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동물도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낍니다. 동물도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허무’라는 감정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동물은 어느 날 문득 삶이 무의미하다고 밥을 먹지 못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 인간만이 허무를 느낄까요?
인간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혹은 관계의 단절로 깊은 외로움을 느낄 때 인간은 허무해집니다. 본문 2절과 3절 상반절에도 허무감을 깊이 느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a]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들과 같이 계시지 않고 잠깐 오셨다 떠나시고 오셨다 떠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전ㅂ돠 놀라운 기적을 보이시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 오시고 변화는 없고 세상은 잠잠하자, 기다리다 못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원래 어부였던 이들이 어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어업을 버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들은 목표를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 밤새 일한 결과가 무엇이었나요? 3절 하반절입니다.
[3b] …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우리 또한 의미를 찾고자, 목표를 이루고자 얼마나 애쓰나요? 그런데 목표는 이루어도, 이루지 못해도 허무합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보이는 연예인들의 의외의 선택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허무를 채우려는 인간의 선택 중 대표적인 것이 마약 등의 쾌락입니다. 일시적 강력한 쾌락으로 허무감을 몰아내기 때문이지만 일시적 쾌락은 중독성이 있기에 결국은 인생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허무를 벗어나도록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허무한 인생에게 어떻게 찾아오시나요?
빈 인생을 채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vv.4-6, 10-11
예수님은 허무한 인생에게 어떻게 찾아오시나요? 첫 번째로 빈 인생을 채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은 밤에만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옛날에는 그물을 만드는 기술이 지금처럼 좋지 못했기 때문에 낮에는 햇빛에 투박한 그물이 비쳐서 물고기들이 도망쳤기 때문에 밤에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나 밤부터 아침까지의 그물질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밤새 헛수고하는 제자들을 지켜보셨습니다. 왜 빨리 개입하시지 않으셨나요? 이것이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밤새 노력하고 결실을 얻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자기 노력으로는 뻥 뚫린 가슴을 채울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룻밤 만에 오셨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 전체가 헛그물질입니다. 10년, 20년 물고기를 잡으려고 헛수고하는 긴 과정가운데 내가 내 인생을 채우려고 하는 시도가 얼마나 무익한지를 깨닫고 인정할 때 바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고기가 있느냐’에 ‘곧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희망이 보입니다’가 아닙니다. ‘날이 밝았는데 이제 불가능합니다’라는 고백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물 안에 구획이 나뉜 것도 아니고, 배가 항공모함도 아니고, 어떻게 자그마한 고깃배의 왼쪽에는 고기가 없고 오른쪽에는 있을 수가 있나요? 이것이 인생입니다. 특별한 자리로 가서 특별한 일을 해야 인생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그 자리에 어쩌면 정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지나며 다른 환경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곳에서, 지금 그 사람과 잘 살고 있지 못하다면 어떤 사람과 만났어도 우리는 똑같은 힘든 과정을 견뎠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로워지고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물고기가 많았습니다. 내 방법으로는 비었던 그물이 예수님께 순종할 때는 채워지는 신비를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노력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결과도 물론 있지만 인생이라는 레이스, 영원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인도 없이는 우리는 빈 그물입니다.
사실 인간은 은혜로 인생이 채워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쌓아가고, 내가 목표를 세우고, 내가 성취하고 싶지, 내가 낮아졌더니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가 10절과 11절입니다.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53은 유명한 숫자입니다. 모나미 사장님이 말씀에 은혜를 받아 펜 이름을 153이라고 지으셔서 역대 베스트셀러 볼펜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베드로 물고기라고 엄청 큰 물고기를 튀겨줍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큰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것은 순종의 열매의 풍성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4절부터 6절을 보시면
눅 5:4-6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베드로의 열정이 실패하고,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청년의 말에 순종했을 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결과를 경험하고는 이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시를 쓰신 오혜령 님의 시 앞 부분만 같이 보시겠습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였습니다.
오 주님 /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 그러면 저는 비로서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 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이 분은 시의 내용을 인생에서 경험하셨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극작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 날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관상대동맥경련증이라는 병을 얻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졸도를 하고 생명이 위급해진데다 다음 해에는 암이 퍼져 살 날이 3개월 남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이 분은 죽을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초기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지만 내 인생이 내 맘대로 안 되어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아예 하나님을 부정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날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다 하루는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없이 잘난 체하며 살았던 자기 인생이 부끄럽고 죄송해서 죄를 하나하나 쓰며 회개하며 몇 개월을 울었는데 어느 날 특별한 기운이 온 몸에 임하며 암이 떠나간 것입니다.
70년대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분은 나만을 위한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달아 경기도에 무의탁 노인, 무연고 아이들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개원하고,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을 섬기고 계십니다. 여러분 또한 자기사랑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빈 그물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은 허무한 인생에게 어떻게 찾아오시나요?
2. 실패한 상처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vv.7-9, 12-13
두 번째로 예수님은 허무한 인생에게 어떻게 찾아오시나요? 실패한 상처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거리가 있어서 소리는 들리지만 누구인지 명확치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물질을 하느라 속옷만 입고 있던 베드로가 옷을 챙겨 입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일반적으로 물에 뛰어들려면 옷을 벗어야 하고, 90m의 거리라 배를 타고 몇 분이면 도착할 것이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던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곧 따라 와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이 밤새 애쓴 제자들에게 밥 한 끼 해주시는 장면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을 짧게 짧게 만나시는데 그 짧은 만남마다 목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안 계셔도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확정할 자들로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은 준비시켜 주십니다.
9절의 ‘숯불’은 ‘안드레아케’로 요한복음에 딱 두 번 등장하는데 그 다른 장면에도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7절과 18절입니다.
18:17-18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이 ‘불’이 예수님이 준비하신 ‘불’과 같은 ‘안드라이카’입니다. 베드로는 이 불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몇 시간 전인 마태복음 26장 35절에서 맹세했었습니다.
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거짓말이었나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진심이었지만 세상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세상이 칼과 창과 몽치로 예수님을 끌고가자 베드로는 벌벌 떨며 숯불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숯불은 베드로의 실패를 상기시키는 시각적 장치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서 옷의 무게를 이기며 헤엄쳐 왔습니다. 얼마나 숨이 찰까요? 그런데 육신의 피곤보다도 베드로에겐 응어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로 인한 상처이기에 예수님께 예전처럼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죄를 발견했을 때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도 이런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결심하고는 실패하고, 그 실패가 부끄러워서 자신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더 큰 것을 헌신하고 더 크게 실패하고, 결심하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아서 인정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너무 열심히 살면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하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열심이 특심한 자였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해 보지 않았다면 절대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사람은 열심이 특심한 자가 아닙니다. 자기 무능을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의 인도를 따르는 자입니다. 또 요한복음 6장 11절입니다.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를 열광하며 쫓아다니던 자들이 떡과 물고기 표적을 계기로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은 이해하지 못하고 더 좋은 떡과 물고기를 원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부터 69절입니다.
6:66-69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을 밥 주는 분으로만 여긴 자들은 영적 생명의 메세지 앞에 예수를 버렸고,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으로 먹이신다는 것을 인정한 베드로와 제자들만이 남아습니다. 즉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로 이들이 예수님께 부름 받은 특별한 존재임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 은혜와 소명과 뗄 수 없는 것이 실패의 증거입니다. 자기 힘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한 시도가 실패하여 그 상처를 딛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야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불과 물고기와 떡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허무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물건도 사며 허무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는 자기가 뿌린 열매가 드러날 것입니다. 한 번에 153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매일 한 마리씩 잡는 법을 배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도로 상처를 치료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