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삿 34: 불안할 때의 잘못된 영적 반응(삿 18:1-10)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불안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안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통제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나쁜 결과가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불안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그의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안정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불안에 대한 영향을 크게 받게 됩니다.
불안이 지배하면 사람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시험이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손에 땀이 나고, 소변을 자주 보고, 배가 아픈 등의 신체적 반응입니다. 몸 뿐 아니라 마음도 긴장하고 우울하고 불쾌하고 모호한 두려움이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영적 반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고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안으로 인한 영적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불안할 때 사람들은 어떤 잘못된 영적 반응을 하나요?
불안할 때에 어떤 잘못된 영적 반응을 하나요?
1.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현실 도피의 방법을 찾습니다. vv.1-2a
첫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현실 도피 방법을 찾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사사기가 시작된 지 오래됐는데, 왜 단 지파는 아직 기업을 갖지 못했나요? 분명히 기업은 분배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기업을 분배받은 이야기가 여호수아 19장 40절부터 48절에 나옵니다. 중간 부분은 생략하고 관련 부분만 읽어보겠습니다.
수 19:40-48 [40]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41]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 [48]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하나님이 어느 지역을 주셨으니 기업으로 삼으라고 분배는 되었는데, 사실 그 땅을 얻으려면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사기 1장 34절을 보시면
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싸워서 자기 땅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강력한 아모리 족속이 버티고 있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꼭대기에 살면서 땅을 얻지 못한 상황입니다. 다른 지파들은 열심히 싸웠는데 왜 단 지파만 기업을 얻지 못하고 산꼭대기에 살고 있나요? 희생을 치르기 두려워서입니다.
그들은 무기나 전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싸웠어야 되는데 두려움이 너무 크다 보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갈렙입니다. 여호수아 14장 10절과 12절을 보시면
수 14:10, 12 [10] …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85세입니다. 요즘의 85세는 건강하신 분들도 많지만 고대의 85세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싸워서 땅을 얻겠다고 합니다. 사실 갈렙이 부여받은 땅은 단 자손의 땅보다 훨씬 강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은 성경에 네피림의 후손이라 불릴 정도로 거인들이었고 성읍도 견고했습니다.
85세의 할아버지도 믿음을 발휘해서 땅을 차지했는데 단 지파는 믿음이 없으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단 지파가 원했던 것은 쉽게 얻는 땅입니다. 그래서 단 지파는 싸움이 없는 곳으로 옮겨가고자 하는데 그때 그들이 발견한 땅이 7절에 있습니다.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
이곳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받은 지역을 위해 싸우기는 싫고 땅을 얻지 못할 것도 두렵자 쉽게 얻을 땅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정탐꾼들을 파송합니다.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
땅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마음을 지배하자 하나님의 뜻이 아닌 편한 길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불안에 쉽게 영향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질적인 차이도 있고 또 살아온 환경의 차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이 영향을 미칠 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굳건히 하지 않으면 현실 도피적인 선택을 하며 때로는 ‘왜 하나님이 어려움을 막아주시지 않지?’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태도는 결국 믿음을 버리고 편안하고 쉬운 길을 찾으려는 불안의 근거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 땅에서 어려움이나 불안이 없고 쉬운 길만 주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믿나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누릴 길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시면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도도 환란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불안할 때, 어려움을 겪을 때에 환경을 통제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을 떠나려고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 때문에 힘이 든다고 해서 회사를 옮기면 모든 일이 해결되나요? 아닙니다. 어느 곳에나 20% 정도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고 또 20% 정도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소를 옮겨 보아도 그곳의 새로운 사람과 힘든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한지 먹잇감이 될 만한 사람을 쉽게 파악합니다. 아무한테나 다 짜증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분풀이 대상을 삼아도 되겠다 싶은 사람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요동하면 계속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도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영향 받는 환경은 바로 돈입니다. 돈이 많으면 환경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일정 수준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힘을 키워서 환경을 통제하려는 몸부림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보다 크시고, 세상의 어떤 힘보다 강하심을 믿을 때 그때 예수 안에서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갖지 못하면 단 지파처럼 끊임없이 현실 도피의 방안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땅이 다 있습니다. 가족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땅입니다. 쉬운 일이 있나요? 어려운 일일수록 하나님은 더 큰 약속과 더 큰 믿음을 주십니다.
돈이 많아서 환경을 늘 통제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만 있어서 사람 때문에 고난도 겪지 않은 사람은 믿음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환란 가운데, 내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지만 광야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맛볼 때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가 현저합니다. 어려움과 고난을 겪은 사람은 어느 시점이 되면 그런 것들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견고한 신앙에 서서 더 이상 불안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바다 위의 배처럼 끊임없이 요동합니다.
인생 가운데 불안할 때가 많으신가요? 암에 걸릴까봐, 노년에 경제적으로 고통받을까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인생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실체 없는 불안을 통해 우리는 계속 예수를 붙잡는 믿음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불안 가운데 현실 도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불안할 때에 어떤 잘못된 영적 반응을 하나요?
2.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이 형통할 길을 찾습니다. vv.2b-10
두 번째로 불안할 때 어떤 잘못된 영적 반응을 하나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이 형통할 길을 찾습니다. 정탐군들은 앞 장에 나왔던 미가의 집에 도착을 합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2b] …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이것은 우연이기보다 필연입니다. 다섯 명의 여행객이 유숙할 수 있는 집이 동네의 제일 부잣집일 테니 미가의 집을 찾은 것입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제사장 청년을 만납니다. 3절입니다.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그 집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청년이 제사장 옷도 입고 있자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고 이 청년도 사실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여기까지 들었으면 사이비라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제사장이라면 1년에 은 10개 받으면서 우상을 만든 개인 집의 신당에 고용되어 있으면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뭐라고 하나요? 5절입니다.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이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기업을 버리고 쉬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고 형통의 여부가 궁금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돈 걱정 없고 사람 걱정 없는 형통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행복하고 안전하고 문제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형통은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는 문제가 있더라도, 형통하지 않아 보여도, 실패라고 생각될 때라도, 그것을 통해 옛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우상숭배적 본질이 드러나고 깨어지며 성장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이비는 형통을 얘기해 줍니다. 6절입니다.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사이비의 특징은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점입니다. 부와 성공의 신학 조엘 오스틴이 목회 성공의 비결은 딱 하나라고 자랑합니다. 바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형통할 거야, 잘 될 거야, 라는 얘기를 좋아하고, 반면 ‘그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야, 욕심을 버려야 돼, 예수 믿으라’는 말은 듣기 싫어합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뜻이 아닌 내 길이 형통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데 사이비는 이런 얘기를 바로 해 줍니다. 이들도 진짜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자기 마음과 욕망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이들은 그것을 종교적으로 강화합니다. 이 길이 막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쉬운 길이 자꾸 주어집니다. 7절 말씀입니다.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평안한 길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가보니 상황이 맞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맞아 떨어졌다고 모두 하나님의 뜻인가요? 눈에 좋아 보이는 것과 하나님 뜻은 관계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러했습니다. 롯에게 여호와의 동산처럼 아름다워 보인 곳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멸망당할 곳이며 하나님 보실 때 가장 악한 자들이 거한 곳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눈에 볼 때 좋아 보이는 것만 추구해 나가면 결국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요? 멸망입니다. 단 지파가 평안해 보이는 곳을 선택했지만 이곳은 북쪽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 내내 이방 민족의 침략이 가장 강력한 곳이었습니다. 앗수르던 바벨론이던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은 항상 단 지파부터 짓밟고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라이스로 옮겨간 후 단의 후손은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눈에 좋아 보이고 거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욕망대로 선택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장은 미래는 알 수 없었기에 이주를 격려합니다. 9절과 10절 입니다.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꼭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고 덧붙입니다. 마지막 불안함을 종교적인 것으로 확고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단이 세력을 확장하는 방법입니다.
이단 가운데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을 포섭하는 대표적인 이단이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누구나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관계를 통제하여 데이트에는 보호자가 동행을 해야 하고, 세상 사람과의 관계를 통제하여 생일 파티도 금지하고, 정보를 통제하여 영화나 신문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생각의 통제입니다.
이곳을 떠나면 고통과 불안과 갈등에 휩싸이게 될 거라고 우리와 남을 구분하며 사람들을 집단에 매어 두는 것입니다. 이론만이 아니라 반복, 강화를 위해 매일 모입니다. 월요일은 본부에서 나온 책들을 연구하고, 화요일은 연구한 것을 나누고, 수요일은 봉사를 준비하고, 목요일은 전도 학교에 참여하고, 금요일은 본부에서 나온 잡지를 연구하고, 토요일은 전도 및 출판물 배부하고, 한 달에 70시간씩 봉사하며, 일요일은 당연히 전체 집회일로 모입니다.
이단에는 수십 만 명씩 모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불안이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에 쉽게 빠져들듯 예수를 믿으면서도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쉽게 잘못된 영향력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풍성한 힘을 가져서 상황과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5장 4절과 5절입니다.
요일 5:4-5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믿음 외에는 세상을 이기고 평안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자주 불안하신가요? 미래가 걱정되고 주변 사람들이 잘못될까 봐 두려우신가요? 다른 말로 하면 지금 믿음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일시적으로 평안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