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요한복음은 나머지 복음서와는 다른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경우가 많고, 또한 예수님의 많은 표적 중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려는 목적에 부합한 일곱 가지 표적만 취사선택하여 기록합니다. 요한은 왜 이 책을 기록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0장 30, 31절을 보시면
요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기록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시며, 구약이 약속하던 메시아이시니, 그분을 믿어 생명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읽지 않으면 요한복음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문맥과 관련 없어 보이는 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0절과 21절입니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다른 성경에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구절이 없고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헬라인들은 아마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에 대해서도 듣고,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던 장면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직접 갈 수 없으니까 제자 중 한 명인 빌립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겠지요.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보다 못한 지옥의 불쏘시개라고 여겨 직접 대화하거나 밥을 먹거나 심지어는 인사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고귀한 신분일수록 영적으로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 이방인과 더욱 철저하게 거리를 두었는데 지금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자 제자들도 고민을 하게 됩니다. 22절입니다.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빌립이 혼자 결정할 수 없어서 안드레에게 말하고, 또 둘이 같이 예수님께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나겠다’ 혹은 ‘만나지 않겠다’ 답을 주지 않으시고 그들을 무시하신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뒷내용이 삭제되었다거나, 예수님이 그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셔서 만나지 않았다고도 추측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헬라인들이 왜 등장할까요? 그리고 성경은 왜 예수님이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이 진행할까요? 이방인들이 등장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했나요? 이사야 62장 2절입니다.
사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
메시아가 이스라엘만의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지으신 예수님은 온 세상의 메시아이십니다. 그렇기에 온 세상 이방 나라들이 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직 예수님이 모든 영광을 드러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요한은 1장부터 12장까지는 표적에 대해, 13장부터는 예수님이 보여주실 영광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에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표적의 책’ ‘영광의 책’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해설합니다. 12장까지 표적에 대해 이야기했고 13장부터 영광에 대해 설명하려는 그 시작점에 이방인들을 등장시켜, 이들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 주실 영광을 목도한 이방의 증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입니까? 아까 21장에 읽은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목격하는 증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자마자 예수님이 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예수님이 실제 이방인들과 대화를 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의 성취이심에 초점을 두고 있고, 그 외의 내용들은 생략하고 필요한 부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예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광’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영광은 한 존재가 가지고 있는 숨겨졌던 본질이 드러났을 때를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영광을 종종 이야기합니다. 제자들도 이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시골 변두리에서 지내시다가, 이제 예루살렘에 오셨고, 사람들도 호산나를 외치고, 때가 되었다고 하시자 이들은 ‘영광’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경쟁자들을 짓밟고 1등의 자리로 올라가고, 몸부림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 보여줘야 하는 세상의 영광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영광을 보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떻게 영광을 얻으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영광을 얻으시나요?
죽음을 통해 영광을 얻으십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이 영광스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밀알을 황금으로 치장해야 할까요? 무엇을 하던 밀알이 죽어버리면 영광도 끝이겠지요. 인간이 영광을 드러내기에 가장 피해야 될 것은 죽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 죽는다고 하십니다. 땅에 묻어서 썩어져서 열매를 얻는 것, 그것이 영광스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보존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확장시키고,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얼마나 피곤한 인생인가요. 이것과 반대되는 예수님의 방식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25절입니다.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우리가 알고 사는 방법과 정반대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몸을 보기 좋게 만들고, 다이어트를 하고, 공부를 하고, 높은 곳을 올라가고, 경쟁하고,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이 구절의 ‘생명’은 사람이 이 땅에서 자기 존재를 보존하고자 애쓰는 모든 생존 본능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린도전서 15장 42에서 44절입니다.
고전 15:42-44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인간은 육적으로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인간은 영과 육, 두 가지가 합쳐진 존재입니다. 육적 몸은 영적 몸을 잠시 지니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택배를 받으면 포장 박스는 벗겨내어 버리게 됩니다. 가끔 손바닥만한 물건을 받는데 대여섯개의 상자 안에 쌓여올 때도 있습니다. 과대포장이지요.
여러분도 대여섯 개의 상자로 나를 감싸고 계시지는 않나요? 출신 학교, 돈, 사는 지역, 어울리는 무리, 물건. 그것들은 수치스럽고 썩어질 것들입니다.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믿는 자들의 믿음 있는 태도를 요구하십니다. 이 삶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하면 진짜 좋은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남들과 나를 비교하다 보면 위축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것은 도토리 중 조금 맨질한 도토리, 조금 뾰족한 도토리일 뿐입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알고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기꺼이 바치실 수 있는 것이고, 우리한테도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만 하면서 여전히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나를 죽이기는커녕 나를 증명하고 드러냅니다.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부끄러울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갖지 못해서나 예수님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참으로 섬기길 원한다면, 진짜 영광이 무엇인가 눈을 뜨셔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옛 사람을 죽이시고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겠다라고 하십니다. 이 같은 말씀을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나를 영광스럽게 만들고 내 뜻대로 살고 싶은 세상과 동일한 욕구가 있지만, 그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도 힘들지 않으셨을 것 같으신가요? 예수님도 고민하십니다. 27절입니다.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우리는 세상의 영광을 얻고 싶은 욕구를 포기하지 못해서 고민합니다. 여러분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볼품없는 지를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은 자만 우리는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민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된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죄가 되셔서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십니다.
우리는 짐작하기도 어려운, 완전한 연합이 깨어진다는 것, 완전하신 하나님이 죄가 되신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어서 기도하십니다. 28절 상반절입니다.
[28a]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려면 예수님이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죽여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지 드러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십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광을 얻고 싶습니다. 내가 안 되면 자녀라도 영광스럽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길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썩는 길이며 수치스러운 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스러운 길은 우리 육적 생명이 죽임을 당해서 하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실 때 주눅 들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자기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하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제 인생을 통해 제 육적 생명이 죽어서 하늘의 영광이 저를 통해 나타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 쳐서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존재인지를 증명해도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하늘의 영광이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영적으로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나요? 28절 하반절입니다.
[28b] …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예수님이 갑자기 멋있는 모습을 변하셨나요? 예수님 그대로이십니다. 그러나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이미 이뤄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예정되고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영광인가요?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신지, 하나님만이 가지신 본질이 확 드러나는 그 아름다운 영광이 이제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영광이 이에 비할 수 있나요?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늘의 영광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 그 인내와 긍휼, 오래 참음,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분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걸그룹 멤버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어서 가출 청소년을 향한 긍휼함으로, 미용일로 홀로 세 딸을 키우면서도 방 두 개 중 하나는 가족이 자고, 다른 한 방에는 가출 청소년 친구들을 수 명씩 데리고 살았습니다. 학교에 찾아가고, 합의금을 물어주고, 학생들을 달래서 집으로 보내고, 먹이고 재우는 일을 몇 십 년씩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무 희귀해서이겠지요.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수 있어서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29절입니다.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하늘에서 난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자 이렇게 오해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예수님이 이미 알고 계셔서 들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통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하늘의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확증시키기 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1절부터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사람들이 거짓 가치, 헛된 영광을 붙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마귀 때문입니다. ‘너는 이걸 가져야 행복애. 이렇게 되어야 멋진 거야’라는 거짓말을 퍼트린 자에게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32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셔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나요? 33절입니다.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길을 요구하십니다. 마귀에게 속아 거짓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영광스러우며 썩지 아니하는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