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초대교회 때 기독교 박해가 심했을 때, 기독교인들은 심지어 무덤 속에 숨어 예배를 드리면서 성찬식을 했습니다. 숨어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을 보았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소문을 내었고 이것이 초대교회 박해가 심각해진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도 진짜 살과 진짜 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와 살을 먹고 마셔야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 날, 성찬식을 예수님이 행하시며 이것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자신을 빵과 음료로 비유하시며 우리에게 먹고 마셔야 한다고 하신 것일까요? 이것을 먹어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1. 영생을 얻습니다. vv.47-55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이 자신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영적 반응인 믿음에 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면서도 ‘먹는다’라는 표현은 ‘믿는다’라는 표현임을 치환하여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왜 먹어야 한다고 표현하신 것일까요? 믿음은 영적인 것이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먹는 것으로 육신의 힘을 얻듯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살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야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만드실 때, 육체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육체 안에 생기를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영혼’이라고 합니다. 이 영혼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영적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아있게 됩니다. 만일 영적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죽은 영이 되며 죽은 영으로부터 말미암아 인간에게 더러운 영향이 오고 표출되는데 이를 ‘죄’라고 합니다. 내면 안에 죄의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는 죄의 결과로 행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이 죽었기에 영으로부터 죄가 뿜어져 나오고 죄가 결국 인간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시체가 악취를 뿜기며 구더기가 생겨, 병균의 온상이 되듯 인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죄의 결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사는데, 그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자에게만 주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 같은 의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가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으로 인해 더러운 존재가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의롭다 하심으로 자격 조건을 충족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로운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은 부부가 배우자와 관계를 맺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 하나님이 가지신 생명과 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관계적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질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모든 만남이 다 좋을 순 없지만, 좋은 만남 가운데 받은 에너지를 통해 인생 가운데 관계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인생이 행복했다고 기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만남을 갖고자 애씁니다. 그런데,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만남에 ‘결혼’에 대해 신경을 씁니다. 상대를 잘못 만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삶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 영원히 함께 한다면, 어떤 혜택과 복이 주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의 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요한계시록 7:15-17 말씀을 보겠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이것이 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가요?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의 ‘섬기다’라는 단어가 ‘예배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잘못된 대상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만 예배하면 되기 때문에, 온전한 예배로 말미암아 예배의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예배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반응하는 것인데, 이 땅에서 우리는 잘못된 예배의 대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예배하는 것들이 진짜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것을 소유할 때 갈망이 사라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 한 분이 운동화 매니아로서 운동화를 수집하고 그것을 팔며 지냈는데, 운동화에 꽂혀 모으기 시작했고 모든 돈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끝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수천 켤레의 운동화가 쌓인 곳에서 운동화 박스 사이에서 살고 있을 텐데, 지금은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예배하며 살아가지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대통령의 추종자가 있지만, 얼마 지나고 나면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배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실망하게 만듭니다. 돈, 사람, 어떤 것이든 의존하고 예배하면 결국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분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며, 그 분을 예배하는 자리에 설 때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두 번째로 완벽한 보호와 공급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왜 영생의 모습인가요?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욕망과 두려움으로 인해 고통합니다. 관계가 깨지는 이유도 한 사람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죄가 만들어 낸 욕망과 두려움입니다. 이 땅에서는 이를 채우기 위한 수고가 헛수고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이 욕망의 근원을 생명으로 채우시고,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베푸셔서 다시는 욕망과 두려움이 인생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약속하신 것입니다.
[17a]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마지막으로 어디로 가야하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 속에 놓인 가운데, 우리는 그 답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실패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고민하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안전하게 가장 최고의 자리로 인도하시는데, 목자가 양을 인도하기에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 안식의 모습입니다.
[17b] …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이 땅에서 우리는 잘못된 우상을 섬겨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믿었다가 실망하게 되고, 돈을 의존했다가 실망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처참한 결과로 인해 고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든 걱정, 두려움, 눈물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는 자리로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고, 유일한 방법이 예수를 먹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은 가기 싫어합니다. 지옥이 무서운 이유는 하나님과 완전히 대조되는 마귀와 같은 존재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를 지어 이 땅에서도 교도소에 가도 무엇이 무서울까요?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이고 악에 받친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갇히는 것보다 이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지옥은 아마 이것의 천배쯤 더 무서울 것입니다. 자비는 없고 이기성과 죄악만이 뭉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들과 탈출할 수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풍성한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 생명에 대해 관심이 없고 이 땅에서 내가 누리는 풍요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 땅의 육적 생명은 한계를 가집니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인간의 육적 생명은 한계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죽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뒤로 연장할 수는 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최고의 것을 먹고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 세도 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육신 안에 있는 영혼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 영적 생명을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것에 익숙합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우리도 똑같이 반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세상에서 풍요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추종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전에는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것을 미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갑자기 부흥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예언기도를 해주었는데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것들만 예언해주었습니다. 집회 중에 그 목사님이 대통령이 될 아이가 나오는데, 믿음을 보인 가정에게 그 복이 임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천 만원 되는 헌금을 하는 성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이 아닙니다. 영적 생명의 가치를 깨닫는 일,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삶이 성도의 큰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실 수 있나요?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방법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으로 영혼을 채워,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 안에서 인생이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새로워지지 못하면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영적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며 신앙 생활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임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적 생명이 중요함은 이미 많이 알지만, 영혼의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심각한 영적 질병입니다. 영적 생명이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 가지 싸인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에 대한 의존이 점점 커지며,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생각이 가득해지면, 소유욕이 점점 강해지거나 두려움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먹기 위해 더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2. 예수님과 연합합니다. vv.56-59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한 존재가 다른 존재 안에 들어갔는데, 그 존재가 다른 존재 안에 동시에 같이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영적 신비인 영적 연합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영적 존재의 진정한 하나 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하나님도 예수님 안에, 서로 다 같이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곧 성령이 오시면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계셔서 우리와 하나되지 못할 것 같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일한 인격과 본질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인간과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신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데, 성령이 들어와 사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충돌하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여서 배우자와 함께 살면,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아내와의 연합에 10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찾아오셨는데, 오시는 날 완벽하게 연합된다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그것을 배웁니다. 결혼해서 10년을 투자해서 나머지 시간을 연합된 상태로 살아가면 행복하듯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진 동안에 하나님과 연합을 위한 준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갈등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잠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했다가, 그러지 못하는 경우, 죄를 싫어했다 죄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 이 모든 경우가 정상인 것입니다. 성령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안계시면 아예 갈등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행동이 아닌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노력해도 불가능한 우리의 실체를 발견하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뒤에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처럼 우리를 만들고자 성령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성령과 동거하는 일이 익숙해지고, 그분의 음성이 우리의 자아를 넘어 들리기 시작하여 고난을 통해 자아가 힘이 약해갈수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져가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 100번 이상이 등장하는 이 단어는 ‘연합’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우리의 자격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어 예수를 먹기만 하고 마시기만 하면 신령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복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첫 번째로 자격 조건에 관계 없는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택하시고 온전케 만드실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만 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두 번째로 죄에서 자유케 되는 놀라운 복입니다. 자유케 된다는 것은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해 이 땅에서 생명이 주관하여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세 번째로 놀라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히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과의 완전한 연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하지 못하면, 완전한 연합은 불가능합니다. 두 사람이 부족하여도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더 깊고 친밀한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온전한 사람의 자리로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복입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시는데, 이 똑같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이 이렇게 반복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입니다. 참 생명을 우리가 맛보길 열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 좋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의 짧은 생이 끝난 후, 하나님과 분리된 자리로 가지 않도록 은혜와 축복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이 놀라운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