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사랑교회

  • 교회소식

  • 설교영상

  • 자료실

  • 오시는길

  • Blog

  • More

    하늘사랑교회

    © COPYRIGHTS 2018 HNSRCHURCH ALL RIGHTS RESERVED

    사탄의 공격을 받는 버가모 교회

    주제설교 / 일곱 교회 3

    계 2:12-17

    2020년 12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문

    교회마다 영적 상황이 다 다릅니다. 버가모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사탄의 더 강력한 공격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13a]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

     

    다른 도시에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버가모 교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권좌란 ‘보좌’를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사탄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탄의 영향력은 우상 숭배의 정도에 비례합니다. 버가모는 다른 도시보다 우상숭배가 강력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중앙에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주변에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 아스켈레피오스의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우상숭배 뿐만 아니라 황제숭배의 충성도도 다른 곳보다 높았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살아있는 황제를 위한 신전이 버가모에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버가모는 자신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신으로 섬기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이런 우상숭배적 경향성이 강한 곳에서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사탄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은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떻게 교회를 공격하나요?

    1. 핍박으로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13b] …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여기는 핍박이 얼마나 강했는지 순교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안디옥은 버가모 교회의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박해가 임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걱정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핍박을 받은 자들의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에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5-38)

     

    왜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이렇게 핍박하고 박해하는 것일까요? 중요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로마는 전체주의적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뜻인 황제숭배의 뜻에 반역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핍박하고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황제 숭배가 강력한 국가에서는 기독교는 반드시 국가와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는 어느 공동체든 희생양을 세워 자신들의 분노와 악을 퍼붓는 모습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분노 지수를 잠재우기 위해 비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소문을 통해 기독교인에 대한 분노를 뿜어내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이기적 속성 때문입니다. 옆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장사를 하는데, 그 사람을 고소하여 핍박당하면 당장에 유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기독교인을 핍박하여 죄를 씌우면 그런 고소를 하고 행정을 집행한 관리가 그 기독교인의 재산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기에 사람들의 악한 태도로 인해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강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집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똑같은 원리로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지속됩니다. 중국에서는 기독교가 번성하기 시작하니, 수년전부터 엄청난 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추방되고 있고 교회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가운데도 국가는 계속해서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교회의 예배에 간섭하길 원하고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코로나의 원흉이 되는 듯이 희생양을 삼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며 협박을 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나 공산주의 시대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마귀의 핍박이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안디바는 어떻게 이런 핍박을 이겨낼 수 있었나요?

     

    [13c] …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

     

    안디바는 순교하기까지 예수의 이름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반 성도 중에는 이렇게 예수 이름을 붙잡는 것이 힘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한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들도 나옵니다. 이름은 그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충신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라는 뜻이며 진실이라는 것은 진리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심판자로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3)

     

    예수님은 성경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것을 모두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6 )

     

    왜 옷과 다리에 이름을 썼을까요? 어디에서 보든 다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름이 온 세상의 모든 왕이며 강력한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그분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더 강력하고 우리의 믿음을 붙잡을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핍박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믿고 핍박에 넘어지지 않고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3d] …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안디바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성도가 예수를 믿지 못해 믿음을 잃어버리도록 시험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의 힘에 굴복하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인도를 따르겠다는 태도와 결정입니다. 만약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처럼 우상을 우리의 중심에 두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험 가운데 있다면, 예수가 누구인지 잘 배워 예수를 끝까지 붙드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교회를 공격하나요?

    2. 유혹으로 실족하게 합니다.

     

    [14a]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가 순교당할 정도로 핍박을 이겨낸 교회입니다. 그런데 핍박은 이겨냈지만 다른 것에는 넘어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14b] …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넘어졌던 것입니다. 핍박보다 더 강력한 마귀의 무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에 있는 핍박 받는 성도들을 보며 고통하며 믿음을 지킬까 염려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움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혹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교훈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북한 사역을 하며 중국에 선교를 간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한 선교사님이 탈북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대학생들도 거기서 함께 지내며 선교하였습니다. 탈북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선교사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루에 10시간씩 말씀을 들으며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억지로 하던 성경말씀을 읽는 것으로 인해 점점 사람이 변화되며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말씀을 읽으며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질문들도 점점 많았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6개월, 1년 이곳에 있었던 분들은 열정에 불타올라 예수를 전하기 위해 다시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상당수가 연결되어 한국에 들어와 한국사회에 정착하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나요? 순교하겠다고 고백한 자들의 믿음이 잃어버리게 됩니다. 한국에 와서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오르며,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린 자들이 대다수입니다. 핍박보다 유혹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발람의 교훈이 무엇이길래 핍박을 이긴 자들이 유혹에 넘어간 것일까요?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바로 이것을 니골라 당의 교훈이라고 합니다. 발람과 니골라가 같은 단어입니다. 발람은 히브리어고 니골라 당의 교훈은 헬라어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이름만 다르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백성을 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은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망하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 25:1-3)

     

    발락이라고 하는 모압 왕이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초청하여, 많은 선물을 주겠다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발람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에게도 민감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자,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 후에 약속받은 재물을 받지 못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을 무너뜨릴 계략을 발락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바알 숭배의 쾌락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여 그들을 무너뜨리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라는 부부의 신이 부부관계를 맺으면 땅에 풍요가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교규칙을 만드는데, 가나안에 있는 여인들을 잡아 축제에 참여한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게 하며, 그것을 본 신이 이 땅에 비를 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통해 먹을 것이 많아질 수 있다고 유혹하며, 신전에 잡혀온 여자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쾌락과 풍요의 꿈을 바알 숭배와 아세라 숭배 안에 넣어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 자리에 초대했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제우스를 섬기진 않지만 우리가 즐거워하는 쾌락을 숭배하게끔 마귀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한방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로또를 사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있고 주식을 사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제도 제가 어떤 분과 통화를 하는데 자기 아들이 대학교 4학년인데 코로나 상황 가운데 취업이 힘들 거 같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현금 100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식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20대에 가장 핫한 것이 주식입니다. 요즘 코로나 가운데도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로또 1등이 자주 당첨되는 곳입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 바울은 무엇이라고 경고하나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돈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이 땅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돈에 대한 의존과 사랑입니다. 이 의존과 사랑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을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하게 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미혹을 받게 되고 믿음이 떠나가며 이것이 자신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사랑으로 깊이 찔려 고통하는 모습을 요한계시록은 황충에게 쏘인다고 말합니다.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5] …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계9:3,5)

     

    말세에 이런 이상항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찌르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앙은 현재, 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핍박은 잘 넘어갔지만 이런 유혹에 넘어 고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께서 싸우시겠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싸우시겠다는 표현은 마귀와 싸우실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성도들이 마귀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싸우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심판자로서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숭배와 싸워 이기는 자에게는 무엇이 약속되어 있나요?

     

    [17]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나는 영생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풍요와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흰 돌은 고대의 입장권입니다. 흰 돌이 하늘 나라 입장권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이 새겨진 입장권을 주심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성도를 유혹하며 핍박합니다. 마귀의 공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귀가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 잘 분별하여 약속된 영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