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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에게 나타나야 하는 모습

    사무엘하 강해 54

    삼하 22:21-29

    2020년 9월 6일 주일예배 설교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구원 받지 않았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열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 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이 땅에서 구원이 완성되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확신이 들기가 어렵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심이 싹틉니다. 다윗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거나 구원하시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이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 28:1)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면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도 이러한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 과정을 넘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했음을 확신할 때 쓴 시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시입니다. 본문을 볼 때,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마치 ‘의롭고 완전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구원하셨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정말 완전한 사람인가요? 다윗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 안에 있는 이중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2-3)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무서움과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아니고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이중성입니다. 우리 안에 죄가 현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온전하게 하셨다는 믿음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1. 말씀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이 구절만 읽으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깨끗한 행동을 했기에 구원하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맥락에 따라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성경이 다윗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삼하 8:15)

     

    다윗의 통치에 대해 평가하면서 성경이 다윗을 ‘정의’와 ‘공의’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심판받아야 할 사람은 심판하는 것입니다. 고대에 동양에서 통치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던 원칙 가운데 하나가 ‘신상필벌’인데, 이것이 ‘정의’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통치한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통치한 것입니다. 그는 공의의 기준을 따라 통치했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기준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사 5:16)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공의롭고 정의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정의롭게 반응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대로 반응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와 공의라고 하면, 무서운 심판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의의 원칙이 되는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이라는 기본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기반에 의해 사랑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하는 자를 벌주는 ‘심판’입니다. 다른 사람을 온전케 하는 자에 대한 ‘상’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본질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통치를 할 수 있었을까요?

     

    [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반응하고 살아갔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랐더니 ‘악을 멀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가까이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악을 떠나 하나님의 성품에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의 성품이 그 본질 안에 나타나야 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죄악’이라는 자기 중심적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열망이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구원받은 성도라면 그 본질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합니다. 구원의 목적 자체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나야 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받을 때, 하나님의 영향력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악에서 떠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열망이 생긴 적이 있다면, 그 열망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완전한 의에 대한 확신입니다.

     

    [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완전’이라는 것은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인 ‘의’라는 뜻입니다. 완전이라고 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덧입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평가할 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평가의 기준이 많습니다. 학력, 경제적 능력, 외모 등 평가의 기준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유일한 기준은 ‘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키가 큰지, 돈을 잘 버는지, 열심히 사는지의 기준으로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의라는 기준 안에서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다윗 안에 있는 죄의 뿌리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잘하지 않고를 결정하기 전부터 영혼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의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하나님이 씻어주셔야 깨끗하게 되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셔야 온전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깨끗하게 씻어주심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죄로부터 씻어낼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살고 아무리 도덕적 생활을 하려고 해도 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성경이 이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들어갈 때,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된다고 했을 때, 우리 존재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우리 안에 있는 죄악 덩어리 본질을 그대로 두시고, 새로운 사람을 덧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우리 자체가 점점 시간이 변하면 나아지고 나중에 죽을 때,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죄악의 영향력의 근원인 옛사람이 존재하는데, 옛사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사람으로 받아들여주시고 이중적 영향력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완전함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것입니다. 이는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주 마주합니다. 시기, 질투, 분노, 이기심 등의 본질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면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원은 죄악 덩어리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우상숭배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새로운 자로 인정해주셨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처럼 커다란 죄를 짓고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완성해주실 것이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 고백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확신으로 말미암아 자존감이 회복되지 못하면, 음흉하고 더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해 교묘하고 악랄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톨스토이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귀족의 가문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글재주도 좋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인생입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악을 행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주변 모든 여자과 간음하며 살던 그가 50세쯤 되었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톨스토이는 갑자기 인생이 180도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도덕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본질을 감추고 고기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도덕주의자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 안에 죄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여자를 탐하는 삶을 살자, 자신의 이중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갈등만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본질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욕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존재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하실 약속을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어떤 확신 가운데 살 수 있을까요?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확신입니다. 우리의 죄대로 하나님이 갚으신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모습대로 갚아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덧입혀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따라 갚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a]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

     

    우리 안에서 완전함과 깨끗함이 나타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로 순간 순간 나타나는 완전함과 깨끗함을 바라보시며 우리 일생이 그러했음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치 예수님처럼 살았다고 인정하시며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되나요?

     

    [27b] …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완전한 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선’과 ‘완전함’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거짓 의를 파괴하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완전한 자이신지를 보이실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는 완전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언제 죽어도 제가 하나님이 저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시고 인정하실 줄 믿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심판을 통과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죽음에 매여 있는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마저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하나님만을 겸손하게 의존하는 태도입니다.

     

    [28a]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

     

    다윗은 자신이 곤고하기에 하나님을 붙잡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를 번역한 ‘곤고’라는 단어는 ‘가난한, 결핍한, 아무 것도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는 결핍하고 가난한 존재라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겸손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이런 태도가 천국을 맛보게 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게 되는 조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하나님만이 저를 구원하실 분입니다라는 반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면, 이런 반응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곤고하고 이런 낮아진 마음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분이 없다는 마음을 ‘제사’처럼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것을 가져가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저에게는 아무것도 의존할 것이 없고 하나님만이 저를 구원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라는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8b] …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의존하는 모든 의존의 대상이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하는 것은 결국 인생 가운데 내가 잘나서 내가 완전하니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족한데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케 하셨구나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셨다는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길 원합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의존할 수 없어 울며 상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여기셔서 우리를 죄와 어둠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입니다.

     

    [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다윗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빛’, 하나님의 은혜만이 자신을 빛나게 하며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완전함에 대한 확신, 하나님만을 의존함으로 하나님을 겸손하게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