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19장에서는 기브아의 악한 불량배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동네에 온 낯선 남자를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그 첩을 집단적으로 밤새 성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욕망 때문에 첩을 들였다가 자기가 위협을 받자 첩을 내어놓은 레위인은 불량배들보다 더 악한 인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죄로 인한 강력한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고통하게 하는 악인들입니다. 악한 자들이 심판받지 않는 것처럼 불의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설교를 준비하며 자료들을 둘러보다 페미니스트 여성 신학자들이 사사기 19장으로 세미나를 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19장이 성경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 말은 19장의 여성이 강간당하고 고통당하는데 하나님이 무관심하고 무능하고 가부장적인 신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레위인과 불량배들은 남성주의 사회에서 폭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악한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여성 신학자들은 가부장적인 구약의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여성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신 신약의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요? 성경을 이렇게 편협하게 바라보면 엉뚱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다른 분인가요? 만약 구약의 하나님이 여성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신이고, 신약의 예수님은 여성들을 우대하는 신세대라면 신앙의 기본인 삼위일체 교리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학대당하는 여성에게 무관심하신 것처럼 묘사되었나요? 바로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악인들을 심판하시는지를 성경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개개의 악한 행위에 대해 일일이 쫓아다니시면서 심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의 근원에 있는 죄악으로 인해 죄인들이 스스로 파멸하는 과정이 곧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악은 어떻게 악인들을 파멸시키나요?
죄악은 어떻게 악인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나요?
1.자기중심적 거짓말로 파멸시킵니다. vv.1-11
첫 번째 자기중심적 거짓말로 파멸시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단’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이고 ‘브엘세바’는 가장 남쪽입니다. 한국의 지형으로 말하자면 ‘휴전선 인근부터 제주도까지’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왜 온 이스라엘이 모였을까요? 바로 앞장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9장 29절과 30절입니다.
19:29-30 [29] …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
성경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시체를 쪼갠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일입니다. 더구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있던 고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모두 충격을 받고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들과 사람들이 레위인에게 정황을 물어보고 답을 듣는 장면이 3절과 4절입니다.
[3] …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사건의 결과로 보면 얼추 사실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인가요? 아닙니다. 레위인은 자기한테 유리하게 거짓말을 더하고 있습니다. 기브아 사람은 레위인을 죽이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19장 22절을 보시면
19:22 …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
물론 성관계 하겠다고 협박한 것도 악한 일이긴 하지만 이것보다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훨씬 악하니까 살짝 바꾼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한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운 일이니까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감추고 훨씬 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첩을 죽였다고 하지만 그 직접적인 원인은 누가 제공했나요? 19장 25절을 보시면
19:25 …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
여자가 제 발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 레위인이 여자를 끌어다 밖에 내보냈습니다. 이 레위인은 첩을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물건처럼, 자기가 강간당하게 되자 여자를 대신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큰 배신감을 느끼고 좌절했을 여자를 죽게 만든 것은 남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 첩을 ‘어린 여자’라고 묘사한 것을 보면 아마 10대의 소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레위인은 욕망을 위해 여인을 첩으로 취했다가 상황에 따라 여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옷이 잘 어울린다, 화장하지 않아도 예쁘다, 이런 말들은 거짓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관계의 윤활유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거짓말을 통해 무엇을 하나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남을 파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시체를 조각내어 온 지파에 보내서,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어 대질 심문을 하는 이 심각한 자리에서 진실만을 말했다가는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 것 같은 상황에서 기브아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어야 자기가 하고 싶은 보복을 국가의 힘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제 상황을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중 ‘음행과 망령된 일’을 해결해야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실제로는 레위인이 음행하고 망령된 자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성적 욕망 때문에 10대 소녀를 첩으로 취한 음행, 거룩한 일을 하는 자가 시체를 만져 토막 내서 사람들에게 보낸 망령된 일.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만 음행하고 망령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합리화입니다. 나는 나쁘지 않고, 내가 혹시 나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주변 환경과 사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방어기제입니다.
거짓말과 합리화는 인간의 깊은 욕망에서 나옵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를 방해하고 고통 준 자들은 보복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인간은 강한 힘을 갖고자 합니다. 이것은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쾌락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크고 강력합니다. 이 레위인이 자기 악은 감추고 기브아 인들을 나쁘다고 한 결과는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9]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수십 명과 한 사람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이스라엘 전체의 전쟁으로 확장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레위인 하나가 나쁘거나 기브아 불량배들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악을 징계하시고자 하시는데 그 과정에 레위인의 거짓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40만 이스라엘 군인 중 4만 명이 죽게 되었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몰살당했습니다. 4만은 40만의 십일조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심판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세상의 악인들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 합니다. 도둑질을 하면 그 자리에서 손이 잘린다거나 거짓말을 하면 입이 붙어버린다면 불법 행위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위만 보시지 않고 마음도 보십니다. 마음으로 누구를 미워하면 암에 걸리고 화가 나면 목이 잘린다면 아마 지구상에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마치 방치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 받아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이 레위인처럼 나는 괜찮고 저들은 나쁘다고 합리화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치 자기 눈으로 자기 엉덩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중심성이라는 무서운 죄악 때문에 절대 자기 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여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내가 음란하고 망령된 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소수가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때, 하나님은 모두가 심판받을 자리에서 그들을 끄집어내셔서 구원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다 멸망 받을 자들인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죄악은 어떻게 악인들을 파멸시키나요?
2. 완악함으로 파멸시킵니다. vv.12-17
두 번째로 죄악은 어떻게 악인들을 파멸시키나요? 완악함으로 파멸시킵니다. 12절입니다.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레위인의 말을 듣고 보니 베냐민 사람들이 나쁘다고 결론을 내리며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13절 상반절을 보시면
[13a]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
물론 지금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꼭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율법의 기준에 의하면 이것은 아주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기 21장 12절에 주신 율법이 있습니다.
출 21: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사람을 강간하고 죽인 자들을 죽이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13절 하반절입니다.
[13b] …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여자를 집단 강간하고 죽인 악인들을 내놓으라고 40만의 군대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말을 듣지 않았나요? 그들을 특별히 사랑했거나 모두의 지인이어서가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에게는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행한 일이 너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악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낯선 사람을 강간한 것이 뭐 그리 나쁜 짓인가?’ 생각할 정도로 가나안 사람처럼 변해버린 것입니다.
구약의 가나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요? 한 남자는 자기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가나안 사람처럼 하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주신 율법이 무엇인가요? 한 남자가 맺을 수 있는 모든 여성 관계를 일일이 나열하며, 이모와 관계하지 말고 고모와 관계하지 말고 딸과 관계하지 말고. 왜 이런 기괴한 명령을 주셨나요? 가나안 사람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미친 짓이지만 이것이 그들의 표준이었습니다. 힘 있는 남자라면 주변의 모든 여자를 성폭행을 하여 욕망을 취하는 인생을 베냐민 사람들이 살았던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강간당하고 죽는 것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심해 질만큼 심판당해 마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세상처럼 되어 버려서 하나님 백성처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강퍅하고 완악한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출애굽할 때의 바로입니다. 출애굽기 7장 13절을 보시면
출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계속 이적이 일어나는데 계속 거부합니다. 왜인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방식입니다. 출애굽기 10장 20절을 보시면
출 10: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그 사람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인생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적이 일어나도 마음이 돌처럼 닫혀서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바로는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의 모형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노예로 사로잡아 고통하게 만드는 마귀의 모형으로 바로가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셨고, 하나님은 권능의 기적을 보이시고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이 구원받는 출애굽의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악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이 말씀 가운데 반응하는 자라면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 인간이 착한 것이 아니에요. 인간은 절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일차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말씀만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엄청난 성숙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씀이 고난과 함께 찾아올 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과정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고난이 없으면 완악하고 완고할 우리들을 하나님이 겸손하게 만드시고자 상황을 조절하십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베냐민 지파처럼 되는 것입니다. 14, 15절입니다.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기브아 사람은 700명이고 돕겠다고 나온 베냐민 사람은 2만 6천입니다. 40만 대 2만 6천이면 15대 1입니다. 요즘처럼 미사일 쏘고 폭탄을 쏘는 전쟁이 아닙니다. 칼과 창으로 대면하는 전쟁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왜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나요?
강퍅함으로 인해 파멸의 길로 계속 가고 있고 하나님은 이것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 같지 않아도 하나님이 악이 악인들은 지배하여 파멸의 길로 가도록 놔두고 계신 것이 곧 심판입니다. 이 땅에서 악한 일을 하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고통하고 아파해도 이 땅은 금방 지나갑니다. 회개한 자들은 하나님 품으로, 끝까지 악행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 상태로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인생이 끝났을 때 우리를 불러주실 분이 없는 것처럼 불행하고 안타까운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이는 마치 놀이터에서 다같이 놀다가 저녁이 되어 부모가 한 명 한 명 불러들이는데, 부르는 부모가 없어서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가 느낄 허전함과 외로움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 싸움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46] 이 날에 베냐민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가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 명이니 다 용사였더라 [47]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
불량배 몇 십 명만 죽었으면 끝날 일인데 베냐민 지파가 전체가 다 몰살당합니다. 물론 600명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다 죽임을 당해서 한 지파가 없어지면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 교회의 숫자 열둘이 훼손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은 막아주십니다.
이들은 불량배와 우리는 한 패라고 완악하게 반응하다가 몰살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못 보는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을 심판 안 하시는 하나님은 없다거나 무능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성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사기 19장을 읽고 하나님은 가부장적이니까 믿지 말고 여자들에게 친절한 예수님을 믿자고 하는 바보 같은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악이 악인들을 파괴하고 있는 영적인 과정을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완악하던 우리들을 은혜로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시고 세상의 악인들을 파괴하여 결국 악 가운데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믿음으로 회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