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구원의 확신이 흔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집이 부도가 났을 때, 건강이 나빠져 누워 지내야 했을 때, 삶이 힘들 때, 죄악으로 낙심될 때, 이럴 때면 제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 맞는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제가 구원의 확신을 감정과 상황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지나갑니다. 감정과 상황이 나빠질 때, 구원의 확신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영적 확신을 두면 구원의 확신이 아닌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을 무엇에 두어야 하나요?
1. 예정과 선택 교리입니다. v.37
[37a]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이 전부 다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모든 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하나님의 선택, 예정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교리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핵심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교리를 한 구절로 정리한 내용은 없지만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들을 기독교를 설명하는 교리로 만든 것입니다. 구원에도 예정과 선택이라는 중요한 교리가 있습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예정하셨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예정과 선택 교리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예정이란 말 자체를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숙명론처럼 미래가 정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예정했다면, 변화가 있을 수 없고 결론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졌기에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에 잘못 적용하여, 내가 천국에 가기로 정해졌으면 아무 것도 안해도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함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방임적 태도가 나타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며, 잘못된 영적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천국에 갈 사람,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있다면, 노력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전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은 예정과 선택이 우리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 안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 편에서 구원에 관한 신비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교리로 정리한 것입니다. 구원을 하나님이 예정하셨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정과 선택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설명이지, 운명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누군가의 인생의 결국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유추는 가능하나, 죽음의 순간까지 일관되게 한 사람의 인생을 추적할 수 없기에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고, 어쩌면 자기 자신도 속고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적 의를 위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정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왜 구원을 설명할 때 예정과 선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구원에 관해 미리 계획하셨으며 그 계획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시는 하나님임을 이해하기 위해 교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 또한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상도 끝이 정해져있는데, 이것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집을 지을 때도 철저히 계획하듯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은 작정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 대한 계획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획이 인간에 대한 구원계획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것을 예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정은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이미 철저히 세우셨으며 또한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이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계획 안에 있는 자들을 선택된 자, 성도라고 부릅니다.
[37b]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또한 이 계획 안에서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예수님을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ᄄᆞ라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기에 절대로 내보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은 자들을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여기 작정된 자라는 작정이라는 단어가 예정이라고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던 계획이 이방인에게까지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없으면 믿지 못할 자들도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정과 선택을 은혜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예수님을 만나야 구원을 받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데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이 은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저처럼 모태신앙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반대로 늦은 나이에 우연한 사건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개입이며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차이를 두셔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에 우리를 참여케 하시는 것이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예정과 선택에 대한 교리를 잘 알면 알수록 구원이 나의 노력이 아님을 통해, 구원의 근거를 상황과 감정에 두지 않고 실패하고 실망할 때도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견고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신앙이 좋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자신을 설득하며 신앙생활에 게으름을 피웁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늘 기대되고 감동되는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몇 년씩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해 구원이 여부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확고히 믿는 사람은 우리의 노력과 관계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저도 옛날에는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갈 거 같다는 생각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제 친구 아버지였습니다. 제 친구의 아버지는 교회 다니는 제 친구를 어려서부터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제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많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버지 때문에 오래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신학교 2학년 때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며, 심방을 요청했습니다. 병실에 가서 병문안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눈만 깜빡이고 계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제 친구는 자기 아버지가 구원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낙심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망연자실해서 울고 있을 때 어떤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남편도 자기가 교회 다닌다고 박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중풍에 걸려 병실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 친구가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일주일 정도 코마 상태였던 분이 깨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친구가 이어폰으로 아버지의 귀에 하루 종일 극동방송과 설교와 찬송가를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6개월째 그 설교를 듣고 계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찬송가를 틀어주었더니 아버지의 눈에서 독기가 나오더니,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하시니 포기하시고 가만히 평온히 듣고 계신다고 합니다. 제 친구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아서 아버지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아버지가 이렇게 되시면서 아버지를 간호하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상처가 치료되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실에서 친구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조문을 갔을 때 친구의 표정이 너무 평온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병실에서 설교를 들으며 우시는 것도 보고, 마음 가운데 아버지가 구원받았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도 구원이 일어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택과 예정에 대한 교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낙심하거나 흔들리지 말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 신앙이 근거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구원의 확신 가운데 확고히 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무엇에 두어야 하나요?
2. 하나님의 주권 교리입니다. vv.38-40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입니다. 주권은 자신의 뜻을 확고히 이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권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영구하지 않기에 자신이 뜻한 대로 모든 것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온전한 주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는데, 하나님에게는 이 온전한 주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장 중요한 뜻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을 행사하시는 장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왕은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통치지역의 범위가 다른 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권세가 점점 커지니 교만해졌고, 하나님이 그를 미친 사람을 만드셨고 7년을 들판에서 풀을 먹고 지내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느브갓네살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인데, 7년간 미친 사람이 되어 들을 헤매다가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이 주권으로 세상이 원하는 것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신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장 강력한 뜻입니다. 그래서 주권을 개입하여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예정이 구원 가운데 확실히 이루어지기에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우리가 볼 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각자마다 그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개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입은 예수를 통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볼 때는 이상한 방법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시는데,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을 의존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기에 은혜의 개입,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직 예수를 믿지 못하는 자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신기한 방법으로 구원하신 상황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대학부를 가르쳤을 때, 한 자매를 만났는데, 다른 자매보다 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자매였습니다. 귀신도 보고 몽유병도 앓았습니다. 이 자매가 어느 날 어떻게 자신이 예수를 믿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많이 시달렸는데, 꿈에서 귀신이 나타나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요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에서 귀신을 피해 도망가는데, 잠을 깨고 나면 진짜 집을 나와 산 속을 헤매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몽유병에 되어 문밖을 나가 산 속을 뛰어다닌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과 꿈의 세계가 점점 구분이 안 되고, 영적 개입이 심해져 정신과에도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살기도도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도 신내림을 받을 뻔했고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무당 되기에는 죽는 게 낫다 싶어 자살기도를 했지만, 자살기도도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에게 교회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의 역사가 강력한데, 교회를 다녔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점쟁이들은 다른 신을 모셔서 그렇다고 했다고 하기에 엄마가 딸의 머리를 자르며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자매는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하며 버텼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 자매가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선교지망생을 만나 이후에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가 사역하는 곳이 무당에 의존하는 귀신의 역사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도가 되지 않았고 죽이려고 하였는데, 자매가 그런 영적 싸움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기도하며 싸워가며 한 마을 한 마을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계획 안에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예수를 믿는 것 또한 우리는 너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며 생명의 길 가운데 서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낙심치 말고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실 것을 믿으며 기도할 때, 인생 가운데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이루어지는 것을 함께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