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신약성경에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164번 등장하는데 그 중 77번을 요한이 사용합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신약 성경에 사용된 ‘세상’의 거의 절반이 사용되었습니다. 요한이 ‘세상’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요한복음 8장 23절입니다.
요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은 하나님 나라 즉 영적인 것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원과 본질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통해 그것과 대조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 살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라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여기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신분 또한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에 전과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서 세상에서도 잘 살고 죽어서 천국에서도 잘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정반대의 이야기인, 세상이 성도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나요?
성도는 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나요?
1.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vv.18-22
첫 번째로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진짜 이유는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란 눈에 보이는 삶의 현장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세력을 의미하기에 그것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을 보시면
요 3:19 …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모든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공포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본질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하다는 사실이 명백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된 것이며 반역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났을 때 인간은 자신의 죄를 드러낸 예수님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마귀가 세상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 말씀을 보시면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때’는 예수를 믿기 전의 모든 사람들이 살던 때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풍조’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마귀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진 않지만 마귀가 배후에서 세상의 문화를 만들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영향력은 생각지도 않고, 자신이 음악을 즐기고, 특정 문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노예가 되어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선을 넘고 강력한 영향력에 영혼이 사로잡히고 파괴적인 인생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다양한 영향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엔터테인먼트 문화입니다.
그 영향력은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게 하여서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음란한 것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보신다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 은혜가 감사했던 기억과 영상을 보면 재미있다고 느낀 시간의 비율이 어떠합니까? 교회를 다녀도 세상의 강력한 엔터테인먼트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특히나 어린 아이일수록 중독이 심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5절을 보시면
요일 4:5 그들(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거짓 선지자란 꼭 이단의 교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혹하게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포함합니다.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유튜버도 이에 속합니다. 그런 이들이 ‘물질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의존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나요? 광고를 따 와 물건을 팔고, 소비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들을 보면 화려합니다. 돈을 법니다. 그런 인생이 성공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거부하게 만드는 근원적 영향력이 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이기에 결국 예수에게 속한 자들도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절에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예수에게 속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갈등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게 속한 자라면 반드시 갈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 영광만을 위해 세상을 살아도 되나? 성숙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성도는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등이란 여행을 가는 것,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저축을 하는 것 등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에 감추어진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본질적 영향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물질주의, 현세주의 그리고 이기주의입니다. 물질은 꼭 필요합니다. 인간은 물질 안에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가 붙으면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가장 집약된 형태가 공산주의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다 부정하고 오직 물질만이 중요하다는 공산주의가 기독교의 가장 큰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현세주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카푸어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집도 없이 단칸방 월세를 살면서도 외제차를 몰고, 월급의 80%를 차 유지비에 쏟아 부으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남에게 멋있게 보이는 것’에 두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은 이기주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주의’가 되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든 관계없이 나와 내 가족만 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흔히 뉴스에 오르내립니다. 이상 물질주의, 현세주의, 이기주의가 세상의 본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기에 세상에서는 돈에 대한 집착과 열망 역시 너무나 큽니다. 이 본질 안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이들과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나요?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물질의 영향력 아래 놓이고 살아가며 그것이 중요함을 계속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참 믿음이 생긴다면, 여전히 물질이 필요하지만, 물질만 의존하는 물질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돈이나 능력이 하나님만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이 교회에 모여 헌금도 하고 헌신도 하는 것입니다.
현세주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땅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필요합니다. 그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남들처럼 최대의 쾌락과 즐거움을 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미래가 있기에, 하나님이 눈물 닦아주실 날을 믿기에, 그 안식을 고대하며 이 땅의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마치 자전거 페달을 돌리듯 움직이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지난한 훈련을 통해서만 얻어지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것을 경험하면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물질주의, 현세주의, 이기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살고 계신가요? 만약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다면 물질이 전부이고, 현재가 전부이고, 나만이 전부인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삶의 끝은 고통이며 공허입니다. 마귀가 자기를 추종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다 잘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에게만 능력과 힘을 주어서 모두가 그 삶을 전부인 양 쫓게 한 뒤 나머지 대다수는 허위광고에 속은 소비자들처럼 지옥과 같은 비교와 불만족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살게 되면 세상은 알 수 없는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물질이 풍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저 한정된 재화 안에서 쪼개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앞으로도 책임져 주실 확실성으로 인해 안심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 인생의 본질을 좌우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참 소망이 될 때 이 땅에서 눈물 흘릴 때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고 답답할 때 있지만 언젠가 주어질 안식 가운데 마음의 중심을 지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해야 진짜 행복해집니다. 그게 인간이 원래 만들어진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이 부족하시다면, 소망이 부족하시다면, 사랑이 부족하시다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삶 가운데 그걸 이길 예수님의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셔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을 이상하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20절입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주인이신 예수님도 이런 대우를 받았는데 종인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게 대하겠습니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따르는 우리의 말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나요. 21절입니다.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가 예수에게 속했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자들이 우리를 박해하고 거부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에 하나님이 이 상황을 방치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반역을 폭로하셔서 그들이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이 속한 교회가 세상에 없었다면, 이들이 박해할 필요도, 욕하고 거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을 통해 그들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 결국 마지막 심판을 여는 목적으로 이들이 지금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나요?
2.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vv.23-27
두 번째로 성도는 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나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이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모든 종교는 보이지 않는 신을 추구한다고들 합니다.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도 하고 그 신의 축복을 얻을 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반역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반응을 합니다. 왜일까요? 히브리서 1장 3절에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드러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모습을 욕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 될 수 있어. 욕망을 채워줄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낮아져서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나를 짓밟은 사람을 짓밟길 꿈꾸며 강력한 영웅을 기대하는 우리의 기대와 예수님은 반대의 지점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24절입니다.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예수님이 표적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선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무죄로 판명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것. 기절했다 일어난 것이 아니라 썩어서 냄새나던 나사로를 살려 내신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그것이 날조된 것이라면 기독교가 이렇게 확산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위해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진짜 계심을, 아무도 보여줄 수 없는 방법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뭐라고 예언되어 있나요? 25절입니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이유 없이 거부하고 미워했다는 시편 69편 4절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다. 표면적 이유는 없지만 사실 아까 보았듯 영적으로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가 드러나니까 싫어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향력에 사로잡힌 자들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결국엔 세상의 거짓말에 속아 예수를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를 거부한다고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드러나지 않나요? 아닙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자, 예수님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하십니다. 첫 번째는 26절입니다.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의 증언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예수가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하고 믿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또한 세상의 영향력에 빠져 알지 못했을 텐데, 그 증언으로 인해 하나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또 한 방법은 27절입니다.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우리 또한 예수를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이 그것이며 2천년이 지나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고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그분을 믿어 이 강력한 세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될 일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증언하는 증인의 역할이 부여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 강하게 증언할수록 세상은 여러분을 더 미워할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현세주의, 이기주의를 벗어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능력으로 세상을 살면 세상은 여러분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더 큰 기쁨이고 만족일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속한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며 예수를 증언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인생을 돌아보며 기뻤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멋있는 곳에 가 본 것, 갖지 못했던 것을 가진 것, 맛있는 것을 먹은 것 등은 미미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도 기억나고 뿌듯한 것은, 어떤 사람이 저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 것, 복음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저의 가르침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된 것, 하나님이 순종하지 못하던 제 안에 일하셔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행위를 하게 하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은 아마도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나누는 것일 것입니다. 내가 한 어떤 행위로 인해 연쇄적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받고, 예수를 만나고, 절망을 떨치고 일어나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음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우리 인생 가운데 희생하고 믿음의 삶을 살고 헌신한 결과를 우리는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결과들을 하늘에서 같이 누리며, 이것이 내가 세상에서 살았던 이유였구나 하고 알게 될 때 감사와 찬양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미움과 박해 가운데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같은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