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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강해 38

    삼하 15:13-37

    2020년 4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다윗에게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는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구체적인 상황을 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다는 말 한마디에 다윗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다윗은 가장 안전한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도망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정상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비참한 상황을 잘 묘사해주는 것이 30절 말씀입니다.

     

    [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왜 머리를 내려서 얼굴을 가렸을까요? 수치를 표현한 것입니다.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상황, 이 상황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합니다. 범죄자들도 언론에 드러나게 될 때, 얼굴을 가립니다. 다윗 또한 자신의 머리를 가립니다. 그런데 다윗 한 사람 뿐 아니라 다윗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수치를 가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맨발로 걸어갔을까요? 이는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윗의 초라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긴 머리를 얼굴에 내리고 울면서 맨발로 산 길을 올라가는 다윗의 모습은 그의 인생이 다 끝이 난 것만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는 적고 압살롬을 따르는 자는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우리 인생에서도 절망적인 상황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비참하고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해 오늘의 본문이 적혔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시진 않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대로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개입해 나가십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이 땅의 모든 일에 개입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섭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통로가 ‘사람’입니다. 세상의 날씨, 사건 등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주로 드러내십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사울도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신을 통하여, 다윗이라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어떻게 섭리해 나가시나요?

     

    1, 의외의 사람을 통해 섭리하십니다.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피난 길에 오르는 가운데,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렛 사람, 블렛 사람, 가드 사람 등입니다. 이 사람들은 ‘블레셋 족속’입니다. 그렛은 블레셋으로 이주한 크레타 사람들을 말합니다. 블렛 사람은 블레셋 족속의 줄임말입니다. 가드 족속은 블레셋 안에 가장 큰 곳인 가드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한국으로 의미하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람인데 이들이 다 한국사람이듯이 그렛, 블렛, 가드 또한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잇대는 블레셋에서 망명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잇대는 다윗이 도망을 치니 같이 가겠다고 따르는 것입니다. 잇대는 압살롬에게 붙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따른 것입니다.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다윗은 20절에서 잇대에게 자신을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에 망명한 잇대에게 자신을 따르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몇 백명이나 되는 군대를 다시 압살롬 편에 붙으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잇대가 말합니다.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이런 충성의 고백이 망명한지 얼마 안 된 잇대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을 위해 내 생명을 다해 따르겠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의 개입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마음을 하나님께서 잇대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이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잇대의 군대는 다윗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윗 군대의 3분의 1을 맡아 압살롬과 싸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삼하 18:2)

     

    여기서 요압, 아비새는 다윗과 수십년 동안 동거동락하며 지냈던 사람입니다. 이들이 다윗과 싸운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중에 망명한지 얼마 안 된 잇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다윗 군대에 사람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망명객에게 군대장관의 자리를 주어 싸우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잇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 가운데 집요하게 개입하십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다스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왕을 모시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니라” (대상 18:17)

     

    이 구절에서 그렛, 블렛 사람들이 경호대의 자리에 오른 것을 알려줍니다. 이방 사람들이지만 위기의 상황 가운데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을 경호대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왕상 1:38)

     

    솔로몬 때도 동일하였습니다. 솔로몬을 왕에 세울때도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이 등장합니다.하나님은 의외의 사람을 통해 개입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다윗의 피난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내가 계획하지도 못한 어떤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대로 인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나쁜 사람일 수 있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유학생활 가운데 예상하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개척할 때 예상도 못했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던 누군가를 통해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삶에 개입해오십니다. 다윗과 같은 고난의 길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섭리하십니다.

     

    [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다윗 편에 선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옵니다. 여호와의 궤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인지 아닌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 없이 도망을 간다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입니다. 다윗 편에 서기 위해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피난을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음식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호와의 궤입니다. 그 상징물을 놓고 간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내가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이 상황이 하나님의 심판의 상황인지 자신의 실수로 인한 인간적 상황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상황들이 이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개입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은 내 맘대로 되시는 분이 아니라, 내 인생을 내뜻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맡겨드리는 것이 순리임을 알았습니다.

     

    성도가 배워야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길 원합니다. 보좌를 흔들어 자신의 기도에 응답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보좌가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은 인간이 정성을 보이면 그 정성을 보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자녀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 뜻은 우리를 향한 더욱 더 궁극적인 ‘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간구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를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피난길에 오른 다윗이 강을 건너면서까지 피난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가야할지 궁내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들이 다윗의 말대로 압살롬의 계획을 알립니다.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삼하 17:21)

     

    결국 이들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 피할 길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서로서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3. 친한 사람을 통해 섭리하십니다.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이 소식은 다윗에게 치명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은 다윗에게 전략을 제시하던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삼하 16:23)

     

    다윗이라고 모든 군사적, 정치적인 상황을 다 알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히도벨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압살롬 편에 붙었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게 되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에 대한 내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손녀가 밧세바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31b]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외마디 고백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다윗의 절망적인 상황을 담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 간구를 마치자마자 ‘후새’가 등장합니다.

     

    [32]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결정적으로 다윗을 돕는 사람들은 이방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대적하는데, 이들은 원래 다윗 편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돕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방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후새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대상 27:33)

     

    인생을 살다보면, 이러한 두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지혜를 주는 아히도벨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만 필요한 것만이 아닙니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힘들 때 같이 있어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때로는 모사가 필요하고 때로는 벗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사는 결정적 상황에서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 편에 붙습니다. 친구는 위기의 상황에서 끝까지 친구의 편에 섭니다. 다윗은 후새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합니다.

     

    [34]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가장 큰 위기의 상황에 친구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합니다. 압살롬은 다윗과 후새가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새가 왕궁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의심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트릴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후새는 다윗의 요청을 들어 성으로 돌아갑니다.

     

    [37]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다윗의 친구인 후새를 통해 어떻게 개입해 나가시는지는 다음 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삼하 17:14)

     

    이것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이것이 하나님의 개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위기, 불안한 상황에도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아시며, 반드시 그 사건에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너무 무서워요. 이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분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