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어린이 성경에 보면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노아, 삼손, 다윗, 요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삼손은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로 지금으로 치면 마블의 슈퍼 히어로쯤 되는 인물입니다. 한 개인이 엄청난 능력으로 수천 명을 이기는 스토리는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삼손은 강력한 힘은 가졌지만 여자를 좋아해서 유혹에 넘어갔고 비참한 인생을 살다 마지막에 한번 복수에 성공하고 장렬히 전사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삼손 이야기는 앞뒤 문맥은 다 빼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언젠가 큰 능력을 주셔서 놀라운 일을 한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거나 혹은 여자에 넘어가면 인생이 망가지니까 유혹을 잘 이기라는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기복이나 도덕을 가르치고자 기록된 것일까요? 삼손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유일무이합니다. 역사를 통해 한 번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을 일반화하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고 또한 여자의 유혹을 조심하라는 교훈적 조언도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먹는 것, 자는 것, 영상보는 것 등 각자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평생 싸워도 계속 실패하는 것이 유혹입니다. 그렇다면 사사기의 클라이막스인 삼손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삼손은 무엇을 보여주는 인물인가요?
1.유혹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보여줍니다.
삼손은 무엇을 보여주는 인물인가요? 첫 번째로 유혹으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보여줍니다. 삼손 이야기를 교훈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괜찮고 좋은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약하고 나쁜 사람이 나오면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좋은 사람을 닮고 나쁜 사람을 닮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 안에서 영향을 미치는 죄가 얼마나 강력한가, 또한 그 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보여줍니다.
삼손은 단순히 여자를 좋아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우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본질은 유혹을 받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욕망이 가득합니다. 삼손뿐 아니라 모든 인생은 죄가 만든 영적 공허로 끊임없는 갈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삼손의 약한 부분은 여자였지만 사람마다 유혹의 대상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욕망이 만드는 다양한 영향력을 요한일서 2장 16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인간이라면 이 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종류의 욕망의 끌림을 말합니다. 먹는 것, 게으른 것, 편안하고자 하는 것, 남보다 잘 살고 것, 이 모든 욕망이 해당됩니다. 이 욕망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눈입니다. 인간의 오감 가운데 눈은 외부 자극의 거의 80%를 받아들이는 수단입니다. 눈이 없다면 유혹받지 않을 텐데, 눈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이것을 안목의 정욕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생의 자랑을 niv성경은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하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이라고 설명합니다. 좋은 번역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명품 시장이나 슈퍼 카, 명문대 등의 모든 등급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영향력으로 인해 삼손이 어떻게 세상의 노예가 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삼손은 육신의 정욕에 넘어지고 맙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여자를 만나러 가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젊은 사자를 때려잡습니다. 중동 지역은 날이 더워서 시체가 부패하지 않고 싹 말라 나무 뭉치처럼 되어버리자 벌들이 집을 짓고 꿀을 만든 것입니다. 삼손은 꿀을 퍼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왜 출처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꿀을 뜨느라 나실인의 명령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6장 6절입니다.
민 6: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나실인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신 세 가지 가운데 하나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나실인은,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시체와 관련된 것은 접하지 않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기가 때려죽인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퍼서 먹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달콤한 음식이 꿀이었으니 얼마나 강한 유혹이었을지 짐작은 해볼 수 있습니다. 즉 삼손은 먹을 것에 취약한 존재라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꿀을 취한 것입니다. 욕망이 강한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역시 죄가 만들어 내는 욕망에 끊임없이 걸려 넘어집니다. 삼손이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삼손은 또한 안목의 정욕으로 여자라는 영역에서 넘어졌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1절의 ‘보고’ 2절의 ‘보았사오니.’ 성경은 일부러 ‘보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삼손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얼마나 끌렸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쁜 것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인간은 욕망으로 인해 예쁜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고 끊임없이 열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7절은 무엇이라고 얘기합니까?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면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안목의 정욕을 충족하고자 살면 결국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이스라엘에 여자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성별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삼손이 자기를 핍박하는 세상의 대표인 블레셋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고자 하자 아버지가 질책합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은 이 조언도 새겨듣지 않습니다.
삼손은 이생의 자랑에서도 자유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왜 결혼식 도중 수수께끼를 내나요? 팔씨름이나 씨름으로 하면 반드시 이기지 않을까요? 삼손은 지금 자만심이 커진 것입니다. ‘이들은 내가 경험한 은밀한 일을 절대 모를거야. 이걸로 이들을 눌러야지. 나는 지식적으로 우월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수수께끼를 낸 것입니다. 13절입니다.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지금에야 모두들 옷이 많지만 고대에 옷은 엄청난 가치를 지녔습니다. 옷 한 벌이 전재산인 경우도 있었으니 이것은 단순히 몇천 원 내기가 아닌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 내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왜 승낙했을까요? 혼자 낸 수수께끼를 30명이 못 풀겠까하는 ‘나도 잘났다’는 마음으로 수수께기에 응한 것입니다. 이것은 애초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포도밭에서 사자를 때려 죽인 뒤 꿀을 취한 본인만이 아는 비밀이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내가 너희보다 잘났다는 마음에 시작한 내기의 결국이 어떻게 되었나요? 15절과 16절입니다.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
엄청난 재산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보니 단순히 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불태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어린 처녀가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요? 결국 삼손은 답을 말해버립니다.
[17]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삼손은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맙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삼손은 사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힘을 가졌다는 것 빼고는 우리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우리 또한 얼마나 육신의 정욕에 시달리나요?
저도 살아오면서 나이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많은 욕망들로 얼마나 많이 유혹에 넘어지고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이것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계획을 잘 세우고 시간 관리를 잘하고 결심을 하면 이겨낼 줄 알았는데 그럴수록 실패가 더 컸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더 싫어지고 좌절감에 기도도 안 하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사실 이 사회가 엄청나게 가치 있게 여기는 항목이기에 이생의 자랑에 휘둘리었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제 영혼 가운데 육신에서 나온 영향력들로 삼손처럼 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결론이 무엇인가요? 19절 말씀을 보시면
[19] …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은 사람을 때려죽인 뒤 옷을 훔쳐서 보상을 해주고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나실인이 할 일인가요? 욕망에 지배당해 통제권을 잃은 삼손에게는 상관없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20절입니다.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 이야기는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분노하고, 패배하고, 원하는 것도 빼앗기는 것이 죄인의 실체입니다.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선을 넘기도 합니다. 불륜이나 횡령 등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도 매일 유혹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유혹에 넘어져서 삼손처럼 살다 죽게 된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으라고 삼손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니 삼손처럼 되고 싶으신요? 하나님이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택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주신 그 고귀한 인생이 유혹에 넘어가 잘난 척하고 강도질을 하며 스스로 분에 못 이겨 비틀거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추한 모습인가요? 이 수치와 추함을 삼손을 보고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비참함을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육신의 정욕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안목의 정욕에 매어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기겠어?’ 이생의 자랑으로 살면서도 ‘남들도 다 그러는데’라고 간과해 버리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얼마 전 자녀들이 어릴 때 조기유학을 보내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다들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상을 받고, 미국 아이들을 제치고 에세이 1등을 하고, 차석으로 졸업을 하고, 여러모로 모범적인 생활을 보낸 것 같았습니다. 조기 유학을 떠났다가 잘못된 많은 사례들과 비교해 본다면 물론 훌륭한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이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느 시점에는 한국에 돌아올 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초중생이 외국에서 대학, 대학원까지 마치고 어떻게 한국으로 올 수가 있나요? 거기서 직장도 잡고 영주권도 따자 이 분은 은퇴를 앞두고 두려워지셨습니다. 자녀 중 누구라도 한국에 오면 아파트를 사 주겠다고 조건을 걸자 그 중 한 명이 그러마 하고 한국에 와서 아파트를 사주었는데 휴가가 끝나자 안 되겠다며 돌아가버렸습니다. 한번 주신 건데 뭘 회수하시냐며 눙쳐서 아파트 소유권은 자녀가 갖고 간 상태입니다.
이 분은 외국생활이 편치 않아서 자주 나갈 수가 없는데 아내는 아이들 보겠다고 몇 달씩 나가고, 출국 며칠 전에 햇반과 라면이 박스채로 배달된다고 합니다. 성실한 자녀들에 대한 자랑으로 지난 십여 년을 채웠었는데 이제 은퇴를 앞두고 시간이 많아지겠지만 자녀도 손주도 아무도 주변에 남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자랑하려고 인생을 살다가 진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매달릴 텐데 그 분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깊이 느끼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계신가요? 육신의 정욕이 여러분을 지배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안목의 정욕이 여러분을 지배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랑을 위해 이 땅을 살면서도 혹시 깨닫지 못하신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다 삼손과 같은 자들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벗어날 길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노예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구원을 주셔서 참 자유를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삼손은 무엇을 보여주는 인물인가요?
2. 죄인처럼 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로 삼손은 무엇을 보여주는 인물인가요? 죄인처럼 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4절을 보면 아주 의외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이 문장이 왜 이상한가요? 삼손은 이렇게 치밀한 사람이 아닙니다. 블레셋 여자랑 결혼해서 블레셋을 멸망시킬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면 먹고, 못 가지면 화내고, 남 때리고 죽이는 본능이 지배하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을 때는 다른 번역들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쉬운성경] 삼손의 부모는 여호와께서 이 일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계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을 칠 기회를 찾고 계셨고 ‘여호와’가 이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영어 niv 성경도 한번 보시면
[NIV] His parents did not know that this was from the LORD, who was seeking an occasion to confront the Philistines …
from the Lord, who was 이렇게 이어져서 여호와가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이 명확히 기록되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두 문장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여호와’가 관계 대명사로 빠진 부분에 ‘삼손’을 대신 넣어버림으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해석해 보면 종합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가요? 삼손은 본능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능대로 살아 욕망에 넘어지고 유혹에 넘어져 블레셋 사람처럼 되어버린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삼손 이야기는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블레셋 사람처럼 되어 타락한 한 사람이 성령을 받아 구원을 베푸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삼손에게 하나님이 계속 개입하십니다. 5절과 6절 말씀을 보시면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
일반 사람은 염소 새끼도 찢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을 사자를 손으로 찢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 블레셋 사람들을 때려 죽여서 30명 옷을 강도질할 때조차 함께하십니다. 19절입니다.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
나쁜 짓을 하는데도 왜 하나님이 개입하시나요? 이는 우리에게 구원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가르치고자 하심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삼손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사람처럼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영을 주셨더니 놀라운 능력으로 구원을 베푼 사람입니다.
이런 분이 또 누구신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 땅에 오셔서 죄인처럼 되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세상에 매인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 23절에서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나요?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구약에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오신다는 예언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실인’과 어근이 같기에 구원자가 나실인으로 올 것이라는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완전히 성별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자로 이 땅에 오신 그분이 생명이시며 구원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어떻게 되셨나요? 로마서 8장 3절을 보시면
롬 8:3 …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
인간으로 오신 것 자체가 마치 죄인처럼 오신 것입니다. 순결하신 하나님이 우리 영혼 안의 무서운 죄를 지닌 죄인처럼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처럼 오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시면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
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나요?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시면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삼손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마귀에게 매인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삼손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나요? 우리가 삼손이 되어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나실인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어떻게 받나요? 바로 예수님을 믿을 때만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잘해봐야지, 나에게는 문제가 없어, 지금 인생의 모습이 내 기쁨이고 행복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인 노예의 삶이 비참하다, 하나님 저를 예수로 구원해 주세요, 라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만 구원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자연스럽게 승리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4절과 5절은 이야기합니다.
요일 5:4-5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넘어집니다. 유혹이 없다면 세상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남들이 잘 사는 것, 성공하는 것, 행복해 보이는 것이 전혀 부럽지 않다면 고통은 십분의 일로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는 늘 비교하고, 유혹에 넘어지고, 그것을 열망하기 때문에 삶이 힘든 겁니다.
어떻게 벗어난다고 말씀드렸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승리를 맛보고 있지 못하다면 다른 말로 아직 예수를 믿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를 진짜 믿고 있다면 그 예수의 통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 인생을 다스려 이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으심으로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