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우리 몸은 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쇠약해지게 됩니다. 우리 영혼 또한 그렇습니다. 제대로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면 쇠약해지고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몸이 약해지고 건강이 나빠지면 우리는 굉장히 신경 쓰며 치료하고자 하지만, 영적으로 쇠약해진 것은 증상이 각각 다르고 영적 문제로 인지하기 어렵기에 방치하다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영혼이 쇠약해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요? 첫 번째로, 인간 안에 있는 욕망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영적 건강의 중요한 지표는 인간 안에 있는 욕망을 건강하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나타납니다. 우리 안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야기됩니다. 사람은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욕망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도 파괴합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권력과 명예, 물질욕이 끊임없이 증대되는데도 절대로 다스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영적 건강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두 번째로, 감정 상태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영혼의 창문입니다. 직접 영혼 안을 볼 순 없지만, 영혼의 상태는 창문을 통해 비춰지듯 감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부정적 감정이 증대하여, 불안감, 우울, 미움, 질투가 평소보다 심각해질 때, 이것은 영적 건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깊이 나타나고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세 번째,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악화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고, 작은 문제도 집고 넘어가고 싶고 지적하고 싶으며,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분노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악화됩니다. 영적 건강이 좋지 않으면 예배 드리는 것이 지겨워지고, 찬양을 불러도 감동이 사라집니다.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듯, 영적 건강의 상태가 좋아지게 하기 위한 회복의 반응에 힘써야 합니다.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영적 양식을 먹으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영혼의 양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1.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vv.30-33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사람들이 예수님께 확실한 증거를 요구합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요? 이 질문 앞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7] …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9]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증거를 요구하고 있나요?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가시적인 증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마귀도 요구하였습니다.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 4:5-6)
예루살렘성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해발 780m 정도에 세워진 도시가 예루살렘이고, 성전도 높게 세워진 건물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서 뛰어 내리면, 성경의 약속대로 지켜주실 것이라고 거기서 뛰어 내리라고 마귀가 유혹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인데, 거기서 뛰어 내린 예수님을 천사가 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믿을 것 아니냐고 마귀가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시적인 기적을 통해 사람을 불러 모아 증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요구 또한 사람들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구약의 예를 들며, 모세의 기적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한 것일까요? 구약의 역사를 말해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약의 모세라는 훌륭한 자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렸다고 하니, 이런 기적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는데, 이는 모세의 기적과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는 기적 정도는 보여야 따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기적에 응답하시지 않은 것일까요? 이들의 전제 자체가 눈으로 보이는 육적인 풍요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받고자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를 하나님께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 욕망이 원하는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요구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이 안 됩니다.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다고 해도, 진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믿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입니다. 나사로는 죽은 후, 무덤 안에서 썩어버린 상황입니다. 중동의 더위 가운데는 시체가 빨리 썩기 때문에 죽은 지 하루 만에 매장을 합니다. 나사로도 이미 매장되어 썩어서 냄새가 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나사로를 살려내십니다. 온몸을 꽁꽁 두른 베옷을 입고 나사로가 걸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47, 53)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들이 이전에는 와서 하늘에서는 만나정도 내려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기적을 보여줬더니, 이제는 예수를 죽이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권력이 빼앗길까봐 두려워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입니다. 잘못된 욕망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셔도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기적을 보이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기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시발점으로 삼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이면 믿겠다고 하지만, 기적은 우리의 잘못된 욕망만을 충족할 뿐이며 하늘의 생명을 우리는 맛보고 경험해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32a] …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
이것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내린 떡으로 이스라엘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32b] …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모세가 준 만나는 하나님이 주실 참 떡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약에서의 기적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이 기적을 통해 진짜를 기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하늘이 아닌, 영적 하늘을 통해 생명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이 열려 이런 영적 생명에 대한 갈급이 있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 양식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이것은 단순히 밥 먹을 것을 구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 마실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들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매일처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 이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영적 양식의 필요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몸이 계속해서 채우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혼은 잘 못 느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일에 와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자신은 잘 챙기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매일매일 영적 양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뷔페를 먹는다고 건강할 수 없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양식을 사모해야 하기에, 일용한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매일 필요한 양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 양식의 필요성이 절대화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양식을 자꾸 충족하고자 하는 열망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미 많이 가지고 있지만 더 가지고 싶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영적 양식의 필요성이 갈구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a]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마 6:31-32a)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풍요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 걱정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명의 양식으로 염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이정도 세상의 벌이로 살아갈 수 있을까를 염려합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가 부족한 것 같아 걱정합니다. 소수가 누리는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 소수는 자기에게 주어진 풍요를 가지고 자기 한 사람만의 쾌락과 안정을 위해 쌓아둡니다. 성경은 이런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16] …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8] …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16-20)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많이 쌓아두었으니 놀고 먹고 쉬며 평안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영적 필요는 생각하지 못하고 땅에 있는 양식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경험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영적 양식이 얼마나 필요하고 필수적인가를 깨닫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32b]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b-33)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면 이방인처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의 먼저는 그 다음에 다른 것을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최우선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은 나중에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실체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고민하며, 영적 필요를 잊어버립니다. 제 인생 가운데도 눈에 보이는 것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다가 하늘의 양식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여 비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더 염려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에 비해 소심하여, 많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 집이 망하고 가족 내에서 상처를 가장 많이 입었습니다. 미래가 다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여 가난함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사업이 망한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의존의 대상,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나니 제 영혼이 병들이 시작했습니다.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것이 나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1년 후, 병들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전신 마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병들고 절망하고 좌절한 나머지, 어느 날 아침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상태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육적인 것에 의존된 사람의 결국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번 돈이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사라지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비참해졌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는 죽기를 바라고, 어머니는 제가 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가정이 힘들었지만, 은혜를 받고나니 똑같은 상황이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절박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의존했더니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찬양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영적 생명이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길 원하십니다.
생명의 양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2.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됩니다. vv.34-36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이 요구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핀트가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떡을 주실 수 있다고 하시니, 그것을 항상 달라고 하십니다. 내 삶을 위협하는 하루하루의 필요가 쭉 채워지길 원한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있으면, 삶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눈에 보이는 것에 인생이 달린 것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보다는, 내 인생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a]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
여기서의 떡은 ‘bread’이고 지금으로 하면 양식입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35b] …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먹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관계 맺는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관계를 절대로 맺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여기서 ‘상’의 가장 큰 본질은 잘해서 얻는 ‘상금’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생명이 없으면 만족이 없고 부정적 감정이 가득하여, 나와 남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소수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 다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올려두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돈을 믿고 사람을 믿습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것을 믿으면, 그 결과는 비참하고 파괴적입니다. 돈을 믿어도 돈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부요하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 가운데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떤 유익, 어떤 양식이 주어지길래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먹으면,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본 조건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의의 조건을 갖춘 자만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의한 것이 하나님을 못 만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의’라는 조건은 예수님을 먹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예수로 말미암아 이 생명을 가지고 누리고 계신가요? 이 생명을 지금이 아니라, 영원히 누리는 영생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과 의로운 상태로 관계를 맺어, 영원히 그 분을 알아가는 이 삶, 이것이 영적 생명을 얻어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게 되는 근원입니다. 이 생명을 지금도 먹고 마시고,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 이 땅에서도 예수로 말미암는 풍요를 누릴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영생의 풍요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