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구약 성경에는 약 130여 개의 전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전쟁이 기록된 이유는 전쟁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전쟁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그림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전쟁 중 가장 특이한 전쟁 중 하나가 본문의 입다의 전쟁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말없이 기습적으로 공격하거나 한두 마디 후 바로 전쟁에 돌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본문에는 전쟁 전에 17줄이나 되는 외교적 협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우리는 입다가 전쟁에만 능한 용사가 아닌 달변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하면 결국 자신도 피해를 입게 되니까 말로 해결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군대를 동원한 암몬과 소위 잡류 혹은 사회 부적응자들로 모인 입다의 군대는 상당한 전력 차이가 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합지졸들로 거대한 군대와 맞서기 전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그가 땅에 대한 정당성을 선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가나안에 산 지 300년이 넘었는데 이것이 영적으로 역사적으로 왜 당연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 자기 백성들 또한 거주에 대한 정당성을 확고히 함으로, 적들의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땅을 확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땅은 주어졌지만 끊임없는 위협과 공격으로 아직 그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 땅을 주셨다는 확고한 정당성으로 끝까지 영적 싸움을 할 때 결국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것입니다.
성도가 받은 땅은 어떤 정당성이 있나요?
1. 전쟁의 승리로 얻은 땅입니다. vv.12-23
그렇다면 성도가 받은 땅은 어떤 정당성이 있나요? 첫 번째로 전쟁의 승리로 얻은 땅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입다는 지금 길르앗의 머리로서, 그 땅이 자기 땅인 것처럼, 전체의 대표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관계없는 자들인데 왜 공격을 하냐는 질문에 13절에 암몬 왕이 대답합니다.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요단강의 아래쪽에는 사해가 있고 북쪽으로는 갈릴리 호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요단강 왼쪽에 살고 일부는 강 오른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 오른편 지역에 원래 암몬 족속이 살았는데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이후에 뺏겼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본문의 시점에서 3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잘 살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암몬이 힘이 강해지자 자기들의 땅을 내놓으라는 주장입니다. 이에 입다가 15절에 이야기합니다.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원래 그 지역에 암몬과 모압이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데 에돔 족속이 자기 땅을 지나가지 못하게 해서 요단강 오른쪽으로 둘러서 건너왔고 모압과 암몬 지역을 지나다 거기에 일부가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요단강 왼편의 가나안에 가려고 했는데 에돔도 모압도 자기 땅을 지나가지 못 하게 해서 할 수 없이 아모리 땅으로 지나가려고 했다’는 역사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모리 왕은 단순히 땅을 내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21절과 22절에 있습니다.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이들이 싸움을 걸지 않았다면 에돔과 모압의 경우처럼 둘러 지나가서 강 건너 가나안에 정착했을텐데 어쩔 수 없이 참전했고, 싸우다 보니 이겨서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아모리 족속이 먼저 공격을 했고 전쟁의 결과로 이겼으니 이 땅은 정당하게 우리 것이 되었다는 과거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23절에 설명합니다.
[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전쟁이 없었으면 얻지 못했을 땅을 전쟁의 승리를 통해 얻었기에 이 땅은 확실하게 우리 것이라는 정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셨듯,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땅을 주십니다. 이것은 그냥 얻어진 땅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는 땅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노예는 재산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세상과 죄의 노예로, 땅에 대한 소유권 자체가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영적 승리를 베푸심으로 이들은 자유인이 되어 하나님이 선사하신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로 우리에게 땅을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 창세기 3장 15절에 맨 처음 나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원시 복음이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여기서부터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가 되었는데 여자의 후손이 원수의 머리를 밟아 깨뜨릴 때 자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골로새서 2장 15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로 영적 세력들을 물리치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셨다’고 표현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이겨서 승리하고 나면 적국의 장군들과 임금들과 귀족들을 포로로 끌고 와서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이 개선문으로부터 쫙 도열해 있는 자리에 개선장군이 포로를 끌고 와 승리의 행진을 한 것입니다. 그 그림처럼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신 후 행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이렇게 놀라운 승리와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 대신 다른 것으로 구원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바울은 십자가가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능력이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강력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나 성경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십자가가 구원이며 승리이며 죄에 묶어 노예이던 우리를 자유케 해 하나님이 땅을 주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을 가져와 우리가 자유인이 되어 하나님의 기업과 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원수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너는 실패해서, 능력이 없어서, 내세울 게 없어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그들이 노예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우리는 죄와 마귀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자유민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받아들인 자에게만 능력이 되어 그 영혼을 묶고 있는 죄의 사슬로부터 자유를 주지만, 이것을 믿지 못하면 자기가 노예인 줄도 모르고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암몬과 같은 세상의 끊임없는 도전과 위협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자유인이 되었으며 땅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임을 정당하고 확고하게 믿는 믿음이 있어야만 위협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받은 땅은 어떤 정당성이 있나요?
2. 하나님이 직접 선사하신 땅입니다. vv.24-28
두 번째로 성도가 받은 땅은 어떤 정당성이 있나요? 하나님이 직접 선사하신 땅입니다. 24절 입니다.
[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그모스는 암몬 족속이 섬기는 신입니다. 너희 신이 땅을 주면 받을 것이듯, 우리도 하나님이 땅을 주셔서 받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 과거의 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오래전에 발락이라는 모압 왕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암몬 왕보다도 어쩌면 더 큰 나라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두려워서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한 이야기가 민수기 22장 2절과 3절입니다.
민 22:2-3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과거에 발락은 아모리 백성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두려워 떨며 실제 전쟁은 안 했지만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민수기 22장 5절과 6절입니다.
민 22:5-6 [5] 그가 사신을 …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주술사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술사에게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오히려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24장 10절을 보시면
민 24: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원수가 비열한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려고 했는데도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입다는 암몬 왕에게 군대이든 비열한 방법이든 소용이 없으니 싸우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이 땅에 있었는지 26절에서 설명합니다.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되찾을 거였으면 300년 동안 계속 달라고 했어야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27절입니다.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하나님께 모든 심판의 권한을 올려드리면 암몬이 물러갈까요? 아닙니다. 28절에서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겉에 보이기로는 세상이 강력한 것 같고 그들의 힘으로 성도들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상황들을 성도들은 자주 지나갑니다. 물론 구약을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정치와 전쟁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현재의 전쟁과 연결시켜서 기독교인은 이스라엘 편에 서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과 21세기의 이스라엘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가 오신 뒤 육적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이 성경의 이스라엘이라서 정당하게 땅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그렇게 믿는 자들을 세대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온전한 구원자로 믿지 않고 각 세대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다른 수단을 주셨기에 후일에 이스라엘도 민족적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사실 거의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예수 말고 그냥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통째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모욕하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의 한 분파로 아직도 남아 있고 이 사상이 너무 많이 퍼져서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땅을 차지해야 되니까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자고도 합니다. 이 전쟁은 그저 세상의 탐욕과 무서운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내는 참혹한 결과일 뿐입니다. 자기 목적을 위해 아이들까지 죽이고 민간인들을 볼모로 삼아 자기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처참한 인간의 악입니다.
나중에도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어 그곳에 성전이 세워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땅이나 성전을 약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땅은 어디인가요? 첫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땅은 바로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을 보시면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땅의 축복입니다. 미국에는 실제 교인들이 집을 팔아 헌금하면 교회 주변의 땅을 사들여서 그곳을 가나안 땅처럼 만들겠다는 교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유혹과 핍박의 노예가 되어 지옥 같던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천국으로 바꾸어주시고 통치하시는 것이 가장 놀라운 축복입니다.
마음을 땅으로 선사받은 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순종하여 전쟁과 분노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하나님의 통치에 내어드린 자들에게 하나님이 또 어떤 땅을 주시나요? 바로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의 땅으로 선사해 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입니다.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받게 되는 결과가 면류관입니다. 천국에 가면 머리에 금으로 된 관을 씌어주시나요? 아닙니다.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너희’ 즉 바울이 사역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함께 임하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면 바울이 맡은 사명을 완수한 결과로 영광과 축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도록 섬긴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땅은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 없이 혼자 태어난 분은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게 할 땅이 주어진 것입니다.
어느 가족이나 먼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경험한 사람이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면 그 영향력이 주변에 흘러가 가족과 주변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될 때 하나님은 칭찬하시며 그의 영광으로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것이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나요? 바로 세상으로까지 확장되길 원하십니다. 이사야 11장 9절을 보시면
사 11:9 …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나 하나, 내 가족 하나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이 영적 싸움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전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이십니다.
예전에 도저히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무당이고, 어머니는 신 내림을 받기 싫어서 부처에게 매달리며 아주 신실한 불도가 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환각, 환청이 있고 두 할머니의 기대에 짓눌리며 어린 나이부터 고통하던 어느 날 교회 십자가를 보고 들어가 예배를 드리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들킨 날부터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에게 몇 년 간이나 매를 맞고 머리카락을 잘리면서도 교회를 다니고 밤마다 기도하는데 환각, 환청도 사라지지를 않자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하던 시점에 저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한 전쟁입니다. 마귀는 자기 소유였던 노예가 도망을 치니 붙잡으려고 더욱 강력히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의 어떤 핍박에도 자매가 굴하지 않고 예배드리고 기도를 하자 때리는 핍박이 줄어가서 그것만으로 살 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몇 년 후에 만나 얘기를 들으니 신학교에 갔을 때 언니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살다가 갑자기 암에 걸렸습니다. 너무 말기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결이 내려져서 언니도 마음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이 자매가 복음을 전했는데 언니가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하나님은 이 가정에 특별한 개입을 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언니가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예수를 믿자 암이 치유할 수 있는 암으로 변화되어서 항암을 받으며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핍박하던 부모님도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결국 이 자매를 통해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또 헤어졌다 몇 년 후에 건너 듣자 하니 신학교에서 아프리카 선교 지망생 전도사와 만나 결혼해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자매를 통해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싸움이 가족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확장되어 나가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적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는 땅으로 주셨습니다. 그 마음에 우상이 가득하고 죄가 가득한데 우리가 그것을 싸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즐기고 있다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해 나갑니다. 은혜에 반응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은 먼저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와 평화를 허락하십니다. 그렇게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가 주변 사람들에게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열매가 나중에는 일반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척박한 곳에까지 임할 사명을 주시기도 합니다.
천국에 부름 받았을 때 우리의 가장 큰 면류관이며 영광은 바로 우리를 통해 확장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족과, 주변 사람들 가운데 이 전쟁에서 낙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 하나님의 은혜를 확장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몰라도 하나님이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의 놀라운 통치가 임하는 열매를 맛보게 하시며, 주변 사람들을 구원하여 은혜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