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삿 35: 우상 숭배의 결과(삿 18:11-31)
[11]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 올라가서 유다에 있는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 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4]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해라, 혹은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부모는 왜 자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나요? 인생을 미리 살아보고 나니 조심하면 좋을 것들이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따르지 않는 자녀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하고, 하지 말라는 규율을 성경을 통해 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형태로 주어진 것이어서 지금 우리가 문자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자라면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상숭배에 대해 자주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자주 말씀하신 이유는 그 결과가 아주 비참하고 참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숭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우상 숭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1.우상 숭배의 확산을 가져옵니다. vv.11-20, 27-31
첫 번째로 우상숭배의 확산을 가져옵니다. 11절 말씀과 13절을 보겠습니다.
[11]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3] …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주신 기업에는 아모리 족속이라는 강력한 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이들은 쉬운 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정에서 5명의 정탐군은 미가의 집에 들려서 하루를 유숙했습니다. 미가는 부자니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잘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 정탐군들은 싸움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땅으로 단 지파를 불렀습니다. 출애굽한 단 지파 중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군사는 약 6만 2천 명 정도였기 때문에 본문의 600명은 약 1%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이들이 미가의 집에 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14절 말씀입니다.
[14]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부자인 미가는 집에 완벽한 신당을 만들어 놓고, 제사장이 입는 에봇과 우상도 종류대로 구비하고는 떠돌던 레위인까지 고용을 해서 종교 시스템을 완벽히 갖춰놓았습니다. 단 지파의 정탐꾼들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한 일이 17절에 있습니다.
[1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단 지파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우상을 탈취했나요? 그들 눈에 미가가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가는 우상숭배를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된 것은 아니고, 원래 부자이고 그 부를 더 잘 지키고자 종교심을 이용하여 우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반면 단 지파는 지금 불안한 상황입니다. 불안감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땅을 믿음으로 얻지 못하고 쉬운 땅으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이 많은 사람들이 부자 미가의 우상들을 보며, 우상숭배를 잘 섬겼더니 부자가 되었다고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유혹을 받나요? 자기 욕망을 실현시켜줄 대상입니다. 세상에는 그것을 모델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예인, 운동선수, 권력자 등 세상의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은 마치 미가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미가는 우상숭배를 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 어머니 대에서부터 물려 받은 것입니다. 잘못된 결론으로 약탈해 가는 무리를 막아서며 제사장이 질문합니다. 18, 19절입니다.
[18] …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지금 레위 청년을 소명을 따라 제사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떠돌다가 자기 동네도 아닌 베들레헴에서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자 산지까지 왔는데 제사장이 필요했던 미가와 서로의 이익이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평균의 10분의 1이고 숙식 제공만으로 만족하고 있던 청년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되라는 제안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20절입니다.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생존을 위해 살아가던 청년은 기쁘게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가 한 가정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단 지파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단 지파는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떠나고는 있지만 이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도 찾고 신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줄 대상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단 지파는 어떻게 되나요? 30절 말씀입니다.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이 청년 제사장의 자손들이 대대로 그 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언제까지인가요? ‘사로잡히는 날까지’입니다. 이는 이방 민족에 의해 끌려가 포로가 되며 비참한 결국을 맞이한 이방 민족 때문에 벌어진 유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앗수르에 의해 사로잡힌 것으로 보입니다. 왜인가요?
쉬워 보였던 라이스 지역은 이스라엘 제일 북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북쪽 경계 위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이 늘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전하고 편안해 보였지만 후일에는 가장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멸망당해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비참한 결국을 맞이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성경의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자들과 어기는 자들의 반대되는 운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라는 28장의 일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28장에는 축복보다 저주의 내용이 4배나 많이 적혀 있습니다.
인간은 저주받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이 율법의 저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본문은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64절부터 6절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며 우상숭배를 한 자들이 어떤 결국을 맞게 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28:64-66 [64]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65]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 [66]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은 이방에 끌려가 이방이 섬기는 우상을 영원히 섬기게 됩니다. 그 결국은 무엇인가요? 평안함도 빼앗기고 늘 생명의 두려움을 얻게 됩니다. 이 공동체의 멸망의 모든 시작은 미가의 한 가정의 우상 숭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상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상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것처럼 보이는 모든 대상, 하나님 말고 인간이 의존하는 대상입니다. 가장 흔한 것이 돈이고 사람입니다. 문제는 우상숭배를 선전하는 이들이 옛날보다 훨씬 쉽고 강하게 자기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상위 1%의 부자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sns 등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부러워하고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 전문가 소수만이 매스컴이나 강연 등에서 이야기하던 비법을 개인이 방송할 수 있게 되어서, 자기 노하우를 자랑하며, 나를 따라오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 작가라는 전문가는 요즘 5,6천 만원하는 비트코인이 올해 말에는 2억이 되고 2030년에는 20억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체 2,100만개인 비트코인의 반감기가 올해 도래했기 때문에 가격이 폭등하고, 미국 증권감독위원회에서 비트코인을 현물 ETF로 승인한다는 근거를 들고 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강의에 달린 수천 개의 답글들입니다. 몇 개만 소개해 드리면, ‘우리를 광명으로 인도해 주시는 오 작가님이시여, 당신의 말씀만을 따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이 길을 가겠습니다.’ ‘당신의 인도하심을 제가 3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아쉽습니다.’ 교회 목사님 설교에 이런 답글이 달리면 목사님 정말 행복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적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강의는 팩트가 아닌 믿음의 문제입니다. 사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그 작가처럼 10년 전에 비트코인이 저렴할 때 사놓은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되는 마지막 기회라고 열변하는 것은 비트코인이 오르면 자기는 더 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혹 넣어 놓고 10년 쯤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잉여의 돈이 있으신 분들은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돈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는 분은 돈의 욕망과 두려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가요? 돈이 있는 곳에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오르면 좋아하고 조금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이것이 뇌를 자극합니다.
돈으로 투기를 하게 되면 도파민을 자극해서 도박을 하는 것 같은 흥분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돈이 오르면 전재산을 넣는 기이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떨어지면 두려움이 자극 되어 긴장하게 됩니다. 이 출렁거리는 요동함을 일반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아마 10년 동안 비트코인의 그래프를 종일 묵상하면 뼈에도 비트코인 글자가 새겨질 것입니다.
이런 투기는 우상숭배의 가장 전형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수의 부자 된 사람들을 보며 다수는 부러워합니다. 특히 누가 유혹을 받나요? 그들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 그래서 그것으로 나의 욕망을 실현하고 싶은 깊은 영적 우상숭배적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투기하지 않으면서 유혹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0년 전에 내가 비트코인을 알았더라면’ 하며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계신 분도 우상숭배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매일의 성실함을 뒤로 하고 특별한 기회와 수단을 통해 한 번에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거대한 인간이 되고 싶은 숨겨진 내적 욕망을 정리하지 못하면 꼭 비트코인이 아니어도 어느 순간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돈이나 사람에 의해 깊은 좌절과 고통을 경험할 때 그의 우상숭배적 경향이 드러납니다.
우상숭배가 미가로 시작해 미가에서 끝났다면 개인만 조심하면 되지만 이것은 한 지파를 멸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영향력은 무엇인가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을 만난 사람들이 투자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값어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확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생명의 영향력을 받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이 땅을 넘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에 주어질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세상의 우상숭배적 영향력과 잘 싸우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영향력이 확산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상 숭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2. 결국은 우상의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vv.21-26
두 번째로 우상숭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결국은 우상의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22절과 2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22]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a]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
우상을 훔쳐갈 때는 미가가 집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자 이웃을 불러 모아서 뒤따라 온 것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뭐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합니까? 23절 하반절입니다.
[23b] …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미가 집에 우상이 있다는 것을 이들이 어떻게 알았나요? 미가가 정탐군들을 재워주고 먹여주고 환대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가의 물건을 훔치고 나서, 왜 사람들을 데려 왔어? 하며 묻고 있습니다. 미가의 답이 24절에 있습니다.
[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사실 미가의 말 안에 정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가 만든 신들’ 이것이 우상의 실체입니다. 신들을 자기가 만들었는데 무슨 힘이 있을까요? 빼앗겨도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미가는 신들이 자기를 지켜 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왜 이런 짓을 했냐는 미가의 질문에 대한 단 자손의 답이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큰 소리치지 마, 우리 중에 화를 못 참는 사람이 너희들 다 죽일 수도 있다’ 오히려 협박을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요? 26절입니다.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미가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좌절, 억울함, 분통, 허무, 모든 부정적 감정이 소용돌이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기가 만든 우상때문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않았으면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용했던 제사장에게 배신도 안 당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나를 지켜주고 행복을 줄 것이라고 의존하면 그는 꼭 배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의존은 영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의존의 무게를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같이 붕괴될 뿐입니다.
결국 돈이든 사람이든 우상숭배는 좌절과 고통을 갖고 옵니다. 미가는 지금 온몸으로 이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상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편 115편 4절부터 8절입니다.
시 115:4-8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고대에는 사람들이 금과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현대의 우상은 하나님을 대신해 자기 욕망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인생에서 결국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고 좌절하고 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백성도 우상숭배로 자주 좌절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의존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안락하게, 미래를 안정되게 할 만큼의 돈을 원하고, 나를 늘 위로해주고 갈 일을 가르쳐주는 견고하고 완전한 사람을 원하는데 이런 조합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원하는 자체가 우상 숭배적 경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이 과정을 경험하길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숭배적 경향은 너무 은밀하고 영적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돈에 대한 사랑, 돈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의존과 기대는 자주 드러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저도 좌절스러울 만큼 돈 때문에 낙심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큰 축복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두렵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과정을 지나며 하나님은 제 안 깊이 자리 잡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존하는 악질적인 우상숭배를 회개하게 하시고 돈에 대한 의존과 사랑에서부터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 때문에 마음 아파할 때마다 사람은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인내할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 때문에 불안하신가요? 사람 때문에 실망하셨나요? 이 기회를 통해 오히려 깊은 우상숭배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자유와 은혜의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