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구약성경의 아주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기업’입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은 기업에 대해 족장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6장 8절입니다.
출 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
이 곳 한번이 아니라 성경에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족장마다 주시며 심지어 신명기에는 50번이나 반복됩니다. 도대체 기업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반복하신 것일까요? 기업이란 일차적으로 생존을 위한 땅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돈이나 월급이 되겠지만 예전에는 땅이 있어야 농사도 짓고 양도 키우고 소산으로 살 수 있는 생존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땅을 얻는 것이 하나님께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다른 무엇을 가르치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 본질적 내용은 신명기 10장 9절에 나옵니다.
신 10:9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하나님 백성은 세상을 기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의 생존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존재도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이라는 실제적인 땅을 주시되, 그들 중 하나,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사는 모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실제적으로 어떻게 살았나요? 땅을 가진 다른 지파들이 낸 십일조를 생존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땅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셨나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기업’은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로 확장됩니다.
기업과 하나님 나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업은 인간이 생존의 근거로 두는 근거물을 이야기하는데, 하나님 나라는 한 가지가 추가됩니다. 그 근거로 살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상태가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두 주제가 ‘기업’과 ‘왕권’입니다. 사사기는 ‘기업’을 얻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주고, 다음의 사무엘상하는 ‘왕권’을 보여주며 ‘기업’과 ‘왕권’이 이야기가 합쳐진 이야기가 신약의 하나님 나라 곧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다’라고 할 때 항상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만을 근거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목적이고 행복입니다. 다른 것을 붙잡는 삶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돈을 기초로 삼는 자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행불행을 재고 남을 판단합니다. 또한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과 권력을 지니고도 불행한 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짜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벗어나 하나님만으로 의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는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기업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사람의 대표가 부자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5절입니다.
막 10: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세상에서는 돈이 힘이고, 힘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이곳의 부자는 사실 얼마나 물질을 가졌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도 돈을 열망합니다. 그 사람도 똑같이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만으로 기업을 삼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에 살면 세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 1절입니다.
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하나님은 아무도 살지 않는 좋은 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강력한 많은 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 이스라엘 백성을 집어넣으셔서 전쟁을 치르며 기업을 확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근거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어떻게 얻게 되나요?
1. 유다의 후손을 통해 얻게 됩니다. vv.1-10, 16-21
그렇다면 하나님 하나님의 기업은 어떻게 얻게 되나요? 첫 번째로 유다의 후손을 통해 얻게 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사사기 초기에는 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신실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여호수아의 강력한 리더십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습관이 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기도로 답을 구했습니다. 그 다음 2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물론 하나님이 한번 유다를 전쟁의 선봉에 세우실 수 있습니다만 유다는 이스라엘 중 첫 번째 지파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후 벌어지는 내용을 보면 다른 지파들은 언급하지 않고, 유다 지파 혼자서 싸움을 하여 이 지역을 얻은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8절, 9절, 10절을 보시면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이렇듯 유다 지파만 싸움을 하고, 다른 지파는 살짝 동참한 것처럼 설명합니다. 17절입니다.
[17]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시므온도 다른 지파입니다. 그런데 마치 유다 지파가 없으면 땅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19절 상반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19a]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 다른 지파와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얻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얻는 결과인데, 유다가 바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기업을 얻는가를 보여주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5장 8절 10절에 야곱의 예언에 유다에 대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창 49:8, 10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가 왜 찬송이 되나요?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것은 원수에게 승리함으로 다른 지파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되어 유다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다는 또한 홀을 잡는 통치자가 됩니다.
실로는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로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평화를 주실 때까지 유다가 치리자의 역할을 대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후손을 통해 이 일들을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싸워 하나님만 의존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 일이 유다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예수님이 유다 지파의 후손임을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4절을 보시면
히 7: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성경은 고리타분한 족보 얘기를 하며 과거의 대단한 업적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자체가 대단한 지파였던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기업을 얻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유다를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세상이 중요하게 의존하는 돈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돈을 의존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돈에 대한 의존이 큽니다. 근원에는 돈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그것을 들키기 싫어서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하나님 노릇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요? 요한복음 3장 3절입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보는 것조차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육적 몸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 이는 다른 말로 영생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는다면 지금 영생을 받은 자들입니다. 영생은 사람들이 의존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뛰어 넘는 참된 생명, 하나님만 의존할 때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이 기업인 예수를 얻기 위해 어떤 싸움을 해야 하나요?
눈에 보이는 적과는 오히려 싸우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싸움의 본질은 우리에 미치는 영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실 우리도 좋아합니다. 명품, 스펙, 학벌, 지위, 쾌락 등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통해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유혹과 싸워가며 하나님을 의존하겠다고 기도드릴 때, 예수만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어떻게 얻게 되나요?
2. 담대한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vv.11-15
두 번째로 하나님의 기업은 어떻게 얻게 되나요? 담대한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11절, 12절입니다.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a] 갈렙이 말하기를 …
성경은 유다 전체를 이야기하다가 유다 지파 중 한 사람으로 집중합니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다 특정 개인으로 좁혀졌지만 이 역시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통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여줍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의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여호수아 14장 6절을 보시면
수 14:6 …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한 명씩 정탐꾼을 뽑을 때, 대표 중 하나가 갈렙입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였지만 그는 원래 유다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니스 족속’은 가나안 지역에 흩어져 살던 소수민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실 순수한 혈통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 근처 지파에 흡수했기 때문에 잡족들이 섞여 왔습니다.
또 갈렙의 아버지 ‘여분네’의 이름 뜻은 ‘돌이키다’라는 뜻입니다. 즉 귀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니스라는 조그마한 족속 출신이 몇 십만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항복하여 귀화하자 ‘돌이켰다’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집단에 이방 민족으로 사는 삶이 쉬웠을까요?
한국에도 동남아, 중국 등의 이방인들이 200만이 넘게 살고 있고 다문화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피부색도, 먹는 음식도 다르고, 몸에서 나는 냄새도 다릅니다. 갈렙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갈렙 이름의 뜻은 ‘개’로 여분네는 자신이 경험한 고통, 수치, 멸시를 아이 이름에 담은 것입니다. 이는 귀여운 애완견이 아니라 쓰레기를 뒤지는 더럽고 추한 야생 짐승을 일컫습니다.
이런 갈렙이 어떻게 유다 지파의 지도자가 되고 남과 다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천대받고 멸시받아서 이스라엘에 동화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하나님만 의존하는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가나안에 가서 같은 것을 보았는데 열 명의 정탐꾼들은 무엇을 보고했나요? 민수기 13장 32절과 33절입니다.
민 13:32-33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객관적 사실입니다. 키가 크고 장대한 거인족이 살고 있으며 우리는 조그맣고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것을 본 갈렙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민수기 24장 6절과 8절, 9절입니다.
민 14: 6, 8-9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인족들은 실제 장대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2미터 거인과 일반인은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객관적 사실을 뒤로 하고 감고 믿음의 눈을 떴습니다. 이에 민수기 14장 30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민 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의 이성적 반응이 옛 사람의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는 게 익숙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사람에게서 믿음을 일으키고자 하십니다. 믿음의 존재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새로 만들어내신, 예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믿음이 일시적 흥분이 아니었기에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0절, 12절입니다.
수 14:10, 12 [10] …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사람의 믿음이고, 인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졌던 갈렙이 나이가 많아 스스로 전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딸을 보상으로 걸고 기럇 세벨을 정복하라고 합니다. 12절 하반절입니다.
[12b] …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이 도시는 마지막 남은 강력한 터였기에 대충 공격했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자기 같은 믿음의 사람을 기대했습니다. 인간적 눈으로 보면 정복하기보다는 놔둬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만 빼고 나머지 편한 곳에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 중심지를 놔뒀다가는 기업 전체가 흔들릴 위기가 있습니다. 그때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나타납니다. 옷니엘은 후일에 첫 번째 사사로 등장합니다.
[13a]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약간 오해할 만한 구절이 있습니다. 갈렙의 동생이 갈렙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사촌간의 결혼은 있었지만 이 정도 근친은 아닙니다. 나이 차이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형이 85살인데 아무리 동생이라 해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 쉼표 하나만 찍으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원래의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대신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과 같이 쉼표 하나만 찍으면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갈렙은 여분네의 아들입니다.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여기 그나스는 족속이 아닌 개인의 이름입니다. 역대상의 족보에 보면 여분네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갈렙과 그니스였습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인 그나스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왜 성경은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라고 불렀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모든 조상, 즉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모두를 아버지라고 합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또 아래쪽으로 연관된 모든 친척은 아우라고 부릅니다. 족장, 족보의 개념이 넓어서 그렇습니다.
웃니엘이 갈렙의 친동생이 아니라 동생의 아들이니 사촌끼리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옷니엘이 갈렙의 믿음을 유산을 이어가, 유다 지파가 계속해서 기업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옷니엘 뿐 아니라 악사 또한 믿음의 사람임을 14절과 15절은 이야기합니다.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15]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샘을 달라고 한 것이 어떻게 믿음인가요? 결혼하는 딸이 친정의 냉장고도 달라, 아버지 차도 달라 욕심 부리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샘은 생명과 같은 것이며 그 땅을 영구히 소유하기 위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악사는 그 땅이 힘들고 어렵고 거인이 존재하더라도, 그 땅을 영구한 유다 지파의 소유로 삼겠다는 믿음의 선포를 한 것입니다.
자손 대대로 믿음으로 사는 가문을 이루고 싶다는 이 믿음을 생각할 때, 남편 옷니엘과 아내 악사가 첫 번째 사자가 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노래하면 아내가 따라 노래하는 것을 한자로 부창부수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같이 세워져 가는 부부, 얼마나 멋진 관계인가요!
교회 다니는 성도들 가정에서도 하나님을 의존해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공부해라, 좋은 학교 가라, 좋은 직장에 가라, 그런 이야기뿐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격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세상에서 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한탄하시나요?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전수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기업을 삼고 사는 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사명이며 목적입니다. 오직 예수로 기업을 삼고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