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요즘은 예전처럼 이메일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들어가면 99%는 스팸 메일입니다. 그 중 Dear pastor라는 메일이 가끔 있는데 이번 주에는 한글로 ‘목사님께’라고 온 메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자기가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미망인이고, 신실한 사역자를 찾고 있으며, 신상명세를 보내주면 수백 억 원을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메일을 받으면 바로 스팸으로 등록을 하고 지워버립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려한 말투로 본인은 포장해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반드시 검증해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대화에서는 크게 필요가 없지만 어떤 사람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주장할 때는 반드시 검증을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본문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그 말을 검증하겠다고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증언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자기가 재림 예수이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추종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비웃음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훨씬 심각한 죄일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가득한 종교사회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가장 무거운 신성 모독의 범죄입니다. 예수님의 주장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요한복음 5장 18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인데, 게다가 본인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며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를 취하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살해 의도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이 어떻게 사실인지 본문에서 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증언이 확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증언이 확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 존재의 근원과 결국을 아는 분이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vv.14-15
1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14a]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증언은 옳지 않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증언해도 그것이 옳다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14절 하반절입니다.
[14b] …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 즉 예수님은 한 존재의 근원과 결국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근원적 차이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근원과 결국을 알지 못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근원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많이 양보하여 요즘처럼, 한 사람의 생에 대해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정확히 남긴다고 하여도, 본문에서 말하는 근원은 단순히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생물학적 근원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영적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입니다.
인간의 시작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가. 예전에는 신화나 종교로 인간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통상적으로 인간은 무생물로부터 진화되었다고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무생물이 생물이 되고 고등생물이 되어 마침내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믿는 것은 결국 자기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편 이것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짐승과는 구별되는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에, 뿌리와 근원을 찾고,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 애씁니다.
또한 죽음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서도 많은 종교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두 가지는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과 환생입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은 사후에 그저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이고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여러분이 여기 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듣고, 그 근거 하에 현재의 삶을 다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른다면, 우리에게 현재는 욕망을 충족해야 하는 일시적 상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미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무리 풍족한 삶을 살아도, 의미 없는 삶을 인간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 인간의 근원과 결국에 대해 아는 분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신 예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15절에 나옵니다.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이 문장을 둘로 나눴을 때, 하반절에 ‘육체를 따라’가 생략된 형태입니다. 생략된 어절을 넣어서 읽으면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있으니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세상 왕의 아들처럼, 위대하고, 능력도 있고, 그들을 구원할 만한 존재여야 하는데,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보이자, 죽여버리기로 계획한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의 근원과 결국을 모르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판단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육적인 것으로만 판단하시지 않고 영적인 차원에서, 우리 근원도 아시고 우리 미래도 아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자기근원도 죽음 이후도 알지 못한다면 생존을 위해 애썼지만 무의미하게 이 땅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로 인해 비참하고 추하고 악랄한 존재로 변모되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그 영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육적 눈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괜찮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멋진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죄가 하나도 없어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온전함을 이야기합니다.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 자기 욕망과 두려움에 매이지 않는 힘, 하나님만 섬김으로 만족하여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세울 수 있는 힘,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진 근원이며 그리고 이 땅에서 예수 믿는 자로 살아가며 결국 하늘나라에서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때에 우리는 존재를 회복하는 것이기에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공허하며 고통합니다.
흔히들 ‘악’이나 ‘마귀’라고 하면 사람을 죽이는 등의 악랄한 행동을 떠올리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로,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자기가 욕망하는 것으로 올려놓고 그것들을 섬기며 그것이 마치 생명과 기쁨과 만족을 가져올 것처럼 추구하는 이 인생의 모습을 바로 ‘마귀’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육적인 것으로만 판단하면 인간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근원을 알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삶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된다는 결국을 받아들이고 감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증언이 확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이 함께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vv.16-20
6절 말씀입니다.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 증언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예수님은 본인이 혼자가 아니며,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혼자셨지만 성령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시면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앞부분에는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는데 같은 내용을 뒷부분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의 주장이 참되다는 말씀이십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능력으로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병자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능력을 행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것은 사람들의 병이 낫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믿고 영생으로 나오게 하는 부르심이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나타난 능력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은 질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은 뒤에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인데 반대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예수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들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희는 나랑 관계없는 자들이라고 하시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다는 사람들일수록 하나님과 관계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시대뿐 아니라 예수님도 마태복음 7장 1절과 23절에서 경고하셨습니다.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본문은 심판의 절입니다. 사람들이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일어난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무지해서, 이런 유익이 아니면 아무도 예수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기에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그 어둠으로부터 구원하여 예수께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적과 은혜를 베푸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나아 왔으면 이제 그분을 통해 보인 하나님의 본질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이 보일지를 고민했어야 하는데 여전히 처음 수준에서 어떻게 더 부자 되고, 더 건강해지고, 더 기적을 볼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요즘에도 코로나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전쟁이 날 것이니까 이민을 가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창세기부터 역사 내내 죄를 지었고,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개의 사건보다 우려해야 할 것은 그것으로 인해 요동치는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안다면, 이런 거짓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죽었던 자이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자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품 안에 품으셨습니다. 내년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는 자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자극하는 거짓 예언자들, 이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말씀도 전하고 귀신도 쫓고 능력도 행했는데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21절입니다.
마 7:20-21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내가 드러나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부유하고, 내가 영향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자라면, 그 은혜에 반응해 우리의 근원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이 땅을 살고, 내 욕망을 죽이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나타나는 그 열매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아름다움. 그것을 맛보지 못한 자들이 이 땅에서 인간의 영광만을 붙잡고자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자기를 영광스럽게 포장해도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 고난 가운데도 무릎 꿇지 않는 믿음,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세상이 불안에도 하나님이 말씀 가운데 견고하게 걸어갈 수 있는 믿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 모습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고 자기 영광을 포기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여러분이 바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런 영광을 보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