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나는 무엇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명하시는 선언이 일곱 번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선언이 오늘 1절에 나옵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
예수님의 참 포도나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포도나무로 자주 비유되던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호세야 10장 1절을 보시면
호 10: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열매 맺는 존재, 즉 포도나무로 묘사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 비유는 이들이 좋은 포도를 맺는 자들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항상 이사야 5장 2절 말씀처럼 부정적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사 5:2 …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은 이들을 잘 가꾸시고 돌보셨는데 결실은 항상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과 다른 나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열매는 이사야 5장 7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열매는 정의와 공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불의와 포학이었습니다. 공의란 하나님의 성품의 하나로, 온전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속성입니다. 공의에 기반을 두면 사랑과 긍휼로 남을 대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정확한 기준에 의해 누군가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판결을 내는 것을 공의라고 하지만 성경의 공의는 그것과 약간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받아주신 사랑의 반응이 바로 공의입니다.
정의는 무엇인가요? 공평한 판단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어떤 대상에게 반응할 때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모습을 고려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약자를 짓밟고 반대로 강자 앞에서는 아첨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정의롭게 반응하는 존재는 나의 이익이나 상대방의 모습에 관계없이 인간이 받아야 할 모습에 따라 반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은 이렇게 공의와 정의로 반응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과 같은 성품인 공의의 사랑을 할 능력 자체가 없습니다.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불의와 부정의가 판을 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을 택하신 뒤에 ‘너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약자를 품는 나의 방식으로 공의와 정의를 보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자 하나님이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입니다.
렘 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이스라엘에서 썩은 열매밖에 나오지 않자 하나님은 새로운 가지를 일으키셔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왕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에 실패했던 모든 것을 완성할 분이시기에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예수님은 ‘너희들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나요?
어떻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나요?
1. 하나님의 훈육이 필요합니다. vv.1-2
첫 번째로 하나님의 훈육이 필요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스라엘은 건조하고 햇볕은 뜨거운 기후이기에 고대로부터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는 영양가가 높고 달아서 건포도로 먹을 수도 있고 특별히 포도주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하기 때문에 포도주와 섞어서 희석한 채로 마셨습니다. 포도나무 농사는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농사였습니다. 농부가 열매를 잘 내기 위해 두 가지를 한다고 이 절은 이야기합니다. 2절 상반절을 보시면
[2a]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
이 구절은 성경에서 난제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한다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다른 구절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시면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5절에서는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6절은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버려진다고 합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2절에서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었다고 다 공의의 열매를 맺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 잘라버리시나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롭고 은혜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예수님께 붙어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사실 이 구절이 난제였던 아주 중요한 이유는 ‘제거하다’는 단어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제거하다’의 원어는 ‘아이로’로 신약성경에서 100번 넘게 사용된 흔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없애다’라는 뜻 외에 더 흔하게 쓰인 의미는 ‘들어올리다’입니다. 이 단어를 넣어서 본문을 읽어보면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 올려주시고’라고 번역해 보면 어색하게 느껴져서 번역자들이 ‘자른다’의 의미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대의 농사기법을 고려하지 않은 번역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요즘은 성경을 해석할 때에 본문의 맥락을 연구하는 성경 배경학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포도는 사과나 오렌지처럼 나무에서 열매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퍼져 나가는 덩굴입니다. 요즘에도 엄청난 철탑의 철사 줄을 따라 포도가 한 송이씩 매달리게 됩니다. 고대에는 단단히 철사가 없었을 테니 나무로 기둥을 삼고 얼기설기 가지를 끈으로 묶어서 가지를 고정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덩굴이 바닥으로 기어가며 흙속으로 파묻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햇볕을 받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에, 바닥으로 기는 덩굴을 ‘들어 올려서’ 열매를 맺게 해주었습니다. 이 ‘들어 올려’의 의미를 생각하며 2절을 다시 읽어 본다면
[2a]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 올려주시고 …
즉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닌 기간과 상관없이 ‘초신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다면 종교적 삶이 아니라 진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인생가운데 열매를 맺지 못하던 긴 세월을 인내하시지 않고 ‘제거’하셨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예수에게 붙어서 반드시 열매를 맺도록 은혜로 개입하십니다.
이렇게 열매 맺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한 예수 안에 있어 열매 맺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냐면 2절 하반절입니다.
[2b] …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미 열매를 맺는데 하나님이 더 깨끗하게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농사 용어로 ‘가지치기’입니다.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그냥 큰 과실이 열리는 것은 아니고 너무 많은 열매로 영양분이 집중되지 못할 때 가지를 잘라냄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가지치기에도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시기와 양과 어떤 가지를 제할지에 대한 안목 등이 농부의 노하우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좁은 소견으로 무엇을 결정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로 고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당한 시점에 필요 없는 것들을 잘라내심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가지를 잘라 버리시지 않습니다. 사과나무가 심기운 바로 첫 해부터 과일을 생산할 수 있나요? 7,8년 정도 기다림 끝에, 뿌리 내리고 견고해졌을 때 열매를 냅니다. 가지치기는 성장한 후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진행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그 분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어떠한 열매를 얼마나 맺을 인생인가 하는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판단하시며 개입하십니다. 이러한 가지치기를 성경은 다른 말로 ‘징계, 훈육’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을 보시면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
일반적으로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부정적 의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징계는 ‘파이데이다’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어린아이를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다’라는 훈육이기에, 징계보다는 훈육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훈육을 받는 아이들의 입장은 어떤가요? 히브리서 12장 10절, 11절입니다.
히 12:10-11 [10] …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의 훈육이 찾아오면 슬퍼 보이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 못하게 하고, 내 생각에 내게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욕망이 강렬한데 그 욕망이 좌절될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사실 인생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우리 관심은 육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풍요와 쾌락만 위해 사는 인생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인생 가운데 이런 훈육이 한 번도 없었다면 아직도 영적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내 인생에 많이 개입하셨다면 여러분은 열매 맺을 만큼 성숙된 존재이기 때문에 가지치기가 자주 일어났던 것입니다.
무엇이 더 큰 은혜인가요?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그것으로 불필요한 부분들이 잘려나가고 진짜 중요한 것이 남게 되었다면 그것이 참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제 인생에서도 많은 가지치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클래식을 사랑했습니다. 돈과 시간과 열정을 붓고, CD 를 사 모으고, 음악회를 참여하며 열심히 사랑하다, 집이 어려워지고 결혼하고 유학하며 자연히 사그라졌는데 유학 마지막 해에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삼십만 원 짜리 오디오를 십 만 원에 살 기회가 있어서 기도해 보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어떤 신학생에게 오십만 원 을 보내라고 하시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학 내내 돈을 흘려 보내는 것을 훈련해 온 터여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천 만 원도 아니고 십 만 원짜리도 마음대로 사지 못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 좋은 오디오를 얻게 되어서 준비해 놓았던 베토벤 음악을 들었지만 마음이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오십만원을 드렸던 목사님이 전화를 주셔서 알고 보니, 제가 보낸 돈이 도착하던 날, 그 분 아내가 하혈을 하여서 알고 보니 아이가 유산되어 급히 수술을 했던 것입니다. 그 전화를 받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 받았을 때 받는 참 기쁨과 은혜와 감사로 채워졌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가장 기뻤던 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로 아름다운 일들이 이뤄지는 것을 볼 때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맺는 결실이란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의 가지치기로 인해 풍성한 열매 맺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떻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나요?
2.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vv.3-8
두 번째로 어떻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나요.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말씀하신 것으로 제자들이 이미 깨끗하다고 하십니다. 가지치기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음이 요한복음 6장 66절부터 69절에 쓰여 있습니다.
요 6:66-69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처음에는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 말씀이 듣기가 어려워지자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때 남은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니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소수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또 한 명이 떠납니다. 마가복음 14장 10절을 보시면
막 14:10 열 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이제 남은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는 절대 인간의 기본적 욕망과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되는데 붙어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미 14장에서 예수님이 여러 차례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을 보시면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며 전부이시며 그분만이 진리이며 그분만이 하나님께 가는 길임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 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또한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이 믿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사실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진짜 아는 자는 그분을 믿게 되면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평생 한 번도 우리를 짓밟거나 깨트리지 않고 끝없이 은혜로 받아 주는 존재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안다면 어떻게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 결과는 5절입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여기의 ‘아무것’은 밥 먹고 일하고 생활하는 일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하는 삶, 공의로 사람들을 대하고 정의로 반응하는 삶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합니다. 내가 힘이 있으면 힘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문제입니다. 열매 맺는 삶은 예수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 안에 있지 못하면 6절 말씀입니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세상에서 예수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없이 성공하고 예수없이 유명한 사람들은 하나님 눈에는 생명 없는 가지이자 바닥을 굴러다니다 버려지는 비참한 운명입니다. 예수 안에 있어서 열매 맺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축복입니다. 이렇게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경을 문맥대로 읽지 못하면 이 구절을 이용해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성도들을 현혹합니다. 여기에서 ‘무엇이든지’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맺는 삶이자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여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진 유일한 목적입니다. 우리는 짐승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화려한 깃털을 뽐내려고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영광,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기도하셔야 하나요? ‘저의 인생을 통해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도록, 예수님을 통해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해주세요’라고 간구하실 때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결국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8절입니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는 열매 맺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욕망이란 얼마나 초라한가요? 공부를 잘했거나 몸이 좋았거나 이름을 날렸거나 그런 것은 하나도 영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생을 통해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쁨에 찬 인생이 되겠습니까? 이 땅에서 이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