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사랑교회

  • 교회소식

  • 설교영상

  • 자료실

  • 오시는길

  • More

    하늘사랑교회

    © COPYRIGHTS 2018 HNSRCHURCH ALL RIGHTS RESERVED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룻기 강해 01

    룻 1:1-22

    2021년 1월 17일 주일예배 설교문

    앞으로 네 번에 걸쳐서 룻기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룻기의 스토리는 아이들까지도 잘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룻기는 보석들이 가득 들어있는 보석함처럼 보고 또 봐도 보석이 또 나오는 책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이 아주 수려한 문학기법 속에 많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수려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는게 문제이죠. 특히 룻기 1장에는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잘 드러납니다. 과연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따라 신실하게 반응하시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따라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1. 심판하십니다.(1-5)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사사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던 불순종의 시대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약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 회개케 하시기 위해 종종 흉년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죄인은 그런 갈급한 상황이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 힘들고, 그 죄를 철저하게 인정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흉년이 없던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2절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2b]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당시 문화적 배경 안에서 사는 땅을 옮기다는 것은 그 땅에서 믿는 이방신을 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멜렉은 회개의 기회가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뿌리치고 피상적인 문제인 배고픔만을 해결하고자 이방 땅에서 이방신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자 결국 이런 결과가 주어집니다.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죽음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집안의 결정권이 남은 두 아들에게 주어지는데요, 이들의 선택은 더 심해집니다.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당시 문화적 배경 안에서 이방인과의 결혼은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과 후손들까지 이방신과 혼합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죽는 심판을 보고도 얼른 회개하며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더 좋아보이는 세상 방식을 더욱 깊숙이 추구해간 것입니다. 결국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집니다.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이것은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것도 단명을 합니다. 게다가 대를 이을 아들이나 손자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 땅에서 객으로 죽어 이방 땅에 뭍힙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수 24: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그런데 이 때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를 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협박에 근거한 불평등 언약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풀무불 같은 삶으로부터 건져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관계를 파괴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사랑과 정의로 가득한 삶을 살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쁨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에게 순종하도록 주어진 율법은 백성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통치 기준이자 선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전한 순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피를 대신 바치는 제사를 통해 회개와 용서로 다시 화목한 관계를 회복할 기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변함 없이 모든 것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다고 할 때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언약 가운데에는 저주와 심판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구원한 백성들일지라도 불순종하면 저주와 심판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언약을 따라 심판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에 큰 딜레마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언약하시고 신실하셨지만, 백성들 모두가 엘리멜렉과 두 아들 같았기 때문에 그 신실하심으로 모두 심판 받아 이스라엘이 망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하나도 남지 못한다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언약하신 것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이라 어쩔 수 없으셨다고 손을 터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앞에서 쪼갠 동물들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하나님이 죽으시더라도 반드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따라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을 만족시키시기 위해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해 심판 받아 죽으시는 엄청난 비극을 당하시면서까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구원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저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의 피로 얻어진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온전한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흉년 같은 상황을 통해 엘리멜렉과 두 아들 같은 저희의 옛 사람을 드러내시고 심판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변함 없이 계속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따라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2. 함께하십니다.(6-18)

     

    자, 그런데 두 번째 대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엘리멜렉과 같이 이주했고 아들들 결혼할 때 같이 있던 나오미는 왜 심판을 받지 않고 남았을까요? 스바냐 2장 3절과 3장 12절에 답이 있습니다.

     

    습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3:12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 죄악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는 남겨두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불순종하는 옛 사람을 모형하고, 나오미는 그 심판 가운데 남게 될 겸손하게 순종하는 새 사람을 모형하기 때문에 나오미만 남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오미는 이름만 소개되었지만 룻기가 끝날 때까지 나오는 나오미의 모습에서 하나님만 의탁하는 겸손과, 이웃을 사랑하는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양식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듣자 나오미는 이스라엘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탁하고자 하는 나오미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오미는 하나님 나라에 함께 따라가려는 두 며느리에게 세 번이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며느리들을 돌려보내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며느리들이 새 남편을 만나 위로를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들은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에 가게 되면 그곳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는 곳이었기에 재혼 가능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며느리는 늙은 며느리를 봉양하기 위해 하루종일 남의 밭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위로가 없는 삶이죠. 사실 나오미는 그런 배려하지 않고 며느리들이 따라와 주면 오히려 자신에게는 좋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과 죽은 남편과 아들을 선대해준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대가 있길 기원해주는 자비와 배려의 신앙을 보입니다.

     

    [8b]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나오미의 이런 모습들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남은 자의 모습입니다. 자, 그런데 왜 갑자기 나오미의 이런 신앙이 이렇게 부각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남겨두실 뿐만 아니라 그런 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레 26:3, 12 [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여기서 너희 중에 행한다는 것이 너희와 함께 하겠다, 너와 동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혼자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는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겠다는 것일까요? 바로 나오미의 권면에 대한 룻의 대답에 나와 있습니다.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이 고백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룻은 당시 사회 최 약자인 과부가 되어 그나마 의존할 수 있는 고향 땅과 친척과 어머니의 집을 떠나 사회 최 약자인 늙은 과부 나오미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생명을 내놓는 일인데 룻은 나오미가 죽는 곳에서 죽고, 죽는 것 외에 나오미를 떠나면 벌에 벌을 받겠다고 생명을 겁니다.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충성스럽다, 변함 없이 신실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실 룻의 이런 엄청난 모습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보내실 예수님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잃고 텅 비어버린 나오미에게 룻을 통해서 새생명을 주실 계획을 갖고 룻의 입을 빌려서 너와 함께 동행하며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죽기까지 언약에 신실하실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한 가지 들게 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언약에 명시된 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남은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따라 함께 하신다고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멜렉과 두 아들 같은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저희와는 어떤 근거로 함께 해주실 수 있으신 것일까요? 사실 남은자 나오미 역시도 예수님을 모형한다는 것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자들 중에 십분의 일이 남을지라도 그들마져도 나무가 베임 같이 황폐하게 되어 오직 거룩한 씨만 그루터기처럼 남는다는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씨는 누구인가요?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자손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씨입니다. 이 한 사람의 씨는 예수님입니다. 결국 백성들 중에는 남은 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나오미는 남은자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을 덧입어 남은 자로 여김 받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언약에 신실하신 남은자 예수님께서 저희를 남은자로 여김 받게 해주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이시기까지 남은 자들인 저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저희의 구원은 이렇게 죽기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저희와 이 교회와 함께 동행하시며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께서 어떠한 개인적인 고난 가운데에 있든지, 교회와 사회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든지, 정말 교회가 다 망해서 한 그루 나무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따라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3. 구원하십니다.(6-18)

     

    나오미는 결국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이들이 도착하자 온 성읍이 나오미와 룻으로 말미암아 떠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을 떠들은 것일까요? 남편과 자식들이 다 죽고 돌아온 나오미를 흉보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온 성읍은 히브리어로 여성형으로 온 여성들이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들은 누구일까요? 이 여성들은 룻기 4장에도 등장합니다.

     

    룻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 축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이 다윗의 할아버지를 낳자 아이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가족이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들은 나오미와 룻이 돌아왔을 때 그저 수근수근 흉보는 아줌마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떠났다가 텅 비어 돌아왔을지라도 나오미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고 하나님 나라로 맞이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떠들다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에 들어올 때 백성들이 기뻐하고 즐거워서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때 사용된 단어라는 것도 이들이 수근수근 흉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이룰 룻과 함께 돌아오는 나오미는 마치 하나님의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과 같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현실적인 처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는 왜 나를 여전히 즐거움, 기쁨이라는 뜻의 나오미라고 부르느냐? 난 지금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셔서 삶이 쓰고 고통스럽다. 그러니 쓰다라는 뜻의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그 남자들을 심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은 나를 징벌하신 것이어서 나는 풍족하게 차있던 것이 텅 비어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오미의 어조를 보면 나를 그렇게 만든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이 흉년 같은 상황과, 남자들의 죽음이 그냥 죽은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한 응답으로 옛 자아를 죽이는 심판을 하셨고, 그래서 내가 텅 빈 것 같이 고통스럽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는 나오미 곁에 하나님은 룻을 통해 함께하고 계시며 텅 비어진 나오미에게 때에 맞춰 정말 나오미를 풍족하게 해줄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라는 것은 때에 맞춰 베들레헴에 도착해 양식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때는 바로 유월절이 있는 명절 기간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유월절이 있는 보리 추수를 첫 열매를 수확한다고 합니다. 바로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을 모형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장 크고 중요한 구원의 명절인 유월절에, 그것도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 나오미와 룻을 부르셔서 가장 좋은 때, 하나님의 계획하신 때에 나오미를 구원하실 그림자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나오미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을 아직 느끼고 있지는 못합니다. 룻이 자신에게 생명을 줄 자인지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심판하셔서 고통스럽다라고 고백하는 나오미의 말 앞쪽에서는 여인들을 통해 나오미와 룻을 기억하며 맞아주셨고, 뒤쪽에서는 때에 맞춰 양식을 공급하시고 구원의 그림자를 보여주시며 참된 위로를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나오미와 같은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복이 이미 임했다고 하고, 그것을 이미 임한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나오미처럼 이런 애통한 마음으로 자기 죄를 고백을 하게 되는 때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때이며, 참된 생명을 얻은 때입니다. 바로 지금의 저와 여러분들이신 것이죠.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믿는 저희를 하나님 나라로 맞아주시고, 영적 갈급함 가운데 생명을 양식을 얻는 이미 임한 구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흉년과 같은 징계 가운데 옛 자아가 잘려나가는 고통은 아주쓰고 당장은 나를 텅 비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과 같이 그 자리에서 회피하고 싶기도 하고, 두 아들과 같이 세상의 다른 방법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남은자 되시며, 부활의 첫 열매 되시며, 애통함으로 회개하는 영을 부어주시는 예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 영적 갈급함이 몰려오는 흉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영적 생명을 공급받아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참된 위로와 구원의 소망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쁨과 소망을 매일같이 잃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