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9일 주일예배 설교문
신비라는 단어는 우리 지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는 신비라고 하는 단어를 비밀로 번역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습니다. 비밀과 신비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밀은 다른 사람이 비밀의 내용을 듣고 알게 되면,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비밀이야기를 몰래 다른 사람에게 속삭였는데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비, 미스테리라고 번역하는 단어는 남이 보아도 그것이 무엇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놀라운 일을 이야기합니다. 구원은 대표적인 신비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있어서 구원은 참 감격스럽고 놀라운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것이지만 복음의 신비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구원이 무엇인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원에 대해 성경은 여러 종류로 설명하는데, 오늘 예수님은 ‘거듭남’, ‘다시 태어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남은 어떤 신비인가요?
1. 성령으로 거듭나는 신비입니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많은 표적을 본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것은 니고데모가 당시의 유대를 다스렸던 70명의 대표자들이 모여 있던 산헤드린 공의회라는,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원 멤버인 것입니다. 바리새인이었으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향품을 많이 가져온 것을 보아선 엄청난 부자였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놀라운 사실임을 공감하였지만, 그저 자신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멈췄지만 니고데모는 한 발 나아가 믿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성경은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세상에 속한 시간입니다. 어두움, 무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밤’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만 봐도, 그가 세상에 속했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니고데모만 빛이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멘’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아멘’이라고 끝을 맺는데 ‘아멘’은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아멘 아멘이라고 두 번 말씀하신 것은 구약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신 약속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의 성취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거듭나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시고, 니고데모가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시기 위해 육적 자리에서 영적 자리로 나아와야함을 아셨기에 그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영적 호기심은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였기에 예수님이 먼저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단순히 놀라운 기적이기에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새로 태어나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이 표적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실체와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신 병은 장님과 귀머거리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문둥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바라볼 때, 예수님은 문둥병을 통해 죄의 참혹함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은 전염성이 강하며 감각이 둔해져 몸의 말초가 잘려 나갑니다. 예전에 약이 없을 때는 문둥병자들은 몸이 가려워 만지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감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이 결국은 죽음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하며, 죄가 우리의 영혼을 썩게 하는데 죄를 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행하는 악한 일에 대해 죄책감이 없습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운 영향력이며 사람들에게 전염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죄의 영향력에 휩쓸려 가며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우리의 상태를 치료해주고자 오신 메시야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문둥병자를 치료해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열린 자는 우리가 문둥병자와 같이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임을 깨닫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치료를 간구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 안에 죄악으로 썩어가지만 감추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기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자만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지금 니고데모는 육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육적으로 이해하여 엄마 뱃속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앞에서는 볼 수도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보지도 못하기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은 물과 같은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앞에 전치사가 원문에서는 한 번만 사용되어, 물이 성령을 같은 의미로 수식하는 것입니다. 물의 어떤 속성이 성령을 비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는 속성입니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5-27)
물을 뿌려서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저는 물이라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이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더러운 그릇을 깨끗하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깨끗한 것으로 닦으니 깨끗하게 됨을 느낍니다. 그런데 물이 우리의 영적인 더러움을 씻을 수 있을까요? 비유인 것입니다. 물은 새로운 영을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 안의 더러운 것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영이 임해야 무엇이 가능한가요?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씻김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에스겔서에서는 더러운 것의 대표로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문제를 해결해줄 하나님으로 여기는데,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의 우상으로 만들고 우리의 욕망이 이루어지길 원하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것을 바라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대상을 향해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본질입니다. 인간은 약하기에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보다 더 강한 하나님이나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고 도와주길 바랍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본질적인 마음으로 결혼하기 때문에 결혼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많은 자매들이 결혼을 할 때 자신의 뒷받침이 되어줄 남편을 원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대에 실망을 하면, 다른 존재에 집착하여 자녀를 우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와 예수 믿지 않는 자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것 모두 영적으로 눈이 열리지 않은 우상숭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눈이 열린 사람은 한 발씩 이 자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다시 태어남이라고 하신 것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후,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분별을 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성령으로 태어난 새 사람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먹는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부모가 사랑해줘야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아기 하나 태어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나요? 아이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그래서 사랑을 받게 될 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계속해서 들어 우리의 본질을 이겨내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들어 영혼이 성장하고, 말씀 안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의존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를 외모와 능력을 보고 판단하며 가치를 정합니다.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일 때는 환호하지만, 흠이 보이면 달려들어 비난하고 욕을 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대표적으로 연예인들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조금의 흠이라도 발견되면 무수히 많은 욕을 던지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신경서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정과 평판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살면 인생 내내 불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나를 향해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며 말씀이 우리 안에 생명의 양식이 될 때, 우리 안의 새사람이 점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과 육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만드신 모습은 육안에 영을 담은 것입니다. 인간은 하이브리드적 존재입니다. 하이브리드는 두 가지 존재가 합쳐진 것입니다. 인간을 천사처럼 영적으로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육 안에 영을 담으신 것입니다. 육은 원래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파르라는 흙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먼지’, ‘쓰레기’라고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날아다니는 먼지를 모아다가 하나님의 형상인 영을 넣어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인 것입니다. 이 영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육’ 안에 담아두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존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치하고 섬겨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육 가운데 떠날 때, 먼지와 같은 육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비어 있는 자들은 초라한 자신의 육적 모습을 가리고자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은 흙인데, 그곳에 금칠을 했다고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이 좋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속물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명품백을 위해 아침부터 백화점에 가서 줄을 서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생명을 걸고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가치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가치있는 존재로 만드셨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귀한 피를 우리를 위해 흘리셨는지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세상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영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단들 가운데는 이를 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듭난 시간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거듭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어난 날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날짜가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태어났기에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반응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듭남은 어떤 신비인가요?
2. 죽음으로 거듭나는 신비입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아직도 성령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답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 3년을 따라다닌 예수님의 제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선생 할아버지가 되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갑자기 왜 ‘우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미 거듭나서 경험하고 본 모든 하늘 나라의 증인들을 이야기합니다. 나 같은 자, 지금은 예수님 혼자이지만 많은 자들이 ‘우리’ 안에 포함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의 의미도 깨닫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왜 갑자기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셨다, 하늘로 올라가는 유일한 자라고 하신 것일까요? 하늘의 일을 증언하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간 사람은 있지만, 돌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증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 다녀왔다고 책을 낸 사람들이 있지만, 다 가짜입니다. 저 역시 은혜를 받고 천국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다녀오면 다른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다 가짜였습니다. 천국에 다녀온 사람들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이야기는 천국에 아파트가 높이 있는데, 아파트마다 전자레인지가 있고 그 안에 무한으로 떡과 물고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떡과 물고기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서민들의 음식으로서 보리떡과 젓갈과 같은 물고기인 것입니다. 평생 천국에서 이것을 먹어야 한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신비한 경험을 했겠지만 자신이 꿈꾸고 상상하던 경험을 한 후, 자기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천국에 다녀왔다고 책을 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말씀을 통해 하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의 가장 영적인 놀라운 말씀은 이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것이 하늘의 일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 주에 가장 신비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왜일까요? 바로,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뱀을 보내시는데, 그 뱀이 불뱀입니다. 불뱀의 종류는 코브라와 방울뱀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독이 강해 물리면 열이 올라 죽기에 ‘불뱀’으로 불리운 것입니다. 왜 불뱀으로 심판하신 것일까요? 옛뱀이라는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깨물었고, 죄성이 인간에게 유전되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며 다른 사람을 깨무는 뱀과 같은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 대신, 다른 사람을 저주하며 깨무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뱀을 매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매달아 죽이지 않으시고 예수를 매달아 죽이시고, 그 예수를 바라보는 자만이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가 죽으신 자리를 바라봄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놀라운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천국의 일로 가장 놀라운 것을 말씀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며 미련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이라는 영원한 생명, 하늘의 생명, 세상 사람들은 맛볼 수 없는 생명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안에 있는 불뱀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제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저의 옛사람을 함께 못 박습니다. 이제 새사람으로 살게 해달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거듭남은 성령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예수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여러분들이 죄악에 머무른 자리로부터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으로 날마다 성장하는 십자가에 자리에 서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