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은 아테네의 선교를 마치고 고린도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1절입니다.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고대의 고린도는 아테네보다도 더 번성하여 약 20만 명이 살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유대인들 때문에 극심한 핍박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처하였습니다. 5절 하반절과 6절 상반절을 보시면
[5b]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 [6a]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일관되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반대했지만 고린도에서는 단순히 반대를 넘어서 재판정에 끌고 가 법적으로 판결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12절입니다.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공권력의 힘을 빌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늘 있었지만, 그 훼방은 점점 거세지고 집단화 되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고린도에서 홀로 사역했습니다. 17장 14절을 보시면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잘 받아들였는데,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그 곳까지 찾아와 바울을 협박하자 급한 나머지 바울 혼자 떠나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사역했습니다. 큰 도시에서 혼자 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바울은 여비가 떨어져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9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후 11: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사역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는 마게도냐의 모든 도시 중 가장 세속적이고 타락한 도시로 당시에 ‘고린도인 같다’라는 표현은 성적으로나 세상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도시에는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성전이 있었고 이 신전에는 약 1만 명의 신전 창녀가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요즘으로 치면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같습니다. 성매매 관광을 위해 연간 2천만 명이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데 공식적으로 시에 등록된 성매매 업소가 300개 정도고 성매매 여성은 6~7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6~7천 명의 여성이 2천만 명을 접대하는데 고린도 신전 하나에 1만 명의 창녀들이 아프로디테 예배자들로 부터 돈을 받고 성매매를 한 것입니다. 고린도의 타락한 상황은 고린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려움 가운데도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11절입니다.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다른 도시에서는 짧게는 며칠, 길면 몇 개월을 머물렀는데 처음으로 1년 반이나 고린도에서 사역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와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없애 주시지는 않지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특별한 은혜와 도우심을 베푸십니다. 그렇다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1. 동역자들을 통해 도우십니다. vv.2-8
첫 번째로 동역자들을 통해 도우십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대에 랍비 교육에는 단순히 공부뿐 아니라 실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배우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는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랍비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 수 있어야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바울도 오랫동안 랍비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생업으로 가죽으로 텐트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적으로 사역에 헌신하면 좋지만, 여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유대인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동료가 아닌, 말씀을 나누고 같은 사역을 하는 동역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가는 사도행전 18장 18절을 보시면
행 18:18 바울은 …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
1년 반 동안 말씀 전하는 일에 동역했을 뿐 아니라 에베소로 함께 떠납니다. 이들이 바울과 함께하며 엄청나게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26절에 보시면
[26]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들은 바울에게서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을 배워 에베소에서 아볼로가 아직 온전하게 성경을 깨닫지 못한 것을 보고 성경을 가르칠 만큼 성장했던 것입니다. 이 부부에게서 바울은 경제적으로나 사역적으로 큰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진짜 힘을 얻었던 것은 바로 5절입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전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던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가 오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든든한 동역자들이 온 것만으로도 전심을 다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다른 도시에서 바울을 위한 헌금을 가져 왔습니다. 이제 바울은 일을 하면서 짬짬이 말씀을 전할 필요가 없이 전적으로 말씀 전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지나가게 될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는 교회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마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며 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많은 설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예배는 유튜브 콘텐츠와 같이 기호대로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끄고 다른 것을 선택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편하고 재미있고 쉬운 설교만 좋아합니다. 예화 많고 세상 얘기하고 성경 자체는 가르치지 않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즉 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차별점입니다. 현장 예배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들으셔야 됩니다. 잘 맞지 않는 것 같아도 5년, 10년 듣다 보면 성장합니다. 성장은 나에게 없던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의 경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은 잘 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불편하고 싫어하고 약한 부분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예배가 꼭 필요합니다.
세상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지만 우리가 주일에 만나 서로의 약한 부분을 돕고 채워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만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듯, 서로를 성장시키고 힘을 얻는 공동체가 되라고 우리를 교회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교회들의 헌금을 가져왔던 것처럼 하나님은 또한 교회 공동체가 경제적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으로 사역자들이 헌신하여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저도 개척 후 6년 동안은 교회에서 봉급을 적게 받으면서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말씀이 아닌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은 참 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일부를 벌며 텐트 메이킹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6년 차 때 더 이상은 병행 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12학점을 가르쳐야 했는데 이틀을 다니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몰았서 가르쳤습니다. 아침 6시 반쯤 나가서 밤 11시에 왔는데 6년 차에는 저녁 때 쯤 정신이 혼미해서 운전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원래 밤 11시쯤 파주에서 서울 오는데 1시간도 안 걸리는데 그날은 운전하다 쉬었다 장장 4시간에 걸쳐서 집에 왔습니다. 그래서 내려놓기로 결정을 했는데 또 돈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아껴서 교회 이사 가려고 더 해야지 생각했는데 다음 주에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진짜 결심하고, 교회 이사 후에는 교회와 이야기해서 적정 수준으로 봉급을 올리고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감사합니다. 그때 가르친 것이 심리와 인간관계론 등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인간의 심리를 말하는 것이, 이론만 늘어놓다 정답을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데, 월급을 받으면 기부금으로 다 떼어 가서 지난달에는 강의하고 18만 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목회자들이 말씀을 듣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 여러분들이 사역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신 덕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현금은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파송하는 데 중요한 기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는 선교에 보내는 헌금의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아는 큰 교회의 주보에 후원 교회가 40개나 있길래 재정이 넉넉하시냐고 목사님께 여쭸더니 5만원씩 후원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후원 선교사들은 전부 생생내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의 규모에서 이처럼 유의미한 금액으로 선교사님을 돕는 교회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게다 저희는 절기 헌금을 통해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는 대로 교회와 선교사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11년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요? 사실 그 돈을 가지고 있었으면 재정적으로 조금 더 넉넉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없다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일부를 보낸 것뿐인데 그분들에게는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사역의 방향이 바뀌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작년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활절에 후원한 대구 토기장이 교회는, 성도 10명인 교회 건물이 경매로 팔려서 보증금 3천만 원도 못 받고 쫓겨날 상황에 처했는데 여러분의 헌금 2,200만 원을 보냈습니다. 기적적으로 건물 전체 중 지하실만 따로 경매에 나와서 2,200만 원을 시드머니로 경매에 응해 낙찰을 받았고 나머지를 대출 받아 지하를 사면서 없어질 뻔한 한 교회가 살아났습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여러분들의 헌금으로 감비아의 켄부제 장로교회에 1,400만 원을 보냈습니다. 태양열 패널로 전기를 저축해서 예배드릴 때만 잠깐 불 켜고 하던 그 마을에 마침 그 전 달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와서, 헌금으로 전기 공사를 하고 무너져가던 담장을 세우고 색을 칠하고 교회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도 세속적인 땅 고린도 사역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고,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1년 반 동안이나 사역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이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고 저는 믿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으로 하늘 사랑교회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루는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2.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vv.9-10
두 번째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9a]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
당시에는 구약 성경밖에 없었기에 지금처럼 성경 전체에 대한 놀라운 계시가 주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이 가끔 환상으로 계시를 주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이 없으면 고린도 사역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어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하나님의 강렬한 말씀을 경험할 수 있나요? 어려움이 강한 만큼 말씀의 능력과 힘을 더 강력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신비한 하나님의 환상을 기대하시는 분이 있지만 이제는 말씀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감동과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물론 기도를 하다 어떤 음성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기 확신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혹은 말씀을 너무 모르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응급조치로 도우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요동하고 하나님도 제대로 모를 때는 신비한 음성이나 경험이 많았는데 말씀을 알게 되며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이 없어도 되는 수준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바울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9절 하반절을 보시면
[9b] … 두려워하지 말며 …
하나님의 사람, 놀라운 기적의 사람, 성령 충만했던 바울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10절 하반절입니다.
[10a]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
바울은 상황적 어려움이 심해지고 반복되다 보니 하나님은 희미해지고,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만 보이면서 두려움에 위축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셨나요?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속 계셨습니다. 말씀이 그렇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황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것을 다시 보게 하시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커지면 상황은 줄어들고 반대로 하나님이 안 보이면 상황이 커져서 바울과 같은 사람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9절 하반절에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9c] …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매를 맞고 돌에 맞으면서도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 이제 두려워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왜 잠잠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10절 하반절에 말씀하십니다.
[10b] …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아무리 영성이 뛰어난 사람도 누가 예수 믿을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바울도 대적하는 사람이 너무 많자 눈이 가려져서 이 곳에는 예수 믿을 사람 없다고 낙심한 상황인데 하나님이 영적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8절에 이렇게 나타납니다.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유대인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회당장이 되는데 그 회당장과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반대하는데 하나님이 그 대표와 고린도의 많은 사람들로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11절을 보시면
[11]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시고 말씀으로 힘을 주셔서 고린도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바울은 1년 반이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장 큰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는 말씀으로 임해야 합니다. 저도 소심한 성격이라 한 번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끝없이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은혜 받은 순간은 2,30년 지난 지금도 생동감 있게 기억납니다.
시편 23편은 제가 가장 두려울 때 하나님이 주셨던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제가 신대원 3학년 여름에 사역을 그만두고 3개월을 쉬게 되었습니다. 워낙 힘든 교회였던 터라 처음 쉴 때는 좋았는데 곧 졸업을 앞두고 돈도 없고 불안해지던 차에 감기에 심하게 걸렸습니다. 약으로도 차도가 없고, 일주일 넘게 열이 40도에서 떨어지지 않아 생사를 오갈 정도로 고통했습니다.
마음이 불안한데 몸까지 아파서 꼼짝을 못하니 두려움만 커지고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막대기를 휘저으면 찌꺼기가 올라오듯 은혜 받기 전의 사고방식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기 위해 시편 23편을 암송하는데 특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시편을 외우며 마침 시편 23편으로 만든 찬양만 담아둔 테이프가 있어서 그것을 종일 틀어놓고 병마와 싸우기를 일주일쯤 다행히 차도가 있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몸을 나아서, 이전에 약속해 두었던 어느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 강의에 다행히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로 이동하며 가이드 포스트라는 기독교 월간지를 읽었는데 은혜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아주머니가 시카고 행 비행기에 탔는데 옆 자리의 꼬마가 혼자 시카고로 가는 아이이니 좀 돌봐달라고 스튜어디스가 부탁한 것입니다. 대화를 해 보니, 아빠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엄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 댁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할머니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된다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가 있냐고 물었더니 ‘예수 사랑하심은’이라고 해서 아주머니가 찬양을 불러주며 평안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아주머니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없으면 어떡하지? 할머니가 퉁명스러우면 어떡하지? 떨며 공항에서 나오는데, 아이 이름이 크게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수십 명의 아주머니들이 ‘예수 사랑하심은’ 찬양을 부르고 있던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뛰어오며 ‘누구야 내가 너 환영하려고 교회 성가대와 함께 왔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아이를 기쁨으로 인계했다는 글을 읽는데 지하철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동시에 나도 힘들고 불안한데 나한테도 누군가 찬양을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를 하고 중간 쉬는 시간에 자매들이 다가왔습니다. 자신들이 성악과인데 멀리서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찬양을 불러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정한 것이 아닌지 그제야 찬송가를 뒤적거리며 곡을 정하는데 몇몇이 모르는 찬양이라는데도 한 자매가 이것이 좋겠다고 우기는 모양새였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모르는 찬송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자매들이 찬양을 시작하는데 생소한 곡이어서 놀랐는데 그것이 바로 옛날 찬송가 437장의 [주 나의 목자 되시니]였습니다.
주 나의 목자 되시니 부족함 없어라 저 푸른 풀밭 물가로 날 인도하신다
캄캄한 죽음 길에도 두려움 없으며 그 손에 지팡이 보고 나 안심하리라
저는 1절과 3절만 불렀지만 성악과 자매들은 화음을 맞추어 5절까지 다 불러주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사들로 제 주변을 둘러 찬양을 부르게 하신 뒤에 ‘일승아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할 거야’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찬양을 듣는 내내 엉엉 울었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자매들이 쳐다 보길래 저의 상황과 가이드 포스트 이야기를 해 주며 나에게도 누군가 찬양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매님들이 불러줘서 하나님 은혜가 감사해서 운다고 하자 ‘예수 사랑하심은’도 불러 주겠다며 또 찬양을 했습니다. 휴식 후 강의는 울면서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7, 8년 정도 흐른 뒤 텍사스에서 유학할 때 총신 후배 목사님 가족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모님이 혹시 자기를 모르겠냐고 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동아리에서 찬양 불렀던 성악과 학생이고 특히 꼭 437장을 부르자고 주장했던 그 자매였습니다. 그 때 목사님과 연애 중이었고 결혼해서 미국에서 같은 학교에서 만난 것입니다.
시편 23편과 같은 은혜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차는 폐차하고 몸은 고통하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경험했다면서,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 고통이 심해야 된다는 얘기는 왜 안 해주었냐는 이야기도 웃으면서 나누고 얼마 있다 목사님 댁은 다른 지역으로 박사 과정을 하러 떠나셨습니다.
그 사모님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받은 것이 감사해서, 당시 수중에 있던 몇 백 불을 그분들께 헌금했습니다. 아직도 시편 23편 읽으면 그때 자매들의 찬양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다 사라지고 천사가 노래하며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말씀하시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고 계신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으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유혹이나 어려움도 지나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의 능력을 경험케 하셔서, 나중에 돌아보며 내가 가장 어두운 시절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 나의 선하신 목자이심을 고백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