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삼손은 한편으로 죄인을 모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모형합니다. 한 사람이 두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삼손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봉꾼이다가 때로는 우러러 볼만한 사사인 삼손을 두고 사람들은 많이 오해하기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죄의 발현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가 없기에 성경은 일부러 극단적인 한 사람을 통해 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일반 사람과 같다면 그분이 구원자가 되실 수 없을 것이기에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삼손의 극적인 모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삼손을 통해 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삼손이 세상에 노예된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삼손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소명을 저버리고 비참한 결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에 노예되는 이유는 세상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욕망이 없다면 세상에 노예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눈으로 보는 것에 전혀 끌림이 없다면 세상이 아무리 화려한 것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삼손이 세상에 노예된 이유는 그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욕망에 지배당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욕망에 지배당한 인생은 어떻게 되나요?
1.분노에 사로잡혀 타인을 파괴합니다. vv.1-6
첫 번째로 욕망에 지배당한 인생은 분노에 사로잡혀 타인을 파괴합니다. 앞 장에서 삼손은 성욕을 채우고자 이방의 여인과 결혼식을 올리다 자신이 했던 일을 자랑도 하고 한몫 챙기려는 마음으로 수수께끼를 냈으나 지게 되고, 내기에 진 결과로 겉옷과 속옷 30벌씩을 내놓게 됩니다. 14장 19절입니다.
14:19 …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있지도 않은 물건을 내기에 걸고, 갚아야 되자 엉뚱한 곳에 가서 관련 없는 사람을 30명이나 죽이고 강도질을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연쇄 살인마입니다.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분노입니다. 삼손의 행동이 굉장히 비정상적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모습은 사람들이 가장 열망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삼손만큼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마음대로 살기 원합니다.
문제는 본능이 내면에서부터 너무나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니까 끊임없이 선을 넘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나 자라는 내내 교훈을 받았을 텐데도 먹을 것 때문에 선을 넘어버립니다.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데 꿀이 탐나서 명령을 무시합니다. 식욕이 지배하는 인생입니다. 삼손은 또한 성욕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고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고자 했습니다. 본능에 이끌리는데다 힘까지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산 것입니다.
이제 그가 또 원한 것은 일확천금이었습니다. 삼손이 수수께끼를 낸 것은 자랑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것을 통해 돈을 노린 것입니다. 고대에 겉옷과 속옷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녔습니다. 뇌물을 줄 때 아니면 재산을 드러낼 때 옷을 주었다는 얘기가 성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 치면 자동차 한 대에 해당할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수수께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14장 12절과 13절입니다.
14:12-13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
답만 맞추면 갑자기 부자가 될 수 있다니, 꽤나 끌리는 제안이었을 것입니다. 정당한 노력이나 거래를 통해서 어떤 것을 하나씩 얻는 방법은 성실함과 인내를 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성은 남이 가진 것을 한 번에 쉽게 가져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로또 판매점과 도박의 인기가 식지를 않는 것입니다. 삼손이 상관없는 자들을 때려죽이고, 욕망으로 선택한 블레셋 여인도 버리고 떠나버린 진짜 이유는 일확천금의 꿈이 좌절되어 그런 것입니다.
욕망이 클수록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의 분노도 큽니다. 또한 힘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좌절을 경험할 때의 분노 역시 큽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떻게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수 있나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하는데 사실 이것이 축복이고 복음입니다. 힘이 세니까 원하는 대로 살았던 삼손은 뜻이 꺾이자 분노했지만 완전 아내를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1절에 아내를 찾아옵니다.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
욕망에 지배당한 사람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삼손 안에 들끓는 여러 욕망 중 분노가 잠잠해지자 성욕이 다시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삼손 마음대로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1절 하반절과 2절 상반절을 보시면
[1b] …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a]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삼손이 불같이 화를 내고 사람들을 죽여서 옷을 갚은 뒤 떠나 버렸을 때 이 가족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같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었을 것입니다. 어쨌건 삼손의 아내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14장 17절을 보시면
14:17 …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물론 힘이 센 남편이 구원해 줄 것을 믿지 못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렇지만 죽인다는 협박을 생각하면 얄밉다고 볼 수만도 없습니다. 화를 내고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삼손이 떠나자 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 버립니다. 삼손은 자기가 모든 일을 시작하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장인이 어떤 제안을 하나요? 2절 하반절입니다.
[2b] …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무언가 다른 좋은 걸 주지 않으면 피바람이 날 것 같아서 다른 딸을 제안합니다. 그렇지만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꼭 자기가 원하는 것만 원합니다. 누가 더 아름다우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대체품으로 만족할 수 없고 원하는 그것을 갖지 못하면 폭발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무엇이라고 하나요? 3절입니다.
[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화낼 정당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아내가 납치를 당한 것도 아닙니다. 삼손이 잔인하게 화내고 가버리니까 삼손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은 자주 화내게 되어 있습니다. 욕망이 크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금 삼손은 정당한 이유를 찾은 뒤 악랄히 복수를 다짐합니다. 아내를 빼앗긴 것이 억울하면 아내를 데려오는 방법으로 대면을 해야 하는데 이때부터 분노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는 것입니다. 4절 상반절을 보시면
[4a]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여우를 생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삼손은 힘이 셀 뿐 아니라 스피드와 유연성까지 갖추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엄청 빠른 플래시맨과 엄청 강한 토르 등을 합쳐놓은 신기한 존재입니다. 그 다음에 잡은 여우를 어떻게 하나요? 4절 하반절과 5절 보시면
[4b] …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두 마리씩 꼬리를 묶어서 불을 놓았습니다. 들짐승은 불을 근원적으로 무서워하는데 이 불을 피할 수도 없자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모든 것이 불타버렸을 것입니다. 자신이 당한만큼 돌려주려는 정도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쾌감을 찾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입니다.
강한 욕망을 이루며 살다가 욕망이 좌절되는 순간에 미친 듯이 날뛰는 것입니다. 삼손처럼 되고 싶으신가요?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피해야 될 모습입니다. 이 복수는 악순환을 가져옵니다. 곡식을 추수하기 전 불특정 다수가 큰 피해를 본 상태입니다. 그 결과가 6절에 있습니다.
[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한 사람의 분노로 시작된 일로 결국 자기 아내와 장인이 죽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길거리에서 만나기가 무서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맹수 같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옛날에 이런 싸이코패스가 살았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지배당한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집약해 보여줍니다. 사실 삼손은 우리들입니다. 욕망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도 삼손과 같은 상황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드러난 영역에서 눈에 보이는 욕망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근원적으로는 다 같습니다. 우리는 다 죄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자주 화가 나는 것입니다. 자주 화내고 있다면 여러분 안에 삼손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회사에나 교회에서는 두려워서 삼손이 되지 못하면서 가정에서만 군림하며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집구석 삼손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아이 시절에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떼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그렇게 방치한다면 원하는 대로 선택적 분노를 표출하며, 내 화는 정당하다고 소리치는 삼손을 만들게 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삼손보다 조금 덜 화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죄가 지배하는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집구석 삼손이 나타날 때마다 회개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죄가 저를 너무 강렬하게 지배해 삼손처럼 미친 모습을 보이니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의지로 누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삼손이 여러분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삼손은 예수의 능력으로만 다스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의 본질을 처리하셔서 무서운 악으로부터 구원해달라고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욕망에 지배당한 인생은 어떻게 되나요?
2. 고립되고 외면당합니다. vv.7-13
두 번째로 욕망이 지배당한 인생은 어떻게 되나요? 고립되고 외면당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7]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물론 아내와 장인의 죽음에 대해 원수를 갚아야 할 만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의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한 것은 삼손 자신입니다. 자신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과 직접 대면하거나 협상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혀버리니까 복수의 사이클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힘이 없으면 복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힘이 있었더니 더 큰 파괴를 몰고 왔습니다. 8절입니다.
[8]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는 ‘누군가를 쓰러뜨려 죽이다’라는 관용어입니다. 누군가 강력한 힘으로 다른 사람의 정강이나 넓적다리를 친다면 고꾸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로 나쁜 놈들이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신다면 이것은 비정상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후일에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보여주실 때 블레셋을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대적으로 묘사하시기는 합니다만 이 본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을 따져 보면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이 측은합니다. 문제는 삼손이 일으켜놓고 힘세다고 사람패고 불 지르고 피해 주는 엽기 살인마같이 행동하고는 바위틈에 가서 홀로 숨습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삼손처럼 힘은 세지 않겠지만 욕망이 너무 강렬하면 가까운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냅니다. 이들은 결국 고립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국은 모든 관계가 파괴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삼손은 혼자 고립되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지금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블레셋은 군대가 강했습니다. 9절입니다.
[9]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진을 쳤다는 것은 어떤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군대가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의 싸움이었다가 동네 사람들과 싸움하다가 이젠 블레셋 전체와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뿐만 아니라 자기 공동체까지 무너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0절입니다.
[10] 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
갑자기 블레셋 군대가 올라와서 유다 지역을 에워싸자 유다 사람들이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삼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들은 삼손을 잡으러 왔습니다. 11절 상반절입니다.
[11a]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
같은 이스라엘 백성인 삼손을 숨겨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에 대입해 본다면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예로 사람을 30명 죽인 뒤 교회에 숨어든 집사님이 계시다면, 밖에서 경찰들이 에워싼 상황에서, 그래도 교인이니 우리가 감싸고 사랑해야 할까요? 연쇄 살인마는 동정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화난다는 이유로 일을 벌인 것입니다. 3천 명이 삼손을 찾아가 협박하자 삼손이 뭐라고 하나요? 11절 하반절을 보시면
[11b] …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거듭 말씀드리지만 삼손이 시작했습니다.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수수께끼를 낸 것도, 사람들을 죽이고 강도짓을 한 것도, 여우 꼬리에 불을 질러 곡식과 나무를 불태운 것도, 사람을 죽인 것도 삼손입니다. 자기에게서 시작되어 눈덩이가 불어났는데 삼손은 깨닫지 못합니다. 12절에서 어떻게 됩니까?
[12]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동족과 결국 싸움이 붙어 그들을 죽일까 봐 자기가 잡히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13절에
[13] 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 줄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결국 자기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욕망이 강력해 주변에 분노를 표출하며 결국에는 파괴와 멸망과 보복을 반복하다 고립되며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죄악된 결국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삼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는 삼손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삼손처럼 힘이 없어서 삼손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삼손처럼 자주 화를 냅니다. 화내는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욕망이 좌절될 때 분노하며 환경을 탓하며, 내가 뭘 잘못했어? 라고 외칩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원인을 여러분 안에서 찾으셔야 합니다. 죄의 근원 때문에 내가 갈망 가운데 매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노하는구나. 하나님 내 안에 있는 삼손을 죽여주시옵소서. 제가 삼손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나실인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하실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갈망과 분노로부터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 안의 옛사람 삼손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