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햇빛이 밝은 날일수록 그림자는 훨씬 짙고 깊습니다. 이 빛과 그림자의 원리처럼 인생에서도, 영웅적이고 훌륭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어두움 또한 깊기 마련입니다. 물론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데 영웅의 자리에 서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 살다 보면, 욕망의 뒤틀린 부분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영웅적인 구원자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인간도 온전할 수 없음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본문에도 기드온이 멋진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셔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끝내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기드온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승리자가 되자마자 기드온 내면의 어두움이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결국 가족을 위기에 빠뜨리고 이스라엘 전체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아무리 멋진 인물도 절대로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모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 구원자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1.왕 되고자 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vv.22-23, 28-32
그렇다면 인간 구원자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왕 되고자 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사람들이 미디안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기드온 한 사람만이 아니라, 가문 대대로 다스리는, 즉 왕의 가문이 되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전에 다른 구원자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했을 때에는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미디안의 괴롭힘이 너무 심해서,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너무 커서 이렇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미디안으로 인해 어떤 괴로움을 겪었었나요? 사사기 6장 6절을 보시면,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
이방에서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 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거기서 구원받은 것 자체가 좋아서 기드온 핏줄이 우리를 다스리면 이런 고통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오해였습니다. 기드온이 사람들을 구원했나요?
기드온 이야기를 살펴보면 기드온은 절대 구원자가 될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 전쟁에 원해서 뛰어든 것도 아니며, 계속 거부하는 기드온을 하나님이 설득하고 돌이키신 뒤에야 마지못해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이 참여는 했지만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신 결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죄성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 그 중 특히 사람을 의존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채워줄 것처럼 행동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원하는 것들을 주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영웅을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이라니, 얼마나 큰 유혹인가요? 거절하기 쉽지 않은 제안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의외로 23절 상반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23a]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
얼마나 겸손하고 멋있는 반응인가요? 게다 이 발언의 정점을 찍는 영적 결론까지 냅니다. 23절 하반절을 보시면
[23b] …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하나님만이 통치자가 되신다니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 여기에 바로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나는 다스리지 않겠다, 하나님만이 너희를 다스리신다, 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기드온의 숨은 의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오묘한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길까 봐 포장하지만 진짜 의도는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기꾼처럼 남을 속이려고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다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깊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겉으로 오간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 선 사람일수록 이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한 명한테만 의도를 들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통하기 위해서 멋진 말로 치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들한테 예수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분들께 가서 당신은 예수님 같으시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이런 얘기를 자꾸 듣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자꾸 그런 삶을 흉내 내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균열을 가져옵니다. 본질의 능력은 없는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하는 이중성을 요구받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 30절입니다.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아들을 70명 낳으려면 아내가 몇 명일까요? 딸은 언급도 안 되었지만 딸도 비슷한 정도로 많아 치면 아내도 수십 명이어야 됩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아내를 4, 5명 갖기 쉽지 않습니다. 수십 명의 아내를 갖는다는 건 자기 하렘을 가진 왕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왕이 되길 원하는 이유가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않아도 되어서입니다. 자동차를 아무리 좋아해도 개인이 자동차를 백 대나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손에 꼽는 재벌이 되어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스피드 웨이 경기장을 만들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차 백여 대를 주차해 놓고 가끔씩 시간 날 때 경기장을 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적 쾌락도 많은 욕망 가운데 기본적인 하나입니다. 기드온은 왕도 아니고, 말로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왕처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 31절을 보시면
[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아내가 수십 명이니 아내를 한 명 더 맞아도 문제가 안 될 텐데 왜 새겜에 첩을 두었나요? 왕과 같은 사람이 여자를 취하려면 급이 맞아야 합니다. 정식 아내로 들이지 않고 먼 곳에서 첩으로 살게 두었다는 것은 이 여자가 이방인이거나 부적절한 이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었지만 아내로 삼기에는 이목이 걱정되는 어떤 문제가 있자 멀리 두고 성적 쾌락만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첩의 아이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이름 뜻은 ‘내 아버지는 왕이다’입니다. 즉 기드온은 자기 첩의 아이의 이름을 ‘기드온이 왕이다’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는 정실 부인들의 70명 아들들의 이름은 그렇게 짓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첩을 취해 아들을 낳고는 그 이름을 ‘기드온은 왕이다’라고 짓고 그 때마다 자신이 왕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왕처럼 살고 있으면서도 말로는 하나님만 다스리신다고 하는 것이 기드온의 실체입니다. 기드온은 소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눈치가 두렵고, 왕이 되어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서, 모든 책임은 내려놓은 채 그저 왕처럼 살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왕이 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죄성입니다. 겉으로는 소심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고, 나서고 싶어 하지도 않고, 얌전하고 조용한 존재인 것 같아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 본질의 죄성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 3장 5절에 있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우리는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처럼 좋아 보이는 것을 다 이루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죄성이 영적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절대로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드온이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왜 보여주나요? 인간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받을 수 있지만 영원한 구원자는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아니고 또한 여러분이 구원자가 되고자 나서서도 안 됩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구원자가 되고자 애씁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자녀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고 합니다. 그것으로 아이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도 하나님이 그 인생을 인도하지 않으시면 인간은 평탄할 수 없습니다.
구원자가 되려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혀 알 수 없고, 지금 가장 좋아 보이는 길도 전혀 다른 길이 될 수 있고, 남을 구원하려는 그 의도 자체가 어쩌면 다른 인생을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가 구원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또한 자기가 기대하는 구원자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인간 구원자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2. 욕망으로 말미암은 우상 숭배의 유혹을 받습니다. vv.24-27, 33-35
두 번째로 인간 구원자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욕망으로 말미암는 우상숭배의 유혹을 받습니다. 24절입니다.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기드온은 전쟁하느라 적극적으로 탈취물을 모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니 금귀고리가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미디안 족속에 섞여 살던 이스마엘 사람들은 우상을 귀고리 혹은 코걸이로 매달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조그만 귀걸이가 아니라 커다란 금덩어리로 우상을 형상화하여 만든 것이라 상당히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죽은 사람에게서 그것들을 뜯어내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사람들 반응이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사람들은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귀고리를 다 내놓습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군대가 13만 5천을 죽인 물건을 뺏은 상태라 귀고리 하나쯤은 괜찮았을 것이고, 기드온도 그것을 계산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26절을 보시면
[26]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천칠백 세겔은 약 20kg 정도 되는 무게로, 지금 시세로 계산해 보니 19억 원 정도 됩니다. 지금 금 1kg가 9,600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으니 20kg면 굉장히 많은 양입니다. 나머지 패물들도 왕권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고대에는 붉은색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왕족만이 붉은색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또 일반 사람들은 낙타에 금 사슬 장식을 할 수 없으니 이것도 왕권을 상징합니다. 이 금으로 무엇까지 했는지가 27절 상반절에 나옵니다.
[27a]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여러 색깔의 천으로 만드는 옷입니다. 금으로 만들었으면 사실 입을 수도 없기에 마치 장신구처럼 에봇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출애굽기 28장 6절을 보시면 에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기록합니다.
출 28:6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제사장이 입던 특별한 옷입니다. 여기 나온 실의 색도 하나님 나라의 왕권과 영원함을 상징하는 실들을 섞어서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왜 비싼 금을 모아 옷을 만들어서 전시했나요? 기드온의 계략입니다.
기드온은 지금 왕은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영적 지도를 베풀어야 되는데 왕도 제사장도 아니어서 눈에 보이는 무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형상, 금으로 만든 제사장 옷을 자기 집에 둠으로 마치 자기 집이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장소인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든 것입니다. 왜 금일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기를 열망하는 것이 사실은 재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왕처럼 살면서 계속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왕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영적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허름한 베옷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치 금을 줄 것처럼 화려하게 보임으로 영적 지도자처럼 행세한 것입니다. 이 결과는 27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27b] …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음란하게 위한다는 것은 도구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숭배를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인가요? 마음이 원하는 것을 열망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마음에 우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금의 형태로 현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계속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재물과 성공과 쾌락과 부요를 열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올무가 되었을까요? 원래 이 정도로 끝까지 그것이 자기를 사로잡고 올무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통치하시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과 갈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시작해놓고 나니까 어느 순간 이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와서 예배하고, 눈에 보이는 금 에봇을 보며 열망을 토해내는데, 사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래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지 못하면서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결과는 33절입니다.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기드온이 죽자마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바알 숭배를 시작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즉 서로 속고 속았던 것입니다. 기드온도 에봇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려, 하나님은 너희에게 이것을 주실 거야’라고 얘기했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줄 알았지만 진짜 욕망하는 것은 풍요와 쾌락의 바알 숭배였습니다. 그리고 더 악한 일은 35절입니다.
[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이는 바로 다음 장에 벌어질 기드온 가문의 비참한 말로에 대한 전조입니다. 결국 우상숭배가 만들어낸 결과가 이스라엘 백성까지 타락하게 만들고 기드온 가문도 멸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들 70명 가운데 1명 빼고 다 살해당합니다. 우상숭배가 가져온 결과가 이렇게 참혹하게 나타났다는 것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이야기가 왜 성경에 기록되었나요? 인간은 누구나 욕망으로 인한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자극하고 잘못 인도하는 영적 영향력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바알 축복을 주겠다는 교회는 다행히 옛날보다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의 조엘 오스틴이나 T. D. Jakes 같은 목사들은 그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르포 기자의 심정으로 이들이 개최하는 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벤틀리로 차를 바꾼 이야기, 약속을 잡으려면 씨드 머니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선포하라는 이야기 등이 쌓이다 결정적으로 설교 중간에 T. D. Jakes가 What do you want?라고 외치자 모든 성도들이 주술처럼 동시에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Money! Money! Money!라구요.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바알 종교입니다. 이름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이지만, 긍정의 힘으로 시드머니를 심으면 너는 집, 차, 제트 비행기를 얻을 것이라는 거짓. 그런 교회들이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열망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가 작아서 불만인 분 계신가요? 아닙니다. 교회가 크냐 작냐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클수록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가 크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은밀하게 열망하고 있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에서 설교할 때 기도한다고 자녀가 좋은 대학 가는 것도 병이 낫는 것도 아니라고 복음만으 설교하면 그것을 쳐내는 청중도 많은데 여러분들은 복음 설교를 다 받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T. D. Jakes 교회처럼 일어나서 돈 돈 거리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드온 같은 사람입니다. 겉으로 잘 표시가 안 나고 멋있습니다. 좋은 얘기 합니다. 그런데 자기 숨은 의도는 다 감추고 사람들이 은밀하게 열망하는 것을 줄 것처럼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길로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요?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을 줄 것처럼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헷갈리게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복음인지, 무엇이 예수님으로 인한 행복인지 혼동하고 있는 상황들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결말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진짜 복음에 반응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계신가요? 아니면 내가 열망하는 것을 예수님이 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자꾸 인간 구원자를 찾아 다니고 계신가요? 인간 구원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심으로 예수로 인한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