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마침 지난 주, 뉴스에 났던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3만 원 정도의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벼룩시장에서 그림을 샀는데, 몇 년 동안 집 거실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몇 년간 그림을 붙여두었다가 미술품 딜러가 그 그림을 보고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겼다고 합니다. 2년간 면밀히 그림을 평가한 결과, 르네상스 시대의 아주 유명한 알브레이트 뒤러라는 사람이 1,500년대에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이 판별된 후에 이 그림의 가격이 590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비싸게 평가된 후, 가장 억울한 사람은 3만원에 판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잘못된 피상적 판단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에서도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것, 가치 없다고 평가하는 것에 따라 끊임없는 선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선택하게 되는데, 개개인의 평가 기준이 다름으로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이 다릅니다.
이런 평가가 예수님에게 내려질 때,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별로 중요치 않게 판단하고 그 평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그것이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들과 같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평가하고 결론을 내린 무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에는 자신들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심판대 앞에서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 단편적 지식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vv.25-30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무리들은 예수님을 직접 죽이겠다고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 예수를 사람들이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지식은 소문에 근거한 단편적 지식입니다. 소문으로 듣고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소문으로는 들었는데 상황 가운데 내가 들은 상황과 다른 것이 벌어질 때 혼란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이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죽이겠다는 소문이 났는데, 예수님이 멀쩡히 나와 성전에서 가르치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음에 의문을 가집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는데도 잡으려고 하지 않았나요?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성경은 명확하게 때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소문에 근거해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판단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당국자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단편적 지식은 소문 만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었기에 종교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이들은 예수님이 어느 곳에서 오셨는지를 아는 상황에서 그리스도라면 그렇게 오실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지식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막연한 판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가 오시면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나요? 성경을 깊이 본다면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을 찾아와 그리스도께 경배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헤롯 왕이 놀라 이렇게 묻습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4-6)
미가에 나온 명확한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을 명확히 아는 자는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종교적 지식을 의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깊이 고민하며 질문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이 너무 막연한 정보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시대적 특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 통독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말씀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열정,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은 피상적 지식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설교를 들어도 말씀이 남아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자기가 궁금해 하고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깨닫게 되는데, 평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설교를 오랜 시간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의 중요성입니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듣는 모든 이야기는 흘러가버리는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서도 단편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가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과 반대되는 베뢰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마음이 너그럽다는 것은 들을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 이야기할 때, 받아들일 수 있나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삶에 필요한 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전도자의 말씀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말씀을 상고합니다. 그 말씀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걷는 길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28a]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
그들이 가진 지식을 예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피상적 지식만으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진짜 기원, 영적 기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b] …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이런 하나님의 영적 기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계신 것인데, 예수님을 겉으로 판단한 후에 그를 시골에서 온 사람으로 판단한다면 이 예수님을 믿고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점점 이 시대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어떤 것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분별하는 시대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 분별할 수 없이 미혹당하는 시대입니다. 100년 전에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종이로 된 신문을 보지 않고도 수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보의 홍수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예전에는 검증된 사람만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도 잘못된 정보가 트럼프가 당선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SNS를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믿었고 트럼프가 당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 때 진짜든 아니든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트려서 그 소문으로 인해 잘못된 결과가 나온 후 소문이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영향이 몇 년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음모에 의해 당선되었지만 4년밖에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서도 소문 수준으로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많은 설교와 성경 강의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 유튜브의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인기가 있을까요? 자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설교제목은 사람들의 관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 설교에도 조회수가 많은 영상이 있는데, 배우자 선택법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에는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종교적 콘텐츠를 하려면 자극적인 설교제목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유튜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확산을 위함이기에 잘못된 정보, 자극적 이야기만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얼마 전에 10만 명이 본 영상 하나가 떴습니다. 개인이 올린 영상 같았는데, 사람들이 클릭을 한 이유는 신약 시대에도 십일조를 내야 하는가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십일조를 안내고 싶어 하기에 그런 영상을 본 것입니다. 누군가 내지 말라고 하면 확신을 가질 수 있기에 본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기반은 편향적, 피상적, 자극적 요소입니다. 이렇게 항상 사람들이 자극을 받는 내용이 종말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 종말에 관한 영상은 수십만 개가 있습니다. 또 666에 대한 영상이 많습니다.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7-18)
교회 다니지 않아도 666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나요? 모두가 통제당하는 세계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의 의미를 가진 숫자 7이 3번 반복되는 777이라는 숫자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마귀가 하는 일은 불완전수인 6이 3번 반복된 것처럼 완전한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것으로 끊임없이 이상한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666을 바코드로 이해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무서운 시대가 임할 것을 말하며 바코드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시대가 변했더니 이제 바코드가 아니라, 베리칩으로 바뀌었습니다. 조그마한 칩만 심으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체칩으로 인간을 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명동에 3M쯤 되는 플랜카드를 지고 666 베리칩을 받으면 지옥에 간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베리칩을 대신한 666이 나왔는데, 코로나 백신이 666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백신 옹호론, 백신 반대론 모두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들을 종교적으로 결부시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백신 반대를 하는 데 그냥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의학적 용어를 사용한 뒤에 성경 말씀을 부분적으로 인용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합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 백신을 맞게 하고”(계 13:16)
마치 성경에 기록된 말씀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짐승의 표’가 백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바꾸어 마치 백신이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 받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암이 나더라”(계 16:2)
또한 원래 성경에는 ‘종기’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암’으로 바꾸고는 마치 백신을 맞으면 무조건 암에 걸리는 것처럼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충격을 받고 마음이 안 좋은 것이 이것입니다. 성경에 666이 백신이라고 확신하며, 성경을 가져와 이렇게 기록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서 막연한 정보, 이야기들,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 안에 두려움과 결부시켜서 하나님도 성경에 써놓았다고 하며 선동하는 것입니다.
백신을 맞든 안 맞든 개인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이런 성경을 왜곡되게 전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666은 우리가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는 인간의 생각의 중심을 의미하고, 손은 행동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즉 마귀적으로 살아가는 자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마귀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자는 마침내 불완전한 결국을 마치게 될 것을 성경이 기록한 것입니다. 백신 맞았다고, 베리칩 받았다고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백신 따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듯이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소문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신앙생활을 하시나요? 제가 드린 이야기도 여러분이 찾아보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아무런 고민과 의문이 없이 살고 있다면, 깊은 관계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대중처럼 종교적 형식은 갖고 있지만 진실한 관계를 발전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세상적 지식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vv.33-36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이 부활승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약속대로 부활하신 뒤에 승천하십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에서 오셨기에 자신이 돌아갈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인간은 육적 몸을 가지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니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자신들이 가진 세상적 지식으로 판단합니다. 결국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의문으로 끝나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실은 우리가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다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이 주어져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다 믿어진다면 감사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니지만 해결되지 않는 답을 가지면서도 의문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교회를 오래 다니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견고한 믿음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온전한 지식으로 믿음이 먼저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넘어서서, 견고한 답을 가지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부활과 승천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죄인 된 상태에서 꼭 필요한 것이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태어나면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유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의 자리에 갔다가 그 죽음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묶어둘 수 없기에 승리하셔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가지지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이 부분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똑같이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데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4, 17)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지만 동정녀 탄생은 못 믿겠는 것과 부활만 못 믿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조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을 받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의문과 질문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상고하며 묵상하고 고민하여, 말씀이 우리에게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성경은 보면 볼수록 아귀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완벽한 하나님의 설계 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탄복을 자아냅니다.
저도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기 전에는 성경이 오류가 있다 느꼈을 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보고, 자료를 찾다보니 내가 무지하고 무식했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완벽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복음을 전달하고자 하셨는지를 알게 되며, 저의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기적을 경험해서 믿음이 성장한 것이 아니라, 진리가 확실하다는 근거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 흐려지는 것만 같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만 다니면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고민하고 진리를 피상성의 수준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는 자리에 가지 않으면, 믿음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만 커질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처럼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