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은행 심부름을 간 일이 있습니다. 은행 근처에 다다라서야 제가 챙긴 도장이 잘못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집에 다녀오면 은행이 문 닫을 시간이고, 고민을 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단 은행에 들어갔습니다. 은행 직원이 저를 한참을 쳐다보더니 김 아무개 사장님 아들 아니냐고, 얼굴이 닮아서 알아 보았다면서 일을 순탄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외모와 성격을 닮듯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를 아버지로 섬기는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성경은 명확하게 이 두 부류가 존재하며 그들의 운명이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맨 처음, 하나님의 아들들과 마귀의 아들들에 대해서 언급한 곳은 창세기 6장 2절입니다.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 절에 ‘마귀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들을 대신 세상의 딸들이라고 부릅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인에서 시작된 저주받은 백성들을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고 오해를 하는데 창세기 6장 바로 앞인 5장에 아담의 계보가 기록되어서 그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식들이, 마귀를 섬기는 세상 사람들과 결혼을 하였고, 거기에서 타락과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자식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마귀가 낳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영적 근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마귀자식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나요?
1.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vv.37-40
37절 말씀입니다.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대적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육적으로는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은 육적 영역이 아닙니다. 육적 차원만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밀어내듯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이 말씀이 그 안에 없는 정도가 아니라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마귀가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의 자손들로 붙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열망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만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나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면 집안에서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가족 내에서 갈등과 다툼이 늘 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얻고, 권위를 세우고,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의 가식과 거짓을 드러내버리신 것입니다. 이들은 안식을 주지 못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감시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벌주며 자기들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수단들은 참 다양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살던 당시에는 사람들이 종교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을 지킴으로 자신은 축복 받은 존재이며, 남들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받기 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과장하며 포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무능과 수치가 드러나면, 그것을 드러낸 존재에게 분노합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이 없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 적대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38절입니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예수님의 아버지와 바리새인이 아버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의 자식인가는 아직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며 자기들은 하나님에게 속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며, 너희들이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다르다’고 하십니다. 영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이들은 육적인 것밖에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이들의 주장도 계속됩니다.
[39a]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두 가지 복은, 땅에 대한 약속과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것이 육적으로 이루어졌나요? 본문의 대화가 이루어지던 당시, 아브라함이 죽은 지 2천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넓은 땅 유브라데부터 애굽강까지 수천 키로에 이르는 땅이 이들에게 주어졌나요? 인구가 많아졌나요?
아닙니다. 작은 팔레스타인의 땅마저도 로마에게 빼앗기고 나라를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로마와 같은 큰 나라들에 비하면 유대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영토는, 경쟁과 분열이 아닌, 평화와 사랑과 희생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확장될 것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영적 생명이 없기 때문에 육적인 것밖에 바라보지 못합니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어떻게 더 잘 먹고 잘 살까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생명을 받은 우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9절 하반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9b]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아브라함의 인생은 딱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 둘은 뗄 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백세에 얻은 아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인생의 가장 큰 핵심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반대로, 마귀에게 속했으며 생명이 없기 때문에, 믿음도 없고 순종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고자 길길이 뛰고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이 있는 진짜 아브라함이 백성에 대해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많은 자손’은 주일 이 시간, 예배드리는 모든 믿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믿음이 있기에, 영적 생명이 있기에, 세상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통해 많은 확장되기를 열망하는 것. 그러한 꿈을 가지고 척박한 땅에 오셨던 선교사님들 덕분에 때문에 우리 또한 생명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합정동에 가면 선교사님들이 묻히신 양화진 묘지가 있습니다. 한국 땅에 와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특히나 가슴이 뭉클해지는 곳은 아이들만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다른 무덤처럼 크지도 않고 작은 공간에 태어난 지 여러 개의 비석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생명의 대가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이 지금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열망하며 삶은 바친 것,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겠지만, 생명이 있는 자라면 그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으로 그 영적인 나라에 대한 꿈을 꾸지 못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4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는 이 땅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잘 해결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남보다 잘 사는 인생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자들이 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즉 눈 먼 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 전염병이 돌아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됩니다. 딱 한 사람만 병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볼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눈이 먼 이 도시에 원래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이 왕노릇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노예처럼 협조하지 않으면 음식과 물자로 조종하고 폭행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다 보고 있습니다. 부조리하고 잘못됐다는 걸 목격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는 눈 먼 자들이 왕 노릇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속입니다. 그 세상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마치 장님인 것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나요. 여러분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고 그것이 열망되지 않는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지금 관심 기울이고, 목적하고, 꿈꾸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눈을 열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말씀에 대한 사랑이 회복될 수 있도록 열망하셔야 합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제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열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마귀의 자식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나요. 욕심을 따라 행합니다. 31절 상반절입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나요?
2. 욕심을 따라 행합니다. vv.41-47
[41a]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듯, 마귀에게 속한 자는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의 자손인지 예수님이 명확하게 말씀을 안 하시니까 서로 엇나간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반박이 41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41b] …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음란하지 않다는 것은 이들이 순수한 혈통으로 내려 온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여러 번 계보가 섞이면서 이민족과 섞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쭉 내려온 계보로, 근처 이방 피가 섞인 음란한 사마리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42절에 말씀하십니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면 당연하게 나타날 결과가 43절입니다.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하신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반응해야 하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44절 상반절에 그 핵심 원인이 나옵니다.
[44a]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이들은 다 종교인들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너희 아버지가 마귀라고 하시니 예수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욕심입니다. 왜 욕심이 마귀의 가장 중요한 모습인가요?
욕심은 영적 생명이 없는 공허로 인한 결과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이 가득하면 그것이 충만한 상태이며, 안식이며, 평화이며, 만족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적 생명이 떠나 버리니 영혼이 공허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공허는 항상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열망합니다. 그 당연한 결과가 욕심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저주라고 합니다. 저주란 바로 하나님이 생명이 비워져서 영적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욕심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살던 존재가 더 이상 생명을 받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온 인류가 그 공허를 채우고자 욕심으로 몸부림치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마귀의 모습입니다. 그 욕심의 결과가 44절 중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44b] …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
욕심의 끝은 살인입니다. 칼로 누구를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라 욕심의 본질은 나 자신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파괴하고 짓밟고 뺏더라도 나만 만족하고자 하는 것, 이 파괴적 본능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정반대되는 속성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거룩할 수 없고, 자기 욕망만을 최고로 살아가니까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생명 없는 모습으로 욕심을 부리며, 사랑하지 못하여 다른 모든 존재를 파괴하는 존재인 이 마귀의 마지막 모습이 또 어떻게 나타나나요? 44절 하반절입니다.
[44c] …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여기서의 거짓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거짓, 즉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로 끌고 가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비진리를 확산합니다. 이를 에베소서는 2장 2절과 3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엡 2:2-3 [2] 그 때에 너희는 …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 [3] 전에는 우리도 …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귀가 공중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 풍조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풍조는 사람들의 욕심에 부합합니다. 모든 사상, 모든 풍조, 모든 유행은 다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진리이신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예수 외에는 소망과 생명과 의존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비진리를 말합니다. ‘돈이 최고이다, 모든 재화를 너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 인생을 즐기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예수를 생각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더라도 악세사리 정도로 여기고 그분에 대한 진짜 의존을 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것에 속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자리에 자꾸 다른 것들을 집어넣습니다. 돈, 게임, 명품, 운동, 자동차, 음식 등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믿고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더 많이 얻고자 몸부림치는 이 세상의 풍조. 이것이 마귀의 영향력이며, 마귀를 섬기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떤가요? 이번 주에 예수님 때문에 눈물 흘리고,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셨나요? 하나님의 백성도 물론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 세상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내가 내 삶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몸부림이 부질없다는 것을, 내 손으로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음을 겸손히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성숙이며 성화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믿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직접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45절입니다.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이 무능함을 고백하며 겸손해지기는커녕 자신들의 무능이 폭로되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47절에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선고는 이렇습니다.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식이기를 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이 자식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는데 하나님이신 분으로부터 ‘너희는 하나님과 관계없다’는 선고가 내려졌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고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이 세상이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며, 나의 무능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깊이 붙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