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 이어 본문에서는 제자들을 통해 앞으로 나타나게 될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20절입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1. 세상이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기도하셨습니다. vv.21-22
첫번째로 세상이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기도하셨습니다. 2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21a]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서로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상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특별히 이는 영적인 깊은 연합 즉 사랑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예수님만 하나이신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 또한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예수님이 반복하십니다.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가 된다’를 반복하시는 이유는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셨을까요? 영광은 하나님의 모습, 그분의 본질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고 그 본질의 핵심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랑으로 연합해야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과 같은 사랑과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은 타인을 향하는 것이고 거룩은 개인이 깨끗한 것이므로 둘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이 둘은 동일합니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을 하려면 자기중심적 이기성이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의 이면에는 자기중심적 이기성이 있지만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존재의 깊은 영적 본질에서 나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기적 욕망은 죄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죄가 인간 영혼에 공허를 만들어내어서 인간은 무엇을 가져도 목마르고, 즐거운 일을 경험해도 금방 시들해집니다. 결국 죄로 인한 공허로 인간이 이기적이고 욕망에 매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거룩이란 무엇인가요?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인간 영혼에 죄가 없어서 거룩해지면, 목마름에 매여 살지 않게 되니까 이제야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의 본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과 거룩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사랑은 하는데 거룩하지는 않거나 거룩한데 사랑하지는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죄가 없다면 완벽한 만족과 기쁨이 영혼을 다스리기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온전히 하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보여주신 것, 그것을 성경이 영광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시면
[11] …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연합한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어 17절입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즉 제자들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이들이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모든 존재가 사랑과 거룩이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그 목적이 21절 하반절이 나옵니다.
[21b] …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세상이 믿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자 교회입니다. 교회가 마치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예수님을 증거하는 가장 큰 능력은 사랑과 거룩입니다. 반대로, 세상 가운데 교회가 예수를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랑과 거룩이 교회 안에 충만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기독교가 엄청난 속도로 부흥할 때, 사랑과 거룩이 충만했었나요?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와 지역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때에는 인간의 본질을 뛰어넘는 놀라운 은혜를 일시적으로 허락하셔서,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을 온전히 보여줄 능력이 안 돼도, 기적적으로 예수를 증거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주니까, 우연히, 병 나으려고, 그런 이유들로 교회를 찾았다가 예수를 믿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세워지고 성숙해감에 따라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랑과 거룩’의 능력이 꼭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엄청난 성장이 90년대부터 멈추고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정체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의 하락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앞으로 이삼십년 후에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처럼 소수만 살아남고 또 어르신들만 가득하며 비싼 교회 건물만 남게 될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염려하기도 합니다.
만약 다음 세대가 나중에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해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요? 우리 교회 하나가 살아 남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교회가 사랑과 거룩의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여줄 때라고 믿습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요해졌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공허해졌습니다. 이기성은 극대화되고 세상의 음란과 부정함을 추구하는 열망은 커져서 세상에서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매년 만 명 넘게 자살을 하고 다양한 정신적 문제로 고통합니다. 일상적인 쾌락에서 멈추지 못하고 마약에 중독되는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영광의 화려함을 따라가다 영혼의 갈망을 잃어버리고 교회는 쇠퇴한 것, 이는 서구의 교회가 이미 겪은 일이며 한국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되나요? 교회가 사랑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교회가 거룩의 능력을 회복하여 세상가운데 예수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늘사랑교회를 통해 세상 가운데 예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2.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심을 세상이 알도록 기도하셨습니다. v.23-26
두 번째로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심을 세상에 알도록 기도하셨습니다. 23절 상반절입니다.
[23a]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
또 같은 구절로 보입니다. 그러나 잘 읽어보면 숨은 의미들이 드러납니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내용이지만, 하나가 되어야 하는 두 번째 목적이 23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23b] … 아버지께서 …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앞에서는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해달라고 하셨고 여기서는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심을 세상이 알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24절, 25절입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예수님의 이 기도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이의 간증을 통해, 설교를 통해, 설득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가 인생의 어려움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교회는 모두 우리처럼 간접적인 경험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교회인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왜 세상이 알아야 하나요?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인정과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남보다 성공하고, 돈을 벌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목적일 때 세상의 영광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를 믿는 것이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에게도 박수를 받고 하나님에게도 박수를 받는 일은 안타깝게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같아져야 되고 세상의 영광을 받으려면 왕처럼 높아지고 능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출 수는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예수가 드러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세상에서의 고민과 갈등을 지나야 합니다. 그러한 고민과 갈등이 가장 깊었던 사람 중 대표적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시편 22편 6절에서 8절에서 다윗이 무엇이라고 고백하나요?
시 22:6-8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세상에서 물결을 거슬러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비방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심한 것은, ‘네가 믿는다는 하나님이 왜 도와주시지 않냐?’는 조롱일 것입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구원은 상황이 좋아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진짜 구원인가요?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영혼은 언제든 요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두움에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참 만족과 구원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했을 때 저희 집에도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구원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실패로 말미암아 인생을 돌아보시게 되었고 그때 신학을 시작하셔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로 맡은 사명을 마치고 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좋다는 학교를 나와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의 구원이었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게 되어 참 구원이 무엇인가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보며 ‘구원을 얻었구나’라고 알아 보지 못 해도 하나님의 인정만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편 23편 5절을 보시면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전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 ‘나는 벌레’라고 고백을 하나요. 그런데 인생의 말년에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신다고 합니다. 상을 차려주는 건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이 나의 가장 친한 자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고대에 귀한 손님을 대하는 최고의 환대의 표시였습니다. 머리에 부어서 잔이 넘칠 정도로 많은 양의 기름은 즉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원수 앞에서 내가 이 존재를 얼마나 인정하고 사랑하는지를 만천하에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정은 세상에 있지 않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하면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늘 자신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림자와 같고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상의 영광과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고형원 전도사님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찬양을 참 사랑합니다.
특히 세상에서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걷는 길이 맞는지 의심할 때 이 찬양을 부르며 예수님이 나를 용납하시고 인정하실 그날이 오면 예수님이 진짜라는 사실을 목소리를 크게 내어 선포하리라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찬양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세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맞다고 외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언제 예수님이 맞아 주시나요? 그 길이 끝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무어라고 외칩니까?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땅 덮을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광스럽고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지금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다시 주님이 오시고 이 길의 끝에서 주님이 맞을 때 거기서 우리는 함께 예수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계속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바로 우리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셨지만, 우리는 간접적으로만 경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진짜 사랑하심을 영혼 안에 새기실 때 여러분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의 왕 되심을 힘 있게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