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삿 09: 하나님 나라의 승리의 방법(삿 5:1-31)
[1] 이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구약 성경에는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운 전쟁을 모형으로 하나님 나라의 전쟁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고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 노래 또한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군대 장관 시스라와 싸워 이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강력한 군대를 이겼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안에 하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영적 전쟁의 원리들이 숨어 있습니다.
앞장에는 드보라와 바락이 싸운 전쟁의 구체적인 상황은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셨기에 이길 수 있었는지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전쟁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1.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이루어집니다. 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4a]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
세일과 에돔은 이스라엘 바깥에 있는 이방 땅입니다. 드보라는 왜 하나님이 이방 땅에서 오신다고 노래했을까요? 영적 전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하나님이 여러 신 중 한 분이 아니라 온 세상에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 전쟁을 하나님과 또 다른 신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창조주시며 유일한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대적하거나 하나님과 같은 수준인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별히 고대에는 신들이 각 지역을 다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산의 신’이라고 칭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의 지역에 산이 있으니까 이 산의 신인 여호와는 평지에서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왜 하나님이 세일 땅, 에돔 땅, 가나안에서 먼 곳에서 오신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의 땅이고 먼 곳이지만 그 모든 곳까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즉 하나님이 온 세상에 유일하시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 생활을 잘 했던 인도 청년의 현지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집 안에 여러 힌두교 신상을 놓고 다 열심히 섬기고 있길래 대화를 해보니 한국에서는 교회가 많고 예수님이 쎄 보여서 믿었지만, 인도에서는 인도에서 쎈 신을 믿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당당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 일만큼은 내 생각과 내 경험으로 해보겠다고 하나님을 가두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삶의 전부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의 영역이어야 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이 하나님은 이 방 땅에서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결국 자기가 자신 있어 하는 바로 그 영역이 실패의 영역이 됩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구약은 보여주며 특별히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강력한 자연 현상들이 동반됩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4b] …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맑은 날씨에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비가 쏟아지자 전쟁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21절에 이렇게 묘사됩니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
원래 강이 흘러가던 자국만 있던 땅이라, 이 단단한 땅 위에서 전쟁을 하려고 시스라가 900승의 철병거를 이끌어 왔는데 세상이 진동할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메마른 땅에 강이 생겼습니다. 결국 진흙 밭에 전차부대가 묶이면서 이스라엘은 승리를 얻어내게 된 것입니다. 타이밍이 정확히 맞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그 자연을 하나님이 통치하셔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은 왜 자연 현상에 개입하시지 않으시나요? 하나님은 자연에 개입하심으로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 모두에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연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심으로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제자들을 구원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 24절과 26절, 27절에 나옵니다.
마 8:24, 26-27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였습니다. 평생 물고기를 잡고 평생 이런 비바람을 맞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죽을 것처럼 두려웠던지 목수이신 예수님을 깨웁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결론을 보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실 줄 기대했다면 실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역시 예수님은 대단하셔’ 감탄해야 할 텐데 이들은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하며 놀랍니다. 믿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셨나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제자들이 진짜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에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상황을 막아주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온전한 믿음이 한 번에 생기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마음이 너무 강퍅합니다. 인생의 수없는 풍랑마다 개입해 오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으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다시 한 번 풍랑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14장 25절, 32절, 33절입니다.
마 14:25, 32-33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첫 번째에는 예수님이 함께 계셨었고, 두 번째는 예수님은 밖에 계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다가 심한 풍랑을 당합니다. 무서워서 거의 죽을 지경에 예수님이 오시더니 바람과 바다가 잔잔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 고백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끌어내시고자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영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할 분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믿는 고백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강력하고 멋있고 힘 있는 자로 보이시지 않는 예수님이었지만, 자연이 말씀 앞에 통제당하며 잠잠케 되자 제자들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가장 쉽게 나타나는 반응이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두려워하고 계시다면 다른 말로 하나님이 인생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진짜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믿고 계신가요? 만약 두려움이 여러분 인생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예수님을 내 인생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실 때, 영적 전쟁 가운데 넉넉히 승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2. 하나님의 백성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본문에 드보라는 여러 차례 싸움에 헌신한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2절입니다.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영솔자들은 리더들입니다. 리더들이 이끌자 백성들이 즐겁게 헌신했습니다. 9절도 보시면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리더들 자신도 즐겁게 헌신합니다. 헌신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한 발만 담그고 있다가 상황을 봐서 빼는 것이 아닌 ‘전적인 의존’입니다. 백성들에게 이런 헌신이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냥 헌신한 것이 아니라 즐겁게 헌신했습니다. 싸움에 나가기 전에 두려울 수도 있는데 어떻게 모두 즐겁게 헌신했나요? 이들 마음에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들이 어떤 반응까지 할 수 있었는지가 18절 말씀에 나옵니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보여야 할 반응입니다. 이들이 즐겁게 헌신했더니 놀라운 승리를 거둡니다. 즐겁게 헌신한 사람만이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헌신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싸움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23절입니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메로스는 가나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던 한 성읍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으니까 저주를 받는 게 마땅합니다. 근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왜 저주까지 받아야 하나요? 이것이 그들의 근원적 불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헌신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라 이들은 저주받게 된 것입니다. 결국 헌신의 결과는 무엇을 보여주나요? 근원에서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흉내는 냈지만 본질 안에 신앙이 없는 자인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는 구체적인 부분에서 헌신하지 않지만 마음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의 삶에서 드러나는 부분만큼이 그의 본질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생명을 내놓고 헌신했던 한 사람의 구체적인 예로 야엘을 들고 있습니다. 24절과 26절 말씀입니다.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겉으로는 환대를 베풀다가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을 말뚝으로 쳐서 죽이는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목숨을 내 놓은 일입니다. 목숨을 내 놓은 야엘을 성경은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만 발휘할 수 있는, 두려움을 이기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실 강력한 힘에 대한 반응입니다. 나를 파괴할 수 있는 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 앞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지금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이 누구보다 강력한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두려움이 없어지고 즐거운 헌신이 가능합니다.
영적 전쟁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과 싸우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죄의 영향력입니다. 마귀가 한 사람의 인생을 사로잡고 파괴하고, 그 죄와 마귀의 영향력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세상의 영향력, 그리고 죽음의 영향력입니다. 이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신다면 평생 이 싸움을 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무서운 세상의 영향력에 빠지지 않고, 죽음이 그 인생을 하나님과 영원히 결별시키지 않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싸움에 지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 해봐도 별 일 안 일어나는 것 같으니 포기하거나 무관심해 버린다면 이것은 즐거이 헌신한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은혜를 우리가 믿어 즐거이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에게는 온 세상과 맞바꿀 만한 귀한 가치를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제 전도사 시절에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붙여주신 어려운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싸인도 주시고 세워주셔서 기도하는 괴로운 과정 중에 오래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하시며,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며, 생명을 주시고자 애쓰고 계신다는 것을 알자 사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섬기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진심으로 그 아이가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 아이를 살리시고자 나를 멸망에 집어넣으셔도 괜찮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얻어진 다음에야 하나님은 고통에서부터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하고 견디고 헌신하기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포기하고 더 이상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신가요?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못 믿어서 포기하셨나요? 세상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니까 조금 애써보다가 절망하셨나요?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죄 가운데 매여 있고, 세상에 사로잡힌 것 같고, 마귀가 너무 강력한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심을 우리가 믿고, 즐거이 헌신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 영혼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싸움에 동참해 승리의 영광을 맛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로 싸움에 동참케 하시는 이유입니다. 영적 싸움에 즐거이 헌신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승리를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