분 같아서 따라다녔지만, 한 패로 몰릴 위기에 처하자 입었던 옷을 던지고 도망갔습니다. 열정은 있었지만 붙잡힐 준비는 안 된 두려움과 미성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가는 부유하게 자랐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우리에게는 나체에 홑이불을 두른 것이 의아하지만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비단을 두른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속옷 개념이 없었습니다. 서민들은 거친 옷감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용도의 얇은 옷을 입고 겉옷을 입었지만 부자들은 베로 만든 귀하고 부드러운 옷감만 둘렀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행전 초반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제자들 120명이나 모여서 기도했던 장소가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아마도 마가의 어머니가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성경에 구체적 이유가 나오지 않아 몇몇 단서로 추측할 뿐이지만 넓은 집에서 부유하게 살던 도련님이 어리고 미성숙해서 선교 환경에 적응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39절입니다.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이렇듯 위대한 사도 간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목적 중심적인 사람으로서 그의 관심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예수를 전해서 모든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마가가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확장되는데 목적 중심의 이런 사람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받고 고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 내에 사람 중심적인 바나바도 준비하십니다. 이들은 일을 완수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동참시키고, 함께 성장하는 일에 중점을 둡니다. 바나바는 ‘위로자’라는 자신의 별명처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꼭 조카여서가 아니라 연약하고 미성숙한 사람을 내칠 수 없고 함께 다니며 챙기다 보면 성장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 둘이 잘 조화되어야 교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40절과 41절을 보시면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은 자신의 목적에 맞는 실라와, 바나바는 마가와 각자 떠나며 선교 팀이 두 개로 나뉘었고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교회와 가정에는 미성숙한 사람이 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영적 수준과 모습이 완벽하게 같을 수 없고, 설령 비슷하다 해도 금세 자녀가 태어납니다. 부모가 아이를 성장시키듯 하나님 나라에서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키워내고 성장시키길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예전에 대학부 학생들과 중국에 탈북자 선교를 갔을 때입니다. 탈북자들이 숨어 사는 아파트에 학생들을 서너 명 씩 배치하고, 저는 하루에 한두 집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아파트 환경은 말도 못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난방을 하지 않아서 추운데 바닥은 타일이고 한국에서 가져간 모든 옷을 끼어 입고 펭귄처럼 누워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는 것보다 힘든 것은 먹거리였습니다. 한두 명이 몰래 반찬을 사 왔지만 중국식 김치와 북한에서 맛있었다는 반찬이 조금도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매들 가운데 전혀 밥을 못 먹고 일주일째 화장실을 전혀 못 가면서 피골이 상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하겠다고 온 젊은이들이 불쌍해 보였는지 그들이 보양식을 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극구 사양했을 보양식은 바로 단고기라고 하는 개고기였습니다. 개의 형체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단고기를 끓여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을 발라내 넓게 펴서 말린 뒤 이틀 정도 뒤에 꾸덕해지면 그 생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냉장고도 없으니 개고기가 상하지 않도록 대야에 물을 받아서 피를 빼는데 피비린내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내일 드디어 먹을 날이 되자 학생들이 차라리 순교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날까지 개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교하려는 대상이 특별히 대접하는 것인데 안 먹으면 마음이 상할 것 같으니 순교하는 마음으로 먹자고 달랬습니다.
다음날 생살이 잘 말랐다며 떼어서 나눠주는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적우적 씹었습니다. 냄새를 참느라 숨을 막고 먹어서 맛도 모릅니다. 먹어 치워서 없애려는 마음으로 두 그릇을 먹고 학생들도 순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울면서 먹었더니 여태까지 안 먹다가 단고기 주니 잘 먹는다고 그분들이 너무 좋아하셨고 다행히 선교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미성숙해서 그들의 특식을 거부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남은 선교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위기를 지나 이후에도 몇 년째 교류가 계속되었었습니다.
마가의 인생이 이런 미성숙한 모습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가는 나중에 베드로의 통역사로 사역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사용하던 아람어에는 익숙했지만 헬라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마가가 헬라어로 설교를 통역했고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마가는 나중에 복음에 헌신하며 예수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전하고자 마가복음을 기록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되었고, 다른 제자들은 가지 못했던 장소까지 함께 갔던 베드로의 이야기에 기반을 둠으로 다른 복음서들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책입니다.
이처럼 성장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유용한가요? 그래서 우리는 남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미숙해 보여도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성숙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의 큰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바울은 마가의 성장을 인정합니다.
딤후 4:11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물론 바울은 여전히 목적 중심이라 ‘일’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이렇듯 바울의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목적 중심의 사람마저 마가가 유용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마가가 성장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여정을 너무 짧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길고 긴 여정입니다. 마가의 십대 이십대만 본 사람은 어떻게 선교하다 도망갈 수 있냐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가를 복음서의 저자로 다르게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성숙을 벗고 성장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저도 젊어서 기대치는 높고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는 제 본질을 발견할 때마다 좌절했고 그 때마다 더 목표를 세우고 더 노력하고 성장하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발견하며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좌절에 빠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는 소망을 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미성숙했다가 성장한 사람 중 한 분이 바로 장우현 목사님입니다. 장 목사님은 예수 믿고 얼마 안 되어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 지원 자격이 예수 믿은 지 3년 지나야 하는데 딱 3년이 지나던 때에 지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지 3년이면 영적으로는 거의 신생아인데 열정에 불탔습니다.
그런데 그때 신혼이고, 애도 태어나고, 사역을 바로 시작하고, 숙제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가출을 해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고 휴대폰 추적했는데도 못 찾았다가 결국 몇 주 만에 장 목사님이 집으로 돌아와서 학교 그만두고 펜션 같은 곳에서 청소하면서 살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전 교회는 어느 날 전도사님이 무단결근하고 연락이 안 된 것입니다. 아직도 그 교회에 장우현 목사님 짐이 있다고 합니다.
갈 교회도 없어진 때에 마침 제가 개척을 하면서 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장 목사님 진짜 많이 성장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기도로 복음으로 위기를 넘기고 아이는 넷이 되었고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20년간 목사님들 수백 명 가르쳤지만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분은 장 목사님이 거의 유일합니다. 다른 분들의 저와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저한테 배우고 자료를 받으면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써먹습니다. 그런데 장 목사님은 제 설교를 베낄 수도 없고 제가 택한 성경책을 다시 설교할 수도 없으니 계속 새로운 본문을 설교하고 연구하면서 엄청 성장한 것입니다.
제가 큰 교회에도 있어 봤지만 부목사가 담임 목사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말씀을 전하는 곳은 거의 전무합니다. 담임 목사님은 설교를 잘 하시는데 부목사들은 편차가 너무 심하고 사역이 바쁘니 설교 준비를 잘 배우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목회를 하게 되면 사역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같이 성장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10년간 함께 훈련한 것입니다.
많은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도덕적인 설교를 합니다. 장 목사님이 에스더서를 설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적 은혜를 말하는 수준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물론 저는 바나바처럼 따뜻한 사람은 아니고 본질 자체가 목표 지향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은혜가 장 목사님을 크게 성장시킨 것입니다.
매일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5년 10년 지나 여러분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고 주변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고 함께 성장해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기도와 섬김을 통해 내가 이곳에 왔습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이 여러분의 영광이며 자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사람이 사용되나요?
2. 신앙과 성품이 잘 준비된 사람입니다. vv.1-5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사람이 사용되나요? 신앙과 성품이 잘 준비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전에 사역했던 더베와 루스드라에 갔는데 그 곳에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1절입니다.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이기 때문에 엄격한 유대적 틀에 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신앙적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입니다.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이방인이라도 유대인으로 여겼습니다. 디모데라는 이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보시면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는 어머니로부터 성경 말씀을 배웠습니다. 모태신앙이어도 나중에 엇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디모데는 2절을 보시면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동네 사람뿐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디모데의 성품을 칭찬했습니다. 이렇게 잘 준비된 디모데를 바울이 아들처럼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3절에 의외의 일을 합니다.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앞장에서 이방인이 예수 믿으면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예루살렘 교회가 결정을 했고 그것을 위해 싸우던 바울이 갑자기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나요? 바울이 디모데를 그냥 데리고 갔다면 유대인에게 공격의 여지를 주게 됩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도 할례를 안 받으면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방의 근거를 제거하고자 할례를 제안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목적 중심적으로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했을 것이고, 평생 할례 없이 살았던 디모데는 거부할 수 있었지만 순종하고 따라 할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바울에게 평생의 동역자와 아들이 생겼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2절을 보시면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
나중에 바울이 직접 갈 수 없는 곳에 디모데가 바울 대행으로 사역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고린전서 4장 17절을 보시면
고전 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는데 바울이 직접 갈 수 없자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동역하며 사역을 하다가 나중에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에베소 교회의 감독을 지냈고 64세 때 도미티안 황제의 강력한 핍박에 순교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이들은 기질과 모습대로 하나님이 다 필요에 따라 사용하셨습니다. 바울과 같은 목적 중심의 사람, 바나바처럼 사람 중심의 사람, 마가처럼 미성숙했지만 점점 성장하는 사람, 디모데처럼 어려서부터 신앙과 성품이 준비된 사람 등 모두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었고 이들은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성장합니다. 디모데가 디모데로 준비될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력이었습니다. 로이스와 유니게 자신은 큰 열매가 없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로서 아이가 신앙 안에서 바르게 크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세상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쳤더니 자녀 대에서 열매가 나타나며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10만 명을 제자로 만드신 것 아닙니다. 12명을 남기셨는데 시간이 지나자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살고 계신가요? 인생의 목적을 바르게 가지셔야 합니다. 내가 살아서 하나님 나라를 온 세상에 전파하며,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흘려보내기를 간구하실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열매를 보게 하실 뿐 아니라 영원히 빛나는 면류관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