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신학 용어 가운데 신정론(神正論)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왜 세상의 악인들이 처벌받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악인들을 처벌하지 않으시고 그냥 놔두시는 것 같은 상황 때문에 자주 실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악인을 그냥 두시나요? 이런 오해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시간에 갇히신 분이 아니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해 나가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에 하루살이가 두 마리 있다고 가정을 할 때, 악한 놈이 착한 놈을 괴롭힌다면 착한 하루살이 입장에서는 인간이 왜 악한 놈을 처단하지 않는지 의아하고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의하다’라는 결론이 타당합니까? 하루살이는 어차피 곧 사라질 존재입니다. 하루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하루살이의 악을 용납한 것인가요? 또한 그들끼리 정한 선과 악의 기준이 인간에겐 아무 의미가 없듯 어쩌면 하나님도 똑같이 보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선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의 ‘영적인 부분’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경에는 악인들의 심판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오지만 실제에서는 이런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성경에 나온 악인들의 심판은 영적 심판에 대한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악인의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적으로 행하실 일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은 여기서 받는 심판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멸망과 지옥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본문에도 악인들이 심판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에서도 이들이 행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실 수밖에 없나요?
첫 번째로 아비멜렉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자기 형제들 69명을 죽인 일은 엄청난 패륜입니다. 모든 악인의 근원에는 자기 욕심을 위해 남을 파괴하는 악이 있습니다. 물론 직접 살인을 하는 것도 악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악입니다.
또한 살해에 동참했던 세겜 사람들은 한 세대 전에 기드온에게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은혜를 져버리고 아비멜렉을 도와 악을 행하는 본문은 인간이 자기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을 파괴하며 은혜조차 무시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악인들은 어떻게 심판을 받나요?
1.악한 영으로 말미암아 분열합니다. vv.22-42
그렇다면 악인들은 어떻게 심판을 받나요? 첫 번째로 악한 영으로 말미암아 분열합니다.
22절 말씀입니다.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만 아비멜렉은 이스라엘 전역이 아닌 세겜을 중심으로 일부 지방만 다스린 것으로 보입니다. ‘다스리다’는 단어조차 왕의 통치가 아닌 지휘관이 한 지역을 ‘통솔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비멜렉이 세겜 지역 일부를 다스리며 왕처럼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도 길지 않은 겨우 3년이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23절 상반절입니다.
[23a]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됩니다.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아비멜렉이나 세겜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던 일입니다. 우리도 성경의 기록을 보며 알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개입이 많지만 우리는 인생을 돌아보며 추측할 뿐입니다.
특별히 악한 영을 통해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 일은 인간은 깨닫지도, 막지도, 피할 수도 없는 영역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시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지령을 주시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악한 영들의 본성은 파괴하고 분열시키고 깨뜨리고 고통하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이들이 본성대로 행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이 많은 분의 강력한 힘입니다.
인간이 과학 기술을 갖지 못했을 때는 바이러스 앞에 방비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현미경을 통해 미세한 바이러스들을 관찰하고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의 성질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조절하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백신을 만들었고, 백신을 맞으면 조작된 영향력만 미쳐서 저항력은 가지되 바이러스의 치명성은 제거함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도록 통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악한 영이 가지는 본질적 속성이 하나님이 목적하신 곳에서 활약하게 허용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와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23절 하반절입니다.
[23b] …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자기도 알지 못하게 마음에서 배반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3년 전에 힘을 합쳐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는 악행에 앞장섰습니다. 아비멜렉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신전에서 돈을 가져다가 용병을 사고 응원하고 부추겼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분열합니다. 세상의 속성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일치할 때까지만 연합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악한 영이 들어가니 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악인들의 본성 안에 있는 기본적인 성향에 하나님이 영적으로 개입하시니까 인간은 저항할 수 없이 그 힘에 끌려간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떤 것이 개입되었는지 인간은 알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은 결과뿐입니다. 무엇인가의 결과로 분열되고 다툼이 일어나고 아무것도 아닌데 서로 미워하고 있다면 그 배후에 악한 영의 개입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이 왜 개입했나요? 이들의 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개인이나 아무 교회를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이미 있는 악이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결국 이 일의 진짜 배후는 24절입니다.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성경이 해설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행한 악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특히 심각하게 여기신 이유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린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피를 흘리는 살해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각한 기준으로 반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살인이란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형상이 어그러졌고 온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파괴할 권한은 하나님에게만 있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남을 파괴하는 죄에 대해 하나님은 심각하게 여기십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는 자기중심적 죄악의 결정타입니다. 우리도 마음에 누군가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은 욕심이 그를 지배해서 남을 파괴하기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내 욕망을 방해하는 모든 존재는 사라져 버리라고 몸부림치는 무서운 인간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은 반드시 개입해 오십니다. 결국 어떻게 되나요? 25절입니다.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왕궁을 지어놓고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겜은 가나안 북쪽과 남쪽으로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이 평화롭고 치안이 유지되면 중개 무역상들이 세금을 납부하고 그것으로 아비멜렉은 부를 얻을 수 있었는데 세겜 사람들이 강도짓을 일삼으니 상인들이 이 길로 다니지 않아 세금이 줄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돕지 않고 세겜 사람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비멜렉을 지도자로 세웠는데 그가 자기 몫만 다 챙겨가고 본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자 강도짓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중 한 사람이 반란에 앞장섭니다. 28절입니다.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핏줄로 세겜 사람들은 창세기부터 나오던 하몰 민족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말하자면 순수 혈통이 아니라 가알이 ‘우리가 왜 혼혈을 섬겨야 돼?’라고 선동한 것입니다. 이들이 한 마음으로 반역을 꾀했다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그 안에 또 아비멜렉 편이 숨어 있었습니다. 악인들 사이에는 뜻이 하나로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30절, 31절입니다.
[30] 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 [31] 사자들을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이르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형제들이 세겜에 이르러 그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
누군가 아비멜렉에게 가서 고발했고 분노한 아비멜렉이 쳐들어와서 39절과 40절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39] 가알이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나가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40] 아비멜렉이 그를 추격하니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부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3년 전만 해도 한 팀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서로 대적하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결국입니다. 한 목적을 위해 함께 가고 있는 것 같다가 결국 분열로 끝이 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유혹하는 세상의 강력한 연합체들을 짐승, 음녀, 열 뿔 가진 짐승 등 다양한 비유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도 분열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6절입니다.
계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음녀는 세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야, 부자가 돼, 힘을 가져, 우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서 행복을 얻어’라고 하나님 백성들을 유혹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이 중립적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시선을 돌리게 만듭니다.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음란한 세상에서 나와 거룩한 일에 참여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 세상이 영원할 것 같으신가요? 방금 읽은 말씀처럼 음녀와 같은 세상을 통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핍박한 어둠의 세력들은 서로 분열하다 결국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분열케 하실 것이고 스스로 멸망하는 자리로 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야합니다.
내가 분열하는가 연합케 하는가, 마귀에게 소속된 자인가 하나님에게 소속된 자인가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하나님에게 소속된 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과 행위로 끊임없이 분열을 가져 옵니다. 분열의 이유는 욕심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협박하고 미워하고 파괴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영적 영향력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면 여러분이 있는 곳에 깨어지려던 것들이 회복되고, 분열되던 곳에 연합이 시작되고, 미워하고 쫓아내던 곳에 사랑이 여러분 때문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이 회복과 치유의 도구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악인들은 어떻게 심판을 받나요?
2. 서로가 서로를 멸망시킵니다. vv.43-57
두 번째로 악인들은 어떻게 심판을 받나요? 서로가 서로를 멸망시킵니다. 첫날 공격해서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반역의 선봉이었던 가알도 죽였으면 이제 끝난 것 아닌가요?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처럼 살고 싶은 욕심이 자극되면 분노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멈출 수 없습니다. 아비멜렉도 다음 날 몰래 사람들을 매복시킵니다. 43절입니다.
[43]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어 밭에 매복시켰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그들을 치되
욕망이 강한 자들은 자기가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통제권을 잃어버린 채 그저 악한 영의 힘에 의해 끌려갈 뿐입니다. 아비멜렉도 44절과 45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44] 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 두 무리는 밭에 있는 자들에게 돌격하여 그들을 죽이니 [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다 죽이고도 성이 안 차 성에다 소금까지 뿌립니다. 밭이나 성에 소금을 뿌리면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즉 한동안 다시 성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고 이것은 완전히 짓밟았다는 저주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살에 도망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6절입니다.
[46]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갔더니
성은 함락했지만 망대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신전에 있는 요새로 도망친 것입니다. 지금 아비멜렉은 복수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49절에서 어떻게 하나요?
[49] 모든 백성들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놓고 그것들이 얹혀 있는 보루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망대에 불을 피워 모조리 태워 죽였습니다. 세겜이라는 마을을 다 죽이고, 도망간 사람을 죽여도 멈출 수 없어서 이제는 옆 마을로까지 갑니다. 50절과 51절입니다.
[50]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에 맞서 진 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 [51]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데베스는 자기를 진짜 대적한 것은 아닌데 화가 번진 것입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망대로 도망치자 아비멜렉이 세겜에서 했던대로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망대를 불태우고자 합니다. 52절과 53절입니다.
[52]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53]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화살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고, 높은 곳에서 밑에 있는 표적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비멜렉에게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세겜에게 임하신 것을 아비멜렉 본인도 몰랐을 것입니다. 인간은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국이 무엇인가요? 무서운 심판입니다. 당장에는 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심판을 당합니다. 고대에 군인이 여인에게 죽는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요청합니다. 54절입니다.
[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
청년이 죽었지만 여인의 맷돌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욕심으로 다른 사람을 파괴하던 자를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저 옛날이 전쟁이 나서 서로 죽였다라는 이야기같지만 56절과 57절은 이것에 대한 영적 해석을 해줍니다.
[56]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계속 약속하시는데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지 못하면 시편 73편에 나오는 아삽처럼 실족할 뻔한 경우가 생깁니다. 시편 73편 2절과 3절을 보시면
시 73:2-3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아삽은 예배 인도자인데 악인들이 너무 형통한 것을 보고 질투하여 넘어질 뻔했습니다. 악인이 세상에서 얼마나 형통한지가 시편 73편 4절부터 7절에 나옵니다.
시 73:4-7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사는 순간도 죽는 순간도 아무 고통이 없고 평안하다니, 하나님 계신 거 맞아요? 이 고통으로 마음이 요동하다가 깨닫습니다. 시편 73편 16절과 17절입니다.
시 73:16-17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답이 없어서 고통스럽고 깨닫지 못할 때 요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삽이 언제 깨닫게 되나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떤 약속인가요? 시편 73편 18절과 19절입니다.
시 73:18-19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은 이들이 언제 파멸된다고 하나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이 끝이 아니구나, 진짜 무서운 영원이 있구나,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인으로 사는 것 자체가 영원한 멸망이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22절부터 26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 73:22-26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이전에 화나고 답답했던 마음 자체가 짐승처럼 우매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던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애쓰지만 세상적인 복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고, 내가 악인들처럼 부유하고 평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내 오른손을 붙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구나 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씀으로 내 인생을 인도하시다가 결국 영광의 자리로 나를 이끄실 것과 오직 하나님만 유일한 사모의 대상이심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모든 소망과 의존을 돌리며 이 시를 마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악인의 심판에 대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욕심내는 사람이 더 잘 되는 것 같고, 왜 나만 양보해야 되나, 왜 나만 포기해야 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나요? 하나님이 반석이시며 분깃이시며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의지할 분이 되시는 진짜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고난의 과정에서 자신이 짐승과 같이 우매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으로 소망을 삼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시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