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시면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생기게 될까요? 1절 말씀입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실족’은 걸려 넘어져서 땅바닥에 구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며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까지 했는데 예수님이 사라지신 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이 생길까봐 이 말씀을 미리 주시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인가요? 2절입니다.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당시 유대인인 제자들에게 출교는 사형선고나 같은 것이었습니다. 출교된 사람과는 말도 식사도 교제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출교를 당해 가족으로부터도 쫓겨나고, 심지어 타종교인은 죽여도 된다는 적대감과 박해에 시달리게 됩니다. 심지어는 출교 뿐 아니라 살인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제자들을 출교하고 박해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도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는데 예수님이 사라지시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것을 아시고 6절부터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예수님이 떠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하나님을 위해 너를 죽이겠다는 출교와 박해와 죽음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해졌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a]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그러나 예수님이 이런 상황들은 별 일이 아니며,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왜 유익일까요?
1. 보혜사가 오셔서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vv.7b-11
그렇다면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왜 유익일까요? 첫 번째로 보혜사가 오셔서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7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7b] …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보혜사이셨습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이토스’를 번역한 것으로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답을 알고 싶을 때나 어떤 선택을 해야 될 때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법에 대해 고민이 생기면 변호사를,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이 예수님은 제자들 옆에서 정답을 알려주시며 보혜사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셨습니다. 주무실 때도 있었고, 모든 순간에 모든 제자와 함께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 폭풍을 만나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고 매달립니다. 또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 폭풍우를 만났을 때는 죽게 되었다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지금도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다면 과연 그 혜택을 몇 명이나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보혜사로 함께 하시기 위해 떠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떠남이 끝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죄를 해결하시고 성령이 오실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 어떻게 유익인가요? 아마도 많이들 기대하는 것은,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려주고, 불행을 막아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이 아니고는 아마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그저 기복과 율법의 반복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죽음을 피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보다 큰 유익을 알려주십니다. 8절 말씀입니다.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구절이 유익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책망은 잘못한 사람을 야단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책망은 ‘감추어 뒀던 죄악을 드러내 회개하도록 권고하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단어가 마태복음 18장 15절에서는 ‘권고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권고하여 들으면 형제를 얻는다’고 합니다. 즉 책망은, 본인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 그 상태에서 벗어나 긍정적이고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조언을 잘 받아들이면 유익이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성령의 권고가 어떻게 유익인가요? 세상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은 자들만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 의, 심판에 대한 권고는 무슨 의미인가요? 9절입니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경이 말하는 죄는 인간의 본질적 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태도입니다. 누군가를 폭행하고 사기 치는 행위들도 죄이지만, 엄밀히 이는 죄의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법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자기 안에 죄가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행위가 없으니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의존할 수 있나요? 보이는 것을 힘이라고 여기며 살다가 갑자기 ‘돈을 의존하고 내가 하나님 되려고 했던 것이 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중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존했었구나’ 라고 깨달으셨다면 여러분은 바로 성령의 권고를 받으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자는 누구의 가르침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의는 무엇에 대한 권고의 말씀인가요? 10절입니다.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율법을 다 지켜서 완전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율법이란,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완전히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셔서 떠나신다는 것은 ‘십자가 사역의 완성’을 내포합니다. 즉 ‘내가 십자가 사역을 마쳐야 죄가 해결되고 거룩한 성령이 오신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해야 내가 의를 완성하여 너희가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의’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를 믿기보단 자신이 축복을 거래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종교적 본성은 행위로 보상을 얻어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상을 바라며 열심을 낸 사람의 폐단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를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얻으면 온전하다고 여기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의 의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한다고 더 사랑하시거나 어떤 행위를 안 한다고 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종교적 행위를 통해 축복을 받으려던 유대인들과 같은 우리의 태도를 성령이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우리를 일관되게 사랑하시는데,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만 이 복음을 받아들여 찬양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에 대해서는 11절에 이야기하십니다.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세상은 마귀가 통치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영적 눈이 열린 자만, 십자가로 인류가 심판 받는 마지막이 임함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상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나서, 친일을 했냐는 질문에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라는 대답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마귀는 소수의 사람에게 힘을 주어 다수의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심판 당했고 멸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한다는 사실 역시, 성령의 권고를 들은 자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죄에 대해 권고하셔서 우리가 붙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믿게 되고, 성령이 의에 대해서 권고하셔서 우리가 내 열심이 아니라 예수만이 가치 있으심을 믿게 되고, 성령이 심판에 대해 권고하셔서 이 세상은 끝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함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놀라운 유익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복을 받은 것이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무엇이 약속되어 있나요? 그 영혼 안에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놀라운 믿음으로 인해, 이 땅에서는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예수 말고 죽을 때까지 다른 것 의지합니다. 그러나 주식, 코인, 부동산 등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하늘까지 올라가서 교만하지만, 바람이 멈추면 바닥을 굴러다니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성령의 권고를 듣고 예수님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보다 가장 큰 유익을 누리는 축복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왜 유익일까요?
2.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vv.12-14
두 번째로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왜 유익일까요?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순교, 감옥, 매, 죽음을 미리 알았다면 제자들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이 때에 따라 이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기에, 예수님은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알려주신 것입니다. 13절 상반절입니다.
[13a]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하나요? 세상의 많은 거짓말 속에서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거짓말은 일상의 사소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리를 반대하는 마귀의 말을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읽겠습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진리와 반대되는 거짓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성경이 얘기하는 진리란,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 가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인데 마귀는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만들어냅니다. 예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라는 소리가 다 거짓말입니다. 살 때는 속는다 하더라도 죽을 때 인간은 정직해집니다. 죽기 직전에, 사후에 가지고 갈 수 없는 돈이나 학위나 성공을 생각할까요? 더 사랑했어야 하는데, 용서했어야 하는데, 이런 가치 있는 것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는 사람들이 가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쓸데없는 것만 추구하게 만듭니다. 돈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물질주의는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내려놓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인생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생명과 돈과 명예가 중요했다면 사도행전처럼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박해받고 옥에 갇히고 자기 재산을 팔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진리의 성령이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나요? 13절 하반절입니다.
[13b] …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장래 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미래입니다. 자신은 성령이 충만해서 장래 일이 보인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것은 성경에 무지한 사기꾼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성도가 진리의 음성을 들으면, 현재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이 미래를 책임지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싸워갑니다.
저도 제 미래를 알았다면 젊을 때 불안으로 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제게 인생과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것이 후회스럽다가도, 돌이켜보면 죄악 된 본질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기까지 시간과 고난은 꼭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음성을 듣고 계신가요?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합니다. 그러나 10년 후를 아는 것이 축복일까요? 불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의존하는 법을 배워가고 계획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예수를 믿는 믿음을 배워나가면 됩니다. 혼자 고민할수록 점점 불안해지기에 이곳에 나와서 확신의 말씀을 듣고 가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내가 너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며 하나님 나라 안에서 우리 인생이 완전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땅 가운데 우리가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시나요? 14절입니다.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예수님의 영광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진리의 영광스러움입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유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드러내려다 결국 불행해집니다. 마귀의 통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권고를 들어 예수를 믿은 자들은 이 땅의 환란과 어려움에서도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성령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