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23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소심하게 되고, 의심도 많아지고, 불안이 커집니다. 이 기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욕망이 강해서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없는, 신중하고, 고민을 많이 하여 적절한 해결 방안을 찾는 장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욕망과 두려움은 인간에게 다른 기질과 성향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것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때입니다. 두려움은 근원 자체가 영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두려움이 심해지면 반드시 영적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영적인 영향력으로 두려움이 시작되나요? 죄가 가져온 영적 공허함이 욕망을 만들어내고, 욕망의 반대 모습이 두려움으로 나타나면서 인간은 욕망과 두려움에 영향을 받습니다. 결국 영적이라는 것이 인간 존재를 흔들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두려움이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말씀을 거부하는 영적 불신앙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불신앙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하나님의 약속과 징조에도 불순종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으로 말미암는 불신앙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하나님의 약속과 징조에도 불순종할 방법을 찾습니다. 33절 말씀입니다.
[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지금은 추수할 때입니다. 다른 유목민족들이 1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가 되자 몰려와서 추수한 것을 싹쓸이해가곤 했습니다. 이들이 넓은 이스르엘 골짜기에 모인 것은 수없이 많은 유목민들을 한 번에 모여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가장 좋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때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를 위해 하나님이 기드온을 준비하셨습니다. 34절 상반절입니다.
[34a]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
하나님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기드온에게 기름 부음으로 임한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임하자 기드온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을 분다는 것은 전쟁을 준비하며 사람들을 모으는 신호입니다. 이 나팔 소리에 하나님은 34절 하반절에 또 한 사람을 준비시켜주십니다.
[34b] …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아비에셀이라는 이름 뜻이 ‘나의 아버지가 앞으로 도와주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도우실 것이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기드온 옆에 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35절에서 여러 지파에서 기드온의 나팔 소리와 전령에 응답하여 군대를 보냅니다.
[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성경에 보면 지파들이 거부한 예도 있었지만, 이들은 부름에 응했습니다. 이제 전쟁을 치르기만 하면 됩니다. 약속을 주셨고, 하나님의 영이 임했고, 보좌관을 보내주셨고, 군사도 준비 되었습니다. 누구만 준비가 안 되었나요?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36절에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기드온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확신 앞에서도 무엇을 요청하나요? 37절입니다.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기드온은 하나님께 사인을 요청하면서도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라고 합니다. 확신하면서 왜 사인을 요구하나요?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영적 불신앙을 만들어내어 어떻게든지 하나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심한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조도 보여주시고 영도 부어주셨습니다. 사람도 쉽게 모아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본질인 영적 거부감이 하나님을 향해 표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하나님이 이 모든 것에 응답하신 자비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38절을 보시면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한국과는 달리 기온 차가 심한 팔레스타인에는 밤사이에 이슬이 내리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내린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거부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왜 응답하셨을까요? 기도온의 불신앙보다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훨씬 강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요리조리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방법을 찾았지만 하나님의 열심이 크시기에 하나님은 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사 내내 불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는 수년간 전국으로 전단지를 돌리며,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자녀를 찾아 나섭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죄악 가운데 팔려버린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십니다. 기드온이 거부하고 거역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의 구원일까요? 아닙니다. 기드온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기도온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13절입니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버지가 마을을 대표하여 만든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관리하는 문화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명확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오지만 세상은 쉬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 시스템으로 흘러갑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스템은 역사 내내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금은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모두가 돈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의 폐해는 심해지고 소수의 사람에게 자본이 집중되며 대다수는 가난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한국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벗어나 모두가 평등하고 잘 사는 땅인 것은 아닙니다. 바울과 아세라 숭배는 점점 교묘해지고 깊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의대의 블랙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연고대, 과기대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의대를 가기 위해 자퇴를 하고 시험을 다시 본다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목적은 잊은 채 높은 월급이 보장되기 때문에 의대를 선택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숭배 때문인 것입니다.
가진 자들을 보면 부럽고, 나는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있다면 이 또한 바알과 아세라 숭배입니다. 돈은 우리를 속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수준은 필요하지만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큽니다. 남들이 갖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해봤지만 만족은 없고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삶이 훨씬 재밌습니다. 여행도 가기 전에 준비하는 기간이, 대학도 들어가기 전에 상상하는 기간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정반대로 진짜가 좋은 것은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영적 진리입니다. 하기 전이 제일 좋은 것들은 육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광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영향력을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기드온처럼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알을 숭배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현상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내가 지금 사는 쳇바퀴가 익숙해서 이 정도로 살겠다고 타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발 더 나아가야 된다고, 내가 너를 구원하고 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징표를 보이시는데 기드온은 또 이야기합니다. 39절 상반절입니다.
[39a]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
기드온 입장에서도 하나님이 화내실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 이전보다 까다롭게 요구를 비틀어서 더 어렵게 주문합니다. 39절 하반절입니다.
[39b] …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주변 땅이 마르는데 양털만 물에 젖는 것은 누가 물을 뿌리면 우연이라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다 이슬이 있고 양털만 마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40절에 보시면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인간의 불신앙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드온의 예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동기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이 들면 순종하면 되는데 어떻게든 안 들을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도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를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길 원하십니다.
저 또한 기드온의 시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돈을 주라고 하실 때는 항상 돈이 있거나 누군가 돈을 주셨을 때였는데, 한번은 돈이 거의 없는 시점에 그 마음을 주셨습니다. 보스턴에 살다 텍사스로 이사를 왔는데 보스턴에 살던 목사님께 천불을 보낼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수백 번 연습해서 쉽지만, 그 당시는 훈련되지 않았을 때인데다 통장에 천 몇 백 불밖에 없었고, 곧 집세를 내야 하는데, 천 불은 엄청 큰 돈이었습니다.
그때 기드온 생각이 들어서, 양털은 없으니, 혹시 기적적으로 주말까지 그 목사님이 전화를 하시면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사오고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일어나지 않을 일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며칠뒤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데 전기 계통이 다 망가져 5,500불이 든다는 것입니다. 천 불 아끼던 사람이 5천 5백불을 낼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는데 그때 하나님이 ‘너는 사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눈에 보는 것에 좋은 대로 선택해 나가는 인간 본성의 집약체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는 옛자아로 가득찬 자였던 것입니다.
제가 회개하고 돈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카센터 하시는 교회 집사님을 우연히 소개받게 되어 8만원에 고쳐주셨고, 미국을 떠날 때까지 고장 없이 타고 다녔습니다. 기드온 같은 저를 하나님이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벗기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사울의 본질이 정말 많이 약해졌습니다. 아마 제 본질이 변하지 않았더라면 개척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지난 10여 년간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재정과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흘러가게 하는 일에 쉽게 순종하게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중요한 가르치심과 은혜를 베푸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이 내 주인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에 어떤 영향을 받고 계신가요?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