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예수님은 구약 시대에 계셨을까요? 예수님이 유대에서 2천 년 전에 태어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간과한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구약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 요한복음 8장 57절과 58절에 이런 반응을 했습니다.
요 8:57-58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신 때부터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그 ‘하나님’에는 예수님도 포함된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창조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입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예수님은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하셨고 또한 우리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보면 이 땅에도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에 예수님은 어떻게 나타나셨나요?
구약 시대에 예수님은 어떻게 나타나셨나요?
1.기묘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셨습니다. vv.15-20
첫 번째로 기묘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셨습니다. 마노아 부부에게 아이가 없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며, 그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고 예언합니다. 이 말을 들은 마노아는 그를 대접하고 싶어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여호와의 사자 혹은 천사는 메신저 혹은 말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마노아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자 그를 대접하고자 염소 새끼를 준비하여 요리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경우가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인 줄 알고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식사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여호와의 사자이며, 심지어 여호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브라함도 창세기 18장 1절과 2절 그리고 8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납니다.
창 18:1-2, 8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여호와의 사자로 온 분이 여호와와 동일한 분이기에 어떤 때는 그 분을 그냥 여호와라고 부르기도 한 것입니다. 여호와가 오셨다면 그를 알아볼 만큼 신비한 존재일 것 같은데 그저 평범한 사람 3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외부인을 환대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으며 이 문화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베드윈 족처럼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자나 여행객에게 자신들이 먹던 음식도 내주고 큰 호의를 베푼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못 보던 여행객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였던 것입니다. 기드온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사기 6장 19절과 21절을 보시면
삿 6:19, 21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로 알고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는 음식을 먹지 않고 지팡이 끝을 대어 불로 음식을 살라버린 뒤 사라져버렸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기드온에게 각인시키고 믿음을 주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났다 떠나신 것입니다. 마노아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도 똑같았습니다. 16절입니다.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와 사자들은 함께 식사를 했지만 그 후에는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임을 보이고, 기적같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7절에 마노아는 한 가지를 질문합니다.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너희가 낳을 아이가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불임 부부라면 누구라도 그 말씀이 이루어졌을 때 그를 높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18절에 답합니다.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마치 이름이 ‘기묘자’인 것처럼 번역되었지만 이는 ‘나 이름은 기묘하기 때문에 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여호와의 사자,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오셨기에 이를 마노아에게 설명할 수 없고,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알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이 기묘한 분이심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메시아가 기묘한 이유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오신다는 것이 인간의 유한한 머리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메시아를 예언했지만 이것은 신비로 감추어져 있었기에 예수님이 막상 오셨을 때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본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눈 먼 자를 눈뜨게 하시며,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마노아에게 이야기한들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기에 자신을 신비한 자, 기묘자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이 분이 일반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시고자 19절과 20절에서 어떤 일을 행하십니다.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불꽃이 일어나 음식을 태운 뒤 하늘로 사라지심을 통해 이 분이 단순한 사람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하늘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을 추구하지만 사실 신은 실체가 없습니다. 이슬람에는 알라, 불교에는 부처, 한국 전통에서는 하늘님 등 모든 종교가 하나님을 여러 이름으로 부릅니다. 힘이 약한 인간에 반대되는 어떤 강력한 분에게 복을 비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입니다.
‘하나님’도 한국의 전통 신인 하늘님에다,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를 더해 ‘하나님’이라고 하자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게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상이 다 다릅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병을 고쳐주는 자, 돈 없는 자에게는 돈을 주는 자가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중요합니다.
예수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신에 대한 그림이 있지만 하나님이 진짜 어떤 분이신지는 예수를 통해 보여 주셨습닌다. 구약에는 예수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묘하신 분이 이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는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진짜 필요한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육적 생명보다 더 중요한 영적 생명이 있으며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 장님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로 듣게 하셨습니다. 육적 눈을 뜨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영적 눈을 뜨는 것이며, 육적 귀가 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영적 귀가 열리는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그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중풍병자,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해야 된다는 거 모르는 분 없습니다. 다 알고 있지만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는 중풍병자처럼, 우리는 죄라는 영향력에 지배당해 진짜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화내거나 말로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풍병자인 우리들을 예수님이 고쳐주실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나병 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나병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나병 자체가 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문둥병인 나병은 전염이 되고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어디가 아픈지 피가 나는지도 모르다가 말초 기관부터 잘라져 나갑니다. 병균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와 똑같습니다. 죄악이 인간을 다스리기 시작하면 영적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죄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무서운지 깨닫지 못하는 결국은 육신적 죽음보다 무서운 영적 죽음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시던 기묘자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할지 보여주시며 그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죄의 문제로 고통하시나요? 예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영적인 눈이 안 보여서 보이는 세상에 함몰되어 살아가시나요? 예수 이름을 부르십시오. 말씀이 잘 안 들리시나요? 말씀의 신비한 은혜를 알게 해 달라고 예수 이름을 부르십시오. 사랑할 수 없어서 괴로우신가요? 예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이전에는 생각만 하고 실행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어, 예수님이 영생이고, 생명의 떡이고, 영생수가 되심을 날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전과 후가 차이가 큽니다. 저는 장남이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해서 교만했습니다. 동생이 결혼 전 날 무섭다고 하자 야단을 쳤는데 동생이 울면서 과거에 제가 무섭게 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어려서부터 동생한테 소리 지르고 화내고 막대기를 휘두른 순간들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죄가 저를 지배할 때, 나밖에 알지 못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 귀찮고 사람을 향해 온전한 사랑과 위로를 해줄 수 없던 저의 모습. 왜 하나님이 그것들을 기억나게 하셨을까요? 관계 안에서 예수를 만난 은혜가 무엇인가 깨달아 내 힘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 붙잡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랬던 제가 예수를 만나서 너무나 부끄러웠던 과거를 돌이키며 용서를 빌었는데 그 동생의 결혼 전날이 제 인생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은혜의 순간입니다. 지금은 여동생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울어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놀라운 회복을 함께 경험하게 된 것, 이것이 바로 기묘한 예수가 오셔서 은혜를 베푸신 놀라운 증거입니다.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던 그 이름을 이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가 만들어내는 결과로 고통스러울 때마다, 여러분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함에 매여 있을 때마다 예수를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구약 시대에 예수님은 어떻게 나타나셨나요?
2. 제물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vv.21-25
두 번째로 구약시대의 예수님은 어떻게 나타나셨나요? 제물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사자가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야 이 분이 신비한 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죽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한데 인간은 거룩하지 못하니까 둘이 같이 있으면 오염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염되면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하나님은 거룩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룩하지 않은 것을 불태워버리십니다. 그래서 마노아가 22절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구약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다 똑같이 반응합니다. 사사기 6장 22절과 23절입니다.
삿 6:22-23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는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만나도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나요? 사사기, 아니 성경을 통틀어 가장 소심하고 의심 많은 기드온을 하나님이 독려하여 전쟁에 보내셔야 했기에 죽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노아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또 23절을 보면 왜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이나 마노아 대신 그 아내에게 먼저 나타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맞는 말입니다. 죽이려고 했으면 번제를 받거나 아기에 대한 약속을 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금 마노아보다 그의 아내가 구원과 은혜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아도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번제를 기쁘게 받으시면 죄가 사해지며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은혜의 결과로 무엇이 주어지나요? 24절과 25절입니다.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마노아 아내 말대로 그들은 죽지 않은 이유는 제물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인데, 은혜의 핵심이 삼손입니다. 삼손이 왜 은혜의 핵심인가요? 이 부부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을 통해 태의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오랫동안 고통하던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삼손이 그들을 자유케 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한 것 아닙니다. 목마름의 근원은 생명 없는 죄된 상태로 인한 것이고 이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때 채워집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나요? 오늘 말씀처럼 제물을 통해 은혜 받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프리카 가서 일생을 헌신하고, 매일 봉사하고, 그 어떤 착한 일을 해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라는 제물을 주셨고 우리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가장 쉬운 길입니다. 이슬람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사는 날 동안 공덕을 쌓고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우리에게 기묘한 예수가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과, 제물을 통해 받던 은혜를 이제 예수 그리스를 통해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놀라운 생명을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