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5장의 말씀을 마무리하시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영광을 취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능력 있고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영광을 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와 영광을 얻어 내가 가장 멋진 존재가 되고, 또 사람들의 부러움을 얻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데 왜 이런 모습을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자라면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 영혼 안에서부터 죄의 근원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결국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영적 열망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이런 근원적 모습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가 그렇게 영광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습이 모든 인간 안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런 죄성으로 말미암는 모습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나요?
1.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vv.41-43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왜 갑자기 이 말씀을 하셨나요? 바로 사람들과 다른 예수님 자신에 대해 설명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사람들의 영광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판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로 예수님 사람들처럼 타락의 한 영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인정하는지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 가장 영광스럽고 온전하신 분이기에 피조물인 인간들의 평판 따위에 흔들리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래 흙으로 만들어지 인간에게 하나님이 생기로 영광을 불어넣으시고 그 영광으로 이 땅을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잃어버린 존재가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결국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갔고, 인간은 그 결과 아주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죠. 영광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입니다. 어떤 완전한 존재, 거룩한 존재, 정말 모든 지혜와 모든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그 존재가 가지는 그 놀라운 영광과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 안에 그것들을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셨는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은 떠나가고 흙으로 만들어진 부끄러운 실체만 남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이 그 다음에 경험하게 된 결과가 무엇인가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마귀가 속여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속임수에 넘어간 결과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부끄러움을 목도하게 되고, 영광이 떠나간 육체만을 바라보게 되며, 그게 부끄러워 무화과나무로 가려야 되는 비참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수치감이라는 것은 인간 영혼 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이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육체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라면, 인간으로부터도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 떠나니까 볼품없는 육체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런 수치감을 가리려는 몸부림을 인생 내내 계속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끊임없이 신경 쓰게 됩니다. 참 쉽지 않은 인생의 여정입니다. 물론 어릴 때는 그게 그냥 남이 나를 칭찬하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정도였다가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 모두가 쳐다보는 것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청소년기 때에 호르몬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런 모습이 인생을 주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 내내 모든 선택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별것 아닌 존재로 그렇게 바라볼까봐 늘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실수를 하거나 자기 약점이 드러나거나 자기 진짜 능력이 나타나는 순간에 두려움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인생 내내 괜찮은 존재이고 싶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어떤 멋진 존재인지를 자랑하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을 때마다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집니다.
학교를 정할 때도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직장에 갈 때도 이 직장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괜찮은 직장이라고 여길까, 결혼을 할 때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물론 학교나 직장이나 결혼보다 우리 삶에 아주 매일처럼 영향 미치는 때는 물건을 살 때입니다. 결혼이 인생에 한 번만 합니다. 대학도 많이 가는 사람은 두세 번 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번 갑니다. 결정이 되면 쉽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자꾸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물건 따위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안에 하나님의 어떤 존재이신지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원래 천사보다도 못한 존재로 만드셨는데, 그런 인간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아니 만들어지기는 흠이 많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어떤 존재보다 멋있고 가장 아름답고 권위를 가진 영광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영광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내가 이런 좋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게 마치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자기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영광을 취하고자 자기 수치를 가리고자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되면 나타나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자기 영광을 취하기 위해, 자기 수치를 가리는 인생을 살기 위해 인생을 살게 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자리할 수 없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내 수치를 가리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렬해지면서 결국 그 결과로 자기 사랑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때나, 무엇을 결정할 때나, 어떤 말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내가 더 멋진 존재인지 드러냈으면 좋겠다라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존재에게 결국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또한 그 인간의 영혼을 파괴적으로 몰아갈까요? 하나님의 사랑 대신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만듭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는 인간이란 육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과학자들이 생각하듯 짐승과 다른 것이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하면서도 마음 안에 자기 영광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를 믿어도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의 습성과 영향력이 끊임없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몰아가는데, 그 과정 가운데 이 세상은 끊임없이 잘 하는거야, 네가 눈에 볼 때 좋은 거 선택해, 네가 자랑할 만한 그런 선택을 끊임없이 하라고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결국 나의 자기 사랑을 만족시키고자 이 세상의 사람과 연합하니까 결국 그 영혼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할 곳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존재,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존재는 결국 어떻게 하게 되나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광을 위해 온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왜 사람들이 예수님은 거부하고 다른 사람은 영접한다고 하는 것인가요? 예수님을 볼 때 나의 영광에 아무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강한 권력과 힘을 가지신 화려한 분으로 오셨으면 아마 그 예수님을 따르며 이 분이 메시아가 맞다라고 추종하는 무리가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며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아무리 봐도 별 것 아닌 존재이고, 나의 영광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것처럼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하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을 섬긴 것인가요? 나의 영광에 도움이 될만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나를 세상에서 더 멋지고 세상에서 문제없게 만들어 줄 그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잘 섬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진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은 너무 볼품이 없는 것입니다. 저런 분을 따라다녀 봤자 내게 아무 유익이 없겠다고 생각해서 배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철저하게 우리의 영광을 위한 분이 아니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며 예수를 잘 믿으면 너희 사업이 성공할 거야. 이 예수만 잘 믿으면 그러면 네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게 될 거야라고 속여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수를 믿는다고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었나요?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그러한 이 세상의 영광을 얻으면 정말 화려하고 멋지고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살 수 있을까요?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능력이 대단한 게 아니라 저렇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치부가 다 까발려지는데 그걸 다 감당하면서 저 자리까지 나오고자 하다니. 멘탈이 보통 멘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만 까발려지나요. 자기 아내, 자식, 일가친척의 모든 비리와 부끄러운 부분이 다 까발려집니다. 재산은 얼마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가 다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애씁니다.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모두 부인합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라도 그렇게 남이 저를 알게 되면, 부인하기는 커녕 가슴이 쫄려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습니다. 멘탈이 얼마나 강해야 그런 심각한 일들이 드러나도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이렇게 사람들이 영광의 자리에 오르고자 몸부림치는데 실체는 무엇인가요? 그 자리에 오르고자 몸부림치지 않으면 그저 사람들이 훌륭한 일을 한 분이야라고 인식할 사람들인데, 영광을 얻겠다고 한 결과가 더 부끄럽고 더 추한 결과가 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