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삿 32: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삿 17:1-6)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전체의 주제가 되는 구절이 본문 6절에 나옵니다.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왜 이 구절이 사사기의 주제 구절인가요? 사사기의 내용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때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견에 옳은 대로 산다는 것은 기준이 없이 마음가는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왕이 있다면 왕이 기준을 제시할 것이고, 그것을 어기는 자에게는 엄한 징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없어서 기준이 없자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사사기 마지막 부분의 참혹한 결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사기 17장부터 21장에는 사사는 등장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읽기도 민망한 내용들로, 도적질, 축첩, 강간, 토막살인, 살육, 납치 등 도대체 한 민족 안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대로 사사기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조차 어떻게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어떻게 되나요?
1.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vv.1-2
첫 번째로 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미가’라는 이름은 ‘여호와와 같은 분이 어디 계신가’라는 좋은 이름입니다. 이름으로만 본다면 미가는 하나님만 의존하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하심을 선포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가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2a]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
미가의 어머니가 은 천백 세겔을 분실한 상황입니다. 당시 노동자가 15년 정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으로, 연봉이 3~4천이라고 치면 수억 원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그런데 집 안에 둔 은을 다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미가의 어머니의 반응이 2절 중반절에 있습니다.
[2b] …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
돈을 훔쳤다고 왜 고백했나요? 어머니가 돈을 잃어버리고 화가 나서 저주를 퍼부은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고대에는 저주가 진짜 일어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미가가 돈을 훔치고, 엄마가 저주하고, 죄를 고백하고 돈을 돌려주다니 얼마나 웃긴 일인가요? 그런데 돈에 대한 욕망보다 저주를 받을 일이 더 두려우니까 결국 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한 것입니다.
도대체 저주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랬을까요? 시편에는 이런 저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범죄자가 응당 받아야 할 죄값을 치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과 가문과 미래까지 완전히 파괴하는 저주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편 109편인데 8절에서 11절까지만 보겠습니다.
시 109:8-11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빨리 죽게 하시고, 일 없는 백수가 되게 하시고, 자녀는 고아가 되고, 아내는 과부가 되며, 가족이 거지가 되게 하시고, 모든 재산을 가족들이 갖지 못하게 다 뺏기게 해 달라는 저주입니다. 아마 미가의 어머니 또한 이런 종류의 저주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저주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가가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미가의 욕망과 두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치는 것도 나쁘지만 가족의 돈을 훔친다는 것의 근원에는 자기 욕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가는 욕망 뿐 아니라 두려움이 커서 결정을 번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말 축복일까요? 만약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나 아내나 배우자와 자식을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 거면 그 가정이 행복할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도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진짜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줄여가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는 욕망은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혼자 사는 청년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밤을 새워 게임을 했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이 있나요? 자괴감과 피로로 힘들어 할뿐입니다. 원하는 대로 사는 인생은 자신뿐 아니라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미가가 이렇게 되었나요? 사실 어머니에게 보고 배운 것입니다. 2절 하반절을 보시면
[2c] …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도둑놈의 가족과 미래까지 온갖 저주를 퍼부었는데 아들이 두려워서 돈을 훔쳤다고 고백하자, 아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저주가 이루어지면 자기도 피해를 보게 되니까 말을 번복하며 욕망과 두려움에 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모습을 가졌지만 속에는 기복주의와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왕이 없이 내 생각대로 사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름도 미가이고, ‘하나님과 같은 분이 어디 계신가’라는 이름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본질 안에서 욕망과 두려움이 지배하면, 인간은 종교성을 가질수록 더 깊은 기복주의의 빠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깊이 감동하여 은혜를 따라 걸어가는 인생은 사실은 없습니다. 인간은 기본적 종교성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종교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듣지 못하고 기복주의적 신앙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는 인생 가운데 반드시 좌절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순간이 옵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하나님 안에서 좌절의 경험을 했다면 이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기복적으로 나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해서 찾았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입해 오셔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성숙할 수 있도록 개입해 오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아들이 스피커폰으로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친구의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시길래 궁금해지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니, 원래 교회 다니는 친구인데 시험을 위해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망치자 하나님한테 삐져서 교회를 안 나갔다고 합니다. 제 아들이 그 얘길 듣고 하나님을 욕망을 이루어주는 대상으로 믿는 것은 우상이다, 하나님은 너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개입하신다, 그런 일로 교회 안 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친구가 몇 달 만에 교회를 나가자 엄마가 너무 고마워하시고, 다음에 만났을 때 밥도 사주셨다고 했습니다.
저도 30대가 되어서야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지 깨달았습니다. 그때까지 인생이 왜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으니까 일이 안 될 때마다 신앙이 약해지고, 어느 순간 절실해서 하나님을 찾았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신앙이 약해지는 과정을 얼마나 되풀이했는지 모릅니다. 욕망과 두려움 때문에 믿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라고 누군가 알려줬다면 저도 일찍 받아들였을 수 있었을 텐데 제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으면 그 방황과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바로 믿고 계신가요? 아니면 여전히 내 뜻을 이루어주는 분으로 하나님을 조절하려고 하다가 좌절하고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시나요?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김으로 큰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어떻게 되나요?
2.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vv.3-5
두 번째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어떻게 되나요?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3절입니다.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돈을 돌려받았는데 왜 그 돈으로 또 신상을 만드나요? 미가의 어머니도 종교성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본문에 있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이것이 우상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들을 다시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은 했지만 자기 저주가 너무 심해서 복이 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진 것입니다. 이 저주와 맞바꿀 행위를 하고자 은을 바치고 우상을 만들기로 합니다. 그러나 우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을 보시면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즉 여호와의 이름 부르고, 거룩하게 은을 바치겠다고 했지만 본질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소견이라는 것은 자기 욕망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늘 배치됩니다. 즉 자기 욕망이 강할수록 하나님 뜻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커지면 자기 욕망은 줄어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자기 욕망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자꾸 선을 넘게 됩니다. 삼손에게서 살펴보았듯이 삼손은 힘이 주어지자 다른 사사들은 안 한 짓을 했습니다. 나의 욕망을 어떻게 실현할지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위인들을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위인들 주변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위인들이 강하고 유명해지면서 선을 넘고 주변 사람들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간디는 밤마다 친척이나 제자들의 자녀 중 10세 전후의 여자 아이들을 알몸으로 껴안고 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소녀들을 껴안고 자도 성관계를 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인간임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림 한 점에 수백억 씩 하는 피카소도 만나는 여자마다 담뱃불로 지지고 학대하고 언어적, 심리적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 명성에 몰려드는 여자들이 줄을 잇자 선을 넘고 마음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인들을 연구한 작가는 ‘위인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를 뽑아먹는 괴물과 같다’라고 결론내립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힘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도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 뜻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래서 내 뜻을 이루고자 살아간다면 우리도 결국 미가처럼 파괴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뜻이 진짜 하나님의 뜻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가 얻고 싶은 것에 관심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벌써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처음 은혜 받고 기도원에 있을 때 또래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한 교회에서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서로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배우자가 맞는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당시에는 개인 연락처가 없으니까 어느 학교 어느 과 학생이라는 얘기도 오가며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하나님은 결혼할 사람을 정해 놓으셨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시고, 결혼을 하고 나면 확신하게 된다는 저의 이야기에 동의해서 결혼하기로 정했는데, 문제는 그 교회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한다는 여자 리더가 이 결혼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목사님도 기도에 관해서는 이분에게 의탁하는 처지라 답을 주지 않으시자 답답한 마음에 저를 찾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 형제가 그 리더의 멤버였을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챙기고 접근을 했다는 등으로 미루어 사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결혼해라 마라, 이 사람이다 아니다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누구랑 결혼하고, 어느 회사를 들어가는 단순한 사실보다 결혼과 직장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떻게 거룩하게 변화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런 계획들을 가지고 계신데 인간은 고난을 싫어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좋은 얘기해주는 사람만 찾아다니고, 너 자신이 변해야 된다는 말은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미가가 무엇을 하나요? 4절입니다.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천백 세겔에서 십일조보다도 많은 이백을 떼어 낸 걸 보면 어머니의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은 200세겔은 약 2kg가 조금 넘습니다. 2kg로 만들 수 있는 우상은 사실 사람 손에 올라갈 만한 종류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드라빔이라고 부릅니다. 5절을 보시면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이미 집에 신당도 갖춰놨고 제사장이 입는 에봇도 만들었습니다. 왜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나요? 아들이어야 내가 원하는 답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인도해주는 신이라야 따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상이나 램프의 요정처럼 섬깁니다. 내가 원할 때 정성을 보이면 그 신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렇게 섬기면 결국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미가가 하나님의 참된 구원받은 백성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면 인생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든 하나님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나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등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 가운데 주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제가 원할 때 주어졌다면 저는 아마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파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던 것들은 그 순간에 나를 힘들지 않게 만들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들을 통해 제가 욕망과 두려움을 벗어나 하나님을 의존하는 법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지금 내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사랑을 다 보이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근원적 태도를 다르게 만듭니다. 인생을 살 때 힘든 순간은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 복음을 받아들인 자라면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들을 받아들임으로 왕이 없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인생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이 은혜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임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