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5장의 말씀을 마무리하시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영광을 취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능력 있고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영광을 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와 영광을 얻어 내가 가장 멋진 존재가 되고, 또 사람들의 부러움을 얻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데 왜 이런 모습을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자라면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 영혼 안에서부터 죄의 근원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결국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영적 열망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이런 근원적 모습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가 그렇게 영광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습이 모든 인간 안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런 죄성으로 말미암는 모습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나요?
1.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vv.41-43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왜 갑자기 이 말씀을 하셨나요? 바로 사람들과 다른 예수님 자신에 대해 설명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사람들의 영광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판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로 예수님 사람들처럼 타락의 한 영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인정하는지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 가장 영광스럽고 온전하신 분이기에 피조물인 인간들의 평판 따위에 흔들리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래 흙으로 만들어지 인간에게 하나님이 생기로 영광을 불어넣으시고 그 영광으로 이 땅을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잃어버린 존재가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결국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갔고, 인간은 그 결과 아주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죠. 영광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입니다. 어떤 완전한 존재, 거룩한 존재, 정말 모든 지혜와 모든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그 존재가 가지는 그 놀라운 영광과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 안에 그것들을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셨는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은 떠나가고 흙으로 만들어진 부끄러운 실체만 남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이 그 다음에 경험하게 된 결과가 무엇인가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마귀가 속여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속임수에 넘어간 결과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부끄러움을 목도하게 되고, 영광이 떠나간 육체만을 바라보게 되며, 그게 부끄러워 무화과나무로 가려야 되는 비참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수치감이라는 것은 인간 영혼 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이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육체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라면, 인간으로부터도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 떠나니까 볼품없는 육체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런 수치감을 가리려는 몸부림을 인생 내내 계속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끊임없이 신경 쓰게 됩니다. 참 쉽지 않은 인생의 여정입니다. 물론 어릴 때는 그게 그냥 남이 나를 칭찬하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정도였다가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 모두가 쳐다보는 것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청소년기 때에 호르몬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런 모습이 인생을 주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 내내 모든 선택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별것 아닌 존재로 그렇게 바라볼까봐 늘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실수를 하거나 자기 약점이 드러나거나 자기 진짜 능력이 나타나는 순간에 두려움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인생 내내 괜찮은 존재이고 싶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어떤 멋진 존재인지를 자랑하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을 때마다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집니다.
학교를 정할 때도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직장에 갈 때도 이 직장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괜찮은 직장이라고 여길까, 결혼을 할 때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물론 학교나 직장이나 결혼보다 우리 삶에 아주 매일처럼 영향 미치는 때는 물건을 살 때입니다. 결혼이 인생에 한 번만 합니다. 대학도 많이 가는 사람은 두세 번 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번 갑니다. 결정이 되면 쉽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자꾸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물건 따위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안에 하나님의 어떤 존재이신지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원래 천사보다도 못한 존재로 만드셨는데, 그런 인간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아니 만들어지기는 흠이 많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어떤 존재보다 멋있고 가장 아름답고 권위를 가진 영광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영광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내가 이런 좋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게 마치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자기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영광을 취하고자 자기 수치를 가리고자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되면 나타나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자기 영광을 취하기 위해, 자기 수치를 가리는 인생을 살기 위해 인생을 살게 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자리할 수 없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내 수치를 가리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렬해지면서 결국 그 결과로 자기 사랑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때나, 무엇을 결정할 때나, 어떤 말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내가 더 멋진 존재인지 드러냈으면 좋겠다라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존재에게 결국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또한 그 인간의 영혼을 파괴적으로 몰아갈까요? 하나님의 사랑 대신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만듭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는 인간이란 육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과학자들이 생각하듯 짐승과 다른 것이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하면서도 마음 안에 자기 영광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를 믿어도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의 습성과 영향력이 끊임없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몰아가는데, 그 과정 가운데 이 세상은 끊임없이 잘 하는거야, 네가 눈에 볼 때 좋은 거 선택해, 네가 자랑할 만한 그런 선택을 끊임없이 하라고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결국 나의 자기 사랑을 만족시키고자 이 세상의 사람과 연합하니까 결국 그 영혼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할 곳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존재,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존재는 결국 어떻게 하게 되나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광을 위해 온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왜 사람들이 예수님은 거부하고 다른 사람은 영접한다고 하는 것인가요? 예수님을 볼 때 나의 영광에 아무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강한 권력과 힘을 가지신 화려한 분으로 오셨으면 아마 그 예수님을 따르며 이 분이 메시아가 맞다라고 추종하는 무리가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며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아무리 봐도 별 것 아닌 존재이고, 나의 영광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것처럼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하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을 섬긴 것인가요? 나의 영광에 도움이 될만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나를 세상에서 더 멋지고 세상에서 문제없게 만들어 줄 그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잘 섬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진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은 너무 볼품이 없는 것입니다. 저런 분을 따라다녀 봤자 내게 아무 유익이 없겠다고 생각해서 배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철저하게 우리의 영광을 위한 분이 아니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며 예수를 잘 믿으면 너희 사업이 성공할 거야. 이 예수만 잘 믿으면 그러면 네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게 될 거야라고 속여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수를 믿는다고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었나요?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그러한 이 세상의 영광을 얻으면 정말 화려하고 멋지고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살 수 있을까요?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능력이 대단한 게 아니라 저렇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치부가 다 까발려지는데 그걸 다 감당하면서 저 자리까지 나오고자 하다니. 멘탈이 보통 멘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만 까발려지나요. 자기 아내, 자식, 일가친척의 모든 비리와 부끄러운 부분이 다 까발려집니다. 재산은 얼마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가 다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애씁니다.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모두 부인합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라도 그렇게 남이 저를 알게 되면, 부인하기는 커녕 가슴이 쫄려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습니다. 멘탈이 얼마나 강해야 그런 심각한 일들이 드러나도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이렇게 사람들이 영광의 자리에 오르고자 몸부림치는데 실체는 무엇인가요? 그 자리에 오르고자 몸부림치지 않으면 그저 사람들이 훌륭한 일을 한 분이야라고 인식할 사람들인데, 영광을 얻겠다고 한 결과가 더 부끄럽고 더 추한 결과가 되지 않나요?
이게 이 세상의 영광의 실체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들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거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내가 이런 큰 영광을 보이게 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를수록 ‘정말 더럽고 추하다'라고 기억하게 되는 결국이 나타날 뿐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실체입니다. 몸부림치며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데 결국 그것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부끄럽고 추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이 인생. 여러분이 예수님을 아직도 나의 영광을 위한 존재로 생각하고 계시다면 지금 착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런 영광을 얻는다고 진짜 영광스러운 게 아닙니다. 인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이런 흙으로 만들어져, 땅에 정말 죽으면 뿌려 버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아무런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그런 존재인데. 우리와 같은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영광스러울 때는 우리가 높아져서도 아니고, 남들이 볼 때 훌륭하다고 한다고 해서 영광스러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로 보이게 하실 때는 바로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모습이 별로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자 원하시나요?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그렇게 가난하고 배척받고 자기를 다 죽여 남을 살리고자 희생했는데도 제자들이 다 떠나가는 그런 인생. 그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볼품없는 모습으로 우리와 같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 살아나는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영광을 보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돈이 많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자를 통해 생명을 주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만드시면, 억 만 금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생명을 얻어내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예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그 놀라운 일이 나타날 때,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놀랍게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여러분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지금 번지수를 잘못 찾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이 그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보여, 자기 영광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영광보다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지를 보여주시고자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나요?
2.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습니다. v.44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사람들이 서로 영광을 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에는 서로 호혜관계라는 게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높여주면 그 높임을 받은 사람은 보답을 해야 그 사람을 높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높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줬는데 나는 그 사람의 이익을 주지 않으면 비방하고 공격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그 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한다고 누군가 나오면 그 밑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면서 당신만이 대통령 돼야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저 자원봉사 하려고 그럴까요? 아니면 이렇게 대통령 후보 나온다는 사람이 정말 감동적으로 멋져서 인생을 헌신해야겠다고 달려들며 그렇게 열심히 따라다니나요? 아닙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한자리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분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그렇게 했던 사람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자리를 나누어져서 모두 철밥통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역사 내내 반복될 것입니다. 이게 호혜관계입니다. 그래서 서로 영광을 구한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바로 그런 권력자 밑에 들어가 나의 이후를 더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생기기를 열망하며 그것으로 자기 영광을 삼고자 하는 그런 무리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어떻나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더 높아질까, 세상에서 어떻게 더 나를 멋지게 보일까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에 전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며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말씀이 이 땅의 육체로 나타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영광에 눈이 먼 자들은 예수님을 보며 뭐 이렇게 볼품이 없어, 목수의 아들이네라고 반응합니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자들은 예수를 향해 어떻게 반응하나요.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영접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세상 영광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분들은 이런 하늘 영광을 이제 알고 보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님이라고 하면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별로 관심이 없고 그 예수를 통해 내가 어떤 유익을 얻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교회에 다닙니다. 이건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처음부터 예수님은 이런 분이니까 난 자기 영광을 버리고 예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야지하는 모습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세 살짜리 아기가 갑작 어머니 아버지 이제 저는 어머니 아버지이 저를 높여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 아버지 봉양할 테니까 이제 열심히 제 인생을 부모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그러면 소름끼칠 것 같습니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게 뭔가요?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부모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러다 언제 가끔 부모가 감동하나요.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겨우 내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부모를 생각 했는데, 이젠 내가 부모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반응을 할 때 이제 좀 철이 들었구나 합니다.
성장할 때 어떤 과정이 필요하나요. 예수 처음 믿을 때는 다 자기를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이것도 구원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사용하셔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교회 처음 나올 때에 어떤 사람은 병 때문에 나오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이 필요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문제가 심각해서 해결하지 못하다가 오기도 합니다. 사실 다 자기 문제들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왔는데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다 모으시고 이제 말씀을 듣고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시며 거기서 이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40년, 50년 다녔는데 심지어는 내가 예수를 위해 살겠다고 목사가 됐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 영광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게 영적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이제는 그런 어린아이 신앙에서 성장해야 되는데 지금 그 갈등과 그 어려움 가운데 봉착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여태까지 하나님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믿어 와서, 그것을 벗어난 다른 시각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냥 나를 도와줄 좋은 분으로만 생각했지. 내 영광을 다 버리고 정말 예수처럼 살아가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아무도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서 그런 삶이 무엇인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예수의 영광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아무리 우리의 아름다운 점을 사람들에게 보여줘도 아무도 감동하지 않습니다. 부자를 보고 감동하며 영광스럽다 이렇게 느끼시나요.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빌 게이츠를 보니까 존경심이 막 솟아오르세요?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을까? 세상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돈에 눈이 먼 그런 엄청난 돈벌레들은 빌 게이츠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부자가 가진 그 힘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무리 멋진 존재가 되도 여러분이 진짜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어떻게 영광을 보이시나요? 우리 안의 그 영광스러운 영광의 영,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 가운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뭐가 문제인가요? 우리의 육신이 너무 단단하게 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영광을 주셨는데 엄청난 두꺼운 파카를 입은 것처럼 육신이 그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자기 사랑의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이 육신입니다. 나의 욕망을 위해 나의 쾌락을 위해 나의 안정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하고 싶어는 이 욕심. 그게 너무 습관이 됐고 세상을 사랑하고 아니 그게 몇 십 년 동안 살아온 그 관성대로 살고자 하는 육신이 영광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영광을 쉽게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육신이 강할수록 세상에 대한 사랑이 많을수록 영광이 안 나타나고 자꾸자꾸 육신만 벌떡벌떡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어떤 일을 행하시면 이 육신을 점점 쇠약해가도록 만드시나요?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6-17)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의 속사람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영광의 성령입니다. 그런데 사람 때문에 드러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요? 환란을 통해 육신을 깨트리십니다. 환란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입니다. 인생이 환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내 생각과 내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계속 경험합니다.
인생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 약점과 연약함이 있습니다. 환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적으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나쁘고 힘든 게 아니라 아니라 육신으로 그냥 살다가 죽을 존재 가운데 하나님이 이것들을 사용하셔서 이 영광스러운 속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란을 당할수록 하나님께 어떻게 하셔야 하나요? 찬양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제 안에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기회가 왔네요. 얼마나 놀라운 기회입니까? 그런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이런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고난은 더 깊어지고, 열매가 맺어지는 게 아니라 분노의 결과, 미움의 결과만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믿는 자만이 어떤 인생을 살 수 있나요.
고후 4:8-10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아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존재. 여러분 세상에서 이러면 못 살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겨 싸이고 갑자기 큰 일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 있도록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과정을 통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오히려 이 죽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드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드러내시고자 하는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 수도, 맛 볼 수도 없는 그런 하늘의 영광입니다. 이런 영광을 기대하며 하나님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그런 세상의 영광은 얻지 못했지만 하나님 저 같이 이런 부끄러움과 더러움이 가득한 존재를 통해서 이런 하늘의 영광 예수의 생명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는. 하나님이 그런 인생을 통해 바로 이런 예수의 모습을 보이는 여러분 되도록 만드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나요?
3.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vv.45-47
예수님이 이렇게 5장에서 이야기하셨더니 사람들 중에 저 사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어떻게 하지? 이런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알고 45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a]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
사람들 가운데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 아들이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사람들에게 이 말씀 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면 하나님께 가서, 저 유대인들이 이렇게 나를 박해하고 핍박하는데 하나님 저들을 혼내주세요 그러면 유대인들은 엄청 혼날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고발하나요? 45절 하반절을 보시면,
[45b] …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예수님이 아니라 모세가 고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세를 뭐라고 부르시나요? ’너희가 바라는 자‘라고 하십니다. 왜 이런 표현을 쓰셨을까요?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 모세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보 한 것처럼 자기들이 잘못을 해도 항상 이 모세가 그들을 증보해 그 죄를 벗어나게 해 준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자기의 보호자요 중보자라고 생각했던 모세가 그들을 고발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너희는 죄인이니까 예수를 믿어야 되고 예수가 이런 분으로 오실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세를 믿었더라면 지금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이들은 모세의 이야기를 믿고 있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 이야기도 안 믿었는데 예수님 이야기는 믿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구약의 가장 중요한 말씀인 모세의 이야기도 안 믿고 예수님 이야기도 안 믿으면 그럼 성경 전체를 안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절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어려운 것입니다. 복음은 받아들이면 쉽습니다. 성경 전체가 다 예수님 이야기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 써 있기 때문입니다. 원리가 간단하니까 제 설교가 그래서 늘 똑같습니다. 제가 다른 이야기 여태까지 한 번이라도 했나요? 일관되게 설교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할 무렵에는 저도 이 일관된 복음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만 해도 왔다갔다 할 때가 가끔씩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복음을 이야기하다가 여기서는 그래도 하나님이 나의 영광스러운 일들을 해주실 것 같은데 하는 착각이 제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개척할 무렵에 되서 정말 완전히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그 받아들임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계기가 바로 저한테는 바로 이 교회 개척하기 전에 2년간의 광명에서의 지하실 생활이었습니다. 상황적으로 보면 미국보다 그 삶이 더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요. 미국에선 돈 때문에 너무 너무 고통스럽고, 몸도 너무 아팠고, 공부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멀리 떠나 외국에서 그렇게 모든 것이 힘든 상황 가운데 사는 것이 어려웠는데 오히려 광명에서는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교회의 남는 공간을 주신 거라 월세도 안 내고 수도와 전기도 다 공짜로 썼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돈 걱정도 많이 할 일이 없었습니다. 몸도 옛날처럼 그렇게 다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상황은 인생 어떤 때보다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매일 잠을 못 잤습니다.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통하다가 매일처럼 죽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 보는 게 너무너무 두렵고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했는데 아니 왜 의 교회 지하실에 살면서 이사도 안 가고 살고 있어요? 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 신경쇠약이라는 게 미쳐버리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까운 곳에 있던 신식 도서관이 있었지만 거기서 혹시 아는 사람 만날까 봐 한참을 걸어서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관의 가장 깊은 구석에 가서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 아는 사람이 보고 목사님, 왜 평일 낮에 이러고 계세요?라고 할까봐요. 그 시간들 가운데 2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가. 뭐 이렇게 죽을 것 같고 잠을 못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내가 유학하고 이렇게 돌아와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증명하고 싶었는데 증명을 못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렇게 고난도 많이 겪었고, 성경도 남보다 많이 연구해서 목사들을 가르칠 정도가 됐고, 기도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을까라는 그걸 증명하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제가 하나님을 위해 목회를 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설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목회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정말 제 죄를 고백하며 정말로 목회를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거라면 남의 교회 지하실에 사니까 교회에서 김치도 주시고 월세도 안내니까 그냥 편안한 삶이었습니다. 돈 걱정 안 하고 이렇게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다 내려놓았습니다. 정말 다 내려 놓오니까 목회 안 하는게 차라리 편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편해진 순간 일주일 만에 개척하라고 하셔서 그때 개척을 한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내려놓는 여정. 이게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여정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 인생에 고난이 많으신가요? 너무 힘드신가요? 여러분 아직도 자기 영광을 추구해서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잘 안 들리시나요? 들을 때마다 너무 졸리고 힘들고. 왜 저 목사는 맨날 예수 이야기만 해? 이렇게 들리시나요? 그러면 아직도 예수님 말씀을 들을 만큼 자기 영광을 포기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이 말씀이 들리실 것입니다. 예수가 여러분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거짓말은 언젠가 다 뽀록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영광을 깨트리시고 이 세상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스럽고 영원한 아름다운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와 같은 흙으로 만들어내어진 존재를 통해서도 하늘 영광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그 선택의 자리에 계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진짜로 맛보면 다시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을 맛보고 그것들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